28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축제의 막이 올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 중 하나인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가 10월 4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관객과 영화인의 장을 마련했다. 이번 BIFF는 사무국을 꾸리는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발생해 우려를 빚었으나 상황을 마무리하고 영화인들의 힘을 모아 무사히 개최에 성공했다. 특히 이번 영화제가 제목부터 흥미를 끄는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를 개막작으로 선정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올해로 28번째 생일을 맞이한 BIFF. 미리 만나본 개막작의 첫 인상과 개막식 현장의 열기를 정리해 구독자들에게 전한다.


올해의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제목부터 도발적인 <한국이 싫어서>는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해당 소설은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20대 여성을 내세워 젊은 세대가 느끼는 한국 사회를 되짚어 반향을 일었다. 장건재 감독은 이 소설을 발간한 해에 접하고 곧바로 영화화에 착수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소설의 기본 골자를 그대로 가져와 20대 여성 계나가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겪는 일을 얽었다.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떠나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는 계나는 고아성이 연기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다양한 인물과 앙상블을 빚으며 작품을 이끌어 삶에 지쳤으나 끝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계나의 면면을 영화에 성공적으로 담아낸다.

장건재 감독은 여행과 그 시간을 지나온 인물의 변화를 그동안의 작품에 탁월하게 녹여왔다. 이번 <한국이 싫어서>도 도발적인 제목과 달리 그 영화들과 궤를 같이 한다. 단순히 뉴질랜드에서의 계나를 선형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한국에서의 순간과 겹치며 인물의 층을 더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호흡한 재인 역의 주종혁과 지명 역의 김우겸 또한 등장하는 장면마다 감성적인 색채를 더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 실제로 유학한 적 있는 주종혁은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한국이 싫어서> (왼쪽부터) 윤희영 프로듀서, 주종혁, 김우겸, 장건재 감독

<한국이 싫어서>

BIFF는 이번 영화를 선정한 이유로 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을 뽑았으나 사실 <한국이 싫어서>와 BIFF는 이전부터 인연을 함께 했다. <한국이 싫어서>는 2016년 BIFF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서 첫 선을 보이며 제작에 착수했는데, 본격적으로 촬영에 착수하기 전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인 팬데믹에 해외 촬영을 할 수 없게 돼 촬영의 난항을 겪었다. 이후 엔데믹 시대가 오고 난 후에야 뉴질랜드에서의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지점에서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영화 내외로 진한 여운을 남긴다. 괜찮은 직장과 오랜 시간 함께 한 남자친구. 꽤 안정적으로 보이는 환경에도 스스로의 생활에 물음표를 찍고 인생의 주도권을 찾아 나선 계나의 모습과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제작이 지지부진했으나 끝내 완성본을 선보인 <한국이 싫어서>.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계나와 <한국이 싫어서>의 닮은 면은 작품을 접한 관객, 영화가 나오기까지의 여정을 아는 관객 모두에게 만족감을 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국이 싫어서>가 다소 늦게 당도했다는 것.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제작 연기가 불가피했으나, 어쨌든 시간은 <한국이 싫어서>를 기다려주지 않은 채 흘렀다. 청년의 방황과 성장기는 어느 시대든 통하는 소재이긴 하나, 몇몇 장면에서의 표현이 2023년에 적합한지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한국이 싫어서>


주윤발의 한국말 솜씨, 개막식에서 맛보다

개막작을 짚어보았으니 개막식 또한 간략하게나마 현장의 열기를 전해본다. 이번 BIFF는 상당히 많은 게스트들이 함께 했는데, 그만큼 특별한 건 바로 '손님맞이'에 나선 호스트다. 집행위원장이 현재 직무 대행인 관계로, 이번 BIFF 호스트는 배우 송강호가 나섰다. 사무국 문제로 다사다난한 와중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의 호스트 합류는 BIFF에 새로운 에너지로 작용했다.

호스트 송강호(왼쪽)과 주윤발의 만남 (사진 출처=BIFF 제공)

영화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레드카펫에선 국내 영화인들뿐만 아니라 아시아권과 할리우드 배우 등 스타들을 대거 만날 수 있었다. 영화 <녹야>로 찾아온 판빙빙, 기획전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참석한 존 조와 저스틴 전, 특히 화룡점정을 찍은 <원 모어 찬스>의 주윤발까지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왼쪽부터)원로 배우 김영옥, 박근형, 나문희가 등장하자 현장에서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사진 출처=BIFF 제공)

그래도 올해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은 팀을 뽑자면 단연 <소풍>일 것이다. 노년기 세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소풍>은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이 주연을 맡았다. 그동한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활약한 세 원로 배우의 발걸음에 모든 관객들이 여느 때보다 큰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그 외에도 레드카펫을 밟는 동안 객석 구석구석에 시선을 던지며 관객들을 챙긴 <LTNS> 안재홍과 이솜, 포토월을 지나고 현장의 수많은 관객들을 보자마자 입을 떡 벌린 <운수 오진 날> 이성민 등이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모았다.

배우 윤정희 추모 영상 중 일부 (사진 출처=BIFF 제공)

주윤발 배우의 입장을 마지막으로 레드카펫 행사가 끝나고 개막식이 시작됐다. BIFF 최초 단독 사회를 맡은 배우 박은빈의 인사에 이어 올 초 세상을 떠난 배우 윤정희를 추모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윤정희 배우의 배우 인생을 전하는 영상과 함께 그의 딸 백진희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연주했다. 윤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곡이라고 한다. 이후 남동석 집행위원장 직무대행과 <시>의 이창동 감독이 공로상을 수상해 배우 윤정희를 기렸다.

이후 뉴 커런츠 심사위원 소개가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아시아영화인상' 시상 무대가 이어졌다. 호스트 송강호가 “영화계 큰 형님”이라는 소개로 호명한 배우는 <원 모어 찬스>의 주윤발. 주윤발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축하하는 영상에는 배우 유덕화, 허안화 감독(<호월적고사>), 이안 감독(<와호장룡>), 박찬욱 감독, 지아장커 감독의 축하 메시지가 담겼다. 특히 지아장커 감독은 주윤발에 대한 무한 애정을 표하면서도 “사실 아직 만난 적도,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지만 저처럼 언제나 주윤발 배우와 작업하길 바라는 감독이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여 주윤발이 가진 위상을 강조했다.

'따거' 주윤발은 상을 받은 직후 관객과 셀카를 찍으며 장난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사진 출처=BIFF 라이브 방송)

<영웅본색>, <첩혈쌍웅>, <도신>, <와호장룡> 등 80년대부터 홍콩 영화계의 상징과도 같은 주윤발은 이날 “배우를 시작한 것이 1973년이니 올해가 딱 50년째다”라고 입을 뗀 후 지금까지 자신을 있게 한 홍콩TV 방송국, 홍콩 영화계, 아내, 그리고 한국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주윤발은 수상소감을 끝내고 관객들과 사진을 찍고 싶다며 “빨리빨리, 시간이 없어요”라는 한국어를 구사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에도 그는 “이뻐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한국말을 외쳐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영화팬들이 매년 기다리는 BIFF는 이제 시작되었다. 이번 영화제는 9일 한글날 연휴까지 있어 많은 영화팬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홍역을 겪은 BIFF가 올해를 새로운 도약의 순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길(혹은 방문하길).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