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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장건재 감독

“김주령은 장면의 감정을 정밀타격하는 배우 … 40대 주희의 숭고한 두 시간 만나보길”

씨네플레이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포스터.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포스터.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연극배우 출신 교수이자 40대 중반인 주희(김주령)는 어느 날 병원 의사로부터 암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의사는 10%의 확률이니 미리 걱정하지 말자며 검사를 권유한다. 남편과의 이혼 문제, 할머니가 돌보는 어린 딸 같은 개인적인 문제를 생각할 여유도 없는데, 학점 문제로 연구실을 찾아오는 학생부터 학교 행정에 불만인 동료 교수까지, 주희는 도무지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오롯이 집중할 시간이 없다. 5시부터 7시까지 주희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리고 주희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카메라는 주희와 남편(문호진)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하는 구조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당신이 만약 암 진단을 받는다면,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다정다감 씨네에세이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독립영화 전문 프로덕션 모큐슈라의 총괄프로듀서인 장건재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다. 첫 장편 <회오리바람>(2010)이 제28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제45회 페사로국제영화제 뉴시네마 대상을 수상하며 국내외에서 기대되는 신인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장건재 감독은 임신과 출산의 고민을 통해 부부 관계의 변화를 맞게 되는 결혼 2년차 커플의 현실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장편 <잠 못 드는 밤>으로 언론과 평단,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작 <한국이 싫어서>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역시 시네필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연기, 촬영, 연출, 제작을 넘나들며 특유의 감성과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장건재 감독은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서 김주령 배우와 두 번째 합을 맞췄다. 김주령 배우는 전작 <잠 못 드는 밤>에서 30대의 주희를 그렸고, 이번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서는 40대의 주희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시네필이라면 제목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누벨바그 시네아스트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1962년 세상에 내놓은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바로 떠오르기 때문.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으로 영화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장건재 감독은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서 단순히 거장 시네아스트 작품의 제목만 빌려온 것이 아니다. 1962년 죽음을 예감하고 파리를 정처 없이 거닐던 젊은 여배우 클레오를, 2023년 중년의 주희로 재해석했다. 장건재 감독의 영화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를 어떻게 오마주했을까? 어떤 면에서 차별점을 뒀을까? 동교동에 있는 영화사에서 장건재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건재 감독.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장건재 감독.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전작 이후 텀이 좀 있는데, 무얼 하며 지내셨나요?

시간이 많이 지난 건 아닙니다. 2020년에 전작 <달이 지는 밤>을 무주산골영화제 프로젝트 영화로 만들었어요. 그 사이에 프로듀싱도 했죠.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가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을 받았습니다. 2021년에는 TV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도 했네요. 작년엔 책도 한 권 기획했어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 관련 책이었죠. 그러면서 <한국이 싫어서>를 준비했습니다. 2016년 판권 구입하면서 준비했는데, 투자나 캐스팅이 안 되던 상황이었거든요.

많은 일을 하셨네요.

네. 그 시기에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코로나가 터진 2020년이라 학교가 문을 닫았죠. 홈스쿨링을 해야 했어요. 저도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하던 ‘독립 영화 방식’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였습니다.

독립영화 방식이라…. 일단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영화의 출발부터 여쭤볼게요.

코로나 시기에 아이디어가 태동한 건데요. 2020년이면 김주령 배우가 드라마 <오징어게임>(감독 황동혁)으로 한창 주가를 높이던 시기였죠. 사실 저희는 작품이나 아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친구 사인데요. 예전처럼 가벼운 프로덕션으로 밀도 있는 작업을 해보자고 한 거죠. 사실 저 역시 투자 자본을 기다리느라 지치기도 했거든요. 그러면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그럼 촬영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마치신 거예요?

2020년 10월 16일 첫 촬영 들어갔고, 2022년 4월 1일에 종료했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김주령 배우나 저나 둘 다 기본적으로 하는 작업이 있잖아요. 주말에 시간을 내서 띄엄띄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찍자고 한 거였죠.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아이디어 떠오르면 대본을 더 쓰면서, 그렇게 빌드업하는 방식으로 했어요. 어떤 모양의 결말이 나올 줄 모르는 방식으로요. 여가시간을 활용해서 영화 한 편을 찍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여가로 찍으신 영화치곤 너무 재미있는 거 아닌가요? 이런 게 재능인가 싶기도 하고요.(웃음)

아이고, 여가라고 하니 좀 어폐가 있는데요.(웃음) 이 영화 작업을 메인으로 두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영화라고 하면 기한을 정해두고 집중해서 촬영하잖아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그걸 벗어나서 최대한 여유롭게 했어요. 시간이 맞으면 만나는 거고요.

길게 찍으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었을 거 같아요.

 

김주령 배우가 그 사이에 좀 긴 드라마에 캐스팅되었어요. TV조선 드라마였는데 회장님 비서 역할이라 똑단발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영화에서는 2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이라 머리 길이가 일정해야 했거든요. 아, 그리고 주희가 화장실 가서 가슴 멍울을 확인하는 장면도 기억이 나네요. 사실 시나리오상에는 없다가, 촬영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찍은 장면이에요. 그렇게 영화 촬영 시간, 효율성에 구애받지 않고 찍었어요. 이게 이번 영화 연출에서 가장 큰 원칙이기도 했네요.

연출적인 부분을 여쭤볼게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와 달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2개의 이야기가 병행하는 구조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구성한 건가요?

원래 뼈대는 김주령 배우 그러니까 주희의 연구실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였어요. 실내극이었던 셈이죠. 그러던 중에 남편 역을 맡은 문호진 배우가 제게 워크숍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어요. 이건 영화 외적인 부분이었죠. 그러다 문호진 배우가 제안했습니다. 워크숍에 참여하는 젊은 배우들과 짧은 단편 영화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요. 스태프든, 배우든 거기 젊은 배우들이 전부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요. 그래서 제가 대본을 써올 테니 실전처럼 한 번 해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게 극단 이야기였죠. 이 아이디어를 키우다가 제가 찍고 있던 주희 이야기를 합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뒤에 생긴 거죠.

문호진 배우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 김주령 배우랑 영화를 찍는 중인데, 우리 워크숍을 남편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고요. 김주령 배우에게도 지금 배우들과 워크숍 중인데 서로 만나지 않는 동시간대 영화를 지그재그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어요. 다행히 둘 다 오케이했고요. 사실 두 배우는 상대 이야기 파트를 모르는 상태였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공개할 때서야 김주령 배우와 문호진 배우가 처음 만났다니까요. 합쳐진 영화도 처음 봤고요(웃음).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포스터.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포스터.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제목에서부터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떠오릅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 영화의 어떤 점에 끌리셨는지, 아니면 그 시대 누벨바그 영화들을 어떤 면에서 좋아하시는지 설명해주세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프랑스 파리를 다녀왔던 사람이든 아니든 60년대 파리의 생생한 모습을 담아낸 영화로 알려져 있죠. 두 시간이 딱 떨어지는 영화는 아니지만, 한 사람의 감정선을 잘 따라가는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형식적으로는 다큐멘터리를 취하지만 영상미가 빼어난 영화기도 하고요.

사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누벨바그 감독 중 에릭 로메르와 함께 늦게 발견된 감독입니다. 영화사를 공부하면 늘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이나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로 누벨바그를 접했죠. 그런데 확실히 바르다 영화의 결은 달랐던 거 같아요. <행복>이 그중에서도 정말 충격적이었죠. 굉장히 전복적인 영화였고, 그런 면에서 좋았어요. 바르다의 후반기 영화들이 굉장히 여유롭고, 자기반영적이고, 성찰적이잖아요? 그런 영화도 좋아하지만, 저는 초기 두 편의 이 극영화가 정말 좋아요. 저는 언젠가 이 두 영화의 전복적인 면을 차용해서 멜로드라마를 찍어보고 싶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멜로드라마를 만들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왜 지금이 가장 멜로드라마를 만들기 좋은 시기인가요?

가부장제부터 그렇죠. 가족 제도가 붕괴되고 있잖아요. 이런 부분들을 멜로드라마 형식으로 만들고 싶어요. <행복> 같은 영화로요. 바르다에 대한 시네필로서의 경배의 마음도 물론 있고요. 이번 영화를 기획하면서 불안에 휩싸이는 40대 중반 여성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실내에서 벌어지지만 당대의 어떤 공기를 담아낼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합쳐졌죠. 사실 아주 클래식한 제목을 차용해서 쓰는 건 좀 불리하기도 하지만, 제 마음이 담겨 있어서 그렇게 쓰게 된 거예요. 영화에도 <행복>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그만큼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고요.

잘 알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요, 이번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서는 그런 점을 어떻게 오마주하려고 하셨는지, 또 다르게 표현하려고 했던 부분은 무엇인지, 그런 점들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궁금해요.

아마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보신 분들이라면 첫 장면부터 눈치를 채셨을 건데요. 첫 장면이 타로고, 우리 영화는 의사죠. 그러니까 타로는 운명론적인 점술 행위라고 한다면, 주희와 의사가 함께 보는 초음파 사진은 운명론적으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10%라고는 하지만 암 환자로 판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주희는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갑니다. 말투도 그렇게 나긋나긋해요. 보통 사람이라면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주희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남편에게 전화하는데 받질 않아서(웃음). 주희의 신체 변화를 병원 가기 전날, 간 날, 다음날로 구분하지 않고, 또 투병 과정을 담지 않은 이유가 사실 거기에 있어요. 주희가 굉장히 침착하게, 어찌 보면 숭고하다 싶을 정도로 하루를 잘 보내는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수잔 손택도 그랬잖아요. 병은 치료의 대상일 뿐 죄와 형벌의 대상이 아니라고요. 그랬기에 주희가 자겨야 하는 무게감이라는 것이,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길래라거나, 잘못 살아온 삶에 대한 결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대본을 썼습니다. 주희가 거기에 매몰되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고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잠 못 드는 밤>에 이어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는 모두 ‘주희’가 나옵니다. 그리고 김주령 배우가 두 주희를 연기했고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김주령 배우의 매력과 강점은 무엇인가요?

이번에 작업하면서 새삼 느꼈는데, 일단 자신의 몸과 소리를 굉장히 잘 쓰는 배우입니다. 아주 테크니컬하고 정확하죠. 목표로 하는 감정, 톤, 발성이 정확한 배우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몇 년 작업을 함께 안 한 사이에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제는 거의 장인의 길로 진입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전 <잠 못 드는 밤>에서도 온몸을 다 던져서 작업하는 배우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인물에 엄청 가깝게 다가가고요. 가끔 배우들은 캐릭터 뒤에 숨거나 거리감을 두면서 자신도 지키고, 쿨다운하기도 하는데, 김주령 배우의 온도는 굉장히 뜨겁습니다. 그래서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도 오래 걸리는데, 근래에는 굉장히 노련해진 느낌입니다. 배우와 생활 사이에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데, 거기서 노련함이 생겨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영화에서는 어떤 씬에서 그런 모습이 보였나요?

전체적으로요. 음, 이게 배우에게 칭찬이 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사 NG가 하나도 없었어요. 대본에 가끔 배우 입에 맞지 않거나 하기 어려운 말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떡해서든 소화해내는? 장면이 가진 감정을 정밀타격하는 배우라는 점을 인상적으로 느꼈습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잠 못 드는 밤>에서 30대 주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서 40대 주희를 모두 김주령 배우가 맡았어요. 그러면 50대 주희도 볼 수 있는 건가요?

김주령 배우가 올해 초 할리우드 에이전트와 계약을 했어요. 대본을 받으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더라고요. 본인 피셜로는 미국에 자리 잡으면 직접 프로듀싱해서 초대할 테니, 50대 주희는 미국에서 찍자고 하더라고요. (웃음)

꼭 미국에 가시길 기원하겠습니다(웃음). 김주령 배우가 극을 이끌고 가지만 남편 역할을 했던 문호진 배우도 역할이 컸죠.

김주령 배우가 주인공이지만, 문호진, 안민영 배우가 공동 프로듀서로도 참여했어요. 이 두 분이 극단 파트의 배우들을 다 관리해주셨어요. 엄청 고생하셨죠. 연기도 직접 하지만, 프로듀서로서 영화 외적인 부분도 담당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실 안민영 배우는 <달이 지는 밤>에서 강진아 배우 엄마 역으로 함께 만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만 컬러고 영화 메인은 흑백입니다. 이렇게 찍은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은 클래식한 흑백영화가 주는 그런 바이브를 만들고 싶었어요. 디지털로 촬영하긴 했지만 컬러리스트에게 굉장히 거친 흑백필름 느낌 내달라고 요청했죠. 이번 영화는 촬영도 제가 했어요. 마지막 장면은 말로 설명하긴 조금 어려운데, 시간이 흐르고 현실 세계에 좀 더 가까워지는 의미에서 컬러로 전환했습니다. 좀 더 극적인 느낌이 나도록요. 이건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한 건 아니었고, 영화를 찍으면서 생각난 아이디어였어요.

카메라가 대부분 고정되어 있더라고요. 특별한 의도가 있었나요?

다른 이유보다 조수 없이 촬영하다 보니까(웃음). 카메라가 움직이면 배우 연기를 볼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고 컷을 나누는 방식으로 촬영했습니다.

연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원칙은 아까 말씀하신 대로 ‘여유롭게’ 찍자는 것이었겠죠?

그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하루에 한두 컷, 일주일에 한두 컷 찍는 거로요. 어떤 날은 너무 추워서 한 컷 찍으려고 모였다가 철수한 적도 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번 영화 작업을 빌미로 그간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난 거예요. 늙다리 졸업생으로 등장하는 이지유 학생은, 실제로 제가 가르쳤던 제자이기도 했거든요. 막 친한 건 아니었지만, 졸업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차 한잔하자고 만났죠. 그날 한 이야기를 영화에 녹이고 직접 출연해달라고 했고요. 다른 인물들도 비슷해요.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퇴장하는 그런 것들요.

 

장건재 감독.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장건재 감독.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시네필들의 사랑을 유독 받으시죠? 원래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셨나요?

어렸을 때 적은 돈으로 시간을 오래 보낼 수 있는 두 곳이 있었습니다. 목욕탕이랑 극장이었죠. 저는 극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예전에 시네마테크라고 불리긴 했는데요, 한국에 수입이 안 되었던 영화를 복제해서 상영하던 극장이 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불법이었던 거 같아요. 넷플릭스 <노란문>(감독 이혁래)에서 언급되기도 했는데, 1990년대 중후반 대학가에 그런 문화가 많았어요. 총신대입구에 있던 문화학교서울에서 영화를 공부했습니다. 지금 인디스토리 곽영수 대표가 당시 문화학교서울의 사무국장이었죠.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나 모은영·김영동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도 다 거기 출신이에요.

90년대 중후반이면 한국영화에 새로운 바람이 태동하던 시절이죠.

한국 영화가 산업화되기 전 방황의 마지막 시기라고 할까요? 1995년에 <서편제>(감독 임권택) 같은 영화가 나왔고요, 1996년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감독 홍상수)이 나왔죠. 1998년에 <쉬리>(감독 강제규)가 나왔습니다. 저는 1994년에 문화학교서울에서 수입이 안 되던 유럽 예술영화나, 1970년대 아메리칸뉴시네마를 봤어요. 존 카사베츠 감독이 어떠니 하면서요. 그런데 사실 감독이 되어야겠다는 자의식도 없이 영화를 보던 시절입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예전 생각이 나네요. 그렇게 영화감독을 꿈꾸셨던 건가요?

열심히들 비디오를 보면서 자막을 달았어요. 프랑스 유학생은 불어 자막을, 미국, 영국 유학생은 영어 자막을 달았고요. 저는 그런 극장에서 하루 두세 편씩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다행인 건 거기 진지하게 영화를 공부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서울대생도 많았고요(웃음). 거기에 조금씩 젖어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면서 영화학교 진학을 결심한 거죠. 촬영으로요.

잘 알겠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한국이 싫어서>도 개봉을 앞두고 있죠?

내년 2, 3월 정도를 목표로 준비 중이에요.

차기작은 뭘로 준비 중이세요?

<최초의 기억>이라는 영화인데 서울독립영화제 장편경쟁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역시 내년에 극장 개봉할 예정이고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인디스토리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일단 이 영화를 보시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요즘 극장 상황이 너무 어렵고 독립영화는 더더욱 어려운데, 극장에 와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거 같아요. 그리고 이 영화는 두렵지만 어떤 일을 시도해보고 싶은 분들, 또 자기가 오랫동안 투신해왔던 일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변화하고 싶어 하는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우리가 사실 다 멀쩡하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고 있지만, 다들 몸과 마음이 아프고 많은 사연을 머금고 살아요. 주희도 만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언제든 그 자리에 있을 거 같은 사람이지만 두려운 시간을 마주한 사람이듯이요. 우리도 나를 비롯한 주위에 있는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영화면 좋겠어. 또 우리는 힘들고 나약하지만, 주희처럼 한 방을 타인에게 내줄 수 있는, 그런 태도를 가지면 좋겠어요. 저는 주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