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젊은 한국인 보편의 이야기, 고아성이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는 영화 〈한국이 싫어서〉 리뷰와 기자간담회 현장

김지연기자

 

‘추위를 싫어한 펭귄’. 추운 곳에서 나고 자란 펭귄이 실은 추위를 싫어한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추운 곳을 떠난다. 혹은, 추위에 어떻게든 적응해 본다. 월트 디즈니 세계 명작 동화책 「추위를 싫어한 펭귄」의 2024년 한국 버전이라고나 할까,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한국을 떠나는 계나(고아성)의 이야기를 담는다.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계나는 평범한 20대 후반의 직장인이다. 그는 인천에서 강남까지, 편도 2시간이 걸리는 출퇴근길을 매일 왕복하며, 회사에서는 그에게 원칙보다는 ‘좋게좋게’ 일을 처리하기를 바라며, 형편이 썩 좋지 않은 그의 가족은 그에게 적금을 깨서 아파트로 이사 갈 돈을 보태라고 하며, 오래 사귄 남자친구 지명은 결혼을 조른다. 어느 날, 계나는 그 모두를 뒤로하고 뉴질랜드로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장강명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 등 유수의 독립영화를 선보여 온 장건재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고아성, 주종혁, 김우겸 등이 출연했다. 오는 28일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지난 21일 오후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한국이 싫어서>의 언론배급시사회와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한국이 싫어서>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그리고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상영된 바 있는데, 감독과 배우들은 영화의 극장 개봉을 앞두고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배우와 감독이 전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기자 본인이 영화를 관람한 소감을 토대로 <한국이 싫어서>에 대한 이모저모를 전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품고 사는 인물에 관한 영화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얼핏 사회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개인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문제와 병폐를 고발하고 소시민의 고통을 처절하게 묘사한다기보다는 개인의 소박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쪽에 가깝다.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이 추운 곳을 떠날지, 혹은 아등바등 댈지라도 추위에 어떻게든 적응하며 살아가 볼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펭귄 개인의 선택이다. 그처럼,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한국을 떠나는 선택을 골랐을 뿐이다. 단지 계나를 ‘방황하는 청춘’ 등의 키워드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삶의 지반을 바꾸면서까지 계나가 찾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계나는 목적성을 가지고 한국을 떠났다기보다는 ‘떠나는 행위’ 자체가 그 목적이었다. 기자간담회에서 장건재 감독은 “계나는 어떤 결론을 가지고 사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계속 질문을 품고 있는 인물”이라며 계나를 ‘질문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인물로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제 막 계나와 비슷한 나이대를 지나고 있는 배우 고아성에게도 이 영화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 듯한데, “맨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내가 만약에 놓친다면 영영 후회할 것 같은 그런 작품이었다”라며 “사회초년생을 지나, 직장 생활을 수년간 한 20대 후반의 지친 여성상을 그려보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장건재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지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피로감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한국과 뉴질랜드, 지옥과 낙원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무의미한 이유다. 계나가 한국을 떠난 이유는 뉴질랜드라는 공간에 대한 동경이라기보다는 현재 상태에 대한 피로감에서 기인한다. 장건재 감독은 “계나라는 인물은 살갑고 건강한 애인이 있고, 계층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지만 좋은 가족이 있고, 심지어는 정규직 직장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갑갑함은 이전에는 없던, (요즘의 젊은 세대를 비롯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모든 계나와 지명에게

2024년, 소위 ‘MZ 세대’를 향한 조롱이 유행하는 시대다. ‘MZ 세대’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거나, 불만이 많다거나, 사회의 관습을 거부한다거나. 특정 편견이 모여 과장된 방식으로 MZ 세대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빚어진 2024년의 한국에서, <한국이 싫어서>는 다양한 선택을 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을 조명한다. 계나의 오랜 남자친구 지명(김우겸)은 계나와 상반된 인물로, 한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꿈꾼다. 앞서 말한 ‘추위를 싫어한 펭귄’에 대한 예시를 들자면, 그는 추위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추위에 어떻게든 적응해 이곳에서 살아나가고자 하는 인물에 가깝다. 

〈한국이 싫어서〉 지명(김우겸)
〈한국이 싫어서〉 지명(김우겸)

지명 역의 배우 김우겸은 “계나 입장에서는 지명이가 답답하거나 눈치가 없고, 낙관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보면 필요한 모습이기도 하다. 낙관적인 것도, 상황에 만족할 줄 아는 모습도 필요하다”라고 지명이의 입장을 대변해 전했다. 

계나의 또래지만 어려서부터 아역 생활을 해, 경력이 많은 베테랑 배우 고아성에게 계나의 선택이 어떻게 느껴졌을까. 고아성은 “저는 무조건 계나에 이입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객관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영화를 보시는 분들의 의견이 갈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이 싫어서>를 보시는 분들 중에 지명과 같은 의견을 가진 분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두 부류의 관객분들을 생각하면서 연기했다”라고 전했다.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 장건재의 특기

〈한국이 싫어서〉 재인(주종혁)과 계나(고아성)
〈한국이 싫어서〉 재인(주종혁)과 계나(고아성)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장건재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대중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자, 독립영화의 아이콘으로 불려온 장 감독의 개성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이 싫어서>의 대중성의 원천이라면, 물론 스타 배우 고아성의 몫이 크기도 하지만 배우 주종혁이 연기한 재인 역할 역시 큰 지분을 담당한다.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만난 친구인 재인은 자칫 무겁게 빠질 수 있는 극을 환기하는 인물로, 등장 장면부터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한다. 재인 역의 주종혁은 실제로 뉴질랜드에서 6년간 유학 생활을 했는데, 주종혁은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인의 외형부터 말투까지를 제안하며, 재인을 분명 어디엔가 있을 법한 인물로 재탄생시켰다.

장건재 감독은 그가 독립영화에서 즐겨 사용했던 방식을 <한국이 싫어서>에도 차용하며 그만의 색깔로 영화를 완성했다. 현실과 환상을 교차하는 구성, 비전문 배우의 기용 등이 바로 그것이다.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 ‘내가 좋아하는 건’ 등으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김뜻돌은 계나의 동생 미나 역으로 영화에 출연했는데, 이와 같은 파격적인 캐스팅에 대해 장건재 감독은 “기존의 배우가 아니라, 다른 분야에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계나의 동생 역할은 조금 다른 질감의 인물이었으면 했다. 김뜻돌 씨는 굉장히 상징성이 있는 음악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더불어, <한국이 싫어서>에는 배우 겸 개그우먼 정이랑이 ‘행복 전도사’로 특별출연해 영화의 웃음 포인트를 담당한다. 장 감독은 “(정이랑 배우는) 언젠간 함께 작업해 보고 싶었던 배우”라며 “거칠게 표현하면 ‘행복 담론의 약장수’같은 사람으로 나오면 굉장히 재밌지 않을까, 하며 난데없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