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모이기 힘든 네 명의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한데 모였다.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저스틴 전 감독,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 <버닝>의 스티븐 연, <서치>의 존 조까지. 공통점이라면, 모두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것.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는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섹션을 마련해,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영화감독과 배우들을 조명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 섹션에서는 올해 선댄스영화제 화제작인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 저스틴 전 감독의 신작 <자모자야>,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작인 <미나리>, 스티븐 연이 출연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 존 조가 출연한 <콜럼버스>, <서치> 상영이 진행된다. 더불어 재미교포 감독과 배우들이 직접 부산을 찾아 오픈 토크, GV, 액터스 하우스 등에 참석하며 국내 관객들과 호흡한다. 부국제 사흘째를 맞은 10월 6일, 저스틴 전, 정이삭, 스티븐 연, 존 조가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기자회견이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서 네 명의 영화인들이 나눈 말들을 전한다.
2023년 지금, 부국제에서 ’코리아 디아스포라’를 조명하는 것의 의미란
할리우드의 베테랑으로 활약하고 있는 영화인들도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이름으로 올해 부국제에서 자신들의 영화가 재조명 받는 현상에 남다른 감회를 느끼고 있었다. 스티븐 연은 "이 자리 자체가 우리가 서로 이해를 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이 자리를 통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저스틴 전은 “정이삭 감독과는 이번에 처음 만났다”라고 할 만큼, 할리우드에서는 이들이 한데 모일 만한 기회가 없었던 것이 사실. 저스틴 전 감독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섹션은) 우리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획 자체가 감사하다. 우리(코리안 아메리칸)의 문화가 주류 한국 문화와 어떻게 다른지, 혹은 공통점은 무엇인지를 찾고 대화를 하려는 노력이다. (미국에서는) 주류 사회가 우리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이 같은 경험은 자라면서 해보지 못했다. 한 공간에서 우리의 개별성을 인정하며 서로의 다른 관점을 나누는 경험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존 조는 일찌감치 한 이민자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문제아」(원제: troublemaker)라는 중편소설을 출판한 작가이기도 하다. 존 조는 자신이 영어로 쓴 소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다시 한국 독자들에게 읽히는 것을 보고,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한국인들이 우리(재미교포)의 삶을 궁금해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라며, 부국제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역시 자신에게는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디아스포라 콘텐츠가 사랑받는 이유? “상실은 인류 보편의 감정이기 때문”
왜 특히 요즘,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가 흥행할까. 정이삭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해 “다들 이민자의 현실과 비슷한 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 감독은 “사람들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에 이민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공감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하면서,“인생은 여정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공감을 낳을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존 조는 이민자의 이야기가 사랑받는 이유로 “자기인식(self-awareness)이 높아진 시대”라는 점을 꼽았다. 존 조는 “시스템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마치 이민자의 멘탈리티와 비슷하다고 전했다. 이민자들이 새로운 나라의 시스템에 부딪히고 또 적응하기 위해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누구나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것.
“할리우드는 플롯, 한국 영화는 감정”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인들은 그들의 독특한 배경 덕에 할리우드 영화도, 한국 영화도 모두 한 발짝 뒤에서 볼 수 있는 제3자의 입장을 가졌다. 그들에게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의 차이를 묻자, 저스틴 전은 “할리우드는 플롯을 중요시하는 반면, 한국 영화는 감정이나 철학의 예술”이라고 밝혔다. 저스틴 전은 “할리우드 영화는 반전 등의 구조를 짜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한국 영화에서 때로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플롯보다 더욱 중요하게 나타나기도 한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또, 저스틴 전은 “스티븐 연이 출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저스틴 전은 이 대목에서 ‘비프, 소고기’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는 그 갭을 연결하는 작품이다”라며, “미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으로 동서양의 관객을 만족시켰다”라고 전했다.
정이삭은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의 차이에 대해 “유머나 감정이 나타나는 방식이 다르다. 미국은 조금 더 분명하다면, 한국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조금 미묘하다. 하지만, 유머가 다를지언정 요즘에는 더욱 개방적으로 서로의 것을 본다”라고 답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본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서 사는 유대인을 일컫는 단어다. 그러나 ‘디아스포라’의 의미는 점차 확장되어, 고국을 떠나 타지로 이주한 사람들 혹은 그 현상을 전부 통칭하게 되었다.
존 조는 “사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이라고만 불리는 것은 완전하지 않았다”라며, 그런 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충분히 설명하는 말이 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국경이 없다. 국가를 뛰어넘는 것”이라며, 국가를 넘어 흩어진 개인들의 개별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디아스포라’를 긍정했다.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말은 악의는 없을지언정 그들을 은연중에 ‘코리안’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둔다. 다만, ‘디아스포라’는 ‘코리안 아메리칸’을 넘어, 그들의 개별성을 주목하게끔 하는 말이기도 하다.
코리안 아메리칸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민자의 이야기에만 주목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물론 출신 국가와 부모님의 국가는 그들의 정체성의 일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스틴 전과 정이삭 감독은 모두 향후에 비단 이민자의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스틴 전은 “영화는 내 삶의 과정을 이해하는 작업”이라며 “한국 사람인 것도 물론 그중의 일부다”라고 밝혔으며, 정이삭은 “영화는 모험과 같은 것”이라며 앞으로도 자신의 흥미에 따라 영화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