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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성난 사람들〉앨리 웡, 지독하게 얽힌 그의 삶과 작품 사이

이진주기자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은 공개 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골든글로브 3관왕’, ‘크리틱스초이스 4관왕’, ‘에미상 8관왕’ 등 그야말로 싹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유수의 시상식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보인 <성난 사람들>은 2023년을 가장 충격에 빠뜨린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성과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성난 사람들>의 제작진이 대부분 동양계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민 1.5세대와 2세대들이 경험한 현실 밀착형 이야기에 세계가 움직인 것이다. 특히 <성난 사람들>의 감독을 맡은 이성진과 배우 스티븐 연의 약진에 국내 언론이 들썩였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성진 감독은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후 “LA에 처음 왔을 때 은행 통장은 마이너스 63센트였다. 그때만 해도 이 상을 받을 줄 몰랐다”라며 기쁨을 전했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티븐 연은 “비판과 수치는 외로운 영역이지만 연민과 은혜는 모두가 만날 수 있는 곳이다”라며 자신의 캐릭터 대니를 연기하며 깨달은 연대의 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영광의 순간에 배우 앨리 웡 역시 있었다. 주인공 에이미 역을 맡은 앨리 웡은 <성난 사람들>을 통해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크리틱스 초이스 여우주연상, 에미상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작가 그리고 배우로 활동하며 늘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녹여낸 이야기를 전달한 그의 삶과 필모를 돌아보고자 한다.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 에이미 그 자체

앨리 웡은 <성난 사람들>의 에이미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에이미와 앨리 웡은 모두 베트남·중국계 미국인이다. 베트남 혈통인 어머니는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미국으로 건너왔고 중국계 미국인인 아버지를 만났다고 한다.

에이미와 앨리 웡은 예술가 집안의 남성과 결혼을 했으며 상대보다 경제적 우위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난 사람들>의 에이미는 선망받는 예술가 집안의 2세인 도예가 조지와 가정을 이루었다. 조지는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이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한데다 예술적 재능이 부족해 에이미가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한다. 때문에 에이미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앨리 웡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는 2014년 故 백남준의 조카이자 매니저로 잘 알려져 있는 저스틴 하쿠타와 결혼했다. 앨리 웡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신의 사업가 저스틴 하쿠타와의 결혼을 회상하며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발목 잡았다’고 웃었다. 그러나 곧 앨리 웡은 성공한 엔터테이너가 되어 (미 매체 ‘CelebrityNetWorth’ 추산) 400만 달러의 엄청난 돈을 벌여들었다.

에이미와 앨리 웡은 성공한 동양계 미국인 여성이다.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의 편견에 맞서며 커리어를 쌓았지만 가정에 소홀했다는 죄책감과 과도한 업무로 인한 만성 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성난 사람들>의 에이미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자신의 사업 ‘고요하우스’를 매각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 오히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되며 가정불화가 시작된다. 매사 낙천적인 남편 조지는 에이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에이미는 점점 더 외로움에 빠진다. 에이미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2022년 앨리 웡은 남편 저스틴 하쿠타와 결혼 생활 8년 만에 이혼을 선언했다. 극 중 에이미와 같이 앨리 웡의 생활은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엔터테이너로서 그의 커리어는 점점 성장했고 남편 저스틴 하쿠타와 두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그에게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만의 고충이 있었으니, 이내 코미디로 승화했다. 앨리 웡은 자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지금 제 남편은 집에 있어요. 제가 산 집에서, 제가 '아버지의 날' 선물로 사준 롤렉스 시계를 차고, 제가 매달 요금을 내는 초고속 인터넷으로 야동이나 보고 있겠죠”라며 무심한 남편에 대해 독설을 날렸다.

 

 미친 입담으로 세계를 사로잡다

“인격이나 정체성이 오직 인종과 성별이라는 잣대로 판단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한 앨리 웡은 인종과 성별 등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뼈 있는 농담으로 대중 앞에 서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코미디언 홀로 무대에 서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르이다. 한 명의 코미디언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매력과 입담, 순발력 등이 중요하다. 상황극 형식의 콩트가 주류인 국내에는 이제 정착을 시작한 단계이지만 영미권에서는 보편화된 형식이다. 로빈 윌리엄스, 짐 캐리 등이 스탠드업 코미디로 시작한 배우이다.

앨리 웡은 2016년 공개된 넷플릭스 <앨리 웡: 베이비 코브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52cm의 작은 키에 화려한 주얼리를 두른 동양인 여성의 거침없는 입담에 많은 이들이 빠져들었다.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앨리 웡은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은 채 만삭의 배를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그는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겪은 모순에 대해 꼬집는다. 특히 성과 결혼, 임신에 이르는 경험담에 대해 적나라하게 고백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앨리 웡은 6년의 시간 동안 세 편의 넷플릭스 스페셜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공개했다. 그 사이 유명 인사가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앨리 웡의 경험이 다양해질수록 그의 입담은 늘었다. 2018년 넷플릭스 <앨리 웡: 성性역은 없다>에서 또다시 배가 부른 모습으로 등장한 앨리 웡은 첫째 아이에 대해 ‘너무 사랑하지만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싶다’며 육아의 고충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4년 후 스탠드업 코미디쇼 <앨리 웡: 돈 웡>(2022)에서 여전히 화려한 호피 무늬 원피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그는 ‘혼자 살고 싶다’며 연신 자유로운 싱글이 부럽다고 외쳤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정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배우?

종합 아티스트!

코미디 영화 <더 히어로>(2018)로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한 앨리 웡은 다음 해 공개된 넷플릭스 <우리 사이 어쩌면>으로 대표적인 아시아계 여성 배우로 자리 잡았다. 나나츠카 칸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우리 사이 어쩌면>은 공개 후 4주 동안 약 3천2백만 가구가 시청하며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이 작품은 어릴 적 절친한 친구였던 한국계 미국인 마커스 김(랜들 박)과 베트남계 미국인 사샤 트랜(앨리 웡)이 15년 만에 재회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그린다. 유명 셰프가 된 사샤와 무명 뮤지션인 마커스는 서로에게 끌리지만 용기를 내기 쉽지 않고, 타이밍이 어긋나며 관계는 꼬여만 간다.

2018년은 본격적으로 아시아 문화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해이다. 2018년 8월 개봉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북미와 동남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영화 <스텝 업 2 - 더 스트리트>(2008), <나우 유 씨 미 2>(2016) 존 추 감독의 작품으로 중국계 이민 2세 레이첼 추(콘스탄스 우)와 싱가포르 재력가 집안의 아들 닉 영(헨리 골딩)의 사랑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극장 총 수익 약 2억 달러 이상을 남겼을 뿐 아니라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베스트 코미디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개봉 이틀 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은 매력적인 아시아계 캐릭터를 앞세웠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한국계 미국인 라라 진(라나 콘도어)가 짝사랑했던 남자들에게 남몰래 적은 다섯 통의 편지가 그들에게 전달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한국계 미국인인 동명의 원작 작가 제니 한은 영화화를 논의하는 단계에서 시리즈의 주인공을 백인 여성으로 바꾸자는 제작사의 권유에도 강력한 의지로 동양 여성 캐스팅을 고수했다. 그렇게 베트남계 미국인 배우 라나 콘도어가 캐스팅되었고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의 라라 진을 연기해 독특한 매력을 뽐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팬들의 성원에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P.S. 여전히 널 사랑해> (2020),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2021) 등 후속작을 제작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이와 같은 작품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우리 사이 어쩌면>은 주연 배우인 앨리 웡과 랜들 박이 각본에 참여했다. UCLA 동문인 두 사람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영감을 받아 색다른 로코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은 10년간 우정을 쌓은 해리(빌리 크리스탈)와 샐리(맥 라이언)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이야기이다. <우리 사이 어쩌면> 작업에 화장실을 잊을 정도로 몰입했다는 앨리 웡은 이 작품을 통해 코미디언뿐 아니라 배우이자 작가, 종합 아티스트로의 면모를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