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처음 소개되어 평단의 호평을 한몸에 받은 <아모레의 마지막 밤>의 안드레아 디 스테파노 감독을 부산에서 만났다. 어쩌면 그를 배우로 기억하는 팬들도 많을 것 같다. 하비에르 바르뎀에게 베니스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줄리앙 슈나벨의 <비포 나잇 폴스>(2000)에서, 레이날도 아레나스(하비에르 바르뎀)의 동성 연인 페페로 출연하며 자신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알린 바 있다. 이후 <나인>(2009), <라이프 오브 파이>(2012) 등에서도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가 언젠가 감독으로 변신했다. <아모레의 마지막 밤>은 세계 최고의 마약 제조업자인 파블로 에스코바르(베네치오 델 토로)에 관한 데뷔작이자 직접 시나리오를 쓴 <파라다이스 로스트: 마약 카르텔의 왕>(2014), 마약 카르텔을 일망타진하려는 FBI의 잠입 수사를 그린 <비밀 정보원: 인 더 프리즌>(2020)에 이은 세 번째 장편영화다.
35년간의 경찰 생활 은퇴를 앞둔 주인공 아모레(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는 한 중국 갱조직으로부터 비밀스러운 물건의 운송 업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는 부패한 경찰과 갱조직 모두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아모레의 길고도 위험한 밤을 숨 가쁘게 그려낸 이 영화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탈리아 누아르 영화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우리 아버지>(2020)로 베니스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진중한 사실성과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활력 사이에서, 위험천만한 상황을 정면돌파하려는 한 경찰의 하드보일드한 하룻밤을 그려낸 안드레아 디 스테파노와 긴 대화를 나눴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의 <비포 나잇 폴스> 등 여러 작품의 배우로 이미 유명했다. 어느덧 세 편을 연출한 영화감독이 됐는데, 2014년 <파라다이스 로스트>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직접 시나리오를 썼던 걸로 봐서 오랫동안 감독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비포 나잇 폴스>를 얘기해줘서 고맙다. (웃음) 그 영화는 지금도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도 훌륭했다. 이후 내가 감독이 된 건 ‘분노’ 때문이다. 배우로서 영화에 애정을 갖고 시나리오에 깊이 관여한 적도 많다. 어떨 때는 거의 내가 다시 각색한 적도 있다. 그런데 크레딧에 명확하게 표기되지 않은 적이 많아서 ‘이럴 바엔 내가 직접 감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배우일 때 한 번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감독을 하는 지금이 좋다. (웃음)
<아모레의 마지막 밤>은 실시간으로 긴박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시간 제약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시간에 쫓기는 설정이 감정의 온도를 보여주는 데 좋다. 거기서 인간 본성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아직은 연출자로서 긴 시간대를 다루는 이야기에 자신이 없기도 하다.
거대한 도로에서의 추격전과 질주신이 인상적이다. 며칠 동안 어떻게 통제하고 찍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도심 장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테스트 촬영을 할 때는 특수효과를 가미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들어서 실제로 특수효과 없이 찍으려고 했다. 한 파트는 실제 거리에서 차들을 다 세팅해서 촬영했고, 나머지 다른 파트는 사용하지 않는 고속도로를 섭외해서 촬영해 그 둘을 합쳤다. 힘들긴 했지만 내가 사랑했던 옛날 영화를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일들이 진짜로 일어나고, 그러는 가운데 진짜 감정이 드러나게끔 했다. 디지털의 개입이 흥미로운 결과를 낳는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가 주는 감동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다. 갈수록 현대 장르 영화가 비디오 게임처럼 가는 측면이 있는데, 인간의 노력이 보여줄 수 있는 감동이 분명히 있다. 처음부터 이 영화를 디지털이 아니라 35밀리 필름으로 찍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밀라노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을 만든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고향으로 알고 있고, 그가 줄곧 밀라노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번 영화도 밀라노라는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실제 당신의 고향은 로마로 알고 있는데, 밀라노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궁금하고,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 밀라노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
밀라노를 배경으로 삼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스포츠산업도 발달한 부유한 도시다. 그런 밀라노의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령 중요하게 등장하는 공간이 바로 터널인데, 그조차도 황금처럼 번쩍이는 내부와 어두운 바깥의 대비가 보인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면 밀라노의 범죄조직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인다. 보통 카모라,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 마피아, 은드랑게타 등의 여러 이탈리아 조직들이 각기 다른 형태로 범죄를 하는데, 밀라노에서는 그런 조직들이 협업하여 경제활동을 하기도 한다.
영화에 중국인 갱스터 캐릭터가 등장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탈리아 언론에서 많이 보도되는 내용 중 하나가 경제나 범죄적인 측면에서의 ‘차이니즈 인베이전’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같은 영화가 미국 사람들에게 이탈리아 범죄조직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 세월이 흘러 이탈리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탈리아나 중국이나 마찬가지로 끈끈한 ‘패밀리’가 강조된다. 게다가 영화에서 모든 범죄는 결국 차이니즈 갱들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들이 벌인 것이다. 앞서 말한 그런 선입견을 이용해 트릭을 쓰고 싶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스타일을 사랑하고 긴장감 넘치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기술에 영감을 받아, 현재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현실적인 경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는 연출 의도를 밝힌 바 있다. 그들의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인간을 묘사하는 방식이 좋다. 언제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엿보이고, 주인공이든 아니든 그들 모두를 감정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이 보이는데, 연출자로서 그게 쉽지 않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세계에서 흥미로운 건 관점이다. 관객에게 언제나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아모레의 마지막 밤>은 경찰에게 직접 들은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어느 날 시체가 있는 현장에 도착했는데, 그 사건에 동료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누구인지 찾아내려고 노력한 적 있다는 것이다. 그게 히치콕의 영화로부터 영향받은 관점이다. 죄를 지은 형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 범죄 현장에 머물러 있고, 그걸 찾아내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굉장히 장르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면서도,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탁월한 리얼리즘 계열 작품이기도 하다. 보통 이탈리아 하면 ‘네오리얼리즘’을 많이 떠올리는데, 그런 영향도 읽을 수 있을까.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가장 아모레의 하루를 보면서, 잃어버린 자전거를 애타게 찾아다니는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의 가장 안토니오를 떠올리기도 했다.
정확하다. 내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리얼리즘이다. 자료 조사에 몇 달이 걸렸고,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난 다음에도 알고 지내는 경찰들에게 보여주고 다시 고쳐 썼다. 당신이 얘기한 <자전거 도둑>과의 공통점이라면, 가장의 고된 하루를 보여주는 가운데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자전거 도둑>의 안토니오는 자전거를 도둑맞으면서 처음으로 가족과 긴 시간을 보내며 오히려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다. 내 영화의 아모레도 파트너의 죽음을 겪고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아내와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삶에 대한 새로운 애정도 느끼게 된다. 그럴 때 관객의 몰입을 끌어내지 못하면 그저 ‘장르’라는 껍질만 남는다.
비토리오 데 시카 얘기가 나온 김에, 혹시 가장 좋아하는 이탈리아 감독이 있다면 누구인가?
내게 영향을 준 감독은 정말 많다. 하지만 이탈리아 감독들보다는 할리우드의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특히 <보니 앤 클라이드>(1967), <작은 거인>(1971) 등을 만든 아서 펜 감독을 좋아한다. 오래전 뉴욕에서 연기를 배울 때, 그 두 영화의 연출에 대해 배운 적 있다. 캐릭터 구축과 표현에 있어서 단순히 대사가 아니라 행동의 중첩이 쌓여 상승효과를 빚는 연출법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 하의 폴란드에 잠입해 유대인 대학살을 서방세계에 처음으로 폭로한 폴란드 외교관 얀 카르스키에 대한 영화인 <카르스키>(Karski)를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앞서 만든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이야기라,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품인지 궁금하다.
일단 내 이전 영화들보다 굉장히 규모가 큰 영화가 될 것 같다. 본격적으로 역사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 영화인데, 내용도 그렇고 복잡하지 않게 풀어내고 싶다. 왜 이 작품을 택했냐고 묻는다면, 특정 장르에 한정되는 감독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고, 무엇보다 여전히 내가 열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카르스키>는 바로 그런 영화였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