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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 앉아 숟가락을 떠보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씨네플레이

딸 '채영'은 자신이 누구이고, 누구였고, 누구일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종종 엄마 '상옥'을 생각한다. 상옥은 1990년 전후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하며 혁명을 꿈꾼 '투사'였다. 노동 운동의 선봉에 선 그를 비추는 과거 화면에서 인간은 진보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젊은이의 진지함이 넘실댄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학생운동은 힘을 잃고 상옥도 설자리를 잃고 만다. 뭉개진 이상을 더 무겁게 짓누른 건 생존의 문제였다. 상옥은 싱글맘이다. 딸 채영을 부양하고 자신도 살기 위해 그는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무주로 향한다. 대안학교 기숙사 사감 생활이 막 시작될 참이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상옥
〈두 사람을 위한 식탁〉상옥

상옥은 바빴지만, 압도하는 희열을 느꼈다. 일반 학교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언니처럼 때론 엄마처럼 품으며 그는 잃었던 열정을 되찾고 있었다. 연대의 힘을 믿고 억압받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아봐야 한다는 신념. 20대 때 힘차게 구호로 내지르던 노동 운동의 이상을 여기 무주에서 비로소 실현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제 삶을 갈아 넣으며 정신없이 달려오니 벌써 20년이 지나있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기숙사 사감으로 이 작은 학교에 들어와 벌써 60대의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상옥이 '모두의 엄마'로 존재하고, 존경받는 선생님이 됐다는 것은 곧 채영이 하나뿐인 엄마를 내주어야 했음을 의미한다. 그 시절을 회상하는 채영은 말한다. 고작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했다고. 항상 학생이자 언니 오빠들로 가득한 두 사람의 공간이, 엄마를 공유해야 했던 그 시간이 어린 채영의 마음에 조금씩 금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십 대 중반에 식이장애로 분출하고 만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상옥(좌)과 채영
〈두 사람을 위한 식탁〉상옥(좌)과 채영

2008년 열세 살이 되던 해 채영은 극단적인 식사 거부로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한다. 입원과 치료를 거치면 바로 낫는 병인 줄 알았지만, 퇴원 후 채영의 증상은 거식에서 폭식으로 옮겨갔다. 10년 동안 거식증과 폭식증을 오가며 생과 사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삶을 지속하던 채영은 20대 중반, 새로운 출발을 결심한다. 채영은 외할머니가 양쪽 끝을 다듬어 정성 들여 삶아내던 고구마를 기억한다.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번거로운 손질. 음식을 거부했던 채영이지만, 애정이 담긴 음식이 주는 기쁨은 고스란히 가슴에 남았다. 채영은 누군가를 위한 정성스러운 한 끼를 만듦으로써 다시 세상과 연결될 준비를 한다. 요리를 하기 위해 호주로 떠나는 딸이 상옥은 걱정되었지만 기꺼이 그의 도전을 응원하기로 한다. 그렇게 채영은 "엄마의 삶과 내 삶이 별개"라는 걸 증명하고, 자신의 삶과 아픔의 "책임을 엄마한테 묻지 않"기 위한 마음 근육을 단련시키기 위해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딛는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외할머니 제사상
〈두 사람을 위한 식탁〉외할머니 제사상

비록 얼굴은 나오지 않지만, 영화의 또 다른 한 축을 떠받치는 건 금주-상옥 모녀다. 상옥은 그의 엄마 '금주'가 죽었을 때 자신의 조문객을 받지 않았을 만큼 괴롭고 비틀린 관계로 지내왔다. 채영은 둘의 사이를 이렇게까지 말한다. 상옥이 외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밑바닥'을 봤노라고. 상옥-채영의 '섭식장애'라는 특수한 서사로 한정되어 진행되던 영화에 외할머니 '금주'가 등장해 이야기가 뜻밖에 3대로 확장되자, 극은 일순 현대사를 관통하는 여성 보편의 이야기가 된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와 당뇨를 앓는 남편을 평생 돌본 상옥의 어머니는 평생 이유 모를 구토에 시달렸다. 젓가락과 나뭇가지로 몸 안을 헤집어 식도가 삭을 정도로 토를 했다. 자해적 구토는 자기 몸을 통제하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을 것이라 상옥은 추측한다. 가부장적 질서에 억압받는, 또 어느 순간에는 그것에 자발적으로 종속하는 어머니가 미웠기에 상옥은 세상의 전복을 꿈꿨으리라. 인생의 아이러니는 그토록 미워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사랑하는 딸 채영에게 겹쳐 보인다는 것이다. 채영은 극심한 섭식장애를 앓던 시절에도 무서움보다는 '내가 내 삶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다'라는 자기 확신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채영이 '안 먹는'줄 알지만, 그는 그저 '계획적'으로 먹고 있을 뿐이었다. 자기 파괴가 자기 확신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소화하지 못하고 게워낸 것이 그저 음식은 아니었다. 개별 여성의 체험에서 세대를 뛰어넘어 여성에서 여성으로 이어지는 성별화된 섭식장애의 사회 구조적 원인으로 자연스레 카메라가 이동하자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한 수준 도약한다.

 


김보람 감독은 전작 <피의 연대기>(2017)을 통해 월경과 생리대의 '연대기'(chronological)와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위한 여성들의 결정적 '연대'(solidarity)의 순간을 조망한 바 있다. 두 번째 장편 <두 사람의 식탁> 역시 그런 관심의 연장에 있되 또 다른 방식, 즉 한 집안에서 대물림되는 여성의 구체적 삶을 확대해 섭식장애라는 테마를 밀도 있게 다뤘다. 섭식장애를 단지 다이어트나 외모 강박과 같은 미의 측면에서 납작하게 다루지 않은 점, 섭식장애 당사자의 사연에 매몰되지 않고 어머니 '상옥'에게 카메라가 기운 지점에서 감독의 탁월한 연출 역량이 돋보인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 편집 과정에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김보람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영화의 중심축을 이동시켰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긴 시간 반목하며 자라난 말 못 할 사연들이 여전히 상옥과 채영 둘 사이를 가른다. "너랑 나랑은 영원한 평행선일까?"라고 엄마가 한발 다가서면 딸은 "평행선도 나쁘지 않아" 하고 한발 물러선다. 채영이 섭식장애를 잘 다스려 평생 안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처럼, 이 모녀 관계도 단박에 치료되길 바라는 것보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회복할 일이다. 대화를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상옥은 섭식장애를 겪으면서 딸이 경험한 뜻밖의 자기 확신과 자기 통제에 대한 만족감을 들으며 “각본을 수백 가지 써봤는데, 지금 네가 말한 각본은 참 뜻밖이네.”라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10년이 넘는 시간 이해할 수 없었던 딸의 행동을 이제 이해해 보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다.

코로나19로 호주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채영은 상옥의 무주 집으로 돌아간다. 둘은 채영의 섭식장애가 발현한 후 처음으로 식탁을 사이에 두고 제대로 된 한 끼를 나눈다. 여전히 폭식과 구토로 흔들리는 삶이지만, 여전히 모녀 사이는 요원하지만, 자신들의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의 상처와 맞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꺼이 카메라를 대면한 모녀 덕에 우리는 그들의 식사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