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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량: 죽음의 바다〉 배우 김윤석, “위대한 영웅의 죽음을 위대하게만 묘사해서는 안 된다.”

씨네플레이

<스파이더맨> 삼대장처럼 앞선 이순신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북은 (박)해일아, 네가 쳐라. 저는 가만히 있겠습니다.”(웃음) <노량: 최후의 죽음>(이하 <노량>) 개봉 당일 “두근두근한 한편, 불안한 마음이 크다”라는 김윤석 배우를 만났다. 온 힘을 다해 쳐올려 해전을 승리로 끌어낸, 영화의 혼이 깃든 이순신 장군의 북소리! 노량 전투의 결기이자, 영화의 스펙터클을 책임진 북채의 무게를 이제는 홀가분하게 내려놓아도 좋겠다 싶다. 지나치는 배우의 농담 한마디에도 그 무게가 어땠을지 짐작된다.

무려 10년간 일련의 흐름을 가진 프로젝트에서 오롯이 하나의 인물을 집중조명하고, 각 세대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매달린 프로젝트는 전례가 없으며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시도다. 김윤석은 앞서 최민식이 연기한 <명량>(2014)의 용장(勇將)(최민식), 박해일이 연기한 <한산: 용의 출현>(2022, 이하 <한산>)의 지장(智將)에 이어, 이순신 장군의 최후이자 가장 치열한 전투로 알려진 노량해전을 바탕으로 한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에서 망망대해 해전을 진두지휘하는 현명한, 현장(賢將)으로서의 모습을 발휘한다. 각기 시기가 다르지만, 세 배우는 광화문 광장의 동상으로 굳혀진 이순신을 ‘정’으로 세심하게 깎아, 영혼을 불러내는 꼼꼼하고도 면밀한 작업의 동참자로 뜻을 같이한다.

김윤석은 <노량> 촬영 중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쇠로 된 갑옷을 태가 나게 조여 입고, 칼과 신발, 투구까지 20kg에 달하는 의상과 장비가 혈액순환을 방해한 탓이다. 짐작건대 심정적 압박이 보이지 않는 무게를 더하지 않았을까. 인터뷰의 한마디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대본에 있는 캐릭터 ‘이순신 장군’의 해석에 그치지 않고, 차고 넘칠 만큼 인물에게 집중한 흔적이 보인다.

전투 액션과 드라마가 따로 서술되지 않고 촘촘하게 레이어를 형성한 이 영화의 모던하고 세련된 연출 안에서 김윤석의 연기 내공은 경지에 달한다. 역사에 존재했던 실제 인물, 지칠 줄 모르는 정신으로 개인의 역사를 희생하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결국 자신의 죽음조차 적에게 알리지 않고 전투를 완수해 낸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서 서거하던 때가 1598년 12월 6일, 장군의 나이 53세였다. 김윤석은 장군의 그 최후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관객에게 그려보게 만드는 거대한 과제를 완수해 낸다. 지난 30년 경력의 배우로, 또 자식을 둔 아버지로, 중년을 넘어선 나이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지금, 자신이 연기한 이순신 장군의 선택과 삶에 깊숙이 개입해 무려 400년 전 전장에서 장군이 가졌던 결기와 아픔을 끌어낸 결과다. 이 인터뷰가 배우의 연기 접근 과정의 일부라도 드러내주길 바란다.

 


배우 김윤석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김윤석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드디어 개봉이네요.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이순신을 연기하셨는데요. 영웅을 넘어, ‘성웅’으로 수식되는 국민적 영웅을 연기하는데 부담감도 크셨을 것 같아요.

드디어 이런 날이 오네요. 다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는 게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건데 일단 시작은 이렇게 예매량도 좋아서 다행이에요. 두근두근하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이순신을 제가 한 것에 대한 불안감이 당연히 있죠. 이순신 장군이라는 배역 자체가 너무너무 무게감이 큰 배역이기 때문에 <명량>과 <한산>에서 앞서 이순신 역할을 했던 최민식, 박해일 두 배우분하고 똑같은 심정이라고 말씀드리면 될 것 같아요.

 

처음 작품 제안받으셨을 때를 되짚어 볼게요.

제가 이제 이 대본에 제안을 받았을 때가 제가 모로코에 있을 때였어요. <모가디슈>(2021) 촬영할 때니까 한 4년 전이죠. 매니저가 이메일을 받아서 그걸 프린트해서 읽어 봤어요. 영화 촬영 중에 다른 작품의 시나리오를 본다는 것도 사실은 좀 실례가 되거든요. 3~4일 정도 촬영이 빌 때 살짝 읽어보긴 했는데 시나리오만 놓고 봐도 좋은 시나리오, 정말 잘 쓴 시나리오더라고요. <노량>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 안에 명나라가 들어오는 거잖아요. 그런데 명나라가 들어오면서 위기를 극복해서 조선군이 승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이게 국제 정치로 전환되더라고요. 이제 서로의 입장 싸움이 되기 시작하는 거죠. 그런 부분들이 얽혀 있는 시나리오라서 굉장히 밀도가 있더라고요.

 

〈노량: 죽음의 바다〉
〈노량: 죽음의 바다〉

<노량>은 익히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죽음과 결부된 드라마틱한 최종장이기도 한데요. 제작 발표회 때 <명량>과 <한산>을 놓고 선택을 한다면 <노량>을 택하겠다고 한데는 어떤 이유가 컸나요.

제가 초등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김진규 선생님이 이순신 장군님으로 나오는 <성웅 이순신>(1971, 김진규 배우가 주연, 제작한 영화)을 봤거든요. 딱 기억나는 장면이 있어요. 하나가 장군님이 수레에 실린 감옥에 묶여서 서울로 압송될 때 백성들이 막 우는 장면, 그다음 장군님이 돌아가실 때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하는 장면, 그리고 활 쏘는 장면. 그 세 장면이 기억이 났어요. 노량 전투에는 정말 많은 것이 담길 수밖에 없구나. 굉장히 호쾌한 승리도 있지만, 전쟁의 끝이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까지 담길 수밖에 없구나. 그러니 기왕이면 <노량>을 해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던 겁니다.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서 시작하셔서 연기하면서 알아 간 인간, 장군으로서 이순신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이순신 장군님을 연구한 역사학자들이 워낙 많잖아요. 다양한 해석들이 있고요. 그런데 모두 이순신 장군님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명량과 노량 전투 사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가 가장 피폐하고 외롭던 시기가 그때였다고 해요. 파직당하고 압송돼서 의금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해 거의 반 죽은 상태였어요. 그때 장군님의 어머니(변덕현)가 아들이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 작은 나룻배로 여수에서 한양으로 가시다가 표류해 배에서 돌아가시거든요. 노구(당시 이순신의 어머니는 83세의 나이였다)에 또 뱃길이 또 험하겠습니까?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그 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흘리고 달려가는데, 당시 3년상도 하지 못하고, 전쟁터로 또 가게 되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죠. 그런데 그때 왜구들이 본가를 습격해, 이순신 장군과 가장 닮았다는 셋째 아들 이면(영화에서 여진구가 연기한다)을 잃게 돼요. 당시 스무 살 어린 나이였어요. 기록에 따르면 그때 장군님이 계속 손을 떨고 악몽을 꾸고 식은땀을 흘리고 각혈을 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저도 이제 50대가 되고 보니 400년 전 이 땅에서, 7년 전쟁에서 군인으로 생을 살다가 사라져 간 너무 불행한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도 칭찬 한 번 못 받고 벌만 받다가 가족을 잃고 결국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너무 안타까운 사람이다, 영웅의 이면에는 그런 고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량: 죽음의 바다〉
〈노량: 죽음의 바다〉

전해진 사료들이 많은데요. 시나리오 외에도 감독님께서 권유한 자료들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난중일기」도 있고 「징비록」도 있고 많죠. 많은 자료를 감독님이 말씀하셨고 봤어요.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워낙 많죠. 그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자, 대한민국의 영웅이자 인기가 많은 인물이니까요. 중요한 건 그런 기록들을 보면서 이랬구나, 이랬구나 하고 그걸 단순히 외우는 게 아니라 당시 사회적인 상황에서 그분이 추구해 온 삶의 가치, 그 상황에서의 입장을 육화시키는 것이 중요했어요. 일례로 당시는 일반 병사뿐만 아니라 노비 병사도 많았는데, 이순신 장군님이 노비 병사까지 시신을 다 수습해서 나룻배로 고향까지 다 데려다줘서 장례를 치르게 해줬다고 해요. 이건 영웅 서사로 미화하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남은 거예요. 그만큼 철두철미하게 예의를,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를 지킨 분이라는 것, 그분의 성품이 캐릭터를 만들고 연기하는 데도 중요한 지침이 됐죠.

 

관객 모두가 기다리는 장면일 텐데요. 바로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어떤 톤으로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하는 게 이 영화의, 또 이순신을 연기하는 배우로 큰 숙제였을 것 같아요.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는 대사를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 이 부분의 해석이 실제의 이순신을 끌어내고 다가가는 이 영화만의 해석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요. 실제 이순신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실제로는 나의 죽음을 ‘적에게’라는 말은 없죠.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아라 인데, 저는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이거였어요. 그 상황이 전쟁의 최고조였거든요. 원거리에서 쏘는 전투에서 완전히 붙어서 싸우는 이제 아비규환의 백병전 끝에서, 이 위대한 영웅의 죽음을 위대하게 묘사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멈춰지고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아우성치는 전쟁터에서 장군은 어떤 생각과 말을 했을까. 몰려오는 왜구로 아군이 열세로 빠지는 가운데, 자신의 죽음이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내가 죽었다는 말을 대지 마라. 싸움이 급하다.” 이 말이 장군으로 임한 사람의 말이 아니었을까. 김한민 감독님께서도 그 부분을 진실하게 표현하자고 하신 느낌이었어요.

 

〈노량: 죽음의 바다〉
〈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의 용장(勇將), <한산>의 지장(智將)에 이어 <노량>의 이순신 장군을 현장(賢將)으로 규정하는데요. 현장은 용장과 지장보다 규정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전체 러닝타임 중 100분간의 전투에서 ‘현장’으로서 이순신 장군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현장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 나갔나요.

현장(賢將), 현명하다는 것은 <노량>의 정신과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반대하고, 끝났다고 하는 전쟁을 끝까지 가고자 하는 판단. 이 전쟁이 이대로 끝을 내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을까. 명과 왜와 조선의 힘겨루기를 놓고 본다면, 왜와 명이 제가 협상을 하게 되고 그 힘의 논리로 보면 그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잖아요. 과연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저들을 이대로 보내면 장차 더 큰 원한들이 쌓이게 될 것이다. 왜군은 7년 동안 이 땅에서 살았고 섬나라로서 육지에 대한 열망과 욕망은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분명 또 온다. 다시는 이 땅에 쳐들어오지 못하게 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고 올바른 맺음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현장의 모습이 아닌가. 그 판단과 결정으로 적어도 300년 동안은 그들이 이 땅에 못 왔죠.

 

노량 전투씬의 스펙터클은 전쟁이 멈추지 않도록, 물러남이 없도록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혼신을 다해 두드리는 후반부 북소리로 집결되는데요. 물리적, 육체의 부딪힘보다 이 무형의 사운드가 더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만큼, 배우로서 수행하기 어려운 장면이었을 것 같아요.

조선의 북은 ‘진격’입니다. 무전기가 없던 시절이었고, 북소리와 깃발이 신호이던 시절이었죠. 북은 곧 진격의 소리거든요. 북소리는 아비규환이 된 전장에서 장군님이 아군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었어요. 그러니 북으로 아군들을 독려하는 것은 장군님으로서는 가장 논리적이고 정확한 선택이었어요. 북을 치는 모습은 정말 연습을 많이 했어요. 북 치는 게 생각보다 자세가 잘 안 나옵니다. 연습하지 않으면 북에 자기 몸이 막 휘청휘청 끌려가거든요. 북채가 참나무 재질 같은데 워낙 단단해서 그걸 들고 힘을 다해 치다 보니 어깨, 갈비뼈에 담이 오더라고요.

 

〈노량: 죽음의 바다〉
〈노량: 죽음의 바다〉

왜군이 진저리를 낼 정도로 괴력을 발휘하는 북소리의 여운이 영화가 끝나도 가시지를 않는데요. 현장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연기를 한 배우님에게 그 임팩트는 어떤 것이었나요.

현장에서 저도 놀랐어요. 세트에서는 아무래도 사운드를 입힌 영화에서만큼 날카롭지는 않지만, 북소리가 그냥 그대로 가슴을 때리는데 그런 느낌은 들었어요. 스크린에서 그 소리를 듣는데 북소리가 가슴을 향해 그대로 그냥 직진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보고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관객들이 나오는 길에 옆에 북을 하나 두자. 한 번씩 쳐 보실 수 있게. 쳐보고 싶어지죠. 아닌 게 아니라 촬영할 때도 쉬는 시간에 병사 역할 하신 분들이 와서 쳐보더라고요. (웃음)

감탄을 불러오는 이 영화의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전투 장면에서 이순신 장군이 다른 장군들의 환영을 보는 장면이었는데요. 연출과 연기의 합일을 통해 이순신이라는 캐릭터의 내면을 연출한 명장면이었는데요. 이 장면의 중요성을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때 해가 떠오릅니다. 그 긴 밤 전쟁에서 동이 터 오르기 시작하고 새벽 여명이 올라가더니 동해에 해가 빨갛게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때 장군을 감독님하고 얘기 나눈 것이 생각나는데요. “이순신 장군님이 그때 어떤 숙명, 피할 수 없는 운명 뭔가를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러더라고요. 떠오르는 해를 봤을 때 저 해를 내가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는 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워낙 예지몽을 많이 꾸시는 분이기도 한데, 아마 그 순간 역시나 본인이 가장 아끼고 가장 존경했던 세 인물이 함께 싸우고 있는 거죠. 가장 호랑이 같은 용맹함을 가진 녹도만호 정운 장군(김재영), 그분은 부산포에서 왜군의 총에 즉사하셨어요. 두 번째로는 향도 어영담 장군(안성기), 이순신 장군이 전라 좌수사가 됐다고 하니까 은퇴를 번복하고 나서서, 좋은 물길을 다 알려주는 장군이셨죠. 그분은 전장이 아니라 전염병이 돌아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이억기 장군(공명). 이순신 장군님보다 열 살 이상이나 어린데 무과에 급제를 더 빨리해서 이순신 장군이 자기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인정한 천재셨죠. 원균이 조선 수군통제사를 할 때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바다에 뛰어들어서 죽었거든요. 그 세 분의 환영을 보면서 자신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 오지 않았을까요. 제가 그 장면을 찍을 때 눈을 한 번도 깜빡거리지 않았대요. 저 역시 그 상황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저도 몰랐는데 눈을 깜빡거리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노량: 죽음의 바다〉
〈노량: 죽음의 바다〉

물리적 고충이 수반되는 힘든 장면들이 여럿 보이는데요. 그중 배우님께서 가장 기억나는 힘들었던 촬영은 어떤 것이었나요.

꿈속에 아들을 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아들이 왜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경주에서 찍었거든요. 그 장면은 거의 막바지쯤에 찍었는데 몰입을 해서 아들이 죽는 장면을 보는 걸 찍는데 제 몸이 덜덜덜덜 떨리더라고요. 만약에 내 자식이 죽임을 당하는 걸 내 눈으로 본다면 어떨까 이런 심정이 대입되니 정말로 몸이 떨리고 얼굴까지 막 떨려서 대사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촬영하면서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결국 정신적으로도 힘든 그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았어요.

 

말씀하신 ‘감정의 스펙터클’이 따로 떼어지지 않고 100분의 해상 전투씬에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는데요. 배우로서 <명량>과 <한산>을 거쳐 온 기술적인 성취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현장에서의 작업이었는데요. 어떤 체감이었나요.

사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한국의 기술력, 특히 VFX 분야의 기술력은 정말 세계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캐릭터와 드라마로 영화를 만드는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긴 한데, 이제는 스태프들하고 함께 해나가지 않으면 표현의 범위가 좁아진다. 이제는 다 공유해 나가면서 함께 만드는 거다. 감독 한 명이 뛰어나서 좋은 영화 작품이 나오는 시대는 이제는 지났다 (생각했습니다). 스태프들 모두 전문가들이고 다 아티스트잖아요. 그들과 함께 협업을 이루어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노량: 죽음의 바다〉
〈노량: 죽음의 바다〉

그런 지점에서 이순신의 한 주제를 10년간 연구하며 이 시리즈의 최종장으로 달려가는 감독 김한민을 향한 리스펙의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현장에서 김한민 감독은 어떤 연출자였나요.

분명한 지점이 있었어요. 씬을 만들 때 그것의 밀도가 점점 더해졌는데 <노량>에서는 정말 최고조로 섬세하게 들어갔다고 생각해요.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할까요. 김한민 감독이 오히려 이번엔 비워내더라고요. 사운드가 정말 필요한데 사운드를 다 빼버리고, 그리고 다시 또 사운드가 들어가는 거죠. <명량>에서 <한산>, 지금의 <노량>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면 김한민 감독이 준비한 시간까지 족히 20년은 걸렸을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이순신 장군을 김한민만큼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툭 건들기만 하면, 그 가족들까지 다 알 정도로 모든 걸 수집하고 섭렵했죠. 그런 부분에서 사실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죠.

 

아마 그 모습에 질리기도 하셨을 것 같아요. (웃음)

어마어마하게 질리죠. 어마어마하게 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웃음)

 

〈노량: 죽음의 바다〉
〈노량: 죽음의 바다〉

이제 공개가 됐습니다. 많은 평가가 뒤따르고 반응이 나올 텐데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연기하면서 이런 반응은 듣고 싶다 하시는 게 있을 것 같아요.

며칠 전에 부산, 여수 무대 인사를 갔다 왔어요. 영화가 끝나고 보신 분들에게 인사를 하러 갈 때 흥행이 잘 되는 영화들을 보면 환호가 대단하잖아요. 그런데 <노량>은 들어가면 조용해요. 영화의 여운이 아직 안 가셔서 먹먹하게 젖어 들었구나, 이런 느낌을 받으셨구나 싶었어요. <노량>이 그런 여운으로 가슴속에 길게 남는 영화가 되었으면, 그리고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 의미하는 바가 있구나 하는 걸 얻어 가셨으면 좋겠어요. 비록 400년 전에 일어났던 가슴 아픈 전쟁이지만, 한편으로 우리 민족의 힘으로 승리한 전쟁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우리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는 교훈을 주는 그런 영화로 해석된다면 좋겠습니다.

 


이화정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