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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관람 전 속성과외

김지연기자
이 이미지가 가장 주요한 영화가 됐다.
이 이미지가 가장 주요한 영화가 됐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유니버스 3부작이 완성됐다. 대미를 장식하는 <노량: 죽음의 바다>(2023, 이하 노량)은 개봉 4일차에 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서울의 봄>(2023)이 오랫동안 유지한 1위 자리를 꿰찼다. <노량>은 이순신(김윤석)의 23전 23승 전투 중에서도 가장 큰 승리를 그리고 있으나 영화는 이를 통쾌함의 감정만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나라를 지켜야 하는 비정함을 품은 군인이 새긴 비망록에 가깝다.

거북선만큼이나 유명한 그의 유언 또한 스크린에 펼쳐진다. 모두가 아는 것이지만, 죽음 위에 아로새긴 대사는 김윤석 배우에 의해 다시금 새롭게 다가온다. 이는 승리의 시원함을 목적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의 고뇌를 그리려 한 연출의 의도가 잘 쌓인 덕이다. 먼저 전사했던 그의 아들 이면(여진구) , 전라우수사 이억기(공명) 등을 기리기도 하고 하급 병사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라와 군의 입장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입체적인 면모를 그린다.

당시에 얽힌 것들을 영화 내에선 최대한 심플하게 집어주고 넘어가지만, 숙지하고 보면 좀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요소들을 알아보자.

 


바다 없이 해상씬을 찍는 세상입니다.
바다 없이 해상씬을 찍는 세상입니다.

전투의 명분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박용우)의 철군 명령을 받으며 시작한다. 이미 진 전쟁인 것이다. 명나라의 입장에서도 괜히 전투를 진행해서 희생을 볼 필요가 없는 데다 왜군으로부터 뇌물도 받았다. 그러나 이순신에게는 그렇지 않다. 임진년에 시작한 왜놈들의 난장이었던 이 전쟁은 잠깐의 소강상태를 거쳐 정유년에 다시 벌어진 난리, 즉 정유재란으로 번진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과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띤다.

정유재란이 펼쳐지자 왜군은 조선인을 죽이면 코를 베어가 그 공을 인정받았다. 도망 다니다 잡힌 조선인은 코를 잘라 내주며 목숨을 구걸했기에 당시 왜군이 상륙했던 전라도에는 코 없는 조선인이 실제로 매우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순신은 이런 피난민들을 많이 접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배에 태울 수 없어 괴로워했다.

전쟁의 양상이 여기까지 왔다면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당시의 이순신은 군인으로서, 단지 할 일을 했을 뿐인 것이다.

 


전쟁의 기록

당시에도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글은 많다. 「은봉야사별록」 및 이덕형과 사명당이 쓴 글도 있다. 그러나 독보적으로 많이 읽힌 책은 역시나 류성용이 집필한 「징비록」이다. 조선 시대의 당파는 「선조실록」과 「수정실록」으로 나뉘어 쓰여질 정도로 그 기세 싸움이 강했으나, 「징비록」의 경우는 당을 초월해서 널리 읽혔다. 원본은 1604년에 유성룡의 임종 직전에 집필됐다. 그러나 팩트와 다른 것들이 더러 있거니와, 같은 이야기가 두 번 나오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이는 저자가 편집이 미완인 상태에서 사망하여 그렇다는 설이 강하다.

15세기 말에 「징비록」은 목판활자로 퍼지며 진짜로 널리 읽히게 됐다. 이 버전은 일본으로 넘어가 조선통 학자에 의해 일본 교토판 「징비록」으로 다시 탄생했다. 내용이 부가됐다기보다는 오리지널 「징비록」에선 '왜장' 정도로 표시된 것이 수정판에선 '가토 기요마사' 이런 식으로 설명이 많이 달렸다. 이것이 조선으로 역수입되어 왜란 종결 후 백 년이 지나서야 민중들도 일본 장수들과 구체적 지명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러므로 전투 당시에는 적장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명나라 제독, 진린

애당초 임진년 일본의 도발은 명나라로 가기 위한 길을 내달라는 요청(이라 쓰고 겁박이라 읽자)에서 시작했다. 그렇기에 조선과 명나라가 손을 잡고 일본을 상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중국 수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진린(정재영)은 돼지 두 마리와 술 두통의 뇌물을 받고 고니시 유키나가(이무생)의 퇴로를 열어줬으나, 결국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감화되어 조선군과 열과 성의를 다하여 왜군을 치게 된다.

 

〈신기전〉은 조선이 무적의 화포, 신기전을 개발하자 이를 저지하는 명나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여기선 정재영 배우가 명나라에 맞서는 조선인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노량〉에서는 신기전이 등장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명나라는 청과의 전쟁에서 지고 멸망하는데, 이때 진린의 아들이 사망한다. 그러자 진린의 손자는 오랑캐의 나라에서 살 수 없다며 한반도로 망명하여 광동 진씨의 시조가 되며 이순신의 후손인 덕수 이씨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이 방한했을 때에도 임진왜란의 진린과 등자룡(허준호)이 용맹히 싸운 일화를 언급하며 오늘날까지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진린의 후예들을 얘기했다.

 


이순신의 컨디션

극 중에서 이순신은 건강이 좋지 않아 몸져누워 방씨부인(문정희)이 달여주는 약을 먹는다. 그리고 불편한 듯 누워있는 장면이 몇 번 더 등장한다. 그런데 이순신의 전쟁기록인 「난중일기」를 보면 그의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피곤하다, 잠들기가 힘들다, 밤새도록 머리가 아파서 앓았다, 꿈을 많이 꿨다.. 등의 기록이 난중일기에서 살필 수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환자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식은땀이 시도 때도 없이 흘러 옷을 적셨다든지, 그리하여 옷 두 겹과 이불까지 젖었다는 기록이 잦다. 정신적 긴장으로 인한 다한증인 것이다. 그리고 내성적이고 세심한 성향인데다 꼼꼼하게 전략을 짜는 타입인 것 보면 소음인 체질임을 예상할 수 있는데, 그런 계통이 속이 냉한 축에 속한다. 스트레스와 소화불량에 약한 것이다.

극 중에서도 이순신은 곽란으로 고생했다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이는 토사곽란, 즉 구토와 설사를 일컫는다. 오늘날에 의사를 찾았다면 당장 휴식이 필요하니 입원을 강권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란 중에 그랬을 캐릭터가 아니니, 영웅서사의 주인공답게 파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나갈 뿐이었다.

 


전쟁 후

노량에서 이순신은 전사했지만 시마즈와 고니시는 생존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박용우)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김시우)의 아들 편에 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김민상)과 맞붙는다. 그런데 여기서 도쿠가와가 승리하는 바람에 고니시는 참수 당하고, 시마즈는 노량에서 너무 많은 대군을 잃어 손발이 잘린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버려 대패한다.

 

〈타짜〉(2006)의 아귀가 평경장의 손목을 자르지 못해 〈노량〉에서 다시 만나다!
〈타짜〉(2006)의 아귀가 평경장의 손목을 자르지 못해 〈노량〉에서 다시 만나다!

<노량>의 쿠키영상에서 순천 왜성에 올라 고요한 바다를 보는 광해(이제훈)를 보여준다. 그는 승리로 끝난 임진왜란 이후 마치 일본을 당장 치러 갈 것 같은 기세를 보이지만 실은 기유약조를 통해 일본과의 동맹을 결속하는데 주력했었다.

 


죽음에 관한 잡설

실은 이순신의 사망에 여러 설이 있다. 정말로 노량 해전에서 총탄에 의해 사망했다는 설과 죽음을 가장하여 은둔칩거하여 몇 년을 더 살았다는 설, 그리고 KBS <불멸의 이순신>처럼 자살했다는 설 등등 많은 미스터리를 동반한다. 그런 추측이 나돌만한 당시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조선의 왕인 선조는 왜군의 노략질 때문에 해안가를 떠난 백성들이 이순신 때문에 다시 해안 마을로 모여 그를 추앙하자 불안감에 이순신에게 억측을 근거로 파면을 내린다. 그리고 칠천량 해전의 대패를 부른 원균의 희생을 치하한다. 자신이 초래한 위기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정치가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국가를 지켜낸 밀덕이 원하는 나라는 어떤 곳일까? 적어도 이순신 같은 인재가 명분 때문에 외면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곳일게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