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트 디즈니가 100주년(2023년)을 맞이하면서 기념 영화 <위시>를 개봉했다. 2024년 1월 3일 개봉한 <위시>는 개봉 첫날 관객수 11만 명을 기록하면서 <노량: 죽음의 바다>와 <서울의 봄>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100주년이란 잔칫날에 맞게 디즈니는 대대적으로 <위시>를 홍보했다. 이는 최근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공개했을 때의 행보와 비교해보아도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인 만큼 <위시>는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을 오마주한 스토리와 시각적 스타일을 담고 있다. 디즈니가 차려 줄 성대한 잔칫상을 기대하며 <위시>의 개봉 첫날 극장으로 달려갔다. <위시>가 참고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레퍼런스와 <위시>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을 공유한다.

<위시>의 세계관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의 왕국 로사스에서 시작한다. 로사스에 살고 있는 아샤(아리아나 데보스)는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소녀다. 아샤는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로사스를 위해 모두의 존경을 받는 왕 매그니피코(크리스 파인)를 찾아가 그의 견습생이 되려 한다. 하지만 숨겨진 뜻밖의 진실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진 아샤는 하늘을 보며 간절하게 소원을 빈다. 그녀의 간절한 부름에 특별한 힘을 지닌 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로사스는 일순간 빛에 휩싸인다. 별이 낸 눈부신 빛에 사람들은 동요하고, 매그니피코는 자신 이외에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별과 아샤를 찾아나선다. 아샤는 별과 별의 마법으로 말할 수 있게 된 염소 친구 발렌티노(알란 터딕) 그리고 일곱 친구들과 함께 절대적 힘을 지닌 마법사 매그니피코 왕에 맞서 싸운다.
디즈니의 고전에 바치는 오마주 혹은 오리지널리티 없는 자가복제

<위시>는 디즈니 고전 애니메이션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아샤가 숲속에서 만난 동식물들이 노래하는 뮤지컬 시퀀스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위시>의 연출을 맡은 크리스 벅 감독과 각본을 맡은 제니퍼 리는 디즈니의 유산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캐릭터를 구성하기 위해 인물 구성에도 색다른 방식을 이용했다. 주인공 아샤의 인물 배경은 백설 공주와 닮아 있다. 아샤는 백설공주처럼 아버지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존재가 부재하며, 그녀를 돕는 일곱 명의 친구들은 백설공주가 숲속으로 도망쳐 있을 때 그녀를 도와주었던 일곱 난쟁이와 같다. 그리고 아샤와 함께 매그니피코에 맞서는 염소 발렌티노는 밤비를 오마주했다.

아샤가 지니는 정신적 가치는 <모아나>에게서 가져왔다. 모아나는 풍족하고 안전한 모투누이 섬에서 살면서 가보지 못한 바다 저 먼 곳을 동경하는 소녀다.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물고기가 잡히지 않고, 땅이 시들면서 부족은 생계의 위험에 처한다. 모아나는 섬과 부족을 구하기 위해 접근이 금기시된 암초 너머로 항해를 시작한다. 모아나는 여러 시련에도 결코 항해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험난한 과정 속에서도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절대 멈추지 않는 끈기를 가지고 있다. 아샤는 특별한 힘을 지닌 별을 만난 후 점점 모아나처럼 강인해진다.
<위시>는 이제껏 디즈니가 쌓아 올린 정신적 자산에만 기댈 뿐, 세계관을 확립하는 오리지널리티는 구축해 내지 못했다. 100주년 기념작이란 기획에 맞게 기존 작품들의 요소를 녹이려는 의도는 분명해보이나, 오리지널리티가 빈약한 영화는 관객들을 흡인시키기에 무리가 있다. <위시>는 디즈니를 사랑해왔던 팬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팬무비이지만, 결코 좋은 영화는 아니다.
매그니피코 왕과 아샤 할아버지 둘 중 디즈니는 누구?

‘잘생긴 왕’ 매그니피코는 백설공주 이야기 속 빌런 왕비를 오마주했다. 거울을 너무 좋아하는 매그니피코를 보면 자연스레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니?'라고 거울에게 묻는 왕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도 한때는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다는 순수한 꿈을 가진 청년이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마법책을 독파했고, 위대한 마법사가 되어 꿈을 이룬다. 그 후 로사스를 건설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찾는 사람들의 소원도 들어준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며 노력한 그의 모습은 자수성가한 기업가형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는 힘들게 원하는 바를 성취해냈지만, 그의 성취는 그에 응당한 보답을 받으려는 보상 심리로 귀결된다. 또 거대한 왕국을 만들어낸 자신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된다. 매그니피코의 눈부신 성취는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만 비춰주는 거울 속에 갇혀 있게 한다. 나르시시스트가 된 그는 자신처럼 특별한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꿈과 소원을 이루어주는 환상의 공간 로사스는 100년간 우리의 꿈과 희망을 지켜 온 디즈니를 상징한다. 디즈니의 가치를 전적으로 끌고 오는 영화를 보면서 현실 속 디즈니의 행보를 따로 떼어놓고 보기는 힘들다. 밥 아이거 재임 이후 디즈니의 명과 암은 고스란히 <위시>에 투영되어 있다. 그의 임기 동안 디즈니는 정치적 올바름을 표방하는 영화들을 내놓으면서 디즈니의 과거사를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는 분명 보편적으로 도덕적인 가치를 전달해야 하는 디즈니가 한 옳은 선택이지만, 원작을 파괴한 <인어공주>(2023)를 공개했을 때 과하다는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위시>에서는 이런 정치적 올바름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영화 속 로사스는 다른 피부색과 복장을 한 다양한 인종이 서로의 권리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특히 매그니피코 왕이 로사스 사람들의 순수한 소원을 가져가고, 그 소원을 파괴해 자신의 힘으로 흡수시키는 것은 디즈니의 최근 행보를 연상케 한다. 디즈니는 미국 3대 지상파 방송사 ABC 채널과 픽사, 마블 엔터테인먼트, 루카스필름, 21세기 폭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고유의 세계관과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스튜디오 회사들을 인수하며 공룡 기업이 되었다. 특히 ABC와 픽사 인수는 디즈니가 위태로울 때 회생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로사스 사람들의 소원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 했던 매그니피코가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이 나타나자 소원을 파괴하고 힘을 강화시키는 것과 같다.
한편, 아샤의 할아버지는 후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길 소망한다. 그의 소원은 이제껏 100년 동안 지켜왔던 디즈니의 정신적 가치에도 부합한다. 또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을 처음 만들 당시의 순수한 마음을 짐작케 한다. 지금의 디즈니는 디즈니의 어두운 모습을 닮은 매그니피코와 밝은 모습만 품고 있는 아샤의 할아버지 중 누구에 더 가까운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애써 삼키며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다시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희망을 꿈꾸게 하는 작품을 만들어주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