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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진짜_진짜_최종 은퇴작.avi” 〈나의 올드 오크〉로 돌아온 켄 로치 감독의 문제적 영화들.

이진주기자

두 번의 은퇴와 두 번의 복귀 끝에 거장 감독 켄 로치가 돌아온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를 잇는 영국 북동부 3부작의 완결편이다. 켄 로치 감독의 26번째 장편인 <나의 올드 오크>는 제76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그의 여전한 위상을 확인케 했다.

켄 로치 감독의 별명은 ‘블루칼라의 시인’이다. 약 6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는 노동자, 빈민층 등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필름에 담았다. 1960년대 초 ABC 방송국의 조연출로 일을 시작한 켄 로치는 이후 <금요극장> 시리즈, <캐시 컴 홈> 등 실험적인 연출로 1960년대 영국 TV 영화의 한 획을 그었다. 1967년 영화 <불쌍한 암소>로 장편 데뷔를 한 이후 줄곧 사회성 짙은 작품을 내놓으며 거장 감독으로 자리했다.

한편, 지난해 <나의 올드 오크>로 칸국제영화제를 찾은 켄 로치는 영화계에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기억력 감퇴와 시력 저하로 앞으로 장편 영화는 찍기 어려울 것”이라며 사실상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그는 앞서 2014년 <지미스 홀> 이후,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 두 차례 영화계 은퇴를 시사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금 카메라를 잡으며 “임무가 끝나지 않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임무를 담은 영화 <나의 올드 오크>를 맞이하기 전, 켄 로치 감독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케스>

<케스>(1969)는 켄 로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이자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배리 하인즈의 소설 『케스-매와 소년』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소설의 원작자인 배리 하인즈가 직접 영화의 각본에 참여하며 작품에 힘을 실었다. <케스>는 1970년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의 인정을 받았다.

영국의 요크셔 탄광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케스>는 15살 소년 빌리 캐스퍼의 이야기를 담는다. 가정과 학교의 방임, 폭력 속에 살고 있던 빌리 앞에 우연히 새끼 매가 나타난다. 그는 매에게 ‘케스’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기르기 시작한다. 서점에서 훔친 매에 관련된 책을 보며 케스와의 시간을 쌓는다.

빌리는 힘차게 날아가는 ‘케스’ 모습에서 자신의 희망을 찾았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빌리의 꿈은 쉽게 무너진다. 빌리가 형 쥬드의 도박 비용을 다른 곳에 쓰면서 분노에 찬 쥬드가 케스를 죽인 것이다. 빌리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케스를 꺼내 땅에 묻어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읽고 쓰는 것이 좋다는 빌리의 말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기술직을 권유하는 고용 사무관의 모습과 ‘너도 탄광에 갈 것’이라는 형 쥬드의 말 등을 통해 빌리의 미래가 결국 정해져있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게 한다.

켄 로치 감독은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케스> 역시 경험이 없는 배우들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주인공 빌리 역을 맡은 배우 데이비드 브래들리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배우이다. 켄 로치 감독은 진정성 있는 연기를 위해 데이비드 브래들리에게 원작을 읽지 못하게 한 뒤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 영국 아카데미 영화제 주목받는 신인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브래들리는 <케스> 이후 전업 연기자로의 길을 걷지 않았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감독의 대표작 하면 단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꼽을 수 있다. 2006년 개봉한 이 작품은 제59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영국의 일간지 더 가디언이 선정한 21세기 100대 영화 중 87위에 올랐다.

영화는 1920년대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내전을 배경으로 형제 간의 갈등을 그린다. 영국에서 개업을 준비 중인 의사 데미언(킬리언 머피)은 아일랜드 독립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물이다. 그러나 영국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아일랜드 청년들의 모습을 목도한 후 형 테디(패드레익 딜러니)와 함께 아일랜드 저항군 IRA에 들어가 활동을 시작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영국군에 대항하는 아일랜드 독립군의 이야기에서 한 발짝 나아간다. 영화는 양국 간의 평화조약으로 시작된 아일랜드 내부의 갈등에 주목한다. 벨파스트 협정(1998)을 모티브로 한 극 중 평화조약은 아일랜드 일부 지역의 자치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테디와 데미언의 의견이 엇갈리고 결국 형제의 비극적인 갈등이 심화된다.

켄 로치 감독은 다큐멘터리에 버금가는 현실성을 영화에 담기 위해 독특한 방식을 고수한다. 대표적인 방식이 배우에게 대본을 제공하지 않고 극 중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촬영하는 것이다. 주인공 데미언 역의 킬리언 머피는 이에 대해 “감독님 영화엔 대본도 없고 액션, 컷도 없어요(촬영 시작과 끝을 알리는 사인). 마치 모두가 모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죠”라고 말했다.

 

<엔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대체적으로 사회정치적 소재를 다루며 이를 다소 냉소적인 태도로 견지한다. 무겁게 전개될 법한 이야기지만 켄 로치 감독은 유머를 빼놓지 않는다. 특히 2012년 개봉한 <엔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특유의 유머가 빛을 발하는 코미디 영화이다. 제65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타진하지만 자못 산뜻한 무드를 유지한다.

사고만 치고 다니는 철없는 청년 로비(폴 브래니건)가 아빠가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들을 보며 앞으로는 바르게 살고자 결심을 하지만 재력가인 여자친구 레오니(시오반 라일리)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그를 얼씬도 못하게 한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뛰어난 위스키 감별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에 사회봉사를 하는 친구들과 함께 ‘천사들의 몫(엔젤스 셰어)’를 챙기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켄 로치는 한 인터뷰를 통해 “희극적인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의 예상을 비껴나가고 싶었다”며 코미디 영화를 제작한 이유를 밝혔다.

한편, 그는 자신이 다루는 인물을 ‘폭격이 끝난 자리에서 피어난 꽃과 같다’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종의 프로젝트를 성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스스로 몰랐던 재능과 열정을 발견하는 인간상인 것이다. 직업, 능력 등의 기준으로 규정된 사람들 사이 그 정체성조차 없는 이들에 대한 켄 로치 감독의 관심 어린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