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스트 골 윈즈>로 찾아온 타이카 와이티티는 지난 10년간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은 감독 중 하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각각 연출자가 달랐던 <토르: 천둥의 신>(감독 케네스 브래너, 2011)과 <토르: 다크 월드>(감독 앨런 테일러, 2013)에 이어 <토르: 라그나로크>(2017)와 <토르: 러브 앤 썬더>(2022)를 연달아 연출했고, 그 사이 <조조 래빗>(2019)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각색상을 직접 수상하기도 했다. <조조 래빗>에서 콧수염을 붙이고 직접 아돌프 (히틀러) 역을 소화했고, <토르: 라그나로크>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의 신스틸러였던 ‘코르그’ 역시 그의 모션 캡처 연기와 목소리 연기로 탄생한 캐릭터였으며, <프리 가이>(2021)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 등 수많은 영화에서 배우로도 맹활약했다. 그럼 그는 7년 전 어떻게 <토르> 시리즈에 투입된 것일까. 어쨌건 본업인 감독으로서 <이글 대 샤크>(2007)로 장편 데뷔하고, 개봉 당시 뉴질랜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보이>(2010)에 이은 세 번째 장편연출작이자 저메인 클레멘트와의 공동연출작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원제: What We Do in the Shadows, 2014)에 그 답이 있다.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는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중세시대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뱀파이어 가문의 이야기를 담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일단 설정 자체가 너무나 기발하고 재미있다. 뉴질랜드 웰링턴 교외의 집에서 모여 사는 뱀파이어들이 한 다큐멘터리 제작팀에게 몇 달간 그들의 일상을 밀착 동행 취재할 기회를 주고,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뱀파이어들의 집에 머물며 영화를 촬영한다는 형식이다. 혹시 모를 안전(?)을 위해 십자가 목걸이를 다 걸고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뱀파이어들에게 내건 조건은 ‘촬영 기간 동안 절대 우리를 물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뭔가 색다른 게 있을 것 같았던 뱀파이어들의 생활이 사실상 인간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뉴질랜드에서 매년 개최되는 가면무도회에는 좀비, 마술사, 뱀파이어, 늑대인간 등 초대받은 자들만 참석할 수 있는데, 거기서 어떻게 돋보이고 싶어 경쟁하는 모습은 인간들의 ‘밤문화’ 판박이다. 예상치 못한 고뇌들도 있는데, 인간들이 쓸데없이 자신을 무서워한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뉴질랜드 출신 타이카 와이티티와 저메인 클레멘트 감독이 공동으로 각본과 감독, 배우로 참여한 이 B급 코미디 영화는 160만 달러 예산을 투자해 5배 가까운 큰 수익을 냈을뿐더러, 기발하고 독특한 코미디 감각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2019년에는 미국 FX 채널에서 이를 바탕으로 리메이크한 TV시리즈가 시작됐다. 원작자라 할 수 있는 타이카 와이티티와 저메인 클레멘트가 총괄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했고, 페이크 다큐 형식은 유지된 가운데 배경만 뉴질랜드에서 미국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로 바뀌었다. 지난해까지 시즌5가 방송됐으며 제작진은 올해 시즌6를 끝으로 종영할 것이라 밝혔다. 장편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는 티빙에서 독점 공개되던 중 서비스가 종료되어 아쉽지만, TV시리즈는 현재 디즈니플러스에서 전 시리즈 모두 감상 가능하다.

매일 서로에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싸우는 세 주인공은 다음과 같다. 379세의 비아고(타이카 와이티티)는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태어나 밝고 댄디한 로맨티스트로, 집안일 중 닦기와 쓰레기 버리기 담당이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을 때는 바닥에 신문지를 깔라고 잔소리하는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다. 826세의 블라디슬라브(저메인 클레멘트)는 중세시대의 영주 출신으로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살해한 폭군이었고, 변신술과 최면술위 귀재로 현재는 재활용 쓰레기를 담당하고 있다. 가장 어린 183세의 디콘(조니 브루)은 젊고 반항적이며 섹시한 뱀파이어로 나치 뱀파이어로 활동했고 2차 세계대전 후 뉴질랜드로 도망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5년 동안 설거지 담당이었는데 제대로 한 적이 없어서 언제나 갈등을 일으키고 있고, 취미는 치명적인 댄스와 뜨개질이다. 한편, 지하실에는 8000세의 피터가 있는데 누가 봐도 <노스페라투>(1922)의 뱀파이어 오를록 백작을 오마주한 것이다.


장르의 컨벤션을 코믹하게 비트는 재주가 정말 뛰어나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한때 16명의 사람들과 공유주택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 영화에 녹였다고 한다. 뱀파이어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설거지와 청소 등 누가 집안일을 할 것인지 논쟁하고, 저녁 식사에 친구들을 초대하고 클럽에 가는 등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티격태격 싸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은 인간보다 설거지할 거리나 청소할 거리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특히,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늑대인간들과의 충돌이 재밌다. 이른바 ‘어깨빵’ 문제로 늑대인간들과 패싸움 일보 직전까지 가게 되는데 여느 철부지 남성들의 기싸움과 다를 바 없다. 늑대인간을 향해 “아무 데나 개처럼 오줌을 싸는 놈들”이라고 무시하기도 하고, 뱀파이어가 던진 막대기를 (자기도 모르게 내면의 숨겨진 ‘개과’의 버릇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와) 주우러 달려가는 한 늑대인간을 향해 다른 늑대인간이 “야, 네가 개야? 하지마!”라고 꾸짖기도 한다.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는 1차원적 B급 유머도 쉴 새 없이 터지지만,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과 탐구도 탁월하다. 먼저 돈 한 푼 받지 않고 그들의 집에 와서 가사도우미처럼 일하는 여성이 있는데, 불멸의 뱀파이어로 만들어주겠다는 조건으로 그런 노동 계약을 맺은 사람이다. 그 기간이 유보되면 될수록 그 여성을 절망적으로 변한다. 뱀파이어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지키지 않았던 아흔 살 넘은 과거의 하인과 영상통화하는 장면도 웃프다. 영생의 존재로 살고자 했던, 그래서 뱀파이어의 거짓 약속에 넘어가 평생 일만 하며 살았던 인간들의 헛된 욕망의 비애라고나 할까. 압권은 비아고와 한 인간 할머니의 사랑의 대화다. 379세의 비아고는 캐서린이라는 그 할머니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영원히 함께 할 계획을 갖고 있다. 300살 연하의 여성과 눈이 맞은 것이기에 그는 “저를 날강도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지만”이라며 말을 꺼낸다. 뱀파이어가 늙지 않고 영생한다는 특성을 코믹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뱀파이어들이 인간 친구인 스튜에게 컴퓨터를 배우는 장면도 기발하다. 인터넷을 배운 뱀파이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모니터를 통해 ‘일출’ 장면을 보는 것이다. 태어나서 몇 백 년 동안 해를 본 적 없기에 그 모니터 이미지만으로도 아이처럼 좋아한다. 이처럼 뱀파이어의 삶을 코믹하면서도 페이소스를 듬뿍 담아 표현해낸다. 연출, 각본, 주연배우로 1인 3역을 소화한 타이카 와이티티는 바로 이 작품을 통해 재능을 인정받고 할리우드의 눈에 띄었다. 기괴한 코믹 액션 하이브리드 영화 <데드 얼라이브>(1996)로 할리우드로 진출해 대규모 블록버스터 연출에까지 이른, 마찬가지로 뉴질랜드 출신 감독인 피터 잭슨의 경우와 무척 닮았다.

그런 그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경유해 신작 <넥스트 골 윈즈>로 돌아왔다. 인성 논란으로 퇴출 위기에 놓인 축구 감독 토머스 론겐(마이클 패스벤더)이 창설 이후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FIFA 랭킹 최하위 아메리칸사모아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축구의 기본 규칙도 모르는 개성 넘치는 선수들과 어떻게든 우승, 아니 한골이라도 기록해야 하는 다혈질 감독이 그렇게 월드컵 예선전에 나선다. 모처럼 현실의 시간으로 돌아온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이 스포츠 장르와 어우러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