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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집콕한 사람들에게: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돌려보는 고전영화 같은 〈바튼 아카데미〉, 개봉 전 미리 보다

김지연기자

연휴와 방학. 두 글자만으로 심박수를 높이는 단어들. 서양에서는 추수감사절 연휴와 크리스마스 연휴에 저마다 고향으로 떠난다면, 우리는 설날과 추석에 고향으로 떠나 가족과의 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명절을 홀로 보내는 쪽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다양하다. 명절에 고향을 가지 않는 이유가 한국의 명절 문화(번거로운 차례라던가, 오랜 성차별적인 문화라던가) 때문이건, 혹은 교통체증이건, 혹은 가족과의 썩 좋지 않은 관계 때문이건 간에, 저마다의 사정으로 가족을 만나지 않고 홀로 지내는 연휴가 되면 막상 상상했던 것만큼, 일상의 모든 고통을 상쇄할 만큼 그렇게 또 가슴이 뛰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괜스레 침울해지기도 한다. 물론,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혹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 온종일 충분히 즐겁기는 하다. 그러나, 하나같이 휴무하는 가게들, 혹은 만날 사람 없이 텅 빈 스케줄을 보고 있자면 분명 나는 명절에 자의로 고립되기를 택했는데, 타의로 고립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기도.

 

<바튼 아카데미>는 그런 저마다의 사정으로 홀로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이 모여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영화다. 원제는 <The Holdovers>, 즉 ‘남겨진 사람들’. 영화의 내용을 보다 직관적으로 반영한 제목을 짓자면, ‘바튼 아카데미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정도가 아닐까. 1970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둔 사립 기숙학교 ‘바튼’의 학생들은 저마다 가족의 품으로 떠난다. 원치 않게 학교에 남게 된 문제아 ‘털리’(도미닉 세사), 그리고 그를 지도해야만 하는 고집불통 역사 선생님 ‘폴 허넘’(폴 지아마티), 학교 식당의 주방장 ‘메리’(더바인 조이 랜돌프)만 빼고 말이다.

 

연휴에 학교에 남겨진 이들이 처음엔 서로를 달갑지 않아 하다가,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 그런 스토리일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정확하다. 하지만 이 뻔한 플롯의 영화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뻔한 것들의 가치를 되새기는’ 영화여서 일 터. 멀티버스와 각종 크리처, 화려한 액션과 CG, 그리고 극단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주를 이루는 요즘 영화들 사이, ‘소박한’ 휴먼 드라마 영화가 사랑받는 현상 자체가 뻔하지 않다.

 

올 21일 개봉하는 <바튼 아카데미>가 국내 개봉 전부터 그토록 소문난 이유는 세련되게 설계된 웃음 포인트들과 배우들의 연기력, 뛰어난 연출, 70년대에 대한 향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의 정서를 건드리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바튼 아카데미>는 정상성에 대한 고찰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건 타의에 의한 것이건 간에, 크리스마스에 학교에 남아 있는 세 명은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와 같은 존재다. 폴 허넘 선생은 융통성 없는 성격을 지닌 데다가 제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는 두 눈을 지녀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에게 놀림을 받는 존재고, 학생 털리는 공부는 잘하지만 시종일관 삐딱한 탓에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방장 메리는 가까운 곳에 여동생이 살고 있음에도 크리스마스 연휴에 자발적으로 학교에 남아 그저 담배만 피워대는, 남모를 사연을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때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가 피로 연결된 관계보다 더욱 진한 법. 심리적으로 어딘가 결핍되어 있는 인물들이 모여 서로의 결핍을 감싸 안고,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더없이 풍족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다.

<일렉션>(1999) <어바웃 슈미트>(2002) <사이드웨이>(2004)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바튼 아카데미>를 만들기 전, 영화의 감정적인 기능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했다. 그는 항상 70년대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는데, 그가 만들고 싶어 한 작품은 단순히 형식적인 측면에서 70년대의 스타일을 본뜬 영화가 아니라, 그때의 영화들이 전했던 ‘울림’을 가진 영화였다.

<바튼 아카데미>를 만들기 전,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좋은, 휴먼 스토리를 전달하는, 캐릭터를 베이스로 한 이야기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각자의 인간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서로를 보듬는 이야기인 것.

<바튼 아카데미> 북미 개봉 당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모두에게는 스토리가 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보통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마련이지만, 그 사람을 더욱 깊이 알게 될수록 그 사람 안의 인간성을 보게 된다”라며 영화의 주제를 언급했다. 그는 <바튼 아카데미>가 단지 크리스마스 영화나 ‘따뜻한 영화’ 등의 수식어로만 설명되기를 원치 않는다며, 사람 간의 연결, 그리고 인간성의 가치에 주목해 줄 것을 당부했다.

‘진짜’ 이야기,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고집은 <바튼 아카데미>의 촬영 형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단 한차례의 스튜디오 촬영도 없이, 100% 실제 로케이션 촬영을 고집했다. 심지어는 가짜 눈이 아니라 진짜 눈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촬영했다고. 더불어, ‘털리’ 역의 배우 도미닉 세사는 영화의 촬영지인 기숙학교에서 발견한 신예다. 그는 마치 바튼 아카데미를 연상하게 하는 디어필드 기숙학교에 다니던 학생으로, 학교 연극에 출연해 본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물론, <바튼 아카데미>는 형식적으로도 1970년대의 영화와 똑 닮았다. 영화는 1970년대에 사용했던 카메라 렌즈와 디지털을 혼합해 촬영되었고, 그 결과 오래되고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다. 1.66:1의 화면비부터, 예스러운 타이틀, 장면이 바뀔 때 나타나는 디졸브 효과, 적절한 필름 그레인, 그리고 70년대 록밴드의 음악까지. 왠지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봐야 할 것만 같은, 살아본 적 없는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바튼 아카데미>가 국내에서 2월 말이 되어서야 개봉하게 된 데에는 어떤 어른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 영화를 12월에 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그러나, 해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봐도 질리지 않는 고전영화처럼, 영원히 낡지 않을 이야기이기에 나는 올해 말에도 <바튼 아카데미>를 틀고 싶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