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 연출을 맡은 이창희 감독의 인터뷰는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졌다. 공개 일주일 만에 <살인자ㅇ난감>을 둘러싼 몇몇 논란들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만난 이창희 감독은 자못 담백하고 거침없이 질문에 답변을 내놓았다.
지난 9일 공개된 <살인자ㅇ난감>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 ‘이탕’(최우식)과 그를 쫓는 형사 ‘장난감’(손석구)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작품은 공개 직후 한국을 포함해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등 약 11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독특한 연출법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고 작품 외적인 여타 이슈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이창희 감독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살인자ㅇ난감>이 공개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주변의 반응은 어떠한가.
주변에서 연락을 많이 받고 있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호불호가 갈릴 작품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좋게 보신 분들도 있고 안 좋게 보신 분들도 있는데 즐겁게 보신 분들에게는 감사할 따름이고 좋지 않게 보신 분들에겐 아쉽지만 ‘다음에 더 잘하겠다’고 말하고 싶다. (웃음)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이 작품은 5부 이후부터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데 거기에서 의견이 많이 갈리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그 지점이 좋았다. <살인자ㅇ난감>을 만들 때 기존의 형식과 문법을 파괴하고자 했다. 때문에 키치한 면이 있고 시청자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중반 이후에 다른 길로 갔다가 8부에서 돌아오는 식으로 정리했는데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다.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연출 스타일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에서 특히 신경 쓴 것이 있나.
사실주의와 판타지가 부딪혔을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장면은 마치 연극처럼 컷을 나누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찍고, 어떤 장면은 캐릭터의 머릿속까지 들어가는 듯한 연출적 효과를 주었다. 이것들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캐릭터도 마찬가지이다. 이탕(최우식)이 현실감 있는 인물이라면 송촌(이희준)은 약간은 떠있는, 극적인 인물이다. 이들의 조합이 독특한 시너지를 줄 것이라 생각했다.

조명이나 음악 등의 사용 역시 특이한 지점이 많았다.
보통 다른 넷플릭스 시리즈는 오프닝 시퀀스가 있는데 그것을 없앴다. 음악 감독님의 아이디어로 어떤 회차에는 엔딩 크레딧에 음악을 쓰지 않기도 했다. 예측 가능성을 계속 없애고 변주를 주고 싶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려고 했다.
2019년 방영된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에 이어 원작이 있는 웹툰을 다루었다. 원작 팬들은 캐릭터 싱크로율을 중요시하기도 하는데 캐스팅할 때 그 점을 염두에 두는가.
<타인은 지옥이다>를 하면서 실제 외모가 캐릭터와 유사하지 않더라도 배우가 연기력으로 그것을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타인은 지옥이다>의 배우들은 원작 캐릭터와 닮지 않았다. 그런데도 연기로서 캐릭터와 완벽히 붙어 있으니까 시청자분들께서 싱크로율이 맞는다고 착각하시는 듯하다.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 등 <살인자ㅇ난감>의 배우들도 원작의 캐릭터와 비슷하게 생기진 않았어도 유사한 지점이 있고 연기를 워낙 잘하시니 그 간극을 커버하시리라 믿었다.
배우의 연기력에 대한 호평이 많다. 연출자로서 배우들이 연기를 가장 먼저, 가까운 곳에서 보았는데 현장에서 어떠했나.
이탕 역을 맡은 최우식씨는 순간 집중력이 아주 좋은 배우이다. 겉으로 많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지만 디테일하게 계산해서 연기하는 스타일이다. 의도했지만 티가 나지 않는 것, 이것이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우식 배우는 고단수이다.
장난감 형사 역의 손석구씨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날 것의 연기를 한다. 특히 나와 생각하는 지점이 많이 비슷하다. 물론 의견이 다를 때도 많다. 그러면 자유롭게 토론하고 결과를 도출해낸다. ‘협업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희준 배우는 노력파이다. 송촌은 자칫 과하고 이상한 연기를 할 가능성이 높은, 매우 어려운 캐릭터이다. 그런데 노인 연기를 위해 탑골공원에 가서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집에 노인 사진을 붙여놓는 등 송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완벽한 송촌이 되었다. 인물에 대해 나와 상의를 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송촌을 완벽히 만들어와서 나는 그저 ‘잘한다, 잘한다’한 것밖에 없다.

최근 ‘사적 제재’와 관련된 논란이 많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의 사생활을 공개하거나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등의 콘텐츠가 점점 늘어난다. <살인자ㅇ난감>은 이탕의 캐릭터를 통해 이에 대한 메시지를 담는 듯하다. 연출자로서 ‘이탕’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달라.
이탕은 판타지에 가까운 인물이다. 현실에서 존재하면 안 된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판타지 안에서는 발칙한 상상을 해볼 수 있지 않나. 이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만들고자 했다.
보통 사적 제재와 관련된 작품들은 정의감에 불타서 범죄를 저지르는데 이탕은 목적 없는 살인을 저지르기에 수동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인이 반복될수록 이탕 스스로도 ‘나도 결국 같은 놈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송촌 역시 이탕에게 ‘살인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이 내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이탕은 분명 나쁜 놈이다. 그럼에도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탕을 아주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납득은 되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데뷔작인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와 영화 <사라진 밤>, 이번 <살인자ㅇ난감>까지 계속해서 스릴러 장르에 집중하고 있다. 스릴러를 계속 만드는 이유가 있나.
그냥 스릴러를 좋아한다. 작품을 선택하거나 글을 쓸 때도 계속 그쪽으로 가게 된다. 아무래도 영화를 공부할 때 알프레드 히치콕, 쿠엔틴 타란티노, 데이비드 핀처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스스로는 부정하지만 ‘멜로는 잘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웃음) 너무 좋은 멜로 시나리오가 들어온 적도 있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기회가 되면 따뜻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최근 <살인자ㅇ난감>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극 중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를 연상케 하는 배우가 등장하며 여러 요소를 통해 그를 저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가.
감독 개인의 정치 성향을 드라마에 몰래 녹이는 거는 아주 비겁하고 저열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논란은 사실무근이며 논란의 요소들은 우연일 뿐이다. 형 회장 역의 배우 승의열이 이재명 대표를 닮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장동 개발 사업 시행사가 챙긴 수익과 같다는 죄수 번호 역시 의미를 부여한 숫자가 아니다. 초밥을 먹는 설정은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줄 수단일 뿐이다. 작품이 많은 관심을 받다 보니 생긴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살인자ㅇ난감> 시청자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보셨으면 하는지 이야기해달라.
조금 독특한 작품이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어떻게 흘러갈까’를 예측하면서 보시면 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한다. 작품의 장르적인 재미를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시청자분들이 그 부분을 캐치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