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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맞아 파보는 〈파묘〉 속 이스터에그

성찬얼기자

<파묘>가 관객 300만을 동원했다(28일(수) 누적 기준). 작년 최고의 흥행작으로 등극한 <서울의 봄>보다 빠른 속도다. 하지만 흥행은 이제 시작일 뿐, 3.1절을 기점으로 영화의 폭발적 뒷심이 예상된다. 오컬트의 외피를 둘렀지만, 전쟁과 침략의 피해자였던 대한민국의 역사를 파내 어루만지는 항일 영화적 면모를 지닌 탓이다. 영화 속 숨은 상징 찾기도 화제다. 아직 <파묘>를 보기 전이라면 항일 이스터에그(몰래 숨겨놓은 메시지)를 예습하고 극장에 나서자. 이미 영화를 봤다면 N차 관람으로 숨겨진 메시지를 곱씹는 것도 좋겠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파묘요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집을 짓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풍수지리. 미신이라 혀를 차는 이들 반대편, 대대손손 성공과 번영을 꿈꾸며 이를 맹신하는 이들도 적지 많다. 음양오행과 결합한 풍수지리는 누군가에겐 '과학'이 된다. 지킬 것 많은 대한민국 상위 0.1%도 풍수사를 찾는 단골손님이다.

〈파묘〉
〈파묘〉

 

<파묘>는 그 0.1%, ‘밑도 끝도 없는’ 부자에게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속인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의뢰인을 만나러 미국 LA로 날아가는 화림과 봉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의뢰인은 3대째 알 수 없는 기이한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집안의 장손 박씨. 대한민국 최상위 무당 화림과 봉길은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채고 이장을 제안한다.

〈파묘〉
〈파묘〉

5억 짜리 의뢰에 대한민국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대통령을 염했던 장의사 영근이 빠질 수 없다. 상덕은 특히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5억은 40년 경력 풍수사 인생에 퇴직금이 되어줄 터. 눈 딱 감고 의뢰를 받으려 했지만 강원도 깊은 산자락에 위치한 묫자리가 심상치 않다.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40년 경력의 풍수사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파묘 제안을 거절한다.


뜻밖에 항일 영화?

하지만 어린아이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연민이 상덕의 마음을 돌리고, 이들은 결국 땅을 파내려 간다. 영화는 무속신앙의 용어들을 소제목 삼아 총 6장으로 구성돼있지만 전체 흐름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장의계 어벤저스들이 뭉쳐 대살굿을 벌이고 관을 꺼내고, 그 관에서 '겁나 험한' 것이 빠져나온 후 몇 사람이 다치고, 일부는 목숨을 잃지만 결국 화장으로 그것을 보내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1부는 그렇게 우리가 예상했던 모양새로 일단락된다. 하지만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은 것 마냥 세로로 박힌 '첩장(묘를 겹침)' 발견 이후의 전개, 그러니까 '더 험한' 것의 등장 이후 분위기는 급변한다.

 

〈파묘〉
〈파묘〉

2부는 영화의 주제 의식을 더 명확히 한다. 약간의 스포를 하자면, 조선의 정기를 끊어내기 위해 일제 강점기 백두대간에 박았다는 쇠말뚝을 감독은 영화적 허용으로 풀어낸다. 겹쳐진 묘의 비밀을 캐내고 험한 것에 분연히 맞서는 풍수사, 장의사, 무당의 모습은 흡사 개인과 나라의 한(恨)을 해결하기 위해 활약하는 항일 운동가처럼 처절하다.


이름에 숨겨진 항일 정신

〈파묘〉 '의열장의사'
〈파묘〉 '의열장의사'

 

김상덕(최민식), 고영근(유해진), 이화림(김고은), 윤봉길(이도현), 오광심(김선영), 박자혜(김지안)에서 비롯된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영화에 깊은 의미를 더한다. '상덕'은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을, '화림'은 여성 항일운동가 '이화림'을 떠올리게 한다. 이도현이 연기한 '봉길'은 윤봉길 의사를, 유해진이 연기한 장의사 '영근'은 조선 후기 왕비 민씨를 살해한 우범선을 일본에서 암살한 고영근을 연상시킨다. 오광심과 박자혜의 이름 또한 여성독립운동가 명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장재현 감독은 등장인물 작명에 대해선 “노코멘트 하겠다”며 의도한 것인지에 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극중 중요하게 등장하는 절이 나라를 지킨다는 뜻의 ‘보국사’인 점과 짧게 언급되는 ‘철혈단’이라는 조직이 실존했던 독립운동 단체라는 것도 이목을 집중시킨다. 절을 만든 스님의 법명 '원봉'을 관객들은 의열단장 '김원봉'과 연결 지었다. 참고로 장의사 영근이 일하는 곳에는 '의열장의사'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미스터리한 일본 스님 '기순애'의 이름은 일본어에서 가져왔다. 감독은 한국에서 일본어가 유행할 때 기츠네(여우) 발음이 안 돼서 '기순애'라 발음했다는 옛 고서를 참고했다고.


숫자에 숨겨진 이스터에그와 '얻어걸린' 메시지

〈파묘〉
〈파묘〉

 

영화에 등장하는 '골드번호'도 놓치지 말자. 최민식의 차 번호는 사십구재와 '파'묘 그리고 광복절을 연상케하는 '49 파 0815' 이고, 유해진이 모는 운구차는 '1945'로 광복한 해를 떠올리게 한다. 김고은의 차 번호는 '19 무 0301'. 당신이 생각하는 1919년 3월 1일, 그날이다.

차 번호처럼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숨긴 이스터에그도 있지만, 의외로 '얻어걸린' 메시지도 많다(차 번호도 사실 미술팀이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작중 도굴꾼으로 위장해 조선 땅에 박힌 말뚝을 제거하던 단체의 이름이 '철혈단'인데, 1920년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의 이름과 일치하지만 장재현 감독이 이를 의식해서 이름을 가져온 건 아니라고. 쇠와 피가 이 영화의 주제와 맞아서 이름을 지었는데 나중에 후반작업을 할 때 단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파묘〉
〈파묘〉

 

또한 풍수사 상덕이 묘에서 관을 꺼내 이장한 후 땅의 값어치로 땅의 신에게 100원을 던지는 장면도 꿈보다 해몽이다. 100원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 때문에 관객들은 이것 또한 감독의 의도라 합리적 의심을 했던 터. 하지만 장재현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실제 풍수사들은 보통 10원짜리를 던지는데, 흙색과 비슷해서 (화면에) 잘 안 보인다"며 "500원짜리로 할 수는 없어서 (10원 대신) 100원짜리를 선택한"것이라 전했다.

마지막으로 주연배우 최민식이 <명량>(2014)에서 이순신을, 유해진이 <봉오동 전투>(2019)에서 홍범도 장군의 젊은 시절을 모티브로 만든 황해철을 연기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파묘>는 차라리 운명과도 같은 영화였다고 이 글을 마무리한다면, 심한 과몰입일까. <파묘> 속 최민식의 마지막 응징이 배 한 척으로 왜군을 물리친 <명량> 이순신 장군과 겹치며 묘한 기시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