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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파묘〉최민식, “무서운가? 언제나 내 이름 석 자 걸고 하는 영화다.”

씨네플레이
최민식 (제공=쇼박스)
최민식 (제공=쇼박스)

이쯤 했으면 그만 덮어야 하는데, 상덕(최민식)은 그 땅에서 기어이 ‘험한 것’의 정체를 파헤쳐 기어코 도깨비불을 맞닥뜨리고야 마는 뚝심 있는 풍수사다. 40년 풍수사 경력의 노련함과 합리적인 판단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건 분명, 오판이다. 상덕은 그럼에도 두려움에 맞서, 잘못 쓴 묫자리의 흙을 제힘으로 조금씩 조금씩 더 파 내려간다. 누군가 보기엔 ‘꼰대력’으로 치부해 버릴 시선도 개의치 않는 ‘선택’. 직업적 사명이 소명으로 치환되는 건 그 누구의 요청도 아닌 응당 그래야 할 몸에 밴 신념 때문이다.

풍수사 상덕은 공포의 기운으로 서막을 연 <파묘>가 땅을 판 순간, 사실은 정말이지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지점이 어디인지, 묵묵하게 앞장서 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고 영화의 구조를 확립하는 길잡이다. 화림(김고운), 봉길(이도현), 영근(유해진)으로 구성된, 이 영화의 알고 보니 ‘어벤저스’ 같은 팀워크는 상덕을 연기한 최민식 배우의 존재감으로 결속력을 더한다. <파묘>의 상덕에게서 위기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 앞장섰던 <명량>(2014)의 불굴의 이순신 장군과 가족을 건사하려 비리를 서슴지 않던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의 비열한 최익현의 모습이 얼핏 비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엔 우리가 배우 최민식에게 기대할 법한 거대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대신, 반대로 수습하고 거두어들이는데 더 크게 힘을 써, 결국에는 엄청난 임팩트를 만들어 낸다.

온전하게 몸의 힘을 뺀, 땅에 착 붙은, 가장 현실에 가까운 호흡법으로 최민식은 <파묘>의 베이스가 된 ‘장르’의 세계를 우리 곁의 진짜 리얼한 공간으로 받아들이게 해준다. 연극 무대를 거쳐 드라마, 영화, 시리즈까지 무려 데뷔 42년 차 경력의 무게에도 결코 짓눌리지 않는 ‘가벼운’ 연기로, 최민식은 또 한 번 이렇게 자신의 연기를 단단하게, 업그레이드해 나간다.

 


최민식 (제공=쇼박스)
최민식 (제공=쇼박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 이후 극장 개봉작은 오랜만인데요.

다행히 예매율부터 관객들 반응이 좋아요, (티모시) 샬라메가 쫄 것 같은데.(웃음) 정말 축복 같아요. 간만에 무대 인사도 하고 관객들 만나니까 너무 좋았어요. 요즘 극장 상황이 여러모로 안 좋은데 이 분위기가 부디 길게 이어졌으면 해요. 우리가 잘 뚫어서 올해 개봉하는 다른 영화들도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호러, 오컬트 요소들이 있는 장르는 첫 도전이신데요.

촬영 때 장르의 이질감은 크게 느끼지 않았어요. 오히려 장재현 감독이 CG를 싫어해요. 진짜 병적으로 싫어해요. 후반에 나오는 그 불, 도깨비불 있지 않습니까? 그게 진짜 불이에요. 그게 정말 가까이에서 도는데 특수효과팀이 크레인으로 끌어올려가지고 공처럼 만들었어요. 그 안에 호스 같은 걸 넣고, 거기에 가스를 연결해서 불이 확 나게 그걸 돌렸어요. 덕분에 따뜻하게 촬영했죠.(웃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아, 이래서 CG를 안 했구나’ 싶더라고요. CG였으면 제가 허공을 보고 연기를 하고, 조명으로 처리를 했을 거 아니에요. 그랬다면 연기할 때 많이 답답했겠죠. 진짜 불을 보니까, 묘하게 불이 빨아들이는 그 기분을 온전히 느끼겠더라고요. 그런 촬영 방식이 정말 좋더라고요. 뭐, 아무래도 이번 촬영은 CG를 안 하다 보니 저보다 그 ‘험한 것’이 정말 고생이 많았죠.

 

존재의 실체가 한민족의 역사적 아픔으로 연결되는 구성인데요. 전반과 후반으로 이어지는 그 연결지점을 배우님께서는 처음엔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가시적으로 이게 보여졌을 때, 과연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의구심은 있었죠. 괜찮은 건가,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뭐 이랬었는데 아시다시피 사령관(장재현 감독)께서 이번에는 이런 작전을 펴겠다고 하시면, 저희 같은 졸병들은 그냥 따라가는 거죠. (웃음) 그래서 해본 거예요. 난 그 패기가 좋았어요. 몸을 사리는 것 없이, 이렇게 하면 좀 그렇지 않을까, 저렇게 하면 그렇지 않을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노선을 딱 정하고, 한번 이렇게 표현해 보고 싶다 하는 길로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나가는 거죠. 설령 관객 반응이, 마니아 친구들은 ‘배신이다’ 그럴 수 있잖아요. 매번 배신을 때리면 그렇지만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열린 생각이 저는 좋았어요. 만약에 진짜 이게 어떤 작품의 주제와 메시지에 크게 어긋나는 방향이다. 그러면 저 역시도 제 이름 석 자 걸고 출연하는데 영화가 산으로 가는 너무 막 이상해지는 거는 저 역시도 반대를 했겠죠. 자유롭게 시도해 본다는 것 자체에 대해 저는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장재현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할 때, <파묘>의 매력은 어떤 부분이었나요.

<검은 사제들>(2015)이나 <사바하>(2019), 특히 <사바하> 같은 경우는 어떤 철학적 사유를 요구하는 편이죠. 제가 볼 때는 <파묘>는 조금 말랑말랑한 느낌이었어요. 이전 작품들의 기조를 고수하면서 약간 유연해졌다. 저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요. 형이상학적인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신과 인간을 이야기하는 게 참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영화적으로 풀어나갈 때 자칫 잘못하면 너무 관념적으로 빠질 수도 있고, 자칫 잘못하면 ‘험한 것’의 공포가 유치하게 비칠 수도 있는데 그 경계 안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있다 싶더라고요.

 

장재현 감독은 ‘한국형 오컬트’라는 수식을 만들어 낼 정도로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은데요. 함께 작업하시면서 장르를 향한 특유의 집요함 같은 것들을 체감하셨을 텐데요.

제가 원래 이런 스타일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도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는 정말 재밌게 봤어요. 깊게 빠져들었어요. 정말 영화가 촘촘하다 했죠. 그런데 이번에 작업하면서 그걸 진짜 옆에서 봤어요. 감독이라면 집요함은 기본이지만, 장재현 감독은 대충대충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에요. 그거 아세요? 무덤 장면이 조선 팔도를 다 돌아다니면서 찍은 거예요. 한 군데가 아니었어요. 정말 흙 색깔 하나하나 그냥 가는 게 없더라고요. 욕심도 많고, 자기 생각대로 해야 한다는 주관도 뚜렷했어요. 물론 그냥 여기서 찍자,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는 좀 피곤했지만.(웃음)

 

그런 면에서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작업이 예상되네요.

이동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저희가 이동이 많은 것보다 <파묘>는 정말 미술팀의 승리예요. 그거는 정말 확신합니다. 진짜 정말 고생했습니다. 정말 정말 개고생했어요. 그 나무를 다 산에 갖다 심고, 관 정말 죽이지 않습니까. 그걸 다 만들었어요.

 

미술팀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같이 연기한 동료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많이 하셨어요. 특히 김고은 배우가 다 했다면서 리스펙 하셨는데요.

<파묘> 팀의 손흥민입니다. 정말 굿 장면 때 퍼포먼스를 하는 걸 보는데 그 육체적인 피로보다도 무속인 캐릭터로 그렇게 거침없이 들어가고 거침없이 표현해낸 그 용감함, 그 성실함이 선배로서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진짜 그렇습니다. 여배우 입장에서 무속인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기술적, 정서적으로 그걸 체득해 나가는 과정이 엄청났어요. (이)도현이랑 둘이 무속인 선생님과 연습한다길래 제가 연습할 때도 가서 봤거든요. 정말 잘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선생님한테 “어떻습니까? 제자로 소질이 있지 않습니까?” 했죠.(웃음) 물론 선생님이, 그 과는 아니라고 선을 긋긴 하시더라고요. 도현이 같은 경우도 지금 군대에 있지만 아주 대견했어요. 진짜 그 북 치는 거 보셨죠? 북 빵꾸 나는 줄 알았어요. 아직 젊으니까 원래 그렇게 두들겨 패야 되거든. 북을 진짜 치는 거 보면 진짜 심장이 벌렁거려요. 진짜 그 흥분이 된다고요. 그 리듬에. 야 이건 제대로 한번 화학 반응이 일어나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지. 프로들이에요. 프로들.

 

말씀처럼 화림과 봉길이 새로운 세대의 무당으로서의 에너지를 내뿜는다면, 풍수사 상덕은 오히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으로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나가는 캐릭터인데요.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강렬한 에너지로 신을 장악하는 연기로도 일가를 이루셨는데요. <파묘>의 상덕은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는 캐릭터성이 오히려 배우님의 어떤 연기보다도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 경험이었어요. 이번엔 최대한 힘을 빼는 것이, 연기의 톤을 잡는데 관건이었을 텐데요.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평범한 아저씨다 싶었어요. 이 작품을 위해서 특별히 어떤 풍수 하시는 분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풍수라는 거대하고 방대하고 깊은 이 분야를 제가 이 작품을 하면서 몇 달을 공부한다고 그래서 제가 그 지식을, 그 방대한 지식을, 그 깊이를 제가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전에 한 번 지관이신 분이랑 이렇게 어떻게 하다가 몇 마디 나눠보긴 한 적이 있긴 해요. 제가 직업적인 버릇인데, 좀 이렇게 누군가 다른 직업을 가진 분들을 보면 좀 관찰하는 습성이 있어요. 외모부터 시작해서 말투나 이런 거를 보는데, 근데 뭐 별거 없더라고요. 그러다 자기의 전문 분야를 이야기할 때는 달라지죠.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산, 물, 땅 자연을 관찰하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이 사람이 어디를 무심코 볼 때도 그 시선은 깊어야 해요. 일반인들이 산에 올라가서, ‘좋다!’ 이거 하고는 완전히 다를 거란 말이죠. 그 사람의 레이더가 감지해내는 자연의 어떤 느낌들 감성 이런 것들이 왠지 좀 남다를 것 같다. 거기에 주안점을 좀 두었죠.

 

상덕은 풍수사라는 직업인으로 수익을 목적으로 의뢰를 받지만, 더 나아가 계속 땅을 파게 만들고 ‘험한 것’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 책임감, 사명감이 발휘되는 캐릭터인데요. <파묘>라는 이야기가 전진하게 하고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캐릭터이기도 한데요.

저는 그게 좋았어요. 직업인으로 땅에 대한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서. 제가 평소에 가진 풍수나 무속 또는 목사나 스님이나 어떤 종교에 종사하는 종교인들에 대한 저 나름의 가치관하고 좀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대본을 놓고 장 감독하고 얘기했을 때도 그 점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의 방향성, 땅의 의미를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끝까지 주판 하나를 두드리면서 파다가 안 파고, 이건 좀 더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캐릭터도 영화적으로는 매력 있겠지만, 근 40년 땅 파먹고 살면서 속물근성도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지켜야 될 건 지켜야 되는 거 아니냐, 그걸 안 지켰을 때 풍수사, 지관이라고 할 수 없죠. 그 양심은 마지막 최후의 보루, 즉 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는 없다. 그거는 있어야 된다는 거죠.

 

이 영화가 여러 면에서 읽힐 수 있지만, 상덕이 땅을 대하는 직업인으로 신념을 지켜나가는 정신적인 부분에서 연기 40년을 훌쩍 넘긴 배우 최민식의 태도와도 한편으로 겹쳐지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찬이죠. 자칫 잘못하면 거창하게 얘기가 될까 봐 좀 쑥스러운데요. 그냥 제 삶이 돼버린 것 같아요. 이제 뭐 다른 일을 하려고 그래도 어디 뭐 이력서를 넣어도 받아주겠어요? 그렇다고 자영업을 하자니 너무 겁나고. 다 떠나서 그래도 제가 제 스스로를 볼 때는 나름대로 좀 대견하다. 그래도 한 길을 걸어왔다는 거. 딴 데 한눈 안 팔고. 그냥 그거 하나 볼 때는 바나나우유 하나 이렇게 까서 주고 싶어요.

 

<파묘>를 당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떻게 남겨두고 싶으신가요?

배우라는 일이 결국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잖아요. 우리가 사람이 만나서 팀을 이뤄서 하는 일. 그걸 이번에 다시 한번 느꼈어요. 솔직히 이게 과장이 아니라 장재현이 하는 거는 다 해주고 싶었어요.(웃음) 정말 제 막냇동생 같았어요. 진짜 너무 예뻐가지고 생긴 것도 무슨 산 도깨비같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맨날 만나면 이리 와 뽀뽀만 하자 그러고 시작했으니까. 저도 사람인지라 괜히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괜히 주는 거 없이 이쁜 사람이 있잖아요. 제 눈에는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영화감독으로도 그렇고. 또 (유)해진이나 (김)고은이, (이)도현이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박정자 선생님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셨죠. 나와서 그냥 서 계시기만 하셔도 그 신에서의 존재감이 대단하시죠. 작은 역할이지만 그래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그리고 또 부산 기장에서 찍을 때 선생님하고 정말 오래간만에 식사 자리도 갖고, 휴차 때 맥주도 같이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참 좋았어요.

 

장르를 넘어서서 결국 과거사의 잔재에 대해 돌아본다는 점에서 지금의 관객들에게 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커지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관객들이 어떤 점을 가져가기를 바라시는지요.

제가 아주 어릴 때 동네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굿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 자체로 공연 보는 것 같고, 먹을 것도 많고.(웃음) 그때 보면 굿을 보면서 엄마, 할머니가 다 우세요. 그게 말이 안 돼, 다 쇼하는 거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그걸 의뢰한 사람의 마음이 정화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돌아가신 선대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면 그게 종교의 기능이 아닌가 싶어요. 종교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거를 잘못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장 감독이 “우리 땅이 트라우마가 많다”라고 했는데 저는 거기에 천 퍼센트 동의합니다. 영화에 대사도 나오잖아요.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묘비에 새겨진 그 위도 경도를 맞춰보면 진짜 허리 지점이거든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정신적, 정서적으로 한반도의 기운을 끊는다는 주술적인 의도가 있었다는 거죠. 누군가는 ‘그런 게 어딨어?’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행위를 왜 했겠어요? <파묘>는 그걸 뽑고 약을 발라서 상처를 치유해 준다는 그런 정서거든요. 오컬트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어떤 감독의 그런 가치관이 저는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장르 안에 있는 그 따뜻함, 원혼을 달래주고 그런 마음을 이 영화를 통해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화정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