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여운 것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엠마 스톤, 마크 러팔로, 윌렘 대포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대담하고 위트 있는
★★★★☆
<송곳니>(2009) <더 랍스터>(2015) <킬링 디어>(2017)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등으로 확고한 자신만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보여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최고작.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성과 본성, 인간과 비인간, 윤리와 욕망 등의 이항대립을 넘나들며, 주인공 벨라 역을 맡은 엠마 스톤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영화를 이끄는데, 그는 배우로서 캐릭터를 연기한다기보다는 이 영화만을 위한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가 매혹적이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죄의식 없는 인물이 창조해 가는 세상을 만난 쾌감
★★★★
원작 소설의 문장을 벗어나 스크린을 유영하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상상력은 고딕과 스팀펑크를 결합한 총천연색 판타지로 펼쳐진다. 주인공 벨라의 여정은 인류의 진보와 닮아있다. 신체적 쾌락을 향한 욕구는 지적 갈증의 추구로, 타인을 보고 느끼는 공감과 슬픔은 사회 구조의 아이러니를 체득하게 한다. 기이한 ‘실험체'로 탄생했지만, 지나친 자기 판단과 수치심 그리고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자신만의 길을 탐구해 가는 벨라의 성장은 짜릿하다. 원할 때 언제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고, 거리낌 없이 먹고 마시고, 사회 통념에 비추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매일 밤 반추하며 괴로워하지 않는 피조물. 자유의지와 본능과 성장을 마음껏 지향하며 스크린 속을 무질서하게 휘젓는 엠마 스톤의 용맹한 모습은 그간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 배우들에게 좀처럼 기대되지 않았던 종류의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쾌감이 적지 않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이상하고 아름다운 벨라의 해부학
★★★☆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특기가 원작 소설을 제대로 만났다. 계급 사회, 엄숙주의, 남성 지배계급 등 빅토리아 시대를 꼼꼼하게 포격한 동명의 원작 소설은 세계를 비트는 것에 탁월한 감독의 손에서 기이한 동화로 재탄생했다. 런던과 리스본, 파리 등을 오가는 벨라(엠마 스톤)의 여정은 시각적으로 관객을 매혹하는 동시에 정서적으로 불편하게 만든다. 성인 여성의 육체에 어린 아이의 뇌를 가진 벨라가 겪는 폭발적인 성장은 인류사를 압축해놓으면서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해부하고 재조립하고자 한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뛰는 감독 위에 나는 배우
★★★★
몸은 성인인데 지능은 아직 아이인 여성이 세상과 직접 부딪혀 사회화 과정을 겪는 과정이 기괴하고, 아름답고, 불편한 동시에, 매혹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보편적인 교육 밖에서 자라는 벨라(엠마 스톤)가 자기 몸의 주체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성에 대한 사회적 금기와 규범을 도발하는 장면들은, 연출의 파격성만큼이나 배우의 용감한 도전과 비범한 야심을 돌아보게 한다. 뛰는 감독 위에 나는 배우가 있었달까.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기기묘묘한 세계 안에서 배우로서 또 한 번의 도약을 보여주는 엠마 스톤의 존재감이 엄청나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기묘한 진화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재해석한 동명 원작 소설을 발판 삼아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전복적 상상력을 끝 간데 없이 펼친다. 감독의 전작인 블랙 코미디 사극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9)는 몸풀기에 불과했다 싶을 정도다. 불편함을 적나라하게 파고드는 탐미주의 색채는 더욱 진해졌고, 표현 수위와 블랙 코미디의 강도도 한층 세졌다. 엠마 스톤의 자기초월적 연기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한층 막강해진 란티모스의 기괴한 세계에 매혹과 반감이 교차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독창성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패스트 라이브즈
감독 셀린 송
출연 그레타 리, 유태오, 존 마가로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생의 순간들을 구성하는 무수한 선택이 만든 ‘현재'
★★★
한 시절을 어떻게 애써서 붙잡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잘 놓아주는지 아는 것. 누군가에게 떠나가기만 하는 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머무르는 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를 성장과 인연의 본질로 파악해 낸 해석이 근사하다.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느껴지는 성숙함의 정체다. 이야기 자체는 언뜻 과거 지향적인 듯하지만, 성급하지 않게 쌓아가는 시간 안에서 기억과 관계와 생의 순간들을 구성하는 무수한 선택이 만든 ‘현재’를 짚는 시선이 좋다. 그래서인지 지나간 인연을 돌아보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의외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아서(존 마가로). 주인공 두 사람 사이 내밀하게 주고받는 감정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인데, 연기가 줄곧 섬세하다기에는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더러 있다. 언어의 문제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두고 온 삶’이 불쑥 찾아왔을 때
★★★☆
뉴욕에서 이뤄진 24년 만의 재회. 그 재회가 여자의 현재에 여진을 남길 수밖에 없는 이유. 남자가 뉴욕으로 가져온 게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모여 이뤄진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놓쳐버린 것들이 쌓여서 형성된 ‘나’이기도 하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비단 멜로드라마로만 보이지 않는 건, 바로 이것. ‘전생’의 의미를 윤회 사상 안에 가두지 않고, 현생의 어느 시점에 ‘두고 온 삶’으로 그려낸 확장성에서 나온다. 관객의 참여를 유도해 내는 수미상관 구도, 과거 현재 미래를 한 화면에 포갠 시선 등 곱씹을수록 풍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아름다운 관계를 지켜본다는 것은
★★★☆
셀린 송 감독의 보석 같은 데뷔작. 이 영화가 첫사랑, 재회, 인연을 다룬 여타 로맨스 멜로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명확하다. 온갖 낭만적인 장치로 아련한 추억을 자극하는 데 골몰하기보다 관계에 대한 탐구를 진지하게 그려나가는 데 방점을 찍는다. 경험으로 성숙한 자의 태도로 말이다. 촬영,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색다른 공감각, 감독과 주연배우를 둘러싼 관계와 인연, 그들의 경험이 작품을 풍성하게 읽게 만든다. 그레타 리, 유태오, 존 마가로의 연기는 끝내 눈물샘을 건드린다.
대결! 애니메이션
감독 요시노 코헤이
출연 요시오카 리호, 나카무라 토모야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토요일 오후 5시라는 황금 시간대에 붙는 두 애니메이션의 대결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사운드백 카나데의 돌>은 히토미(요시호카 리호)의 첫 연출작. 하지만 운 나쁘게 자신의 영웅인 인기 감독 오우지(나카무라 토모야)의 <운명전선 리델라이트>와 붙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신인 감독과, 자본에 맞서 자신의 세계관을 투영하려는 스타 감독. 두 사람의 시청률 대결이지만, 동시에 아티스트와 세상의 대결이기도 하다. 좀 더 박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는 의외로 정적인 면이 있다. 애니메이션 업계 내부의 디테일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니아들에겐 좋은 선물이 될 작품이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열정, 애니메이션 하는 마음
★★★
애니메이션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뒷이야기. TV 애니메이션 동시간대 경쟁자가 된 신인감독과 천재감독의 대결 구도로 긴장감을 유발하고,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과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의 면면을 속속들이 비춘다. 영화에 나오는 두 애니메이션은 실제 시리즈로 이어졌으면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 눈길을 끈다. 직장을 다룬 영화, 성장 영화로 보기에도 무리 없다.
비트
감독 김성수
출연 정우성, 고소영, 유오성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영원한 청춘 비가
★★★☆
“나에겐 꿈이 없었다. 열아홉 살이 되었지만 내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민(정우성)의 내레이션이 이끄는 김성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비트>는 2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청춘영화이자 액션영화이자 도시의 쓸쓸한 비가이다. IMF와 세기말이 뒤엉켜 있던 1990년대 말 한국. <비트>의 ‘액션’, 아니 ‘싸움’은 그 시대를 벗어나려는 청춘의 몸짓이었으며, 민이 양 팔을 벌리고 오토바이를 타는 ‘질주의 이미지’는 아이콘이 되었다. 극장에서 감각적으로 체험하시길.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시간으로 자신을 증명한 영화
★★★☆
개봉 당시 훌륭한 평가를 받았지만 잊힌 영화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흘러도 이야기되고 호출되는 영화가 있다. <비트>는 당연히 후자의 영화다. 시간으로 자신을 증명해 낸 영화. 게다가 청춘을 대표하는 영화로 옹립된 스페셜리스트. 낭만과 허세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대사와 고리타분한 관계성 등 약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필름을 빛으로 물들인 김형구의 카메라, 김성수의 감각적 시선, 불멸의 육신으로 봉인된 ‘정우성=민’의 젊음이 전하는 에너지는 지금 봐도 상당하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불완전한 청춘의 질주
★★★
김성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한국 청춘 영화의 손꼽히는 대표작으로 1990년대 청춘의 방황과 일탈, 사랑과 우정을 과감하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연출했다. ‘청춘스타’ 정우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장면을 비롯해 영화에 담긴 패션, 음악, 문화는 암울한 시대를 건너던 동시대 청춘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불안하고 미숙하고 뜨거운 청춘의 정서를 이토록 가득 머금은 영화를 만나기도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