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보면 찰나 같은 순간 10년의 세월. 어떤 사람은 이제 그만하라고, 어떤 이는 가슴에 묻으라고.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날, 해수부와 해경처럼 최선을 다했는데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그런 최선이 아니고, 적어도 엄마 아빠는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을 다했노라. 아이들 만나는 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10년이 다 된 못난 아빠가 이 자리에서 바라고 또 바랍니다.”
<바람의 세월> 공동연출 문종택 감독,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문지성 양의 아버지.
다시 4월이다. 2014년 4월 16일.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들이 겪은 그날의 진실을 알아야 했기에, 유가족과 시민은 한마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작은 희망도 잠시, 아직도 길 위에 부모들이 남아 있다. 10년이 흐른 2024년 대한민국에서 안전한 사회는 요원한 것일까?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의 10년의 세월과 간절한 바람을 담은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세월>(공동연출 문종택‧김환태, 총괄PD 김일란)가 4월 3일 관객을 만난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평범했던 한 아버지는 카메라를 들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세월호 유가족 방송 416TV를 운영하는 단원고 2학년 1반 17번 지성이 아빠 문종택 감독, 다큐멘터리스트 김환태 감독, ‘연분홍치마’에서 활동 중인 김일란 총괄PD가 뭉쳤다.
영화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3654일 동안의 시간을 담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여전히’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말은 아직 유가족에게 납득할 만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는 단지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또 다른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그때마다 세월호 유가족은 이들과 연대했다. ‘안전한 사회’로의 이행을 요구하면서.
고 허재강 학생의 어머니 양옥자 씨는 “이태원 참사 같은 경우는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던 일인데도 그렇게 됐잖아요.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기에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고 국가가 나서서 사고의 모든 진상을 밝혀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참사가 계속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한다.
1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고, 이제는 아이들을 보내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이들에게 왜 세월호를 아직 이야기해야 하는지 역설하는 발언이다. 이는 영화에서 비단 이태원 참사 유가족, 오송 지하차도 유가족뿐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5‧18 유가족과 연대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어쩌면 세월호 유가족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팔아먹는다’는 일각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10년을 버텨왔는지도 모르겠다. 문종택, 김환태 감독과 김일란 총괄PD를 줌으로 만났다.

영화를 힘들게 봤습니다. 우선 개봉을 앞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문종택 감독 봄에 꽃들이 만발하는 봄바람. 해수욕장에서 시원하게 불어 재끼는 여름바람,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가을바람,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겨울바람….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세월호 참사를 겪은 유가족 부모들의 10년을 기록을 통해 다큐멘터리로 만들게 됐네요. 아픔은 있지만. <바람의 세월>을 보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되는 지점이 생긴다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요. 또 하나, 젊은 세대들은 세월호를 단어로만 아는데, 이 영화가 그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해 더 찾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환태 감독 3월 7일쯤 최종본을 완성했어요. 그 뒤로도 영문 자막 등 실무적인 작업들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사회도 계속하고 있고요. 개봉을 앞두고 더 많은 분들을 만나야 하니 떨리기도 하지만,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김일란 총괄PD 지금 아버지(문종택 감독)가 줌 인터뷰하려 앉아 계신 곳에서 수없는 밤을 지새우며 영화 작업을 하셨어요. 저기서 홀로 그토록 외롭게 작업하셨던 것을 사람들이 이제야 보게 됐구나, 이 영화를 계기로 앞으로 아버지가 힘을 좀 받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축하받을 일은 아닌데, 축하받을 만한 일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기획된 영화입니다. 어떻게 이 영화가 탄생하게 됐는지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김일란 총괄PD <바람의 세월>이라는 제목처럼 ‘10년의 세월, 간절한 바람’이라는 카피가 붙어있는 이 영화는 거의 모든 기획을 지성이 아버지 문종택 감독님이 하셨다고 과언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어느 날 “가족들 스스로 10년의 세월을 정리하고, 그것의 의미를 시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고, 가족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우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다양한 영상물이 있었지만, 정작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가 없지 않았냐고 하시면요. 연분홍치마는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미디어활동을 계속해왔고, 김환태 감독님도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계속 미디어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가족뿐 아니라 함께 연대했던 사람들이 모여 이 영화를 기획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제목이 참 와닿습니다. <바람의 세월>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문종택 감독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모든 참사가 마찬가지죠. 이런 일들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고자 하는 그 간절한 바람이 본질적인 바람인데요. 또 바람의 소리 같은 건 세월을 의미하는 양면성도 있고요. 본질적으로는 참사에 대한 피해자들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받아들여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환태 감독 셋이 같이 제목을 논의하면서 ‘세월’은 먼저 정했어요. 세월 앞에 어떤 단어가 들어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아버지가 말한 ‘바람’에 의미가 통하기도 했고, 10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해서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무려 10년의 기록입니다. 정말 참사 1일차 기록부터 영화에 나와요. 많은 사건을 기록한 영상들이 있었을 텐데, 영화 오프닝 시퀀스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순간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환태 감독 아버지가 대답할 부분인데, 처음부터 아버지가 탄핵 장면을 오프닝으로 하자고 하셨거든요.
문종택 감독 세월호 참사 이후에 음, 이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유가족들이 ‘공인 아닌 공인’이 됐습니다. 서명을 받으러 전국을 다녔는데, 부모들이 울고 있으면, ‘왜 우느냐’, 웃고 있으면 ‘자식 잃은 부모가 왜 웃냐’, 가만히 있으면 또 ‘왜 가만히 있느냐’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돌아보면 찰나 같지만 그런 시절이 꽤 길었습니다.
탄핵 장면을 오프닝에 넣은 이유는, 10년 중에서 그날이 부모들이 그냥 나오는 웃음을 지었던 유일한 날이어서입니다. 영화에 다 담기진 않았지만, 저도 그날 허공에 대고 헛웃음 같은 그냥 나오는 웃음을 지었거든요. 일반 시민이 웃는 것처럼 부모들이 웃는 모습을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어요. 특별법을 요구했지만, 대한민국의 전혀 특별하지 않은 엄마, 아빠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 웃음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어요. 인간의 근본적인 웃음을 본 날이었죠. 그 이후로 안타깝게도 그런 웃음은 없었습니다.
10년의 세월을 기록한 영상이 50테라였다고요. 영상을 선별하기도, 편집하기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김환태 감독 50테라 중에 아버지가 선별해 준 분량이 7테라에요. 다른 미디어 활동가에게 4테라를 받았고요. 이걸 기반으로 흐름을 잡았습니다. 김일란 총괄PD도 주목한 부분인데, 영화에서 유가족이 참사 이후 제도 개선을 위해 싸워온 과정이 잘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건 중심으로 연대기 순으로 구성했습니다. 사실 더 어려웠던 부분은 아버지가 인터뷰를 안 하시겠다고 하셨어요. 예전 푸티지 영상들을 보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우셨겠어요. 그래도 10년을 돌아보려면 하셔야 한다고 설득했죠.
문종택 감독 지금 기자님도 50테라가 많다고 하셨는데, 제가 하루 24시간 카메라를 돌리기도 했어요. 두세 시간 쪽잠을 자면서 촬영하고 편집하며 보낸 날들이 수도 없습니다. <바람의 세월> 영화 러닝타임이 104분인데, 거기에 10년을 녹여야 했어요. 시간적으로 계산하면 10년 중에 영화에 들어간 용량은 0.0001%나 될까요? 이걸 그냥 50테라로 축약해 이야기하면 여러모로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김환태 감독 하나 보태면, 처음부터 아버지가 세월호 참사 장면은 영화에 넣지 말자고 했어요. 저도 김일란 총괄PD도 동의했습니다. <바람의 세월>에서 너무 피해자를 부각하는 장면은 넣고 싶지 않았거든요. 유가족이 좌절을 겪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는 모습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화에 부모들이 우는 장면은 거의 없어요. 편집하면서도 최대한 덜어내려고 했고요.

영화 작업 기간은 얼마나 됐나요?
김환태 감독 2022년 10월 경에 처음 셋이 만났어요. 경복궁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대화를 많이 나눴고,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김일란 총괄PD 아버지가 말씀하신 ‘우리 영화’라는 말에서 ‘우리’는 누굴까,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영화를 만드는가를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본질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제작 기간은 10년인 것 같네요.
같은 뜻으로 뭉쳤지만, 작업하면서 부딪혔던 지점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문종택 감독 두 가지죠. 첫째로 저는 뭘 준비할 때는 치밀하게 고민하고, 결정되면 밀어붙이는 성격이에요. 김환태 감독과 김일란 총괄PD가 물론 전문가지만, ‘우리 영화’를 이해하고 소화해낼까 하는 고민이 컸어요. 둘째로 저는 길거리 현장에 있는 부모들의 생생한 모습을 ‘생다큐’, ‘날다큐’처럼 담고 싶었는데, 김환태 감독은 아니었어요.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구성과 맥락을 생각했던 거죠. 결국 김환태 감독이 반 발 빼고, 제가 반 발 빼면서 유가족 인터뷰도 다시 촬영했습니다. 전문가는 전문가더라고요. 어아름 작가, 김환태 감독, 김일란 총괄PD 모두에게 감사합니다.(웃음)
김환태 감독 지금 아버지가 말씀하신 건 인터뷰 부분이에요. 현장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인터뷰할 수도 있지만, 가족이 함께 인터뷰하는 장면을 넣고 싶었거든요. 물론 인공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또 누구만 주목받고 누구는 소외되지 않게 하려 노력했습니다. 준비는 힘들었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종택 감독님은 내레이션까지 하셔서 더 힘드셨을 거 같습니다. 유가족이시면서 이 영화의 흐름을 끌고 가는 목소리 역할을 하셔야 했으니까요.
문종택 감독 거 김환태 감독 혼 좀 내주세요.(웃음)
김환태 감독 처음에는 아버지가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눌러 읽으시더라고요. 아버지 마음이야 알지만, 아버지 감정까지 화면에 들어가니 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담담한 톤으로 해달라고 계속 말씀드렸죠. 물론 중간중간에 감정이 끌어 오르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충분히 공감 갈 수 있는 장면들이어서 괜찮았습니다. 유튜브 ‘416tv’ 채널 운영하시면서 방송도 익숙하시니, 너무 훌륭하신 내레이터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문종택 감독 엔딩 크레딧에 오타가 있는 거 같아요. ‘공동연출 김환태’가 아니라 ‘담담하게 김환태’라고 썼어야 했는데 말이죠.(웃음)

세월호 참사 이후 제작된 여러 영화가 있죠.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당신의 사월>과 극영화 <생일> 등이요. <바람의 세월>은 어떤 차별점을 가진 영화입니까?
김일란 총괄PD 무엇보다 아버지가 들고 서 있는 카메라의 위치와 방향이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어요. 한 손에는 카메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구호를 외쳤다고요. 흔들리는 카메라로 현장을 누볐던 것이 너무 다르죠. 언론에서 유가족이 우는 모습을 찍을 때, 아버지는 경찰들이 가족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찍었죠. 그러니까 아버지 카메라는 가족을 지키는 카메라였던 겁니다. 그렇기에 카메라는 언제나 흔들렸고, 격앙돼 있고 목소리가 들어갔죠. 영화적 관점에서 보면 김환태 감독이 힘들었을 거예요. 편집을 해야 하는데, 감정적으로 고정돼 있어야 할 카메라가 계속 움직이니까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VIP시사회 때 게스트 한 분이 영화 상영 중간에 나가신 거예요. 나중에 연락해서 물어봤죠. 왜 나갔느냐고요. 대답이 “영화는 너무 계속해서 보고 싶은데 뱃멀미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라고 하더라고요. <바람의 세월>을 보면서 관객이 여전히 흔들리는 배 안에 있는 것 같고, 세월호에서 아직 아이들이 내리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잘 파악한 거 같더라고요. 흔들리는 카메라의 의미죠.
문종택 감독 허 참, 성공이란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는데, 그분은 제 마음속으로 쏙 들어오셨네요. 성공했습니다.
김환태 감독 편집 과정에서 아버지가 영화 전체 화면을 다 흔들리게 하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적지 않게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영화 보는 관객 입장도 좀 생각해보시라고 했어요. 김일란 총괄PD가 말한 것처럼 아버지의 카메라 위치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기본적으로 세월호 유가족, 당사자니까요. 관계 자체도 다르고요. 거기서 오는 힘이 커요. 내레이션의 목소리도 큰 울림을 더했고요.
저는 영화 보는 내내 힘들었는데, 유가족들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합니다.
문종택 감독 안산에서 유가족 대상 시사회를 열었을 때가 가장 두려웠고 겁도 났던 순간이에요. 영화를 본 유가족들이 형식적으로 “지성이 아빠, 수고했네”라는 인사를 하더라고요. 빨리 솔직한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 다음날 일부러 방송실에서 나와 화장실도 왔다갔다 하면서 반응들을 살폈어요. 다들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는 누구 아빠 젊었더라’, ‘야, 너 양반 됐더라’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좀 자신감이 생겼어요. 적어도 이 영화가 부모님들과 아이들을 연결하는 데 누가 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그날 밤 하늘을 쳐다보면서 좀 많이 위로가 됐습니다. 엄마, 아빠들이 ‘애썼다’, ‘잘 만들었다’ 하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원동력이라는 단어가 이럴 때 적합한지 모르겠습니다만, 10년을 기록할 수 있던 힘은 무엇입니까?
문종택 감독 세상 모든 일에는 양날의 칼이 숨어있죠. 이런 질문도 식상하고 원론적인 관심에서 나온 것일 텐데, 원론적인 답을 드리자면, 유가족이 함께 겪어 온 과정들을 남기기 위해서죠. 허심탄회하게 개인적으로 말씀드려 볼까요? 저는 세월호 유가족 유튜브 채널 416tv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가족들의 눈과 입이 돼야 하고, 행여나 욕먹을 부분은 저 개인적인 차원에서 10년간 연속돼 왔죠.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유가족 부모가 잠을 자도 카메라는 돌아가는데, 그렇게 일상부터 모든 현장을 기록하는데 416tv를 언론에서도 받아주지 않아요. 어찌 됐든 유가족 방송이고, 진실규명을 위해 나가는 길을 알리려 때로는 버티고 때로는 악에 받쳐 싸우는 데 앞장서기도 했어요. 진상규명을 향해 우리가 가야 할 지점에 대해서는 선도적인 입장에서 팩트를 다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언론도 “그럼 진실규명은 어떻게 할 겁니까?”라고 묻지 않아요. 안타깝습니다. 유가족 엄마, 아빠들이 다 진실규명을 향해 간다고 하는데 말이죠.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냐고. 이젠 보내줄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할 시민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시고 싶으신가요?
문종택 감독 유가족 부모들이 현장에서 또 언론을 통해서 들었던 모욕, 폭력은 언론에 나온 거의 천분의 일도 안 됩니다. 무슨 말을 해도 좋은데, <바람의 세월>을 보고 하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어떤 말이든 다 듣고 소화하겠다고요. 세월호가 국회로 가면서 정치적인 사안이 됐고, 언론에서도 그렇게 다뤘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소통이 아예 안 됐는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더 절망했죠. 유가족은 철저히 배제됐으니까요. 우리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하면서 세월호 이야기 그만하라는 분들은, 제발 한 번만 영화를 보고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환태 감독 댓글을 잘 안 보는 편인데, 영화 개봉을 앞두고 댓글들이 달리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지겹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같은 말들요. 그런데 아버지 말씀처럼 세월호는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아버지와 가족들이 지키고 싶던 존재를 지키지 못한 사회와 국가의 문제죠. 좋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을 고민하는 부분을 유가족의 발걸음 통해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김일란 총괄PD 아버지에게는 죄송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오히려 더 정치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좁은 의미로 정치는 내 이해관계를 사회에 반영하고, 내가 조금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일 텐데, 그러면 <바람의 세월>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영화가 아닐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국민이 알게 됐어요. 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내 아이를 지키는 방법,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방법,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을 찾는 정치적인 영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문종택 감독 질문이 잊히지 않아서 답변을 좀 더 하겠습니다. 영화를 만들자고 할 때도 고민과 두려움의 시간이 있었습니다만, 이제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시점에서 또 두려움이 있습니다. 아마 이 영화가 개봉하면 나올 말들이죠. “세월호 유가족이 하다 하다 이제 영화까지 만드네?”라는 말입니다. 가장 두렵고, 뭐 또 앞으로 3개월만 지나면 다 들을 소리긴 합니다. 슬픈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다 들어봤다고 했잖아요. 그저 제가 두려운 건, 저로 인해 세 명이 함께 영화를 만들었잖아요. 게다가 저는 당사자이기도 한데, 상업적인 면에 노출이 될까봐 그런 것들이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감당은 하겠죠. 이 영화로 진상규명에 가는 동력이 되고, 젊은이들이 안전 사회를 위한 지침을 요구하는 게 좋은데, 거꾸로 될 때 그나마 남았던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동력까지 묻혀버린다면, 침몰해 버린다면 어떡할까…. 두 분과 달리 피해자인 저에겐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2024년 4월이 10주기입니다. 지금도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김환태 감독 영화에도 나오지만, 5.18 유가족분들이 세월호 참사 가족을 위로합니다. 세월호 참사 가족은 이태원 참사 가족을 위로하죠.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하는 게 반복되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제도가 바뀌었다면 이런 게 반복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국가가 피해자들에 대해서 제대로 된 시선으로 따뜻하게 위로하고 안아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로 보면 세월호 가족들이 걸어온 걸음들은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끊임없이 걸어온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영화를 통해 저희는 어떤 미래를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반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함께 광장에서 외쳤던 기억들, 바람들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환기하고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엔딩컷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배에서 찍은 장면인데 태극기가 나와요. 그런데 절반만 나옵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찍으신 건가요?
문종택 감독 그걸 알아보셨다니 놀라운데요! 일부러 그렇게 찍었어요. 스크린에서는 크게 보여서 잘 모를 수도 있죠. 그런데 사실 저는 그날 이후부터 태극기 찍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이해가 가실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다운 나라 같지 않아서요. 영화 마지막 컷에서 태극기를 반만 찍어낸 것도 정말 많이 찍은 거라니까요.(웃음)

언제쯤 유가족이 편히 웃을 수 있을까요? 무엇이 실현됐을 때일까요?
문종택 감독 오늘 받았던 질문 중에서는 가장 가슴에 와닿는 질문이네요. 그런데 대답은 엉터리일 수도 있겠습니다. 먼 안목으로 본다면 세월호 엄마 아빠들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이 표현이 좀 그런데, 그냥 진상규명을 하자고 외치는 지금 이대로 흘러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무슨 말이냐고요? 영화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죠. 사건이 터지고 1~2년 만에 모든 것들이 다 밝혀졌으면 관계가 없는데, 어떤 형태로든 이렇게 긴 시간을 지나서 다 밝혀진다면? 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진실규명, 그러니까 ‘왜?’라는 한 글자를 위해 달려온 세월이 어떤 결론에 다다랐을 때, 그 결론에 엄마 아빠들에게 미칠 파장이랄까, 행동, 마음 정리가 될까요?
각자가 생각하는 진실이라는 것에 대한 정리가 나름대로 된 상황에서 한순간에 진실이라고 발표하면, 그걸 과연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또 다른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가슴아픈 답변이네요. 마지막으로 영화를 볼 관객에게 한 말씀 또는 미처 질문에 없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주세요.
김환태 감독 얼마 전에 세월호 선장이 침몰 2시간 전에 퇴선 명령을 논의했다는 기무사 문건 발견 기사가 나왔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그간, 두 정부를 지나며 세월호 진상 규명 노력이 많았죠. 그런데 아직도 이런 자료들이 나온다는 건, 분명 규명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걸 방증하는 것 같더라고요. <바람의 세월>을 함께 보면서 서로 위로하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로 나갈지 대화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합니다.
김일란 총괄PD <바람의 세월>은 극장을 광장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 같아요. 한 번이라도 촛불집회나 광장에 나왔던 사람이라면, 아버지 카메라 어딘가에 자신의 모습이 찍혔을 겁니다. 극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웃음)
문종택 감독 두 분이 영화 이야기를 잘 해주셔서, 저는 진짜 <바람의 세월>이 만들어지기까지 도움주신 많은 분들이 있는데, 그중에 저는 일인미디어 활동가 ‘미디어몽구’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바람의 세월> 만들기로 결심하고 보니, 초반 영상이 좀 부족하더라고요. 현장에서 워낙 오랫동안 봤던 분이라 미디어몽구 김정화 선생님께 이런 영상 좀 있느냐고 물었죠. 아, 그런데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버지가 만드시는데 제가 그동안 세월호 찍은 영상 다 드릴게요”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간 찍은 영상 4테라를 통으로 받았어요. 이 자리를 빌려 미디어몽구님께 특별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