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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 멈춰 버린 세월을 흘러가는 세월 속에 추모하는 방법: 영화

씨네플레이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부쳐, 흘러가는 세월 속, 멈춰버린 세월을 기억하는 영화들이 공개되고 있다. 옴니버스 다큐 <세 가지 안부>는 아이의 흔적을 부여잡고 사는 두 어머니(<흔적>),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 현장 취재 기자들의 이야기(<그레이존>), 생존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은 단편(<드라이브 97>) 등 총 3편을 엮어, 지역 공동체 상영회를 진행 중이며, 10년 전 세상을 떠난 딸과 함께 사라진 기억을 되찾으러 나선 가족의 실화 토대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은 다음 달 전주국제영화제 초청 상영과 함께 극장 개봉할 예정이다. 작년 개봉한 <너와 나>도 몇몇 극장에서 특별 상영 중이다.


3월과 4월, 극장에선 세월호 관련 영화 두 편이 개봉됐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과 <바람의 노래>가 그것이다.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과 혐오에 맞선 유가족을 비추며 참사 후 10년,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날 이후, 당신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나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세월: 라이프 고즈 온〉


다큐멘터리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의 포스터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과 함께 낯선 날짜와 숫자들을 나열한다. 어느새 잊힌 또 다른 재난들. 1999년 씨랜드 수련원 화재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가 일어난 날과 사망자 수를 눌러쓴 흔적이다. 세월호 참사로 딸 예은을 잃은 '예은 아빠' 유경근이 팟캐스트 녹음 스튜디오에 앉았다. 세월호 참사 전후로 존재했던 수많은 사회적 참사, 그 유족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희생자 고(故) 한상임 님 어머니 황명애, 99년 씨랜드 수련원 화재 참사 고(故) 고가현·나현 님 아버지 고석, 87년 민주 항쟁 과정에서 국가폭력으로 사망한 고(故) 이한열 님 어머니 고(故) 배은심. 유족들은 저마다의 일상 속에서 '이후의 삶'을 들려주고, 이들의 공감과 위로에 유경근은 자식 없는 세월을 사는 법을 조금씩 알아간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이들이 공유한 게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보낸 아픔뿐만은 아니다. 일어난 시간도 공간도 제각각인 재난들이었지만, 서로가 쏟아내던 수난의 기록은, 관통한 세월은 지독히도 닮아있었다. 대형 여객선과 레저시설 그리고 대중교통시설에 믿기 힘든 규모의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구조 과정에서 정부의 대응은 무능하기만 했다. 유해 수습은 졸속으로 처리됐고, 진상 규명에 뒷전인 정부와 정치권의 갈라치기 책동으로 사고 발생 이후 유족들은 혐오와 폭력에 노출됐다. 공유된 기억에 위로를 받다가도 재난에 무지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서로에게 미안했다. 씨랜드 수련원 화재 참사로 쌍둥이 딸을 잃은 고석 씨는 세월호 유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낼 때 동참하지 못한 데 부채감을 갖고, 유경근 씨는 씨랜드 화재 참사에 무심했던 과거에 죄책감을 느낀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유가족들이 감내한 사회적 시선과 혐오의 말들도 비슷했다. 모두들 '잊지 않겠다'라고 말하지만 '집값 떨어지는' 대형 참사 관련 현장만큼은 신속히 잊으려 한다. 대부분의 사망자가 관내 유치원생이었던 씨랜드 참사의 추모비를 서울 송파구에 세우려 하자 힐난이 날아들었고, 안산 화랑유원지에 단원고 학생 추모 공원을 조성하려 하자 '세월호 납골당'이라는 혐오가 확성기를 타고 퍼졌다.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 행사에 '장사 안 된다'라며 상인들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체념하거나 회한에 젖지 않는다. 서로 다른 참사의 유가족들은 연결되어 기억하며 각자가 할 수 있는 한 걸음을 내딛는다. '예은 아빠' 유경근 씨는 '사회적 재난'을 겪은 이들을 팟캐스트로 초대해 재난 후에도 삶은 계속됨을 알리고, 두 딸을 씨랜드 화재로 잃은 고석 씨는 소방 방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대구 지하철 화재로 딸 상임 씨를 잃은 황명애 씨는 유족회 사무국장이 되어 20주기를 앞두고 추모 행사를 준비한다. "비록 우리는 가족을 잃었지만, 다른 가족을 구할 시간은 있다"라는 마음은 삶을 추동한다. 트라우마의 고통은 혼자만의 아픔으로 분리되지 않고, 함께하는 아픔으로 연결될 때 조금씩 아물어간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아버지는 카메라를 들었다"
〈바람의 세월〉

 

〈바람의 세월〉
〈바람의 세월〉

 

빌딩이 숲을 이룬, 이렇게나 발전한 대한민국에서 대형 선박이 바다에 침몰할 리가. 처음 사고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자식이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오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곧 언론에서 '전원 구조'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러면 그렇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설마. 하지만 '실종자 가족'이 '유가족'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고, 울부짖던 얼굴은 곧 결연해졌다. 구조에는 한없이 무능하다가도 책임 회피와 여론 조작에는 놀랄 만큼 유능했던 국가. 무책임은 조직적이었고 책임 방기는 집단적이었던 위정자들. 위로 대신 탄압하고 지원 대신 감시한 정부 앞에서 그저 누구누구의 엄마, 아빠로 남을 수 없었다.

어떤 이는 법 공부를 하고 난생처음 자신의 이름 앞에 '집행위원장'이니 하는 직위를 붙이며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사고 해역 인근 섬 어민의 닻 줄에 걸려 올라온 딸을 가슴에 묻은 문종택 씨는 기록하는 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참사가 일어난 해 8월부터 생업을 팽개치고 카메라를 들었다. 팽목항, 광화문, 국회 등 세월호 가족이 가는 곳마다 카메라로 기록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바람의 세월〉 문종택 감독
〈바람의 세월〉 문종택 감독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직접 연출에 참여한 첫 작품이다. 유튜브 '416TV' 채널 운영자이자 '지성 아빠'로도 알려진 문종택 감독이 지난 10년간 촬영한 5천여 개의 영상을 미디어 활동가 김환태 감독과 함께 104분으로 압축했다. 용산 참사 이면을 다룬 다큐 <두 개의 문>(2012), <공동정범>(2018)을 만든 김일란 프로듀서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고, 미디어몽구 등 활동가들은 세월호 선박 전체 샷 등 전문적인 장면들을 제공했다.

참사 초기부터 촬영한 영상을 돌아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문종택 감독은 고민했지만, 잊혀가는 세월호 참사의 경위와 실상을 젊은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제작에 참여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10년의 발자취를 담은 영화는 세월호 참사 현장부터 탄핵 정국의 희망, 그 이후의 좌절, '폭식 투쟁'이라는 야만적 폭거 등 시대적 풍경을 차례로 담는다.
 

〈바람의 세월〉 문종택 감독
〈바람의 세월〉 문종택 감독


다큐 속 내레이션을 맡은 문 감독이 담담히 말한다. "돌아보면 찰나 같은 순간 10년의 세월. 어떤 사람은 이제 그만하라고, 어떤 이는 가슴에 묻으라고.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날, 적어도 엄마 아빠는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을 다했노라. 아이들 만나는 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10년이 다 된 못난 아빠가 이 자리에서 바라고 또 바랍니다”. 10년이 흘렀는데도 세월호 참사는 10.29 이태원 참사로 반복되고 있다. 삼보일배를 하고,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10년을 카메라를 든 뒤에도 유족들은 자신들이 '끝장을 보지 못'했다고, 아직 열심을 다하지 않았노라고 평가한다. "어느 지점에서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라 성찰하며 나아가기 위해 애쓴다.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라 통찰한다. 문종택 감독과 세월호 유족들은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내밀한 이야기를 기꺼이 내보이며 비극적 사건의 진실을 기억하고자 한다. 문 감독이 유튜브에 첫 영상을 올린 게 벌써 10년이 돼간다. 참사의 진상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기억 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