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인터뷰

[인터뷰] “그때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준 어른이 있었다면” 〈그 여름날의 거짓말〉손현록 감독

씨네플레이
〈그 여름날의 거짓말〉포스터.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포스터.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냥 열일곱 청소년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긴 줄 알았는데, 얼얼하다.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한없는 분노가 솟구쳐오르기까지 한다. 그간 한국 영화에서 본 적 없는 10대 여고생의 사랑과 욕망을 그린, 8월 28일 개봉한 <그 여름날의 거짓말>(감독 손현록) 이야기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다영(박서윤)은 만난 지 28일 만에 남자친구 병훈(최민재)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다른 여자가 생겼단다. 겉으론 무덤덤한 듯 알겠다며 자리를 뜨지만, 다영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과외 선생님 집으로 찾아가고, 학원을 찾아가 새 여친의 머리채를 잡아 뜯는다. 다영은 왜 이 사랑을 이렇게나 지키고 싶은 걸까? 다영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무엇일까? ‘여름 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써낸 방학 숙제에 쓰인 다영의 거짓말들은, 한 열일곱 소녀의 아픈 첫사랑의 흔적이었을까, 간절한 도움을 바라는 소리 없는 절규였을까?

원래부터 청소년에 관심이 많았던 손현록 감독은 단편 전작들에서도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이번 장편 데뷔작 <그 여름날의 거짓말>에서는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 아이들이, 현실의 무게감을 가진 사랑의 이면을 발견하면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하는 막막함, 두려움, 슬픔, 분노, 노여움 같은 감정들을 느린 호흡 안에서 폭풍우처럼 스크린에 그려냈다.

영화는 여느 하이틴 로맨스처럼 마냥 예쁜 사랑을 그리기보다 사랑의 어두운 뒷면을 경험하는 아이들의 솔직한 감정과 이에 따르는 갈등, 책임에 현실적으로 마주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그 안에서 아이들의 당돌함, 미숙함, 유치함이 드러나지만 때로는 어른들보다 더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이 성인 관객을 당혹스럽게 할 것이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다는,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면 이 아이들이 최악의 상황에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한다는 <그 여름날의 거짓말>의 손현록 감독을 무더위가 마지막 절정을 지나는 여름의 마지막 날 만났다.

〈그 여름날의 거짓말〉로 장편 데뷔한 손현록 감독.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로 장편 데뷔한 손현록 감독.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가 개봉했는데 주변 반응들은 어떤가요?

관객 반응이 갈리더라고요. ‘다영이가 나쁜 사람’이라는 반응과 ‘과외 선생님(유의태)이 나쁜 사람’으로요. 아이들이 나빴다라는 관객도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나빴다는 관객도 있는데, 개봉하고 보니 감독으로서는 다 감사하죠.(웃음)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피프레시상)을 받으셨더라고요. 예상하셨나요?

전혀 예상을 못 했죠. 사실 초청받은 것 자체도 놀라웠어요. 완성이 좀 덜 된 버전으로 급하게 제출했거든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버전과 최종 개봉 버전에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그때는 지금보다 길었어요. 두 시간 반이 넘었으니까요.(웃음) 이번에 최종 상영 버전을 만들 때는 개봉일 전까지 편집에 매달렸어요. 몇 장면을 덜어냈는데, 좀 호흡이 줄어든 거 같아요. 예를 들면, 다영과 병훈(최민재)이 물속에서 껴안고 있을 때 키스씬이 빠졌어요. 한 15~20초 정도 더 나와야 키스씬까지 가는 건데, 그냥 껴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둘의 사랑이 느껴져서요. 후반부에 담임 선생님 부분에서도 대사를 좀 덜어냈죠. 주변에서 두 시간 안으로 러닝타임을 줄이라고 조언해주긴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크게 어떤 맥락이 빠진 건 없는데, 좀 더 촘촘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안 그래도 질문드리려고 했는데요. 어느 한두 장면을 강조해서 길게 찍은 게 아니라, 영화가 전체적으로 호흡이 길어요. 감독님 스타일인가 싶기도 하면서도, 극장에서 상영하려면 관객과의 접점도 찾아야 했을 텐데 이유가 있었을까요?

맞아요.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냈던 버전도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데, 일반인이 아니라 영화하는 지인들조차도 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관객 시선을 맞추고자 해서 줄이려 노력했습니다. 사실 저도 두 시간 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러 가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 측면도 고려하긴 했습니다.

영화의 출발점은 어디인가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던 건, 스물한 살 때였어요. 두 학생이 펜션에서 벌이는 일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였죠. 교수님께 보여드렸는데, 엎드리라고 하셔서.(웃음) 친해서 하시는 말씀이었고요.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거친 시나리오였습니다. 그리고 덮어뒀다가, 10년이 지나고 영화가 나왔네요. 그 짤막했던 아이디어가요.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장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홍익대를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 와서 한예종에 입학했어요. 저희는 졸업 작품으로 단편을 제출해야 하는데요. 그때 왠지 학교를 벗어나면 원하는 영화를 할 기회가 줄어들 거 같아서, 장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2022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썼어요.

졸업작품을 내긴 해야 할 텐데, 그건 어떻게 해결하신 건가요?

아직 졸업을, 못했습니다.(웃음) 교수님이 시놉시스, 트리트먼트만 보셨는데 재미있다고 지지해주셨어요. <그 여름날의 거짓말>을 짧게 편집해서 졸업작품으로 내도 되긴 하는데, 그러긴 싫었어요.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영화가 진짜 졸업작품인데요, 오는 12월에 작업에 들어가요. 다행히 고급워크숍 작품에 선정돼서 장편으로 찍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학교 장비도 쓸 수 있고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다시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 볼게요. <그 여름날의 거짓말>을 쓰고 연출하게 된 계기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어른이 된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책임감을 오히려 그 시절의 청소년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청소년은 어른이 되면서 사랑 이면의 감정을 새롭게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요.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감정들이죠. 이때 느껴지는 혼란을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지려는 청소년의 숭고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어른보다 미숙하지만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지려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어른이 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작은 졸업작품이었지만, 졸업 전 꼭 만들고 싶은 장편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적은 스태프와 예산이지만 진심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영화 구성이 시간대별로 이뤄지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오갑니다. 심지어 인물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죠. 제목에서부터 그 의도가 느껴지긴 하는데요, 일부러 이런 구성을 택하신 거 같은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나리오 초고는 시간순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구조였어요. 지금 영화에서의 반성문이나 여름방학 숙제도 없었죠. 쓰고 보니 결말을 어떻게 지을지가 고민되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영의 힘든 여름방학을 감독이라는 이유로 권리도 없는 제가 마음대로 이야기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컸습니다. 다영이의 비밀을 전시한다는 느낌에 죄책감까지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다영이가 이렇게 여름방학을 보냈다는 걸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거짓말이긴 하지만, 다영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영이 입으로 하고, 또 번복하면서 다영이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반성문이 마지막에 생겨났군요. 그러면 담임선생님 캐릭터도 원작에는 없었겠네요.

그런 구조가 짜이면서 ‘추궁하는’ 담임선생님 캐릭터도 들어오게 된 거죠. 어릴 때 저도 반성문 많이 썼거든요. 똑바로 썼는데도 항상 다시 쓰라고 하신 기억들이 많아서.(웃음) 세상은 잘잘못을 따지고 처벌하는 어른들의 세계입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다영이가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번복해도 되고, 끝까지 숨기며 거짓말로 꾸며낼 수 있게 됐거든요. 이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면서 어른의 시선에서 관객도 함께 동참하게 한 거죠. 이 아이들을 세상에 꺼내놓은 여름에 대한 우리의 시선 자체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초고 때 제목이랑 현재 제목도 달랐겠습니다.

초고 때는 <사소한 연애>라고 되게 유치하게 지었죠.(웃음) 고민하다가 편집이 거의 끝날 즈음에 ‘거짓말’이라는 키워드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담임선생님은 다영이가 보낸 여름방학 이야기와는 전혀 딴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영이와 병훈이도 다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목을 너무 잘 지은 거 같아요.

반대도 많았어요. 제목이 은근히 길기도 하다고요.(웃음)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끌고 가는 다영 캐릭터는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멋진 아이라 생각했어요. 저를 돌아보면 행복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것 같더라고요. 소위 말하는 ‘깡다구’도 없었고요. 그런 측면에서 다영은 조금은 미숙하지만, 주도적으로 행동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하는, 그런 멋있는 여성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여고생 주연 영화에서 처량한 모습만 나오는 게 싫었거든요. 뭔가 장군 같은 멋진 사람이랄까요?(웃음)

병훈 캐릭터는 정말 순수하기 그지없습니다.(웃음)

맞아요.(웃음) 어쩌면 제게 청소년에 대한 동경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순수함이나 용감함에 대한? 제 생각이긴 하지만 어른들은 순수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한 거 같아서요. 사실 병훈 캐릭터에 미안한 것이, 어떤 때는 되게 지질하게 나오고, 또 비겁한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거든요. 저희 어머니가 영화를 보시고는 “병훈이가 딱 너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병훈 캐릭터에 감독님 자신이 가장 투영된 것일까요?

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에 제가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병훈뿐만 아니라 과외 선생님에게도, 임신한 아내에게도요.

영화에서 가장 쫄깃한 장면이죠. ‘다영-병훈-과외 선생님-과외 선생님 아내’의 이른바 ‘4자 대면’ 씬이요. 그 장면을 찍기까지 영화가 빌드업을 한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돈데요. 실제 현장은 어땠는지, 또 배우들에게 어떤 디렉션을 주셨는지 궁금해요.

저희 영화가 13회차로 찍었습니다. 독립영화라고 해도 너무 적었죠. 과외 선생님 집 장면을 거의 2, 3회차 만에 찍었어야 했어요. 거의 밤새우듯 찍어서 배우들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서윤 배우 부모님도 울산에 오셔서 커피, 아이스크림 넣어주시고 할 정도로 되게 힘든 현장이었어요.

그리고 전반적인 연출 디렉팅을 말씀드리면요. 사실 그 장면 나오기 전까지는 이른바 ‘떼샷’이 없었어요. 거의 모든 장면에 인물 두 명이 나오죠. 카메라를 돌리고는 거의 배우들에게 맡겼어요. 그렇게 잡아가다가 4자 대면 장면을 찍는데 정말 어려웠습니다. 원래 콘티는 10컷이 넘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현장에서 많은 게 바뀌었죠. 콘티대로 간 건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배우들을 따로 불러서 1:1로 면담을 했습니다.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서윤 배우가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던 그 유명한 ‘진실의 방’이군요.

네.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제가 진실의 방에서 배우들 사이 이간질을 좀 했어요. 최민재 배우에게는 “다영이가 지금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병훈이가 가만히 있니? 화가 엄청 날 것 같은데?”라고 긁었고요. 유의태 배우에게는 “지금 이 상황에서 과외 선생님이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게 괜찮다고 생각해?”라고 긁었죠. 그러고 촬영에 들어갔더니 최민재 배우가 “그럼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거야?”라고 대사를 던지더라고요. 애드립이었어요. 그런 것들이 툭툭 나오니 과외 선생님 아내 역이었던 윤재인 배우도 더 화를 내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런 것들이 모이면서 그 장면이 완성됐습니다.

계획대로 10컷으로 찍진 못하셨다고 하지만, 저는 다영-병훈을 중심에 두고 과외 선생님과 아내가 프레임에 흐릿하게 걸쳐서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그 숏이 너무 좋더라고요.

맞아요. 다영, 병훈이 기차를 타고 여름방학을 관통한다고 하면, 둘이 기차 좌석에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했고요. 영화 <졸업>(감독 마이클 니콜스, 1967)의 엔딩 장면 같기도 해서 저도 좋았던 장면입니다. 그 촬영 때 앵글을 어떻게 잡을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촬영감독이 어느 순간 딱 앵글을 잡은 거예요. 배우들도 이 장면 오늘 다 찍을 수 있는지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촬영감독 덕분에 그 장면을 찍고 푹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이 마침 박서윤 배우 생일이어서 다 같이 늦잠 자고 회를 먹으러 갔죠.(웃음)

반면에 펜션 장면은 정말 너무 잔혹하달까요, 뭐라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네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리신 건가요?

사실 이 이야기는 어디서 한 적은 없습니다. 고등학생 때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그런 행위를 할 때 마음이 아팠을 텐데, 왜 이들이 아무도 없는 데까지 가서, 어른들의 도움 없이 이렇게 일을 치러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행동이 결코 혼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거든요. 서로 간에 합의, 약속이 돼야만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정말 가능할까를 촬영감독과 이야기하다가, 카페 화장실에 가서 한 번 둘이 시도해봤는데요. 손잡이 쇠의 촉감이 배의 닿는 그 느낌이 너무 무겁더라고요. 아, 이건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겠다, 이 장면을 보여줄지 말아야 할지 그런 고민들을 깊이 했습니다.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마지막 촬영에서 눈물을 그치지 못해서 서윤 배우가 달래줬다고요. 그 장면은 뭐였나요? 그리고 감독님이 왜 그렇게 우신 건가요?

펜션 장면에서도 물론 많이 울었지만, 그다음 날 마지막 장면인 교무실 장면을 찍었거든요. 다영과 병훈이 다시 마주하는 장면이었죠. 서로 마주보기 어렵겠지만, 서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뭔가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게 슬펐어요. 두 사람이 미래에 조금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사실 전날 펜션 장면 찍을 때 너무 많이 울어서 그 감정도 남아 있었나 봐요. ‘컷’을 했는데 제가 울음을 못 그치겠더라고요. 배우가 와서 달래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연출자는 작품과 가장 거리감을 유지해야 할 사람인데 많이 힘드셨나봐요.

그렇죠. 그런데 펜션 장면 때에는 저뿐만 아니라 촬영감독, 조명감독, 미술감독 전부 다 울었어요. 티를 안 내려고 다들 노력했죠. 저도 눈물 가리려 선글라스 쓰고 현장에 갔으니까요. 배우들도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그 여름날의 거짓말> 연출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뭐라고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않고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 순간의 모습으로 인물들을 재단하지 않을 것, 인물과의 거리를 항상 고민할 것, 귀을 열고 눈을 뜨고 모든 사사로운 것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대할 것 등등입니다. 우리는 모든 장면, 감정, 행동, 대사에 진심이고자 했어요. 영화는 진실을 담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진짜인 것만 담고 싶었어요. 배우들이 시나리오에 제한되지 않고 실제로 살아 움직이길 바라서, 리딩 때에도 배우들에게 절대 감정을 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어요. 조금이라도 배우들이 감정을 섞어 연기하면 바로 멈췄죠..

정말 특이한 리딩 현장입니다. 그렇게 하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이번에만 그렇게 했어요. 예전에 12분짜리 단편 <얼음들>을 찍을 때 현장에서 그런 경험이 있어요. 현장에 도착했는데, 뭘 찍을지 몰라서 아침만 세 시간을 먹었습니다. 물론 간략한 시놉시스는 있었지만요. 그렇게 하다가 촬영에 들어가서 결국 늦게까지 작업을 했는데요. 그 현장에서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감정, 순간들을 표출해내는 배우들을 보면서 너무 놀랐어요. 그 기억이 제게 영화를 다르게 생각하게 만든 경험이었어요. 어쩌면 저라는 사람은 감독으로 현장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할까요? 그래서 리딩 때 이 감정들을 다 풀어두면 새로운 게 나올 수 없겠다고 생각한 거죠. 최대한 리딩 때에는 스토리 흐름, 씬들의 유기적 관계만 보고 감정적인 부분은 아껴두라고 배우들에게 당부한 거죠.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과외 선생님 아내 말고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어른들은 권위적인 측면에서는 우월하나, 행동적 측면에서는 결코 청소년보다 낫다고 할 수 없을, 아니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더 미성숙하거나 타락한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청소년을 통해 어른들의 어떤 위악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싶으셨던 건가요?

우선 그 어른에 과외 선생님 아내가 있다는 걸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웃음) 음, 제 어린 시절에 그런 어른이 없었던 거 같아요. 저는 어쩌면 운이 좋아서 바른길로 왔지만, 그런 가이드를 받지 못한 청소년들은 굉장히 힘든 길로 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 가이드를 해주는 좋은 어른도 분명 있겠지만, 많지 않다는 거고요.

또 요즘 청소년 범죄드라마들이 많아졌어요. 촉법소년이랄까, 그런 시선들, 너무 아이들을 안 좋게만 보는 시선도 있다고 봐요. 정말 이 아이들이 이러고 싶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건지 이야기를 좀 들어보면 좋을 텐데 말이죠. 물론, 악질적인 아이들이 있으니 그런 시선이 생기는 거겠지만요. 그래서 저는 어른들이 조금 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러면 최악의 경우만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자, 많이 받아보셨을 질문이지만 그래도 해야겠죠. <그 여름날의 거짓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가요?(웃음)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기는 했어요.(웃음) 그런데 이걸 제가 이야기하는 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다영이의 마지막 남은 비밀을 누설하는 것 같아서, 다영이에게 죄책감이 들어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웃음) 아마 관객들도 아시리라고 생각해요. 믿고 싶지 않은 걸 믿지 않은 것이고, 그렇게 다영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병훈이와 다영이는 어떻게 될까요?(웃음)

저는 병훈이와 다영이가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GV나 시사회에서 “왜 책임지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다영이와 병훈이를 결국 한 공간에서 만나게끔 한 것이 뭔가 둘 사이에 여지를 남기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우연이긴 하지만 또 징계위원회에 가서 더 안 좋은 상황에 빠질 수 있기도 하지만, 이 둘이 다시 만나고 뭔가 둘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그걸 바라봐주는 것이 제 책임이지, 이들이 어떻게 성장했다고 하는 건 또 하나의 재단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엔딩씬을 찍은 겁니다. 저 역시 다영과 병훈이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요. 이런 인연이 없잖아요. 이렇게나 둘이 서로 믿는다고 하잖아요. 어떤 근거도 없는데 믿는, 그걸 할 수 있는 두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두 사람이 어른이 되어 가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웃음)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알겠습니다. 이제 감독님에 대해서 질문을 좀 드릴게요. 단편 전작들 <갈 곳 없는>(2018), <졍서, 졍서>(2022)에 이어 장편 데뷔작에서도 청소년이 주인공입니다. 청소년 주인공 영화에 전매특허를 가진 이와이 슌지 감독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긴 하지만요.(웃음) 특별히 청소년, 10대 시절에 대한 고민과 애착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전적인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단편 때부터 주변에서 아이들 이야기 좀 그만하라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저도 제가 왜 이렇게 청소년 이야기를 쓰나 싶어서 저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죠. 저 역시 많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쳤더라고요. 중학생 때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미술을 시작했어요. 전교 1, 2등 친구들과도 친한데, 공부 못하는 꼴찌 친구들과도 잘 지내면서 막상 저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부류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더라고요. 당시 아이들의 일면만 보고 판단하고 때리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그런 억압들에 대한 반감도 있었던 거 같아요.

어른이 되고 나서는, 저는 뭐 그 시절을 합리화, 정당화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요. 만약 지금 그런 시절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더라고요. 그 아이들에게는 들여다봐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측면이 있어요. 제가 박석영 감독님의 <스틸 플라워>(2016)를 정말 감동적으로 봤는데요. 이렇게 아이들을 봐주는구나, 그 시선만으로도 감사하더라고요.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이 10년 전쯤입니다. 요즘 영화 제작을 하면서 ‘학교밖청소년’들에게 영화제작 워크숍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봐요. 그런데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놀랄 정도로 생각은 어른스럽더라고요. 그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도 어른들 세계에서만 있는 일들이 아니라 아이들 세계에서도 벌어지는 일이구나 싶어서 계속해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 여름날의 거짓말〉스틸컷. (사진 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당분간은 청소년 이야기를 계속하시겠군요.

아까 말씀드렸던 12월에 들어가는 장편은 엄마가 주인공인 영화인데요, 어른 시선으로 넘어갑니다.(웃음) 그런데 어른도 아이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 싶어요. 어른 역시 똑같이 흔들리고 어려워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영화감독을 꿈꾼 건 언제부터였나요?

대학을 홍익대 디자인영상학부로 들어갔어요. 사진 수업을 들었는데,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DSLR 카메라를 사주셨어요. 버튼을 돌려 보니 영상 모드가 있더라고요. 영상을 찍어보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주변 친구들 찍고 다니는, 아무 의미도 없는 영상들이었지만 당시에는 스스로 기뻐서 찍고 다녔어요. 그게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같아요. 물론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거야 좋아했지만, 그때 처음으로 아,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구나 하는 감을 잡은 거죠. 군대에 가서는 시나리오 작법서 같은 책도 많이 읽었고요. 두꺼운 노트 다섯 권 분량으로 시나리오도 써서 제대했다니까요? 재산이죠.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여름날의 거짓말>을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영과 병훈의 여름방학을 함께 기억해주실 관객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누가 더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따지고 싶은 마음이 아닌, 그들이 흔들리고 솔직했던 마음을 헤아려보고, 이해해 보고 보듬어 주시면 좋겠어요. 이 영화는 여러 번 볼수록 발견할 것이 많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이 영화는 다영의 시점에서 시작하지만, 담임선생님 시점으로 끝난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어른으로서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생각이나 시선들이 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