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몸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던 <피지컬:100>이 기조를 바꾸었다. 1년여 만에 돌아온 <피지컬:100-언더그라운드>는 여전히 완벽한 피지컬을 탐구하지만 ‘자신의 피지컬을 증명’하라며 냉혹한 목소리로 참가자들과 거리를 둔다. 고대 그리스 판테온에서 근현대의 지하 광산으로, 적극적 연구자에서 객관적 심판자로 콘셉트의 시공간뿐만 아니라 기획 방향까지 달라진 <피지컬 100: 언더그라운드>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2023년 1월 공개된 넷플릭스 <피지컬:100>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이끌었다. 한국 예능 최초로 비영어권 TV 시리즈 부문 1위를 기록했으며 총 82개국에서 상위 10위권에 오르는 기록적인 성과를 냈다.
<피지컬:100>의 엄청난 인기는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직관적 이해가 가능한 피지컬 예능이라는 점, 이미 글로벌 성취를 거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과 유사한 포맷을 구현한다는 점, 지상파 예능의 논법에서 벗어나 한층 자극적인 연출을 시도했다는 점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피지컬:100>은 ‘고대 그리스’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촘촘한 기획으로 예능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첫 회차부터 고대 신전의 느낌을 자아내는 세트장에 참가자들의 몸을 본 따 제작한 토르소 100개를 전시해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성별과 출신을 떠나 그저 ‘몸’만으로 경쟁하는 <피지컬:100>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담아냈고 참가자들이 마치 신화 속 인물에 대입되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어 ‘아틀라스의 형벌’, ‘프로메테우스의 불꽃’ 등 고대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게임 ‘고대 신화 5종 경기’가 진행되며 예능의 장르적 특성을 뛰어넘은 무게감을 선사했다.

<피지컬:100>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늘 따라오는 공정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승전에서 우승자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종목은 길고 무거운 로프를 제한 시간 내에 많이 당기는 참가자가 살아남는 ‘무한 로프 당기기’였다. 최종 2인의 생존자 정해민(경륜 선수)과 우진용(크로스핏 선수)은 사력을 다해 줄을 당겼고 결국 우진용이 승리하였다. 그러나 방영 이후 경기 중 두 번의 중단과 재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준우승자인 정해민이 직접 인터뷰를 통해 ‘경기 중 벌어진 사고들로 인해 승패가 뒤바뀌었다. 패배에 대한 요인이 될 수 있으니 이를 그대로 방송에 담아주기를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전했다. 결국 <피지컬 100> 제작진은 결승전 원본 영상을 공개하며 ‘특정 선수에게 수혜를 주기 위한 개입은 전혀 없었다’고 밝히며 매끄럽지 못한 진행에 대해 사과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몇몇 참가자의 사생활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스턴트맨 출신 참가자 김다영은 학교폭력 의혹에 붉어졌고 이내 이를 일부 인정했다. 럭비 선수 출신 참가자 장성민은 여자친구 성폭행 및 불법 촬영으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2심 결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피지컬 100>은 그 화제성만큼이나 수많은 논란을 남겨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그리고 지난 3월 19일 ‘언더그라운드’라는 부제와 함께 돌아온 시즌 2에는 이 같은 문제 상황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 이하 <피지컬:100-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 이어 <피지컬:100-언더그라운드>의 연출을 맡은 장호기PD는 제작발표회를 통해 달라진 기획 방향에 대해 전했다. “<피지컬:100>이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시청자들이 스포츠 라이브 중계만큼 리얼리티와 투명함을 원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시즌 2에서는 완성도나 매끄러운 연출도 중요하지만, 상황을 최대한 투명하게 알려 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더불어 “가장 완벽한 피지컬을 탐구한다는 제작진의 모토와 토르소를 지키는 참가자의 목적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말해 기대감을 더했다.
그렇게 공개된 <피지컬 100: 언더그라운드>는 공개 1주 차에 또다시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비영어 TV쇼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순항 중이다. 개인전으로 진행된 사전 퀘스트(무동력 트레이드밀 달리기)와 첫 번째 퀘스트(공 뺏기)는 시즌 1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스케일과 압도적인 비주얼로 시즌 2를 기다렸던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00여 명의 참가자 역시 한몫을 했다.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방송인 김동현은 특유의 유쾌함으로 지난 시즌 출연해 막강한 카리스마를 선보인 추성훈(이종격투기 선수)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유명 크로스핏 유튜버 아모띠,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출연한 전 소방관 홍범석, 연예계 대표 스포츠맨 이재윤 등 풍성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지난 시즌과의 뚜렷한 차이점은 팀을 구성해 미션을 수행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퀘스트에서 돋보였다. 시즌 1에 진행된 퀘스트 ‘모래 나르기’와 ‘1.5톤 배끌기’는 각각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힘을 합친다는 점’에서 진정한 공존의 모습을 담았다. 더해 언더독으로 낙인찍힌 참가자들의 투지를 오롯이 담아내며 끝까지 해내는 인간 의지의 가치를 전달했다. 한편, 시즌 2의 ‘미로 점령전’과 ‘광산 운송전’은 각자가 자신의 몫을 해내야 하는 상황을 야기하며 사실상 개인전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이로 인해 소위 ‘일인분을 해내'지 못한 이들은 자연스레 민폐 캐릭터로 전락하고 여성, 부상자와 같은 약체는 도태되는 안타까운 자연의 섭리를 상기하게 한다.
<피지컬:100-언더그라운드>의 변수가 적고 단순한 종목 구성은 참가자들의 아드레날린 분비를 극대화할지 몰라도 시청자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어느 정도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네 번째 퀘스트에 팀 내 생존 경쟁인 ‘선착순 롤러 레이스’이다. 150kg 달하는 롤러를 이동시켜야 하는 이 게임에 각 팀의 모든 여성 참가자들(박하얀, 이현정, 정유인)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의 몸이 ‘스스로 쓴 고통의 역사이자 그 결과물’ 즉, 노력의 산물이라던 <피지컬:100>은 더 이상 그 몸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는다. <피지컬:100-언더그라운드>는 생존 자체에 집중하여 이견의 싹을 잘라버렸다. 이로써 예능은 스포츠 경기와 가까워졌고 완성도를 얻는 대신 긴장감을 잃었다.
시즌 1의 성취를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쇄신하여 돌아온 <피지컬:100-언더 그라운드>, ‘피지컬100 아시아’를 예고하며 막을 내렸다. 강력한 피지컬에 대한 탐구의 판을 넓힐 시즌 3가 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지 기대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