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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한계에 도전해 보는건 어떨까? 장거리 스포츠 영화 3편

씨네플레이

해결되지 않은 고민을 끌어안고 잠을 청해보는 당신. 걱정이 너무 많은 것이 건강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하는 당신. 불면의 밤을 보내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시원한 한 판 달리기다. 봄이다. 장마, 폭염, 폭설 기간을 빼면 1년 중 실외 스포츠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4월에서 6월이 그 귀한 3개월이다. ‘갓생’사는 운동 유튜버 영상을 보며 오늘도 ‘눈’으로만 운동하고 있진 않은가? 지금, 불굴의 의지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며 밖으로 힘차게 뛰어나가보는 건 어떨까.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쓸 생각인가?"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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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NYAD∙2023) 

 

이 글을 읽는 당신, 가슴보다 더 나온 배, 배보다 한 뼘 더 전진한 거북목을 거울에 비추며 '나는 글렀어'라고 고개를 가로젓고 있진 않은가? 10대도, 20대도 아닌 이 비루한 몸뚱이로 장거리 스포츠는 무리라고 짐짓 포기하고 있진 않는가? 만약 미국의 마라톤 수영 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가 그런 당신을 봤다면 이렇게 사자후를 지를 것이다. "격정적이고 귀중한 한 번뿐인 삶을 이렇게 허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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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바다수영계의 전설, 다이애나 나이애드(1949~)는 쿠바 하바나에서 미국 플로리다까지 약 180km에 달하는 거리를 수영으로 완주했다. 그의 나이 64세, 약 10년 전 이야기다. 20대부터 시도했지만 네 번 이상 실패했던 종단을 60대 중반에 성공한 것이다. 완주엔 53시간이 걸렸다. 만 이틀하고도 다섯 시간을 홀로 바닷속에서 분투했다.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다이애나 나이애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1978년 만 28살에 쿠바에서 미 플로리다까지 헤엄쳐 종단하는 도전을 했다가 실패한 후, 60세 생일을 기점으로 재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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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애드(아네트 베닝, 왼쪽)과 보니(조디 포스터)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60세가 된 어느 날, 나이애드(아네트 베닝)는 어머니의 짐 속에서 메리 올리버의 시집을 발견한다. ‘결국엔 모든 것이 이르게 죽지 않는가? 격정적이고 귀중한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쓸 것인가?’ 어머니가 접어둔 페이지에서 발견한 시구는 가슴 속 깊이 묻어뒀던 평생의 꿈을 생각나게 했다. 젊은 시절 실패로 끝난 쿠바~플로리다 횡단의 꿈 말이다. 횡단거리는 무려 177km. 체력적 한계는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해도 조류의 역류와 상어와 맹독 해파리의 공격은 신의 영역이다. 가장 좋은 경로를 골라서 가도 최소 이틀. 과거에 아무리 훌륭한 선수였다 한들 나이애드는 60세가 넘었다. 모두가 불가능을 말하자 나이애드는 오히려 투지로 들끓는다. 자기 이야기만 지겹도록 하는, 그러니까 조금은 오만한 다이애나는 주변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도전을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보니(조디 포스터)가 있다. 수영은 고독한 스포츠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뒤에 보이지 않는 팀이 있기에 가능한 스포츠다. 나이애드는 절친이자 코치인 보니와 티격태격하면서도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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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릿빛 말 근육의 조디 포스터(왼쪽)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실화가 주는 감동도 크지만, 주연배우 아네트 베닝(65)과 조디 포스터(61)의 열연 또한 '노년의 영광' 그 자체다. 일체 대역 없이 실제로 몸을 만들어 전설의 운동선수와 코치를 연기해낸 조디 포스터와 아네트 베팅의 구릿빛 말 근육을 보자면 나도 저렇게 늙고 싶어 다시 한번 운동화 끈을 조이게 된다.


"(운동화) 신은 사람들 다 내 뒤에서 뛰던데요.”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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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은 '산뜻'하다는 데 있다. 신발 한 켤레만 있으면 어디서든, 어느 때나 시작 가능하다...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부족한 훈련량을 '장비발'로 메꾸려는 얄팍함이 나를 운동화의 세계로 안내했고, 장비에 대한 욕망이 '기능성 양말'의 세계로까지 확장되자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는 필자의 운동을 빙자한 물품 수집 욕구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전통 의상을 입고 달리는 로레나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
전통 의상을 입고 달리는 로레나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

 

멕시코 깊은 산속 '타라우마라' 지역에는 16세기 스페인 침략에서 도망쳐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라라무리', 즉 '맨발로 달리는 사람들'이라 불린다. 22살 로레나도 달리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달리는 모습이 좀 이질적이다. 로레나는 부족 전통 복장을 하고, 발가락이 훤히 드러나는 샌들 차림으로 울트라마라톤(일반 마라톤보다 긴 코스를 달리는 경기)을 달린다. 2017년 자국에서 열린 50km 울트라트레일(울트라마라톤과 산악 달리기를 합한 경기) 우승을 차지했고, 유럽과 미국 등지의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해 높은 성적을 거뒀다. 기록 단축을 위해 최첨단 과학이 동원된 운동화와 운동복을 갖춰 입은 선수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스물두 살에 벌써 네 번의 우승 경험이 있는 로레나의 일상을 후안 카를로스 룰포 감독이 28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로레나의 신발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
로레나의 신발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

샌들을 신고 달리는 로레나는 운동화를 선물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거 안 쓸 것 같아요. 이런 거 신은 사람들 다 내 뒤에서 뛰던데요”라며 의도치 않은 팩폭을 날린다. 운동화와 특수 레깅스, 뜯어보지 않은 기능성 양말을 쌓아 놓은 필자도 괜히 뜨끔했다. 달리기를 통해 경험하는 몰입의 순간들, 이 작은 성취가 주는 순수한 기쁨을 어느새 물질적 욕망이 압도했었다. 반성한다. 불필요한 것들에 단호하게 선을 긋는 로레나와 이처럼 산뜻한 달리기로 위안 받았던 다큐멘터리.


"꿈도 덤비면 현실이 된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2018)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당신이 러너라면,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를 본 뒤 어느새 천변을 달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영화는 '하코네 역전 마라톤' 대회(일본 도쿄에서 1920년부터 매년 열리는 경기로 왕복 217.9km의 거리를 10개 구간으로 나누어서 10명의 주자가 교대로 달리는 경기) 참가를 목표로 개성 넘치는 10명의 주인공들이 마라톤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한 명의 주자가 42.195km를 완주하는 일반 마라톤과는 다르게 10명의 주자가 교대로 달리는 이 대회는 팀원 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팀워크를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기숙사 '아오타케'에 모여든 10명은 함께 달릴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퀴즈 프로그램 마니아, 쌍둥이 축구선수, 탄자니아에서 온 국비유학생, 만화책을 사랑하는 오타쿠, 사법고시를 패스한 법대생, 산골마을 출신 순수 청년, 골초 선배까지. 고교 시절 촉망받던 장거리 육상 선수 카케루와 주장 하이지를 제외하면 과연 이 오합지졸들이 기록은 고사하고 20킬로를 쉬지 않고 달릴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달리기 경험이 미천한 이들은 마라톤 대회 참가라는 제안에 반발하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훈련에 참가한다. 그리고 마침내 역전 마라톤 대회 출전날이 다가온다.

만화책을 읽는 그 자세로 달리는 '왕자(왼쪽)'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만화책을 읽는 그 자세로 달리는 '왕자(왼쪽)'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나비보다 느린 병약한 오타쿠 '왕자'가 5km를 30분 내로 들어온 순간에 함께 환호했고, 카케루가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땐 화면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갔다. 총 23화로 구성된 작품으로 웨이브, 왓챠에서 시청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