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등급 슈퍼히어로 영화의 대명사가 이젠 데드풀로 굳어진 느낌이지만, 사실 원조는 이쪽이었다. 너무나 히어로가 되고 싶어하지만 능력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래서 꽤 부족한 느낌의 '킥 애스' 데이브 리제우스키의 좌충우돌 분투기.
흥미로운 첫 작품의 성공에 비해 속편의 성과는 초라했고, 덕분에 영화는 장기적인 시리즈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히어로무비 팬들에게 <킥 애스>는 재기 넘치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1편의 감독이었던 매튜 본에게도 그랬던 모양이다.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리부트 소식이 공개된 이래로 조금씩, 매튜 본의 새로운 <킥 애스> 3부작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으며 이미 촬영을 시작해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아직 명확한 개봉일도, 시놉시스도 아직이지만 벌써부터 기대되는 시리즈다. 히어로무비들이 다 비슷비슷해진 지금 이 시점, <킥 애스>는 느슨해진 히어로무비 시장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인가.

시리즈의 주인공 '킥 애스'는 슈퍼히어로 무비의 주인공이라기엔 부족함이 참 많은 캐릭터다. 영화는 히어로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너드 소년 데이브 리제우스키가 자경단 활동을 시작하면서 생기는 일을 다루고 있는데, 얼핏 보면 피터 파커가 거미에 물리고 난 직후 직접 만든 누덕한 수트를 입었던 딱 그 시점이랑 비슷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쿠팡에서 로켓배송으로 받은 묘한 초록색 쫄쫄이에 몽둥이와 전기충격기를 들고 다니는 격이다. 말하자면 셀프 메이드 히어로인 셈. 히어로네임을 정하고, 직접 고른 수트를 입고 야심차게 거리로 나가 갱들과 싸움을 시작한다. 여기서 이기면 좋았겠지만 이 시리즈,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갱들에게 떡이 되도록 맞은 직후 뺑소니 사고까지 당하면서 초죽음 상태로 병원에 실려간 데이브는 거의 반 년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정체가 탄로날까봐 입고 있던 수트를 벗고 나체로 이송되는데, 덕분에 해명하기도 곤란한 추문에 휩싸이기도… 어쨌거나 데이브는 온몸에 깁스를 한 채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채로 6개월간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어지간하면 여기서 포기할 법도 한데, 데이브는 퇴원하자마자 다시 히어로가 되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다. 의지만큼은 캡틴 아메리카(혈청 맞기 전의 그 스티브)에게 지지 않을 것 같다.

다시 거리로 나간 데이브는 두 번째 싸움을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유혈사태가 또 초래되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승리했고, 데이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찍은 싸움 영상이 인터넷에 업로드되면서 '킥 애스'에게 히어로로서의 명예가 주어진다. '킥 애스'라는 이름이 SNS에 퍼지면서 유명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인물들로 인해 데이브는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하고, 이 와중 진짜 실력자인 '힛 걸'과 '빅 대디'를 만나게 된다.
설정상 11살 소녀인 '힛 걸'은 어린 시절의 클로이 모레츠가 연기했는데, 뭔가 많이 어설픈 주인공 '킥 애스'에 비해 온갖 무기에 통달하고, 체술에 능한 데다, 화기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는 어린 소녀는 솔직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폭풍성장한 모습으로 2편에서 '힛 걸'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 영화의 완성도나 흥행과는 별개로 '힛 걸'의 인기는 수많은 시리즈 팬들을 양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킥 애스> 1편에 비해 2편은 좀 안타까울 만큼 성공하지 못한다. 실패의 원인은 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겠지만, 일반 관객이 받아들이기엔 좀 과했던 잔인함, 전편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평이한 캐릭터들이 문제였다. 말하자면 재미가 없었다는 뜻이다.
빌런으로 분한 짐 캐리가 명성만큼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빌런 쪽에서는 '마더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딱히 매력적인 인물이 없었다. 히어로무비인 만큼 강력한 빌런이 있어야 히어로도 빛이 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힛 걸’의 액션과 이야기는 꽤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지만 영화 전체로 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고, 빌런인 ‘마더 러시아’와 ‘힛 걸’외에는 그다지 볼거리도 없었다. (물론 마더 러시아는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한 캐릭터일지도…)


어쨌든 1편에서 보여준 거친 매운맛에 비해, 2편은 좀 심심했다. 이미 먹어본 맛에 가까웠다. 킥 애스의 첫 시작과 성장을 지켜보며 느끼는 새로움에 대한 재미가 없어졌으니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을 텐데, 2편은 감칠맛이 사라지고 캡사이신만 남은 격이었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의 패인을 매튜 본의 하차로 점찍기도 했는데, 그의 빈자리도 컸던 건 사실이지만 2013년으로 접어들며 히어로무비가 꽤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상대가 많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히어로무비 판도를 바꾼 <어벤져스>가 2012년 영화였으니). 아마도 제작사는 <킥 애스> 시리즈의 생존 방향을 R등급 액션에서 찾았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이래저래 아쉬운 상태로 잊히나 했던 <킥 애스>였지만, 매튜 본은 킥 애스를 잊지 않고 있었다.
2023년 10월 첫 리부트 언급에 이어 올해 1월에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새로운 '킥 애스' 시리즈가 3부작으로 제작될 예정이며 기존 시리즈의 후속작이라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킥 애스'라고 밝혔다. 이 3부작의 부제는 각각 <스쿨 파이트>, <비디오 램>, <킥 애스>이며, 세 번째 작품의 이름이 바로 그 '킥 애스'인 걸 보면 전편과의 연결고리는 아마 3편까지 가 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매튜 본은 관련 질문에서 현재 3부작 중 2편인 <비디오 램>을 촬영 중이며 촬영이 완료되는 대로 1편을 공개할 생각이라고 했다. 적어도 3부작 중 첫 작품인 <스쿨 파이트>는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은데.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본격적으로 '킥 애스'가 등장할 것 같은 3부작의 마지막 작품 <킥 애스> 리부트 버전은 이미 캐스팅도 완료되었다고 하며, 별 문제가 없다면 어떤 루트로든 이 시리즈의 리부트 버전을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히어로무비 팬들에게 <킥 애스>는 꽤 흥미로운 영화였다. 물론 주인공인 킥 애스 본인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던 '힛 걸'이 아주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B급 감성이 이곳저곳에 묻어 있음에도, 혹은 그래서,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아마도 2편이 성공했다면 히어로무비의 판도는 영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슈퍼파워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고, 그렇다고 배트맨처럼 압도적인 성능의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웅적인 일을 하기보다는 사건에 휘말리고 간신히 탈출하기 일쑤인 '킥 애스'가 히어로무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꽤 참신하기는 하니까.
어쩌면 이 시리즈의 멋진 부활이 실현되기만 한다면, 느슨해지다 못해 이젠 흥행 실패와 낮은 평점으로 얼룩진 요즘 히어로무비 시장을 확 조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설프고 두렵고, 바보짓도 곧잘 하곤 하지만 그래도 제법 꿋꿋한 '킥 애스' 데이브, 그리고 언제 봐도 쇼킹한 매력을 가진 '힛 걸'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