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C 코믹스 실사화 유니버스를 완전히 새로 쓰는 게 낫지 않겠냐는, 돌이켜 보면 거의 10년 전부터 심심찮게 나오던 말. 그걸 제임스 건이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제임스 건은 한다. 이름까지 DCU로 새로 바꿨다. 진짜 뭘 해낼 각오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제임스 건이 수장을 맡은 후 전격 리부트를 선언한 ‘DCU’는 2023년 2월에 첫 계획을 공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DCEU와의 연계점이 없진 않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대부분 어른의 사정과 돈 문제였던 느낌-로 DCU는 완전히 제임스 건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수순이 된다.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캐릭터들은 도통 한둘이 아닌데, 하차 소식으로 팬들을 안타깝게 했던(아마 본인이 제일 아쉬워했을 것 같지만), 헨리 카빌이 맡았던 ‘슈퍼맨’이 특히 그랬다. DC 세계관에서 슈퍼맨의 존재는 딱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제임스 건은 DCU의 슈퍼맨 영화인 <슈퍼맨>의 각본과 연출을 직접 맡는다.

각본이 제출되었고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제임스 건 트위터를 통해서 간간이 전해 듣고는 있었으나, 최근 몇 장의 촬영장 유출 사진이 올라오면서 본격적인 DCU의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오랜만에 약간 설레기도 했다. 드디어 볼만한 히어로 무비가 나와주겠다는 말인가! (물론... 나와야 알겠지만...)
어쨌거나 여러 사진들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으니, 총구를 겨눈 군인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누군가에게 연행되고 있는 슈퍼맨을 찍은 사진이었다. 슈퍼맨의 곁에서 그를 직접 연행하고 있는 캐릭터는 온몸이 검은색인 슈트에, 가슴에는 U자 마크를 달고 있었는데 이 캐릭터가 아무래도 ‘울트라맨’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외모 면에서는 어쩐지 스파이더맨의 누아르 슈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슈퍼맨의 곁에서 확실히 적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가슴에 U자 마크를 달고 있으니 울트라맨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울트라맨’ 하면 보통은 일반적으로 특촬물 캐릭터 쪽을 떠올리는 경우가 대다수겠지만, DC코믹스에서의 울트라맨은 그와는 다른 존재이며 슈퍼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약하자면 ‘평행 세계의 슈퍼맨’으로, 영웅이 아닌 지독한 악당인 슈퍼맨이다.

DC코믹스의 ‘울트라맨’ 은 슈퍼맨의 반전 캐릭터로서 태어났다. 슈퍼맨과 신체적 조건이나 능력이 거의 비슷하고, 크립톤 행성에서 태어나 지구에 불시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역시 똑같다. 하지만 부모들의 교육관이 제법 판이하게 다른데, ‘슈퍼맨’의 부모가 크립톤의 평화와 안녕을 바랐다면 ‘울트라맨’의 부모는 지구를 정복할 것, 반동분자는 죽여버릴 것(..)을 교육하는 식이다. 여기에 지구에 불시착한 후에는 좀 더하기까지 한데, 슈퍼맨을 주워 키워낸 켄트 부부가 연쇄살인마 부부로 등장해 어린 울트라맨에게 협박당해 억지로 부모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성장한 울트라맨은 ‘크라임 신디케이트’라는 슈퍼빌런 조직의 리더가 되는데, 이 조직 역시 ‘저스티스 리그’의 반전 버전이다. 즉 크라임 신디케이트는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들인 플래시, 아쿠아맨, 원더우먼, 배트맨, 그린 랜턴 등의 히어로가 ‘빌런 버전’으로 소속된 단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슈퍼맨과 울트라맨,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크립토나이트’라는 광석에 대한 반응이다. 이 광석은 슈퍼맨의 고향인 크립톤 행성이 폭발하면서 내부 광물들이 새로운 물질로 변하게 되면서 생겨났다. 슈퍼맨은 이 크립토나이트라는 광석에 매우 약한데, 상대가 크립토나이트를 가지고 있다면 슈퍼맨은 신체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 정신적으로 조종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울트라맨’은 오히려 크립토나이트를 쬐거나 먹으면서 힘을 비축하는 타입으로, 오랫동안 크립토나이트를 먹지 못하면 약해지는 신체 구조를 갖고 있다.

슈퍼맨의 악당 버전 캐릭터로서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슈퍼 빌런 ‘울트라맨’의 이야기는 ‘슈퍼맨’과 비교하면 할수록 꽤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슈퍼맨의 기원과 성장을 무려 10시즌 동안 다룬 시리즈 <스몰빌>에서는 울트라맨으로 비춰볼 수 있는 평행세계의 캐릭터가 등장한 적이 있는데, 악당 취급받으며 우울하게 살고 있는 클라크가 등장한다.
이쪽은 켄트 부부가 아닌 라이오넬 루터(슈퍼맨의 전통적인 아치 에너미, 렉스 루터의 부친)에게 키워지는 바람에 클라크 루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이래저래 좌충우돌하며 살며 늘 악당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었으나 슈퍼맨과의 대화를 통해 뭔가를 깨닫고 다시금 다르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는, 굉장히 영웅서사의 조연격 스토리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

이쪽은 사실 ‘다른 조건에서 자랐다면 클라크 켄트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왓 이프’(What if)에 가깝지 않을까 싶고, 이보다 더 울트라맨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작품은 따로 있다. 2019년 개봉한 이 영화는 <더 보이>라는 작품인데, 이름이나 명칭 등 모든 게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울트라맨’의 설정을 많이 갖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서도 울트라맨의 슈퍼빌런 팀인 ‘크라임 신디케이트’의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다.
재밌는 건 이 영화의 제작에 제임스 건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뭐, 그때부터 그린 큰 그림이었다고 하면 지금 영화 <슈퍼맨>의 촬영 현장에 울트라맨이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걸까? 여전히 의문은 남지만, 생각해 보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때도 그랬고 <수어사이드 스쿼드> 리런치 때도 그랬으므로 그냥 별생각 없이 영화관에 들어가는 게 답일지도.
슈퍼맨의 기원 영화를 시작해야 하는 이 시점에 (심지어 이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 제목이 ‘슈퍼맨 레거시’로 알려졌었음) 멀티버스 슈퍼맨, 그것도 슈퍼맨의 설정이나 능력에 익숙해야 즐길 수 있는 거울 같은 존재 울트라맨의 등장이라니 약간 뜬금없긴 하지만, 제임스 건이 제일 잘 했던 게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캐릭터를 가져와서 놀라게 하는 일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사실 제임스 건 이 양반이 트위터에서 하는 말이 워낙 많기 때문에(예전에 MCU에서 잘렸다가 복귀한 것도 트위터 때문이었는데 여전히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긴 하다), 루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확실하게 말해주는 면은 꽤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SNS 특유의 애매한 화법으로 미묘하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또 어떻게 될는지는 잘 모를 일이다.
정말 개인적인 심경으로는, 뭔가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 MCU가 나약해진 바로 이 시점 DCU가 크게 한방 터뜨려 줬으면 한다.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 호불호 갈리고 평가도 극과 극이라서 ‘이걸 알면 재미있다’혹은 ‘이걸 몰라서 그 장면을 100% 보지 못했던 거야’와 같은 변명을 안 해도, 그냥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어 줬으면 한다. 이제 같이 본 친구나 보고 온 친구들에게 세계관 히스토리 설명해 주는 건 그만하고, 그냥 어떤 장면이 정말 재미있었는지를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