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가 기다려 온 박찬욱 감독의 신작 <동조자>가 공개됐다. 쿠팡플레이 독점 HBO 오리지널 리미티드 시리즈 <동조자>는 비엣 타인 응우옌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남베트남과 미국에 잠입한 북베트남의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두 개의 역할과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일들을 담았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각본부터 제작, 연출, 총괄 프로듀서까지 작품의 모든 것을 책임졌다. 감독은 이전에도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첩보 스릴러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만든 바 있다. 전작에 이어서 스파이 장르로 다시 돌아온 그는 어릴 적 존 르 카레의 소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본 후 이 장르에 깊이 매혹되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국가나 자본주의의 큰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종사하다가 파멸하는“ 스파이의 운명에 자꾸만 반응한다. 한편으로는 그에게 스파이물은 영화와 같다. “공작을 꾸미는 일은 영화감독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럴듯하게 거대한 거짓말을 한다”. 박찬욱 감독이 직접 말하는 <동조자>의 연출 의도와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모든 전쟁은 두 번 벌어진다. 첫 번째는 전장에서, 두 번째는 기억 속에서” 삼엄한 감시 아래에 놓인 감옥 안에서 한 남자가 자술서를 쓴다. 그는 남베트남에 잠입한 공산당 첩보원으로서 첩보 활동을 벌였던 자신의 과거를 파헤치며 또다시 전쟁을 치른다.
남베트남의 비밀경찰이자 CIA 비밀 요원, 그리고 공산주의 북베트남의 이름 없는 스파이인 대위(호아 쉬안데). 그는 남베트남에서 비밀경찰을 관리하는 장군의 일을 보조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의형제를 맺은 친구 만과 내통하며 스파이로 활동한다. 사이공 점령이 멀지 않은 날 그는 장군과 함께 사이공에서 탈출하려 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

<동조자>는 북베트남의 이름 없는 스파이 주인공의 자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남베트남의 대위로 북베트남의 스파이로 살아온 그는 베트남 전쟁 직후 베트남의 수용소에 수감된다. 대위는 그간 벌여 온 간첩 활동을 자술서로 써내고, 그 곳을 관리하는 소장에게 심문을 받는다. 드라마는 주인공 대위가 수용소에 수감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박찬욱 감독은 주인공의 자백이라는 원작의 기본 형식을 가져오면서 영상매체만이 구현해 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대위가 강압에 의해 자술서를 쓴다는 기본 설정이 있다. 이 기본 설정을 두고, 대위에게 자술서를 쓰라고 강제한 소장이 대위가 쓴 자조서를 읽으면서 그를 심문하는 시간이 있다. 이 두 가지 내러티브 장치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관객에게 주인공이 진술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물의 보이스오버를 들려주며 일깨워준다. 그렇게 인물의 내레이션에 의한 서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엉뚱한 사람(대위를 심문하는 소장)의 목소리가 개입된다. 이때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멈추게 한 인물의 얼굴이 보여지고, 드라마는 다시 과거의 특정 지점으로 돌아가서 방금 본 것과는 다른 것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영화적 기법을 결합하려고 노력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1인 4역으로 나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번 작품에서 CIA 요원과 교수, 국회의원, 영화감독 등 4개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그는 네 명의 인물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입체적 인물로 표현하면서 확장된 연기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먼저 그가 분한 CIA 요원 클로드는 저물어가고 있는 남베트남에 머물며, 미국에 의존하는 베트남 군부 세력을 관리하는 인물이다. 그는 주인공 대위에게 1960-70년대 큰 인기를 누렸던 미국의 밴드 아이슬리 브라더스 신보를 전해주는 등 미국의 풍부한 대중 문화를 전해준다. “대위에게 베트남인 아버지가 장군이라면, 서양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인 아버지는 클로드”다.

대위가 사이공에서 탈출해 미국에 건너 온 후의 이야기를 다룬 2화에서는 인물 해머 교수가 등장한다. 대위의 미국 유학 시절 은사인 해머 교수는 캘리포니아의 대학에서 동양학을 가르친다. 그는 동양의 문화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모순되어 있다. 특별히 비서직에도 일본인 여성을 고용하고, 겉으로는 하얗지만 속은 노란 달걀에 자신을 비유하기를 즐길 만큼 동양인에 대한 모든 것을 찬미하지만, 인종차별주의자의 책을 비판 없이 읽기도 한다. 사실 그의 동양 문화에 대한 숭배는 대상화에 더 가깝다.

박찬욱 감독은 한 배우의 1인 4역 캐스팅 아이디어를 원작 소설을 읽고 어떻게 각색할 것인지를 고민하던 초창기에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맡은 인물 중 미 하원의원은 정치, 동양학 교수는 교육, 영화감독은 문화 등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보여주는 4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결국 이들이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싶었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단박에 알게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 1인 4역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한 이유로는 “다양한 역할을 개성 강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떠올렸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로버트는 TV 시리즈를 한 적도 없고, 워낙 슈퍼스타라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제안했는데, 다행히도 금방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부조리한 상황을 드러내는 씁쓸한 유머

비엣 타인 응우옌 작가의 소설 「동조자」는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 미국인의 눈이 아닌 베트남인의 눈으로 전쟁을 다시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해답이다. 작가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린 베트남 전쟁은 미국인의 시각에서 그려졌음을 지적한다. 그가 말한대로 베트남 전쟁을 다룬 일부 할리우드 영화는 베트남 전쟁이 정당하지 못한 전쟁이었음을 드러내고 있지만, 여전히 관객이 감정을 이입하는 주인공은 미국인으로 등장한다. 또 미국의 반성을 드러내기 위한 영화에 동원된 베트남인 인물들의 목소리는 지워져 있다. 전쟁 이후 베트남인들은 미국의 강력한 문화 산업으로 인해 베트남 바깥 어디를 가든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의 기억과 마주해야 했다. 베트남인의 시선으로 그린 그의 작품은 <지옥의 묵시록>에 대한 피맺힌 복수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가져온다. 동시에 베트남 혼혈인이자 미국의 대중 문화에 매혹되면서도 동시에 혐오감을 느끼는 주인공 대위의 모순적인 정체성을 표현해낸다. 그는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늘 이 작품의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명심하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또 작품에 대해 “이것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고, 겉으로 보이는 게 다인 드라마가 아니다. 겉과는 반대되는 안에 담긴 의미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전했다.
감독은 원작의 정신을 존중하면서도 이번 작품만의 독창성을 더하기도 했다. <동조자>의 희화화된 인물과 씁쓸한 코미디는 전쟁의 부조리를 떠올리게 한다. “문학에는 없는 요소와 도구들을 다 동원해서 이 상황이 갖고 있는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서의 유머를 최대한 만들려고 했다. 그냥 웃기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상황, 논리적이지 않고, 비극적이기도 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씁쓸한 유머 그런게 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소설과 제일 다른 점이 있다면 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