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가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동화로 어른의 동심까지 지켜준다면, 드림웍스는 유머와 아이러니로 동화에 어른의 맛을 가미한다. 대표적으로는 <슈렉> 시리즈가 공주와 왕자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동화를 풍자적으로 재해석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외에도 애니메이션에 현대인의 문화를 녹여낸 것이 특징인데, <슈렉>에서는 ‘Farbucks Coffee’라는 커피 하우스 체인이 있다. 실제 스타벅스 커피를 패러디한 요소로, 한 Farbucks Coffee를 나서면 길 건너편에 또 다른 Farbucks Coffee가 있다. 오늘은 유머러스하고 현대적인,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차별화를 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대표작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순위는 주관적이므로, 만약 최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없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슈렉>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메이저 반열에 올린 작품이자, 드림웍스를 대표하는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슈렉>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디즈니의 대항마로서 <슈렉>은 클리셰를 제대로 비틀며 드림웍스의 ‘스타일’을 만든 작품으로, 주인공부터 여타 동화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슈렉>은 “옛날 옛적에 사랑스러운 공주가 있었습니다. (중략) 공주는 탑의 꼭대기 층에서 진실한 사랑의 키스를 기다렸습니다”라는 동화책을 슈렉이 찢어 휴지 대용으로 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녹색괴물 슈렉은 다른 동화 속 왕자들과 달리 애벌레 내장으로 양치를 하는 등 더러운 행동을 일삼으며 성이 아닌 늪지대에 산다. 하지만 둘락을 다스리는 파콰드 영주의 수배령으로 많은 이들이 늪지대로 피신하자, 그들을 내쫓기 위해 파콰드를 찾아가면서 여정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수다쟁이 당나귀 동키와 우정을 쌓고, 피오나 공주를 구출하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 특별한 점은 동화처럼 공주와의 진실한 사랑의 키스를 했지만, 여전히 슈렉은 녹색 괴물이며 피오나 공주 역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슈렉> 시리즈는 착하고 멋진 왕자님과 예쁜 공주님의 사랑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 그 자체를 보지 않는 세상에 멋지게 한방을 먹이며 그들의 삶과 내면을 생동한 이야기로 보여준다. 삶은 늘 멋지지 않다. 때로는 실수하고, 찌질한 모습으로 더러운 행동을 할 때도 있다. 그로 인해 일부 사람은 나를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슈렉은 그에 집중하지 않는다. 자신을 싫어하는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나’를 즐기며 살아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슈렉은 녹색괴물로 태어났고, 그 부분은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인정함으로써 인생을 확신하는 것이다. <슈렉> 시리즈는 사랑 그 이후, 일상 이야기까지 다루며 기존 동화에선 볼 수 없는 살아있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쿵푸팬더>

<슈렉> 이후로 주춤하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부활시킨 명작 시리즈, <쿵푸팬더>가 드디어 4편으로 극장가를 찾았다. <쿵푸팬더 3>의 흥행 부진으로 경영난을 겪어 4편 개봉이 불투명한 상태였으나, 결국 개봉에 성공했다. <쿵푸팬더>는 드림웍스식 유머를 최대한 끌어올린 작품으로, 클리셰를 뒤트는 과정에서 오는 짜릿한 코미디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쿵푸팬더>는 평화의 계곡에서 아버지 국수 가게를 도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팬더 포는 ‘쿵푸 마스터’라는 꿈을 갖고 있다. 퉁퉁한 몸에 뱃살이 출렁거리고, 쿵푸는 배워본 적도 없지만 쿵푸의 비법이 적힌 용문서를 전수받기 위해 무적의 5인방 대결을 보러 시험장에 찾게 된다. 쿵푸 마스터는커녕, 쿵푸는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현자 우그웨이 대사부는 포를 용문서 전수자로 지정하고 모두가 이 사태에 충격을 받는다. 이후에 마을을 습격하러 오는 타이렁을 막기 위해 포는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한 수련을 거친다.

<쿵푸팬더>는 시종일관 유쾌한 텐션을 유지하며 포의 몸개그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과정에서 ‘선입견을 탈피하여 나를 믿으며 도전하면 이룰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담아내고 있다. 처음에 포는 의자에 폭죽을 주렁주렁 달고 “아이 러브 쿵푸~!”를 외치며 쿵푸 마스터의 꿈을 꿨지만, 동시에 자신이 용의 전사가 될 수 없다고도 생각하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비법서인 용문서에 기대고자 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을 때, 포는 사부의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성장한 포는 이번 <쿵푸팬더 4>에서 컴포트 존, 즉 성장보다 현재가 편한 상태를 벗어나 또 한 번의 변화를 이뤄내야 하는 과정을 담았다.
<드래곤 길들이기>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중 대중적 흥행과 팬덤이 모두 탄탄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인 취향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이 주를 이루던 드림웍스에서 청소년의 성장을 다룬 작품으로, 겁 많고 왜소한 바이킹 족장의 아들, 히컵이 꼬리가 잘린 드래곤 투슬리스를 만나 의지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용맹함이 최고 가치로 평가되는 바이킹의 세계에서 히컵은 아웃사이더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날지 못하는 드래곤’은 쓸모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투슬리스 역시 자신과 같은 취급을 받을까 염려한다. 투슬리스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그는 인조 꼬리를 만들어 이를 조종, 결국엔 그의 등에 올라타 하늘을 난다.

작품은 서로 다른 존재가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히컵과 투슬리스의 우정으로 표현한다. 작중에서 바이킹족은 드래곤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괴물로 취급한다. 하지만 아웃사이더, 즉 집단 밖에 있기 때문에 히컵은 투슬리스를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그와 유대를 쌓아간다.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는 총 3부작으로, 새로운 악당의 등장이나 갈등을 만들지 않고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다른 존재와의 이해'를 강조하며 이야기의 결말을 완벽하게 맺었다. 고양이가 주요 모티브인 투슬리스의 귀여움도 또 다른 재미. 목덜미를 긁어주면 좋아하는 장면이나 드래곤닢(캣닢)에서 좋아서 뒹구는 모습 등은 고양이 덕후의 마음에 불을 지핀다.
<이집트 왕자>

드림웍스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자, 박평식 평론가가 “탄성, 다시 탄성!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었다”라는 평가와 함께 9점(이자 그의 최고점)으로 평가한 작품이다. 드림웍스의 몇 안 되는 2D 애니메이션인 <이집트 왕자>는 이집트에서 백성을 구출한 모세의 여정을 그리고 있는데, 작품의 예술성으로 인해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팬들 사이에선 여전히 드림웍스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손꼽힌다.


성경의 두 번째 권, 출애굽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집트 왕자> 속 시대는 히브리인이 모두 이집트의 노예였던 때로, 이집트 왕 세티는 히브리인이 믿는 예언자의 출현을 두려워하여 갓 태어난 모든 히브리인 남아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아들을 살리고 싶었던 여자 요게벳은 광주리에 아이를 넣어 나일강에 떠내려 보내고, 죽을 위기를 수차례나 넘긴 끝에 아이는 이집트 왕비에게 발견되어 ‘모세'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대학살을 피해 운 좋게, 혹은 동포를 몰살한 원수의 손에 운 나쁘게 자란 모세는 어느 날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깨닫고 신의 계시를 받게 된다. 이후엔 그 유명한 10가지 재앙을 일으키며 홍해를 갈라 고통받던 히브리인을 인도한다. <이집트 왕자>가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탄탄한 스토리뿐만 아니라 뛰어난 미장센도 있다. 홍해를 갈라 히브리인이 그 사이를 건너는 장면에서, 바다 장벽으로 얼핏 비치는 고래와 이집트 그림으로 표현된 추격전, 힘겹게 돌을 나르는 작은 히브리인들과 거대한 신의 조각상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이 작품을 단순한 ‘애니메이션’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메가마인드>

절대 선이라는 건 존재할까. 빌런이 주인공인 <메가마인드>는 전통적인 슈퍼히어로 영화 공식을 뒤튼 작품이다. <메가마인드>는 ‘<슈퍼맨> 시리즈의 메인 빌런, 렉스 루터가 슈퍼맨을 쓰러뜨렸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주인공은 히어로 메트로맨의 라이벌인 메가마인드로 그는 천재적인 두뇌로 기발한 발명품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늘 중요한 부분에서 실수를 해 메트로맨에게 지고 감옥에 갇히는 게 일상인 뭔가 엉성한 빌런이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란 메트로맨과 달리, 메가마인드는 감옥에서 태어나 죄수들의 손에 자라며 그들의 탈옥을 돕는다. 여차저차 학교에 가게 된 메가마인드는 실수 하나에도 동급생인 메트로맨이 구박하여 결국 왕따가 된다. 결국 그는 “나보고 나쁜 놈이라고 그러는데, 아예 슈퍼 악당이 되준다!”라고 결심하고 메트로맨의 라이벌 역을 자처한다.

사회의 냉대에 흑화한 빌런,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와 다를 바 없지만, 영화는 ‘메가마인드가 메트로맨을 이기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늘 그렇듯 메트로맨이 이길 줄 알았던 전투에서 메가마인드가 이기면서 그는 기묘한 우울감을 느낀다. 선이 없는 세상에서 악은 의미가 없다며, 오히려 메트로맨을 그리워한다. 그동안의 전투에서, 그는 무고한 시민을 실제로 죽이거나 악랄한 짓을 한 적은 없다. 결국 메트로맨을 그리워한 그는 히어로를 만들기에 이른다. 스스로를 악당이라 칭했지만 누구보다 히어로다웠던 그의 행적으로 ‘절대 선과 절대 악’의 개념을 부순다. <메가마인드>는 히어로 영화 클리셰를 비틂으로써 유색 인종에 대한 선입견을 이야기한다.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 손에 길러진, 남들과 다르게 생긴 ‘유색인’ 메가마인드는 어떤 행동을 하던 오해를 받고, 잘생긴 외모에 상류층 가정에서 자란 메트로맨은 무슨 일을 하던 칭찬을 받는다. 오로지 외모와 배경만으로 악인과 선인을 분류한 셈이다. 실제로 미국 부촌에서 아시아 남성이 자신의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하자, 그가 이 집의 주인일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백인 여성이 그를 맹렬하게 저지하는 영상이 올라와 화제가 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