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너희들, 상은 받나?" 5월 1일 개봉한 <스턴트맨>은 통쾌한 액션 영화이면서 동시에 절절한 러브 레터에 가깝다. 누구를 향한? 바로 카메라 앞에 서면서도 그 누구보다 본인들의 존재를 감춰야 했던 스턴트맨들을 향한 사랑이다. 스턴트맨 콜트(라이언 고슬링)와 영화감독 조디(에밀리 블런트)의 고군분투는 '스턴트맨' 출신 '감독' 데이빗 레이치의 손에서 한결 더 생생하게 그려진다. 스턴트 배우로 영화계에 헌신하는 사람 중 일부는 영화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기까지 하는데, 그렇게 스턴트 배우(혹은 스턴트더블)에서 영화계에 다른 분야까지 진출한 영화인들을 소개한다. (현재 활동 중인 영화인 중에서 선정했다)
데이빗 레이치 & 허명행
<스턴트맨>의 감독 데이빗 레이치가 스턴트 배우 출신인 건 꽤 유명한 사실인데, 공교롭게도 한국 극장가에서 맞붙게 된 <범죄도시4>의 감독 허명행도 스턴트 배우 출신이다. 두 사람 다 스턴트 배우로 경력을 쌓다가 무술감독/스턴트 코디네이터로 액션 장면을 기획하는 직책을 맡았었고, 장편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데 성공했다.

데이빗 레이치는 1995년부터 스턴트 배우로 활동했는데, 브래드 피트, 장 클로드 반담 등의 스턴트더블(해당 배우의 스턴트 대역)을 맡은 바 있다. <본 얼티메이텀>, <엑스맨 탄생: 울버린> <트론: 새로운 시작> 등 여러 영화에서 스턴트를 기획하는 '스턴트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하다 동료 채드 스타헬스키와 함께 <존 윅>으로 장편 영화 연출에 데뷔했다. <존 윅> 크레딧에는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는데, 채드 스타헬스키와 공동 연출을 진행했음에도 할리우드감독조합과 프로듀서조합의 규정 때문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릴 수 없어 이렇게 크레딧을 분배했다. 이후 그는 <아토믹 블론드>, <데드풀2>, <분노의 질주: 홉스&쇼>를 연출하며 기깔나는 액션장면을 뽑아내는 액션맛집으로 이름을 올렸다.


허명행은 1999년부터 스턴트배우로 한국영화계에 발을 들였는데, 서울액션스쿨에 들어간 후 정두홍 무술감독과 지내며 한국영화 액션계에서 점점 두각을 드러냈다. 2000년대 중반 <중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시작으로 무술감독으로 활동하게 됐는데, 대표작이라면 역시 <신세계> 엘리베이터 장면이 있다. 허명행은 특유의 큰 덩치로 마동석의 스턴트더블로 활동하게 됐는데, 이전부터 돈독한 사이였던 두 사람은 <범죄도시> 시리즈로 힘을 모았다. 마동석이 기획하고, 허명행이 무술감독으로 힘을 모은 <범죄도시>가 큰 성과를 거두게 되며 마동석은 허명행을 <황야>와 <범죄도시4>의 연출로 선택해 그의 감독 데뷔를 도왔다. 그래서 허명행 또한 <황야>에선 마동석의 기존 영화에서 본 적 없는 액션 스타일을 과시하며 마동석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범죄도시4>에선 그의 주특기 복싱을 활용한 방식으로 마동석을 빛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보이는 감독이긴 하나 적어도 액션에선 역시 명불허전이란 평가를 받는다.

시무 리우

'정 김 형' 시무 리우는 배우로 자리 잡기까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여러 전략을 짰는데, 그중 하나가 그 유명한 '포토 스톡'의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스턴트 배우였다. 시무 리우는 마샬아츠를 배워 몇몇 작품에서 스턴트 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스턴트 경력을 전문적으로 쌓은 것은 아니라서 스턴트 경력은 10년도 되지 않지만,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에게 엄청난 기회를 잡는 발판이 됐다. 마블 스튜디오에서 동양인 히어로 '샹치'를 준비할 당시 그의 마샬아츠 실력이 눈에 들어온 것. 캐스팅 발표 당시만 해도 <김씨네 편의점> 정 김 역의 이미지가 너무 세서 '히어로' 역할에 적당한가 기우가 있었으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개봉한 후 그가 곧 샹치란 것을 관객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점 CG 액션으로 채워지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맨몸 액션을 제대로 보여준 캐릭터와 배우에게 호평을 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 촬영 전 5개월 동안 액션 훈련에 전념했다는 시무 리우는 몇몇 시퀀스에서 과거 홍콩 액션 영화의 향수까지 일으키며 박수를 받았다.

조 벨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하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전 세계에 알린 스턴트 배우, 조 벨. 1995년부터 스턴트 배우로 활동한 조 벨은 2003년 <킬 빌> 2부작에서 우마 서먼(브라이드 역)의 스턴트더블로 쿠엔틴 타란티노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에서 그와 호흡이 잘 맞았는지, 쿠엔틴 타란티노는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함께 한 '그라인드 하우스' 프로젝트에서 <데쓰 프루프>를 연출할 때 조 벨을 주연배우로 채용했다. <데쓰 프루프>는 스턴트차량을 타고 다니며 여성들을 희롱하는 마이크(커트 러셀)가 다음 희생자들로 점찍은 여성들에게 호되게 당하는 내용을 다뤘는데, 여기서 조 벨은 '조 벨' 역으로 출연해 전 세계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차량 앞에 매달려 있는 장면을 비롯, 영화의 하이라이트급 장면에서 조 벨의 경력과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영화 마지막, 속이 시원해지는 뒤돌려차기 또한 조 벨의 몫. 타란티노는 이후 작품에서 조 벨을 배우로 이름을 올리며 그의 연기에 경이를 표했다. 조 벨은 2024년 영화 <프리 폴>이란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다. '암벽 등반 액션 스릴러'라는 이 영화는 제커리 레비가 주연으로 발탁됐다.



성룡 & 견자단


정말 뻔하지만, 그래도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는 배우들. 중화권 액션 스타 성룡과 견자단도 스턴트 배우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 주연 배우로까지 성장한 배우들이다. 성룡은 스턴트 배우 당시 유명한 일화도 있는데, 이소룡과 액션 장면을 찍던 중 합이 맞지 않아 이소룡에게 얻어맞았다고. 성룡은 이 일화를 직접 밝히면서 "그때 코를 맞아서 코가 더 커졌다"며 자신의 콤플렉스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견자단도 마찬가지. 같은 사부 아래서 수련한 이연걸은 각종 무예 대회에서 우승한 엘리트로 곧바로 배우로 데뷔한 데 비해, 견자단은 스턴트 배우로 먼저 활동하다 나중에 배우로 데뷔한 케이스다. 홍콩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주춤했던 성룡과 달리, 견자단은 할리우드에 진출한 후 인지도가 훨씬 높아진 케이스. 성룡과 견자단 모두 최근 행보에선 팬들을 실망시키며 인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스턴트 배우 출신 배우를 말할 땐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사례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