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턴트맨>은 ‘영화인의, 스턴트맨에 의한, 영화를 위한’ 영화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스턴트맨에 대한 경의가, 액션/코미디/로맨스 등 관객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요소가 흘러넘치는 영화 <스턴트맨>이 5월 1일 개봉한다. <존 윅>(2014), <데드풀2>(2018), <불릿 트레인>(2022)의 감독 데이빗 레이치가 연출을 맡고 <바비>(2023), <퍼스트맨>(2018)의 라이언 고슬링, <오펜하이머>(2023),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의 에밀리 블런트가 주연을 맡았다.
이쯤에서 미리 말하자면 <스턴트맨>은 관객의 머릿속을 말끔하게 비워줄, 지극히 ‘팝콘 무비’에 가깝다. 화려한 액션, 유쾌한 대사, 마음을 움직이는 러브 신이 가득한 대신 서사의 개연성과 캐릭터의 신선함 등은 미약하다. 이러한 영화의 약점에도 당연하다는 듯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폭파시키는 <스턴트맨>의 패기에 감명받을 따름이다.
*이하 <스턴트맨>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연인 관계인 스턴트맨 ‘콜트’(라이언 고슬링)와 영화감독 ‘조디’(에밀리 블런트)가 함께 영화를 찍으며 시작한다. 유명 배우 ‘톰’(애런 존슨)의 스턴트를 맡은 콜트는 촬영 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하고 영화계를 잠정 은퇴한다. 콜트는 더 이상 스턴트를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조디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고 잠적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조디는 신작 <메탈 스톰>의 연출로서 영화를 찍게 된다. 그러던 중 영화의 제작자인 ‘게일’(해나 워딩엄)이 콜트를 현장으로 불러내고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문제는 주연 배우인 톰이 사라졌다는 것. 게일은 콜트에게 톰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콜트는 조디의 꿈을 위해 톰을 찾아 나선다.
<스턴트맨>은 초반부에 사랑하는 두 연인이 헤어지게 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자신감 넘치는 스턴트맨 콜트와 그에게 빠진 여자 조디의 모습을 경쾌한 음악과 짧고 빠른 쇼트 전환으로 리드미컬하게 전개한다. 이런 영화의 접근법은 후에 불운의 사고로 그들이 헤어지고 다시 만날 때까지 이어진다. 이로 인해 이들의 뜨거운 첫사랑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영화는 중반부로 넘어가며 ‘맥시멀리즘’의 끝을 달린다. 육탄전과 총격전, 카 체이싱과 자동차 전복씬 등 데이빗 레이치 감독이 특장점인 액션이 쉬지 않고 터진다. 여기에 <데드풀 2>(2018)에서 갈고닦은 말장난 가득한 대사를 얹는다. 콜트와 조디의 팽팽한 밀고 당기기까지 가세한다. <스턴트맨>은 중반부에 들어 다소 속도감이 떨어지며 루즈해진다는 평을 듣는다. 이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콜트가 그러하듯 연출뿐 아니라 서사까지 가득 채우고자 하는 영화가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조디를 위해 실종된 주연 배우 톰을 찾아 나섰다가 사건에 휘말리는 콜트, 신작 <메탈 스톰>을 촬영하며 콜트를 만나 또다시 오해를 하게 되는 조디 그리고 콜트를 함정에 빠뜨리는 톰을 비롯한 빌런.

이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함정의 빠져 진실에 다가가려는 콜트와 그를 저지하려는 빌런의 대결이다. 이 과정에서 <스턴트맨>의 화려한 액션은 빛을 발하지만 콜트를 상대하는 빌런 캐릭터가 많아질수록 이야기는 산만해지고 관객의 집중력은 떨어져간다. <스턴트맨>이 채워 넣은 것은 또 있다.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주 등이 곳곳에 숨어있다. <킬 빌>(2003), <메멘토>(2000),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델마와 루이스>(1991) 등 영화계를 빛낸 작품들을 언급하거나 은유하는 장면 등은 영화 팬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스턴트맨>의 백미는 콜트와 조디가 힘을 합쳐 안타고니스트를 물리치는 후반부에 있다. 이는 극 중 영화 <메탈 스톰>을 완성하는 과정과 맞물려있다. 메인 빌런 톰을 촬영장으로 불러들인 조디는 영화감독답게 그를 곤경에 빠뜨릴 판을 짜고 스턴트맨 콜트가 그 안에 뛰어들어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다. 일련의 과정은 <메탈 스톰>을 촬영하는 과정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영화 그 자체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감독 데이빗 레이치는 “이제는 잃어버린 예술이 된 기술들을 활용함으로써 스턴트맨 정신에 충실한 액션을 전하고 싶었다”며 영화의 방향성을 시사했다.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 장 클로드 반담 등의 스턴트맨 출신이기도 한 데이빗 레이치는 스턴트맨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자 그 어느 작품보다 훌륭한 스턴트 액션을 담고자 했다고. 대표적인 예가 ‘캐논 롤’이다. 자동차를 공중에서 회전시키는 스턴트 기술인 캐논 롤은 <스턴트맨>에서 완벽하게 구현되어 기존의 기록을 넘어섰다. 스턴트맨 ‘로건 홀리데이’는 이 영화에서 차량을 총 7바퀴 회전시켜 기네스북에도 오른 <007 카지노 로얄>(2006)의 기록을 18년 만에 깼다.

CG를 최소화하고 스턴트 연기만으로 액션씬을 촬영했다는 <스턴트맨>은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설 곳이 사라지는 스턴트맨의 현실을 담아낸다. 콜트를 함정에 빠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딥페이크’(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는 현재 영화를 포함한 영상미디어 업계의 뜨거운 감자이다. 국내에서는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2024)의 배우 손석구의 아역의 얼굴에 손석구의 어린 시절 얼굴을 수집해 배우에게 입혀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딥페이크 기술은 이렇게 시간에 구애받지 않게 장면을 구현할 수 있는 신기술이자 배우들의 고유성을 위협하는 경계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스턴트 예술을 ‘이제는 잃어버린 예술’이라고 칭하는 데이빗 레이치 감독의 말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한편, 데이빗 레이치 감독은 영화가 끝난 후 <스턴트맨> 촬영 중 고생했던 실제 스턴트맨들을 주인공으로 한 비하인드 씬을 담아 감동을 선사한다.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땅바닥에 처박히거나 엄청난 높이에서 몸을 던지고, 뒤집어진 차량에서 겨우 빠져나오는 스턴트맨의 모습은 경이롭게 보인다.
엔딩크레딧 이후 쿠키 영상이 있으니 끝까지 자리를 지키길 바란다. '쿠키 영상'이지만 사실상 영화 <스턴트맨>의 진짜 엔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