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영화 수입 10년차, 취미 아니야...' 소지섭이 PICK한 그 영화들

이진주기자
소지섭 (사진=51k)
소지섭 (사진=51k)

2014년, 소지섭은 수입배급사 찬란과 협업해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을 국내에 소개했다. 이후 소속사 51k와 함께 2015년부터 수입배급사 찬란에 연 단위 투자를 하며 다양성 영화 수입에 힘쓰고 있다. 덕분에 국내 예술 영화 팬들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소지섭은 인터뷰를 통해 “다양성 영화에 대한 투자는 능력이 된다면 계속하고 싶다. 손실이 크긴 하지만 그동안 내가 받은 걸 돌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지속할 것이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또한 “이 일은 취미가 아니다. 단순히 돈이 많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그건 아니다.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다”라고 영화 수입에 대한 자긍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의 행보에 많은 한국 시네필들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다.


<악마와의 토크쇼>(2024)

〈악마와의 토크쇼〉
〈악마와의 토크쇼〉

2024년 소지섭의 선택은 공포영화였다. 2023년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영화제(SXSW),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9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충격에 빠뜨렸다.

영화는 1977년 핼러윈 전날 밤 있었던 생방송 사고 영상을 공개하며 시작된다. 47년 전, ‘올빼미 쇼’의 MC 잭 델로이(데이빗 다스트말치안)는 저조한 시청률을 극복하기 위해 영매 크리스투(페이샬 바지)와 마술사 카마이클(이안 블리스), 악마에 빙의된 소녀 릴리(잉그리드 토렐리) 등을 게스트로 초대해 생방송 토크쇼를 진행한다. 이들의 등장에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각기 다른 의견들이 맞붙는다. 특히, 사이비 종교의 단체 분신자살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생존자 릴리에게서 악마를 소환하자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며 스튜디오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이에 위험성을 감지한 일부는 방송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시청률에 목이 마른 일부는 방송을 강행하고자 한다.

〈악마와의 토크쇼〉
〈악마와의 토크쇼〉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패배하고 범국가적인 좌절감과 공포감에 젖어있었다. 폭력에 무감해진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의심하고 불신하기 시작했고 미디어는 이를 기반으로 이득을 취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여전히 존재하는 미디어 업계의 성과주의를 풍자하는 동시에 각 개인에게 ‘불신’의 씨앗을 던진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를 취하면서 영화의 관객을 올빼미 쇼 객석에 앉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영화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의심하게 된다.


 

<썸머85>(2020)

〈썸머85〉
〈썸머85〉

프랑스의 감독이자 각본가 프랑수아 오종의 이름이 국내에 알려지게 된 것에는 상당 부분 소지섭과 수입배급사 찬란의 몫이 크다. 2012년 <인 더 하우스>를 시작해 <영 앤 뷰티풀>(2013),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2014), <프란츠>(2017), <두 개의 사랑>(2017), <신의 은총으로>(2019) 등 대부분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작품은 소지섭의 투자와 찬란의 수입 혹은 배급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그중 2020년 개봉한 영화 <썸머 85>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모두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두 남자의 사랑을 그린다. 다비드(벤자민 부아쟁)는 바다에 빠진 알렉스(펠릭스 르페브르)를 구해주며 인연을 맺게 된다. 16살의 알렉스는 목숨을 구해준 다비드에게 홀린 듯 빠져든다. 알렉스는 다비드에게 저돌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다비드 역시 그에게 자신을 맡긴다. 그러나 모든 연인이 그러하듯 이들도 사랑의 저울 위에 오르며 위기를 맞는다.

〈썸머85〉
〈썸머85〉

<썸머 85>는 에이단 체임버스의 소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를 원작으로 한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17살이지만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기까지는 35년 가까이 걸렸다. 언젠가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 것이라 다짐했다”며 원작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인 사랑을 십 대 소년의 뜨거운 육체에 투영한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그간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두 개의 사랑> 등의 작품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파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썸머85>는 순한 맛이니 소지섭의 선택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으로 입문해 보시길.


<유전>(2018), <미드소마>(2019)

〈유전〉
〈유전〉

현재의 아리 에스터는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감독이지만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유전>(2018)으로 국내에 처음 알려졌다. 이 역시 소지섭의 눈썰미 덕이다. 아리 에스터의 첫 장편영화인 <유전>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되며 영화계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유전>은 그레이엄 가족의 숨겨진 비밀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진행된다. 미니어처 조형사 애니 그레이엄(토니 콜렛)과 정신과 의사인 남편 스티브(가브리엘 번)는 아들 피터(알렉스 울프)와 딸 찰리(밀리 샤피로)와 함께 애니의 어머니 엘렌(캐슬린 찰팬트)의 장례식을 치른다. 다소 무심해 보이는 애니와 기괴한 조문객들의 모습은 자못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후 사고로 딸 찰리가 사망하고 실의에 빠진 애니는 모임에서 만난 친구 조안을 통해 강령술을 알게 되고 찰리를 부르는 의식을 치른다.

〈유전〉
〈유전〉

<유전>에 대한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탄탄한 구성’, ‘클리셰를 비튼 신선함’ 등의 호평과 ‘모호한 전개’, ‘허무한 결말’ 등의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분명한 것은 <유전>을 통해 국내에 아리 애스터 감독의 마니아층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해인 2019년, 또 하나의 문제작 <미드소마>가 개봉하며 더욱 탄탄한 팬덤을 구축하였다. <미드소마>의 수입 역시 소지섭과 찬란의 합작.

〈미드소마〉
〈미드소마〉

​<미드소마>는 가족을 잃은 심리학과 학생 대니 아더(플로렌스 퓨)와 그의 남자친구 크리스찬 휴즈(잭 레이너) 그리고 그 친구들이 스웨덴 헬싱글랜드에 위치한 마을 호르가의 축제 ‘미드소마’에 참여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외부와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호르가의 주민들은 찬란한 햇살 아래 흰옷을 입은 채 이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을 춘다. 그러나 비상식적인 의식들이 시작되고 대니 일행은 호르가 주민들이 주도하는 미드소마의 기괴한 행위들에 충격을 받게 된다.

〈미드소마〉
〈미드소마〉

<유전>과 <미드소마>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공포물에 스타일리시하게 녹여낸 작품이다. 극 중 인물들은 일련의 불가해한 사건 속에 각각 ‘악마성의 대물림’(<유전>)과 ‘집단에 대한 동화’(<미드소마>)를 경험하게 된다. 일면 진부한 이 이야기는 아리 에스터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로 독특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두 작품을 통해 아리 애스터는 단숨에 공포, 오컬트 장르의 독보적인 신예로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