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무한도전>이 있다면, 미국엔 <심슨 가족>이 있다. 장기 방영을 한 프로그램에서 '유머'로 내뱉었던 말이 훗날 현실에서 벌어지면서 이른바 '예언'이 됐다.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 못지않게 <심슨 가족>도 없는 게 없는 프로그램으로 두 프로그램은 '아카식 레코드'(세상 모든 일이 기록돼있다는 가상의 무언가), '일루미나티'(세상을 조종한다는 음모론이 있는 비밀결사 단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심슨 가족>은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없는 게 없다'는 명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심슨 가족>에서 예언한 순간은 어떤 것이 있는지 몇몇 사례를 모았다.
체포된 미 대통령 (주어 없음)

풍자 코미디 <심슨 가족>은 다양한 유명인사들을 출연시켜 그들의 행적을 비꼬는 코미디를 자주 구사했다. 그중 도널드 트럼프는 옛날부터 좋은 타깃 중 하나였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어린이 관련 정책에 큰 돈을 써서 미국이 파산 직전이라는 묘사(시즌 11 17화, 방영 후 16년 후 실제로 당선됐다)까지 등장하기도.

최근에 화제가 된 장면은 그보다 더 오래된 시즌에서 등장했다. 시즌 5 14화 '리사 vs 스테이시 말리부'의 딱 한 줄이다. 스테이시 말리부는 바비 인형 같은, 아이코닉한 완구이다. 이 에피소드는 리사가 스테이시 말리부의 여성 비하에 강경 대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데, 막판에 뉴스 앵커가 한참 스테이시 말리부 뉴스를 전한 후 "아참, 대통령이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고 합니다"라는 뉴스를 언급한다. 즉 대통령이 사고를 치는 것보다 완구 관련 뉴스가 더 화제라는 것을 향한 풍자인 것. 하지만 이번에 '전 대통령'이 '성추행'과 '입막음'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 그리고 그 뉴스에도 현실의 지지자들이 요지부동이라는 것이 이 에피소드의 장면과 일맥상통해 다시금 미국 누리꾼들의 이목을 모았다.
대스타 비틀즈의 뒤늦은 답장


원래 어떤 그룹이든 멤버 이름을 호명하다 보면 한 명쯤 생각이 안날 때가 많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선봉장 비틀즈도 비슷하다. 다들 폴 매카트니, 존 레논, 조지 해리슨은 바로 떠올리는데 링고 스타는 쉽게 잊곤 한다. <심슨 가족>의 마지 심슨은 그 링고 스타의 열성팬이었다. 시즌 2 18화에서 그는 미술을 해도 될지 의구심이 들었던 젊은 시절, 링고 스타에게 그의 초상화를 보내고 의견을 물었다. 답장은 없었고, 마지는 미술을 포기한다. 그리고 몇 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자신에게 보낸 모든 편지에 답장을 보내던 링고 스타가 마침내 마지의 초상화에 답장을 보낸다. 몇 년간 답장해야 할 정도의 팬레터와 일일이 답장하는 상냥함으로 '인기 없는 멤버'라는 링고 스타의 오명을 잘 씻어준 에피소드다.(실제로 그는 꽤 오랫동안 팬레터에 답장을 보냈다)

이 회차가 '예언'이 된 이유는 비틀즈의 한 멤버가 두 여성 팬이 보낸 녹음 메시지를 뒤늦게 발견하고 약 50년 만에 답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다만 주인공은 링고 스타가 아닌 폴 매카트니다. 팬들의 테이프는 이곳저곳을 떠돌다 한 자동차 판매원이 입수한 후에야 폴 매카트니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두 팬은 꽤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않았으나 폴 매카트니의 답장을 받으면서 다시 만났다고 한다.
타이타닉 잠수정 사고

우연이라도 웃어넘길 만한 일만 예언됐다면 좋으련만, 때때로 일어나지 않았을 법한 사고가 우연의 일치가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 <심슨 가족> 시즌 17 10화는 호머가 '진짜 아빠'를 만났다는 내용을 그린다. 오랜 시간 에이브라함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메이슨 페어뱅크스와의 DNA 검사 결과 그가 친부로 확인된다(물론 여기엔 반전이 있다). 마침내 조우한 부자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심해 탐사정을 타고 바다 깊숙이 잠긴 보물선을 구경하는 것. 이는 2023년 있었던 '타이타닉호 잠수정 사고'를 연상시킨다. 잠수정으로 심해에 가라앉은 배를 구경하는 장면도 그렇고 사고 피해자 중 대부호 아빠와 아들이 있었다는 것도 그렇다. 사고가 참사에 가까웠던 만큼 자주 언급되는 사례는 아니지만 '없는 게 없는'이란 명성에 걸맞은 예언이 아닌가 싶다.
조 바이든 & 카말라 해리스 콤비

<심슨 가족>의 예언은 특별 단편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2019년 제작진이 공개한 특별 단편 <웨스트 윙 스토리>는 당시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더 스쿼드'라고 불리는 미 하원 민주당 의원 네 사람의 뮤지컬을 담았다. 해당 장면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넘버 '아메리카'를 패러디한 것인데, 여기서 예언이라고 불리는 부분은 막판에 등장하는 군무 장면이다. 이 장면에 조 바이든 바로 옆에 카말라 해리스가 있는데,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녔다. 두 사람의 관계가 도드라진 건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거쳐 해리스가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활약한 대통령 선거 시점이었다. 이 특별 단편은 2019년 8월경 공개한 영상이고. 그래서인지 <심슨 가족>을 총괄하는 제작자 데이비드 실버맨도 2021년 해당 장면을 SNS에 올리며 "우리가 또 미래를 예측한 걸까?"라고 말하기도.
20세기 폭스와 디즈니의 인수

그래도 <심슨 가족>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라면, 자신들의 운명마저 예언한 것이 아닐까. 1998년 방영한 시즌 10 5화에선 '20세기 폭스' 마크 아래에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부서'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유머였는데, 디즈니는 이후 <스타워즈> 제작사 루카스필름, 협력사였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떠오르는 신예 마블 스튜디오를 인수하는 등 어마어마한 확장을 이어갔다. 그래도 유서 깊은 '20세기 폭스'를 인수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2018년 양사의 주주들에게 인수 최종 승인을 얻으며 20세기 폭스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산하 '20세기 스튜디오'가 됐다. 20세기 폭스 텔레비전에서 제작하고 FOX 채널로 방영하던 <심슨 가족>은 그렇게 디즈니 패밀리에 합류하며 FOX 채널에서 방영 후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OTT 플랫폼 '디즈니+'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