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대선 유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선후보가 피격 당했다. 그를 겨냥해 쏜 총알은 그의 귀를 스쳐 지나갔고, 그는 괜찮다고 주먹을 치켜올렸다. 어떤 의미로든, 역사에 남게 될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흔든 이 피격 뉴스는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미국 연예산업도 그 잔불에서 피할 수 없었다. 어처구니 없는 의문의 공격에 입장을 표명한 배우부터, 허겁지겁 편성표를 바꿔야 했던 방송국까지. 트럼프 피격 사건에 어리둥절 등판해야 한 이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자작이라는 사람들 모두 미쳤다"
팀 로빈스
트럼프 피격 이후 사태는 일파만파 퍼졌다. 가장 화제가 된 부분은 한 국가의 대선 후보인데 경호가 너무나도 허술했다는 점이었다. 사건 발생 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는 일찌감치 목격됐다고 한다. 현장에 연설을 들으러 온 시민 중 일부는 어떤 사람이 총을 가지고 있는 것, 혹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고 신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남자에 대한 조치는 없었고, 결국 그가 트럼프의 귀를 맞추기 전까지 아무런 제재도 없었단다. 그래서 일각에선 '경호원들이 민주당의 사주를 받았다'나 '지지율 상승을 노린 트럼프 측의 자작극이다' 같은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서 팀 로빈스는 입장을 밝혀야 했다. 왜? 그가 연출, 주연한 1992년 영화 <밥 로버츠>의 내용 때문이다. <밥 로버츠>는 상원의원에 도전한 밥 로버츠(팀 로빈스)가 내부자 폭로로 선거에서 패배할 뻔하지만 누군가의 저격으로 하반신 마비가 되면서 끝내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내용을 그린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허술한 경호 상태와 해당 내용을 예시로 들며 트럼프 측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팀 로빈스는 SNS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어제 일어난 암살 시도는 진짜”라며 “이 시도가 진짜였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라고 자작극 혐의를 완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또 해당 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부상도 2명 있다)을 지적하며 “무분별한 증오에서 벗어나라”고 음모론자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아니, 이거 우리가 만든 거 아니라고;
심슨 가족
반면 또 한 번 '예언' 소리를 듣고 있는 <심슨 가족>. <심슨 가족>은 오랫동안 방영한 TV애니메이션 시리즈인 만큼 작품에서 코미디로 그렸던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나곤 했다. '대통령 트럼프', '20세기폭스 인수한 디즈니' 등이 <심슨 가족>의 예언 장면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사고 터지면 <무한도전>에서 찾아보듯, 해외에선 <심슨 가족>을 찾아보기 마련. 그래서 이번 피습 사건 이후 트럼프가 관에 누워있는 장면이 SNS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이 장면은 실제 <심슨 가족>에 있는 장면이 아니라고 판명됐다.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사이트를 통해 누군가 조작한 가짜였던 것. 사실 <심슨 가족>에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는 그 자체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어 아예 <심슨 가족>표 트럼프 짤을 생성하는 사이트까지 있을 정도. 그런데 <심슨 가족>이 워낙 많은 예언 장면을 남긴 탓에 이 장면이 <심슨 가족>에서 나왔던 장면이라고 사람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바이럴 되고 만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 이 짤에 '2024년 사망'이란 가짜 자막까지 넣으며 더 그럴싸하게 꾸민 탓에 결국 <심슨 가족> 총괄 프로듀서가 직접 "이건 우리 방송에 나온 적 없는 가짜입니다"라고 언론에 메일을 보냈다고.
이 영화는 좀;
편성 바꾼 방송국들

트럼프의 피습 소식은 말 그대로 전 세계를 뒤흔들었는데, 뉴질랜드에도 그 여파가 미쳤다. 뉴질랜드 국영방송국(TVNZ)은 트럼프 피습 소식을 전해 듣고 후다닥 편성을 바꿔야 했다. 이들이 원래 방영할 영화는 <헤드 오브 스테이트>로 크리스 록이 주연을 맡은 코미디다. 영화는 슬슬 정치계를 떠나려고 했던 의원이 의도치 않게 대선후보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렇게 보면 문제 될 것이 없어뵈는데, 이 영화 초반부에 대통령과 부통령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설정이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그래서 TVNZ는 해당 영화 대신 <성질 죽이기>로 편성을 변경했다.

영국의 채널 4도 방영 중 편성을 변경해야 했는데, 또(!) <심슨 가족> 때문이다. 당시 채널 4는 <심슨 가족> 시즌 7 전체를 마라톤 방송 중이었는데, 하필 시즌 7 16화 ‘우상파괴자 리사’(Lisa the Iconoclast)에서 연설 중인 리사를 저격하는 장면이 그려졌기 때문. 그래서 채널 4는 부랴부랴 시즌 7 16화 대신 시즌 30의 에피소드로 교체 방영했다.
대통령 습격 장면 공개 후 진짜 피습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마블의 수난시대일까. 마블 스튜디오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최근 부진한 성적을 타개하고자 전체적으로 공개 일정을 조정했다. 원래대로였다면 지난 5월에 개봉해야 했을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7월 12일에야 티저 예고편을 공개한 이유다. 해당 예고편에선 캡틴 아메리카 자리를 물려받은 샘 윌슨(안소니 맥키)과 대통령이 된 선더볼트 로스(해리슨 포드)의 만남이 그려졌다. 그리고 스티브 로저스라는 걸출한 인물의 이름을 이어받은 샘이 그에 걸맞은 활약상을 펼치는 과정이 담겼다.

문제는 하필 이 예고편에서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일당이 그려진 것. 영화에서 연설을 하던 로스 대통령은 의문의 사내에게 습격을 당하며 위기에 처한다. 이런 장면이야 별 문제 없는, MCU라는 가상의 세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는데 하필 예고편 공개 후 트럼프 대선후보가 피습을 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 물론 이건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우연의 일치이니 비난이나 음모론을 진지하게 제시하는 사람은 없지만, 마블 입장에선 오래 준비한 영화가 작품 외 이슈로 이목을 끌게 됐으니 식은땀이 좀 날 것으로 보인다. 마블 스튜디오는 이전에도 몇몇 작품에서 전염병, 러시아 내전 등을 묘사했다가 전면 수정한 적이 있었다는데, 이 정도면 여기도 <심슨 가족> 못지 않은 예언서급 적중률이지 않나 싶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