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렌치 퀴진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 <프렌치 수프>가 6월 19일에 개봉한다. <프렌치 수프>는 20년간 함께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온 파트너 도댕과 외제니의 미식 로맨스로 요리사와 미식가의 독특하고 미묘한 관계를 담아낸다. 데뷔작 <그린 파파야 향기>로 제46회 칸영화제 황금 카메라상과 두 번째 영화 <씨클로>로 제5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거장 트란 안 훙 감독이 연출을 맡아 빛과 색채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프렌치 수프>는 작가 마르셀 루프의 소설 「도댕 부팡의 삶과 열정」을 자유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외제니의 죽음 이후 남은 미식가 도댕의 삶에 초점을 맞췄던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외제니와 도댕의 멜로를 중점적으로 그려낸다. 과거 실제로 부부였던 줄리엣 비노쉬와 브누아 마지멜이 영화 속 연인으로 재회하며 애틋함을 더한다.

20세기 초 프랑스 유명한 미식가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존경받는 요리사 외제니(줄리엣 비노쉬)는 20년 동안 함께 해온 신뢰 깊은 관계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하면서 최고의 요리를 탄생시켜 왔다. 도댕은 저마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친구들을 불러 미식 모임을 즐기며 나날을 보내고, 유제니는 그들에게 예술에 가까운 경이로운 요리를 만들어준다. 도댕은 그런 그녀를 동등한 파트너 관계로 존중하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그녀를 흠모한다.
매일 밤 도댕은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잠 못 이루며 그녀의 방문 앞에서 서성인다. 외제니도 때때로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방문을 걸어 잠그지 않지만, 서둘러 그의 마음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프렌치 수프>는 장시간 뭉근하게 끓여낸 프랑스 스튜 포토푀와 같이 꾸준히 서로의 곁에서 머물러 온 두 중년 남녀의 로맨스를 그려 낸다.
황홀한 자연 풍광 속에서 마주하는 미식 경험 같은 영화


트란 안 훙 감독은 이 영화가 진정한 미식 경험이 되길 원했다. 보통의 음식 소재 영화와 달리 <프렌치 수프>에서는 요리하고 먹는 장면이 모두 실제로 진행되었다. 줄리엣 비노쉬와 브누아 마지멜은 미슐랭 3스타에 빛나는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의 시범을 담은 사전 영상을 보고 그의 기술과 태도, 몸짓을 연마했다. <프렌치 수프>는 오프닝부터 절로 군침을 돌게 한다. 외제니는 도댕의 미식 모임에 내놓을 음식을 요리하느라 분주하다. 주방에는 온통 고기를 노릇하게 굽고, 기름에 야채를 달달 볶으면서 나는 지글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가지각색의 식재료는 외제니의 마법 같은 솜씨에 훌륭한 미식으로 거듭난다. 블로킹(디자인된 극 공간 속에서의 움직임을 결정하고 연습하는 일)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배우들과 이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우아한 발레를 연상시킨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지는 외제니의 요리 시퀀스는 오색찬란한 음식의 모양새에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과 섬세한 편집까지 더해져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또 외제니와 도댕의 친밀한 관계를 일말의 설명 없이 전달해 보인다.
트란 안 훙 감독은 이를 오롯이 카메라 한 대로만 담아낸다. 트란 안 훙은 “나는 캐릭터와 카메라의 움직임을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흥미로운 영화적 흐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에서 더 넓은 각도로, 유동적인 순간에서 정적인 순간으로 넘어가는 장면을 구성할 수 있다”고 전했다. 긴 장면을 유려하게 연출하기 위해서는 배우들과의 호흡을 맞추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이어서 감독은 “카메라가 움직이는 동안 그들은 프레임 안으로 들어갈 적절한 순간을 찾아야 했다. 배우들이 직접 리듬을 결정했고, 나는 그들의 손에 달려있었다”고 말했다.
기계 문명이 도래하기 이전의 마지막 아름다움

베트남 태생의 프랑스인 트란 안 홍은 슬픈 이야기를 가장 아름답게 그려내는 감독이다. 그는 <그린 파파야 향기>, <씨클로> 등 베트남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아름다운 이미지에 담아왔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한 폭의 인상주의 회화 같은 장면을 그려내며 여전히 우리를 매혹시키지만 이번에는 베트남이 아닌 프랑스 문화에 주목했다. <프렌치 수프>의 자연 풍광은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회화를 닮았다. 도댕과 위제니가 티타임을 즐기는 연못과, 둘이 함께 걷는 들판은 모네의 풍광을 담고 있다. 빛이 수놓인 들판의 다양한 색채는 조화롭게 어우러져 풍경 속 두 남녀를 감싸안는다. 주방의 테이블 위에 놓인 갖가지 소품은 세잔의 정물화 속 꽃과 과일과 같다.
<프렌치 수프>의 시공간적 배경은 아직 아방가르드가 도래하기 이전의 20세기 초 프랑스다. 외제니가 후계자로 삼으려는 폴린(보니 샤뇨-하부아)의 집은 아연 관을 씌운 구리 안테나로 땅에 전류를 흘려보내면서 농사를 짓는다. 영화에서 이전까지 기계 문물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기에 이 순간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이제 막 기계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프랑스의 20세기 초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도댕과 외제니는 인생의 가을에 다다른 사람들이고, 그중 도댕은 자연과의 차분한 관계 속에서 흘러가고 순환되는 시간을 감각하고 음미하는 고전적인 프랑스인에 가깝다. 도댕은 매 순간을 환희의 순간으로 받아들이고, 순환되는 삶의 흐름 속에서 아름다움을 탐미하며 살아간다. 도댕과 달리 외제니는 타오르는 여름을 갈망한다. 그녀는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분출되는 예술가적 욕구를 갖고 있고, 도댕은 이를 통제하지 못한다. 외제니와 도댕이 20년 동안 미묘한 관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도 외제니의 자유로운 예술가적 기질에 기인한다. 도댕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온전히 소유한 적 없었던 외제니에게 계속해서 매료되고, 외제니의 일부는 여전히 그에게 저항한다. <프렌치 수프>는 삶을 원숙하게 바라볼 수 있는 중년 남녀의 멜로이자 예술가와 탐미주의자의 관계를 드러낸다.

트란 안 훙 감독의 19세기 후반의 예술에 대한 존경은 영화의 마지막에도 담겨 있다. 엔딩크레딧이 오르고 쥘 마스네의 오페라 간주곡 ‘타이스의 명상곡’이 흘러나온다. ‘타이스의 명상곡’은 방탕한 삶을 살았던 아름다운 무희 ‘타이스’가 수도승 ‘아타나엘’의 설득에 귀의를 고민하게 되면서 갖는 번민을 표현했다. 타이스의 번민을 담아서 떨리는 선율은 사랑 앞에서 한없이 흔들리는 도댕의 애틋한 사랑으로 변주된다.
씨네플레이 추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