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곤 사토시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극찬한 애니메이터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는 탁월한 캐릭터 디자이너로 꽤 알려진 이타즈 요시미 감독이 장편 애니메이션 데뷔작 <북극백화점의 안내원>으로 한국을 찾았다. 국내에서는 프로덕션 I.G의 다른 단편들과 묶어 개봉한 <피그테일과 거미 소녀 그리고 레슬링>에 포함된 <피그테일>(2015)로 알려진 그가 드디어 자신의 첫 번째 장편을 들고 찾아온 것. 그전까지 그는 <강철의 연금술사>(2003),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2024) 등은 물론 곤 사토시의 <파프리카>(2006),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201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의 원화 작업에 참여하며 명성을 얻었다. <북극백화점의 안내원>은 동물들이 고객인,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북극백화점’에 취업한 수습 안내원 ‘아키노’의 성장담이다. 멸종위기종인 수많은 캐릭터들과 백화점이라는 공간에서 이타즈 요시미 감독의 작화 스타일이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을 찾은 그에게 긴 시간 공들여 내놓은 데뷔작에 대해 꼼꼼히 물었다.

니시무라 츠치카의 만화 「북극백화점의 컨시어지」라는 원작을 택한 이유는.
멸종위기종인 동물들이 인간 소비사회의 상징적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백화점을 거닌다는 발상이 흥미로웠다. 둘을 그처럼 하나로 엮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심플한 그림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북극백화점의 판매원>은 한 번쯤 작업해보고 싶은, 단순하고도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전작 <피그테일>도 한 섬에 남겨진 소녀의 이야기다. 아직 두 작품이긴 하나,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어린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런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다.
창작자라면 누구나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하기 마련인데, 남성 주인공은 아무래도 내가 직접적이고 지나치게 투영되는 반면 여성 주인공을 택하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게 된다. 아무래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은 내가 어려서부터 워낙 좋아하고 존경했던 분인 데다, 함께 작업하기도 했기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두 작품 <바람이 분다>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참여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정하고 칭찬한 후배 애니메이터로 유명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칭찬을 들었나.(웃음)
내 입으로 얘기하기 좀 민망하긴 하지만,(웃음) ‘칭찬’이라고 표현하면 좀 과장이고 내가 보여드린 결과물을 마음에 든다고 하신 적 있다. 주인공 마히토가 대나무 깎는 장면을 내가 맡아서 했는데, 깎는 모양이나 각도를 잘 표현했다고 하셨다. 당연히 기분이 무척 좋았는데, 감히 상상하자면 대나무가 깎이는 그 모습이 미야자키 감독님이 구상한 그림과 잘 맞아떨어지게 작업했던 것 아닐까 한다.
동종 업계 사람으로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가 누구냐’,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누구일까’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웃음) 나는 그저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계속 잘하고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만 한다. 물론 내가 관객이라면 애타게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찾을 것 같다. 그런 쾌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어딨을까.

<퍼펙트 블루>(1997), <천년여우>(2001) 등을 만든 곤 사토시 감독에 대한 질문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 존경할뿐더러 닮고 싶다고까지 말한 감독이었고, 실제로 그의 작품 <파프리카>(2006)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가 <꿈꾸는 기계> 제작 도중 세상을 떴는데, 당신이 이어받아 계속 제작될 거라는 얘기가 있었다. 혹시 그 사연을 들을 수 있을까.
곤 사토시 감독님이 돌아가시고 당시 내가 감독대행을 맡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마음의 준비는 돼 있었지만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동결되어버렸다. 캐릭터 디자인이 꽤 진행됐고 콘티도 있었지만 곤 사토시 감독님의 세계를 그대로 잘 구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있었다. 현재는 완전히 내 손을 떠났고 제작사 매드하우스의 마루야마 마사오 사장에게 넘어가 있는 상태다. 아마도 제작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백화점을 작품의 핵심 공간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 작품의 후반부에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도 더해지면서, 꽤 깊이 연구하고 공부한 흔적이 엿보인다.
건축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건축 공부를 많이 했다. 기본적으로 한 작품의 공간과 배경이 되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로서 건축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이번 작품의 백화점은 전 세계 모든 백화점을 아우르는 백화점으로 표현했다. 원작 만화에서는 일본 특유의 백화점 이미지가 강한데, 나는 그런 인상을 걷어내고 싶었고 ‘백화점이 이 세상의 전부다’라는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서 백화점을 네모난 방주의 이미지로 구상했다. 그 안에 세상 모든 동물들이 다 타고 있으니, 그게 이 작품의 주제와도 맞다.

바로 그 방주 안에 ‘웃는올빼미’ 사장님 부부, ‘흰족제비’ 고객,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 깜짝 선물을 준비 중인 ‘바다밍크’ 부녀, 매장 내에서 다른 동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날개를 활짝 펴며 구애를 퍼붓는 ‘공작’ 커플을 비롯해 ‘바바리사자’, ‘카리브해몽크물범’, ‘일본늑대’, ‘큰바다쇠오리’, ‘맘모스’ 등 여러 동물 캐릭터들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캐릭터나, 외형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 유독 힘들었던 캐릭터가 있을까.
맘모스 울리를 가장 좋아하는데, 클라이맥스에 등장한다. 디자인하면서는 특정 캐릭터가 힘들었다기보다 작은 동물과 큰 동물의 대비를 표현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백화점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아키노라는 주인공이 인간의 크기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 대비의 균형을 잡는 것에 가장 신경 썼다. 그 균형 안에서 에피소드를 배치하고 아키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향수, 시계, 스카프 등 여러 물건도 중요하게 등장한다. 개인적인 사연이 있다거나 중요하게 생각한 물품이나 선물도 있나.
일단 개인적인 사연을 담은 물건은 없다. 앞서 얘기했지만, 이 백화점이 세상을 드러낸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가령 카리브해 몽크물범이 옷을 3번 갈아입는데 각국의 전통 복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첫 번째로 입는 의상이 한복이다.(웃음) 최대한 화려한 한복으로 해달라고 요구했고, 캐릭터 디자이너가 정말 공부 많이 해서 작업했다.

고객의 마음을 읽고자 하는 주인공 아키노의 마음은 관객의 마음을 읽고자 하는 영화감독의 마음과도 닮아 있는 것 같다. 백화점은 극장이라고 할 수 있고, 숨어서 늘 감시하고 있는 플로어 매니저 토도는 제작자라고도 볼 수 있겠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극장의 침체기를 겪은 이후의 작품이어서 그런 상상을 해보게 됐다.
굉장히 좋은 해석이고 잘 들어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안내원 아키노를 애니메이터라고 생각하고 만든 부분도 있다. 백화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봤다. 다양한 손님들이 모이는데 각자의 기호에 따라 움직이고, 안내원은 그 기호를 읽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가운데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내가 애니메이터로서 성장하고 변화해온 모습이 이 작품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젊은 관객은 아키노처럼 자신의 첫 직장을 떠올려 투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맘모스 울리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으로 눈 내리는 북극백화점의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그처럼 공간적인 측면에서 백화점 바깥으로 나오고 싶었던 이유가 있을까.
후반부에 이르러 아키노의 시점이 바깥으로 나가면서 더 확장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계속 실내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가, 앞서 말한 것처럼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 백화점이라는 공간과의 거리 두기도 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아키노가 백화점 바깥으로 나가 신의 시선, 관객의 시선과 마주한다는 느낌도 주고 싶었다.

요즘처럼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주인공 아키노의 “누군가 기뻐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라는 주제가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를 통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코로나19 팬데믹을 경유하면서 우리는 누군가와 대면하지 않고 많은 일을 해왔다. 그런데 실사와 달리 애니메이션에서는 캐릭터들이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실사 영화에서는 한 인물이 가만히 있어도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그게 힘들다. 아마도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공감할 것이다. 백화점에 주목하고 강조하고 싶었던 이유도 계속 인물들이 서로 직접 대면한다는 점이다. 제작 시기가 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려서 더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아키노를 성인군자로 그리고 싶진 않았지만, 반복적인 좌절을 겪으면서도 상대의 성공이 나의 욕망과도 연결되는 걸 알아가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다. 경력을 쌓아가면서 이 일이 결국 엔터테인먼트구나! 하는 걸 알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전작 <피그테일>도 그렇고 지금의 이타즈 요시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제작사가 바로 ‘프로덕션 I.G’다. 프로덕션 I.G와 함께 하는 이유, 프로덕션 I.G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이 하라 케이이치 감독의 <백일홍: 미스 호쿠사이>(2015)에서 캐릭터 디자인과 총작화감독을 맡았을 때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 해 최고의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꼽히기도 했다. 당시 프로덕션 I.G에서 먼저 제안해줬는데, 이시카와 미츠히사 사장님과 고토 타카유키 부사장님은 나를 발굴하고 키워주신 분이나 마찬가지다.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경의를 가지고 있고, 프로덕션 I.G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테니, 그게 가장 큰 의미다. 물론 프로덕션 I.G의 다른 스태프들과도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맺어왔고 언제나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 가끔은 내가 원하는 그림과 프로덕션 I.G가 원하는 그림이 살짝 다를 때도 있어서 고생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건 뭐 어디서나 있는 일 아닌가.(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