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 인생 45년 차, 배우 야쿠쇼 코지에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오는 7월 3일 국내 극장가를 찾아온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모습을 담아낸다. <퍼펙트 데이즈>는 <파리, 텍사스>(1984)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1999) 등으로 전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한 빔 벤더스 감독의 연출작으로 ‘최고의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제안에 배우 야쿠쇼 코지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미 야쿠쇼 코지의 작품을 열 편 넘게 봤다는 빔 벤더스는 <퍼펙트 데이즈>를 통해 야쿠쇼 코지의 가장 편안한 얼굴을 꺼내어 보였다. 영화 속 야쿠쇼 코지는 오랜 시간 대사 한마디 없이 행동과 표정만으로 오롯이 삶을 꾸려가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해냈다. 지난해 “상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하겠다"라며 칸의 트로피를 안은 야쿠쇼 코지. 그의 필모그래피를 함께 훑어보자.
<세 번째 살인>(2017)

영화 <세 번째 살인>은 능력 있는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미스미 타카시(야쿠쇼 코지)의 살인사건 변호를 맡으며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미 한 번의 살인 전과가 있는 미스미는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 후 곧바로 자백했고 시게모리는 그의 죄를 확신한 채 감형을 하기 위한 수를 낸다. 그러던 중 미스미가 돌연 말을 바꾸어 피해자의 아내 미츠에(사이토 유키)의 사주를 받고 살인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미츠에와 주고받은 문자를 증거로 제시하고 시게모리는 미스미를 주범에서 종범으로 만들 기회로 삼아 판세를 흔들고자 한다.
한편, 피해자의 딸인 사키에(히로세 스즈)가 계속 신경 쓰이는 시게모리는 그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듣는다. 사키에는 미스미가 자신을 위해 아버지를 죽여준 것이라 이야기를 하고 시게모리는 승소를 확신하며 마지막 공판을 준비한다. 하지만 미스미는 또다시 ‘자신이 살인을 하지 않았다’며 입장을 번복하고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세 번째 살인>은 진실을 파헤치는 단순한 구성의 법정 영화임에도 엄청난 서스펜스를 선사하며 관객을 압도한다. 특히 접견실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변호사 시게모리 역의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용의자 미스미 타카시 역의 야쿠쇼 코지가 팽팽한 밀고 당기기를 펼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묘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대본 리딩 당시 둘의 연기에 큰 감명을 받고 접견실 장면을 대폭 늘렸다고 전하기도 했다.
<큐어>(1997)

야쿠쇼 코지는 일본의 거장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의 페르소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야쿠쇼 코지와 구로사와 기요시는 <큐어>를 시작으로 <강령>(2000) <도쿄 소나타>(2008) 등 약 8편 이상의 작품에서 합을 맞추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야쿠쇼 코지에 대해 “인간의 잠재력과 표현의 모든 범위를 소화하는 배우”라 극찬한 바 있다.
<큐어>는 형사 타카베 켄이치(야쿠쇼 코지)가 연쇄 살인사건을 진실을 파헤치며 시작한다. 각 살인 사건은 모두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지만 범인은 모두 다른 사람이다. 심지어 그들은 살인을 한 이유도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의아한 살인이 반복되고 타카베는 범인들이 공통적으로 한 남자를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이름은 마미야 쿠니히코(하기와라 마사토). 타카베는 마미야가 최면 암시를 통해 살인을 교사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한편, 마미야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보살피며 지쳐가는 타카베의 내면에 다가가려 한다.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타카베는 영화의 초반부 점잖고 똑똑한 형사이자 다정한 남편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미야에 의해 자신의 본능을 마주하게 되고 이내 그와 동화된다. 야쿠쇼 코지는 내면의 어지러움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개봉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걸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영화 <큐어>는 오는 7월 17일 국내에서 재개봉한다.
<우나기>(1997)

지금으로부터 불과 16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일본 영화를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1998년 10월, 줄곧 금지된 일본 대중문화 유입이 허용되며 영화, 음반, 게임 등 각 분야의 일본 문화 예술이 단계적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영화계의 첫 주자는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하나비>이다.
1999년, 국내에 소개된 세 번째 일본 영화인 <우나기>는 제5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연출을 맡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나라야마 부시코>(1982)로 제3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이미 한차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주인공 야마시타 역을 맡은 배우 야쿠쇼 코지는 후술할 영화 <쉘 위 댄스>(1996)에 이어 <우나기>로 큰 사랑을 받으며 일본의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평범한 회사원 야마시타(야쿠쇼 코지)는 그의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제보 내용이 담긴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찝찝한 마음에 이른 귀가를 한 그는 아내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흥분한 야마시타는 두 남녀를 살해하고 그 길로 경찰서로 가 자수한다. 8년 후 가석방이 된 야마시타는 치바현의 사하라에서 이발소를 차린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노역 중 잡은 뱀장어 한 마리.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던 야마시타는 어느 날 우연히 음독자살을 시도한 여성 게이코(시미즈 미사)를 발견한다. 유부남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게이코. 야마시타는 망설이다 그를 구해준다. 이후 야마시타는 주지스님의 부탁으로 게이코를 자신의 이발소로 받아준다. 이후 함께 이발소를 꾸려가며 게이코는 다정한 야마시타의 모습에 묘한 감정을 키워가게 된다. 그러던 중 야마시타의 과거를 알고 있는 감방 동료와 게이코의 게이코의 유부남 남자친구가 이발소를 찾으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아내를 살해한 잔혹한 범죄자로, 경계심이 가득한 외톨이에서 사랑을 깨달은 연인으로 야쿠쇼 코지는 변화하는 인물의 내면을 특유의 담담하고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유독 다작하기로 잘 알려진 그는 1997년 <우나기> 뿐 아니라 <실락원>, <바운스>, <큐어> 등의 작품으로 인정받아 제21회 일본 아카데미상, 제40회 블루리본상 등에서 당해에만 11개의 연기상을 수상했다.
<쉘 위 댄스>(1996)

야쿠쇼 코지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쉘 위 댄스>이다. <쉘 위 댄스>는 일본에서 1996년 개봉해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영화는 제2회 일본 아카데미상을 휩쓸었고 야쿠쇼 코지에게 14개의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쉘 위 댄스>는 중년의 샐러리맨 스기야마 쇼헤이(야쿠쇼 코지)가 춤을 통해 무료한 일상의 활력을 되찾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반복적인 일상에 지친 스기야마는 우연히 댄스 교실 창가에 서있는 여인 키시하라 마이(쿠사가리 타미요)를 보게 된다. 스기야마는 그녀의 미모에 이끌려 홀린 듯 가게 된 댄스학원에서 춤에 빠지게 된다. 한편, 달라진 그의 모습에 아내 아키코(하라 히데코)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게 되어 사설탐정 사무소를 찾아간다. 실력이 향상된 스기야마는 댄스 학원 동료들과 대회를 나가기로 하고 더욱 연습에 매진한다. 그리고 댄스 대회 당일, 어김없이 실력 발휘를 하던 스기야마는 방청석에 앉아있는 아내와 딸을 발견하고는 무대를 망친다. 이후 스기야마는 춤을 그만두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를 찾아와 다시 춤을 출 것을 권유한다.
야쿠쇼 코지는 평범한 직장인 스기야마 쇼헤이를 통해 안정적인 직장과 행복한 가정을 모두 가졌지만 늘 공허함을 달고 사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했다. 놀라운 점은 실제 야쿠쇼 코지의 인생도 이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왔다는 것이다. 구청 토목과에서 일하는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야쿠쇼 코지는 우연히 한 연극을 보고 배우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그는 1979년 영화 <더 라스트 게임>으로 영화에 데뷔하게 되었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면의 소리를 따라 움직여 '국민 배우'로 거듭난다.
씨네플레이 이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