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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BIFAN 7호] 〈기지국〉 박세영 감독 인터뷰

통신사 기지국의 전자파와 싸워라!

씨네플레이

<다섯 번째 흉추>(2022)에 이어, 박세영 감독의 새 장편 <기지국>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선 단편 버전이 상영된 바 있지만, 본래 장편으로 계획했던 영화다. 박세영은 초창기부터 연출뿐만 아니라 촬영 편집 등 다양한 역할을 스스로 도맡아 왔는데, 전자파를 피하기 위해 남동생과 함께 산속에서 사는 여자를 그린 기묘한 SF <기지국>은 주연배우 연예지와 공동 연출 체제로 만들었다.


박세영 감독 (사진=씨네플레이 양시모)
박세영 감독 (사진=씨네플레이 양시모)

전작 <페이백>이나 <다섯 번째 흉추>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였다. <기지국>의 시작점은 무엇인가?

공동 연출한 연예지 감독이 통신사 기지국에 대한 절대적인 반감이 있었다. 구글에 5G 인터넷의 전자파가 해롭다고 검색해 보면 데이터가 있으면서 없더라. 난 그게 미신적인 거라고 생각하고, 연예지 감독은 확실하다고 믿어서, 그게 충돌하는 대화들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제안했다.

오랫동안 작업 중인 장편 <지느러미>에 배우로 출연한 연예지에게 공동 연출을 제안했는데, 당시 그에게서 무엇을 보았나?

유년기에 해외로 가 오래 살다 와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많이 봤다. 동두천 가평 등 메갈로폴리스 변두리를 돌아다니는데, 대화를 나누면서 삶의 태도나 입장이 <기지국>과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러이러 하게 쓰고 싶다고 피칭처럼 발표하고, 같이 써보면 어떨까 제안했다. 내가 초고를 쓰면 다음 버전을 연예지 감독이 쓰는 식으로 번갈아 왔다 갔다 하다가 합의하에 최종고를 내고,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했다. 연예지 감독은 촬영할 땐 카메라 앞에 서야 하니 주로 프리 프로덕션을 맡았다.

〈기지국〉
〈기지국〉

 

​남매의 이야기처럼 진행되다가 숲에서 남자들을 만나자 동생은 안중에도 없는 듯 진행된다.

내가 제일 끌린 캐릭터는 윤만이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에서 갑자기 카우보이가 나와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등장하고 사라질 때 빛이 깜빡거리는데 그게 전기랑 연결돼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기지국>에 전자파의 화신과도 같은 인간을 그려보고 싶었다. 주인공 이든이 동생을 가스라이팅 할 때나 설치 기사들과 대항할 때 이든의 무의식을 윤만이라는 캐릭터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벌거벗은 채로 등장하거나 번개랑 같이 내려온다는 설정도 있었는데 연예지 감독과 의견을 나누면서 비현실적인 면이 점점 덜어졌다.

두 설치 기사는 어떤가?

여자 혼자랑 남자 둘이 산에 있는 상황 자체에 긴장이 있다. 처음엔 그걸 더 극대화해서 이든의 악한 행동이 상호작용하게 되도록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는데 너무 자극적이라 바뀌었다. 편집하면서 <기지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간다고 느꼈다.

〈기지국〉
〈기지국〉

 

비단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연출의 톤까지 확 바뀐다. 이런 분절은 촬영 전부터 계획된 건가?

찍으면서 발견했다. 내가 원하는 톤이 이게 아닌데 느꼈는데 바꾸려고 해도 안 되더라. 배우들 톤이 너무 달랐다. 연예지 배우가 멈블 랩처럼 대사를 한다면, 다른 배우들은 딕션이 명확하다. 이렇게 가면 영화가 별로일 것 같다는 직감이 계속 들었는데, 촬영은 해야 하는데 돈은 없으니, 이 별로인 부분을 조금 뒤틀어서 싸구려 같은 맛을 밀고 가보자는 식으로 계속 찍었다. 다양한 현장을 경험하며 몇 억 짜리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봤는데 예측 가능한 이미지가 나오는 건 늘 아무 감흥이 없었다. 현장에서 아무것도 모르겠고 망할 것 같은 감각이 들면 신이 난다. 망할 수밖에 없으면 하나 더 찍으면 되니까 하는 태도로 살아가고 싶어서 내 돈으로 개인 작업을 할 때는 최대한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접근하고 있다.

박세영 감독 (사진=씨네플레이 양시모)
박세영 감독 (사진=씨네플레이 양시모)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조명 없이 찍은 밤 장면의 빛들이 주의를 끈다.

‘뻥 조명’ 때려서 월광인 척하는 게 싫다. 조명감독은 부르고 싶지 않았고, 밤에 숲에서 찍는데 빛이라곤 헤드라이트나 손전등밖에 없으니 배우들한테 조명감독 역할을 맡겼다. 완전 상호작용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가 예측하지 못한 게 나오도록 접근했다. 싸구려 LED라 빛이 너무 밝아서 주변부가 다 죽어 보였는데, 검은 화면에 떠도는 빛들 위주로 가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빛이 그럴듯해 보였다면 배우들이 찍다가 빛이 어디로 갈지 의식하고 계산했기 때문일 거다. 난 또 그게 별로여서 의식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도 결국 작위적으로 보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