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에서 두기봉 감독에 이어 마스터클래스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바로 일본 코미디영화의 대부 미타니 코키 감독이다. 영화팬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997)를 만든 그는 쉼 없이 영화, 연극, TV 등 매체를 넘나들며 웃음을 전파해 왔으며, 이보다 더 적절한 제목을 찾을 수 없는 ‘미타니 코키의 인생대극장’이라는 이름의 특별전으로 BIFAN을 찾았다. 국내 개봉하며 변함없는 그의 감각을 보여준 <멋진 악몽>(2011)을 비롯해 국내 미개봉작인 <갤럭시 가도>(2015)와 <기억에 없습니다>(2019)를 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여전히 웃음에 목마르다는 그를 만나 왕성한 창작의 비결을 물었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외에도 국내 개봉한 <매직 아워>(2008)를 비롯해 국내 미개봉작인 <더 우쵸우텐 호텔>(2005), <기요스 회의>(2013) 등 정말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혹시 올해 BIFAN에서 상영하는 세 작품 외에 추가로 선정한다면, 어떤 작품으로 한국 관객과 만나고 싶나.
고르기 힘들다. (웃음) 일단 판타스틱영화제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작품들을 적절히 골랐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좀 전에 마스터클래스가 끝났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얘기해 주셔서 놀랍기도 하고 감사했다. 그래서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한국 관객과 다시 함께 보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모두 코미디영화이지만 <멋진 악몽>은 법정 드라마, <갤럭시 가도>는 SF, <기억에 없습니다>는 정치 드라마와 결합했다. 매번 계획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나 코미디영화를 만들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고자 한다. 가령 <멋진 악몽>은 법정을 무대로 삼고 있지만 ‘유령’이라는 존재가 중요하다. 그처럼 하나의 선명한 모습으로 귀결되는 코미디영화를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미스터리 코미디다. 아마도 내 영화를 쭉 보신 분들은 정말 다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멋진 악몽>에서 살인사건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가 유령이다. 그렇게 유령을 증인으로 내세운 사상 초유의 재판이 시작되는데, 니시다 토시유키의 비주얼 자체가 웃음 폭탄이다. 당신 영화는 입담이나 상황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코믹한 비주얼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게 다루는 것 같다고 느낀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서도 경비원 캐릭터가 별다른 대사 없이‘몸 개그’로 불꽃 소리를 만들어 내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낚시 바보 일지> 시리즈로 유명한 니시다 토시유키는 워낙 코미디에 뛰어난 배우다. 내가 뭘 더하고 말고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다 그에게 전쟁에서 진 패잔병이자 유령 캐릭터를 부여했고, 그런 그가 법정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모든 것들과 상충된다. 당신이 얘기한 비주얼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효과가 있다. 그리고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서 나도 그 장면을 굉장히 좋아한다. (웃음) 하지만 아쉽게도 그 장면은 내가 아니라 그를 연기한, 안타깝게도 2017년에 세상을 떠난 배우 후지무라 슌지의 애드립이었다. 댄서이자 안무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몸을 정말 잘 쓰는 배우였고, 단숨에 그런 아이디어를 냈다. 현장에 있던 모두가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갤럭시 가도>에는 스마프 멤버 카토리 신고와 아야세 하루카 외에 오구리 슌이 출연한다. 이번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 중 <더 우쵸우텐 호텔>도 야쿠쇼 코지, 마츠 다카코, 사토 코이치가 출연해 화제였다. 야쿠쇼 코지와 다시 만난 <기요스 회의>도 당대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했다. 그처럼 당신 영화는 기본적으로 ‘스타 캐스팅’을 기반으로 하는데 그들은 보통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캐릭터를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반전’의 재미를 즐기는 것일까.
얘기한 것처럼 내 영화에는 당대의 톱스타나,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뭐랄까, 그런 친숙한 배우들이 의외의 재미를 주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같은 상황을 더 빛나게 만들어준다고나 할까. 그런데 막상 작업하면서 느끼게 되는 건, 내가 잘 쓰고 연출했다고 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어떤 역할을 부여받더라도 그들은 이미 탁월한 기술이나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 작품이나 특정한 캐릭터가 그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로 인해 작품이 빛을 보는 것이다.

정치를 소재로 한 <기억에 없습니다>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휴머니즘 가득한 풍자 코미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를 연상시킨다.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프랭크 카프라의 로맨틱 코미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판타지 드라마 <멋진 인생>(1946)도 좋아하는데 그로부터 배운 게 많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7년 만의 외출>(1955),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등을 만든 빌리 와일더의 위트 넘치는 코미디도 좋아한다. 영화 속 대사로도 쓰이는 <기억에 없습니다>는 제목을 정할 때 힘들었다. 그런 문장 형식의 영화 제목을 쓴 적 없기 때문이다. 보통 제목을 정할 때 처음부터 확정하고 넘기는 경우가 있고, 좀처럼 정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영화는 후자였고 결국 투표를 해서 정했다. (웃음) 그러고 보니 <멋진 악몽>도 제작진의 투표로 정한 제목이다.

아무래도 한국에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팬들이 많다. 이제 와 돌아보면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일까.
좀 전에 끝난 마스터클래스에서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두고 ‘클래식’이라 표현해 줘서 놀랐다. 보통 클래식이라고 하면 세상을 떠난 거장들의 고전영화에 쓰는 단어일 텐데, 내 데뷔작을 두고 그렇게 얘기해 주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난 아직도 아등바등 매번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현역이다. 그래서 클래식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한편으로 분하기도 하다. (웃음) 세월이 한참 지난 뒤, 그저 나를 ‘언제나 새로운 걸 시도했던 감독’ 정도로만 기억해 줘도 좋을 것 같다.

코미디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숙명이란, 내 코미디가 관객에게 제대로 통할까, 하는 고민일 것이다. 내가 의도한 장면에서 객석이 터지면 기쁘고, 그렇지 않으면 절망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당신의 웃음 타율은 어느 정도였던 것 같나.
아,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당신이 얘기한 것처럼, 그게 코미디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숙명이라는 데 동의한다. 나 또한 내 영화가 개봉하면 몰래 극장에 들어가서 맨 뒷자리에 앉아 관객의 반응을 살피곤 한다. 과연 내가 의도한 장면에서 웃음이 터질지 매번 조마조마하게 지켜본다. 그런데 재밌는 건, 내가 연극도 꽤 많이 했는데 같은 연기라도 매 회차 공연마다 웃음이 터지는 부분이 다 다르다. ‘여기서 왜 웃지?’ 할 때도 많다. 물론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반응을 살피려고 극장에 들어가서 끝까지 앉아있는 게 머쓱하다. 관객이 별로 없는 건 싫으니까 어느 정도 관객이 찼는지만 확인하고 나오는 일이 많다. (웃음) 중요한 건 웃음은 ‘전염’된다는 거다. 내가 코미디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옆 사람이 웃을 때 따라 웃는 경우가 많지 않나. 난 그런 동질감이 좋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그럴 일이 별로 없어졌다. 크게 웃기도 힘들고 소리 내기도 어렵고 심지어 한 자리 띄어 앉게 했으니 극장에서 웃을 일이 별로 없었다. 세상 모든 관객이 이제 웃음을 찾아야 한다. 극장이 웃음소리로 가득한 그 느낌이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