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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착륙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 아폴로 프로젝트를 소재로 한 영화들

씨네플레이

개인적으로 우주에 관심이 많기에 조금이라도 우주에 관심 있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NASA 프로젝트 중에 어떤 걸 제일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보는 편이다. 대개는 “네? 무슨 프로젝트요?”라며 싱겁게 끝나지만, 가끔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몇 시간이고 그들의 족적으로 떠들어댄다. 크게 2가지 프로젝트가 언급되는데, 하나는 보이저 프로젝트고 다른 하나는 아폴로 프로젝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거리를 탐사한 탐사선이자 가장 외로운 물체로 불리는 보이저 탐사선도 매력적이지만, 오늘은 아폴로 11호 관련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이 개봉한 기념으로 아폴로 프로젝트 관련 작품들을 준비했다. 보이저는 다음을 기약하고, 오늘은 ‘인류의 위대한 도약'으로 불리는 아폴로 프로젝트를 서로 다른 시선으로 본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외에 좋아하는 NASA 프로젝트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입니다.”

-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 후 닐 암스트롱이 최초로 한 말


<플라이 미 투 더 문> - 음모론이 이렇게 낭만적이라니.

〈플라이 미 투 더 문〉(2024)
〈플라이 미 투 더 문〉(2024)

 

이번에 개봉한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아폴로 11호 관련 음모론을 소재로 한 로맨스 영화다.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에 앞서, 아폴로 11호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아폴로 11호는 아폴로 프로젝트의 9번째 미션으로 ‘인류가 최초로 지구 외 천체에 도달한 사건'이다. 이전까지 우주 경쟁에서 소련에 뒤지고 있던 미국이 확실한 승기를 잡은 사건이자, 인류 과학 발전의 대명사로 꼽히는 업적으로도 평가된다. 전 세계를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사건이었기에 ‘실제로 달에 착륙하지 않았다'라는 음모론도 끊임없이 나왔다. 아폴로 프로젝트는 냉전시대 소련과의 경쟁 구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음모론자들은 ‘미국은 달 탐사에 성공한 적이 없고,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영상을 조작했다'라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달 착륙 영상을 연출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이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며, 아폴로 11호는 달에 착륙한 게 명백하다. 그런데 2024년,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이 퀘퀘하고 먼지 쌓인 아폴로 11호의 음모론을 들고 나타났다. 도대체 무슨 영화일까. 

 

〈플라이 미 투 더 문〉(2024)
〈플라이 미 투 더 문〉(2024)


아폴로 11호 음모론을 둘러싼 풍자 영화일 줄 알았으나, 막상 상자를 열어보니 젠틀한 로맨스 영화였다. 스칼렛 요한슨과 채닝 테이텀의 연기는 유려하고, 이야기는 툭 튀는 부분 없이 심리스하게 이어진다. 유머와 로맨스, 그리고 드라마의 비율은 거의 완벽하다 해도 좋을 수준이다. 음모론은 단순히 영화 내 소재일 뿐, 중심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양극단에 서있던 달 탐사 마케팅 전문가 켈리 존스(스칼렛 요한슨)와 발사 책임자 콜 데이비스(채닝 테이텀)이 서로의 위치를 이해하고, 사연을 존중하며 공감의 제스처를 건네기까지의 과정에 집중한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건 음모론이 아닌 프로젝트 안에 있던 사람들이다. 앞서 말했던 ‘스탠리 큐브릭 연출설’을 유쾌하지만 품위 있게 반박하며 ‘결국엔 진실이 승리한다'라는 메시지를 두 사람을 앞세워 우아하게 전한다. 영화가 끝난 후 <플라이 미 투 더 문>의 인상을 떠올렸더니, 잘 배운 도련님, 아가씨 같은 인상이 떠올랐다. 도파민의 자극에 물렸다면 단정하고 반듯한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추천한다. 


<퍼스트맨> - 인간 닐 암스트롱에 대하여

〈퍼스트맨〉(2018)
〈퍼스트맨〉(2018)

 

아폴로 11호의 사령관 닐 암스트롱의 전기영화 <퍼스트맨>은 <위플래시>, <라라랜드>로 단박에 스타 감독이 된 데이미언 셔젤이 후속작으로 내놓은 작품이다. 개봉 당시, 전작을 인상 깊게 본 팬들은 후속작에서도 빠르거나 힘 있는 템포를 예상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감정 표현을 극도로 제한한 느린 호흡의 영화라 예상 밖이었다는 평도 더러 있었다. 데이미언 셔젤의 최신작인 <바빌론>까지, 그는 자신의 ‘스타일'이랄 게 없을 정도로 모두 다 다른 방식으로 연출했는데 그럼에도 네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 바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잃어버린 것'이다. <위플래시>에서는 일상과 인간성을, <라라랜드>에서는 사랑을, <퍼스트맨>에서는 가족을, <바빌론>에서는 생을 대가로 내놓는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우리가 모두 아는 닐 암스트롱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살펴본다. 미국의 긍지를 높인 위인이 아닌, 목표를 향해 달리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한 하나의 개인으로서 고집스러울 만큼 그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인터뷰 사진 속, 미소 짓고 있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만 보아 온 대중에게 웃지 않는 그의 모습은 생경했다. 

 

〈퍼스트맨〉(2018)
〈퍼스트맨〉(2018)

 

작중에서 닐(라이언 고슬링)은 프로젝트 과정에서 동료들의 사망을 목도한다. 아폴로 1호가 발사 직전 내부 합선으로 불이 붙으면서 안에 있던 우주조종사 3명이 모두 사망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닐은 ‘달에 가는 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일에 몰두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자가 아폴로 11호 역시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점쳤기에, 그의 가족들을 앞선 우주비행사들의 사망사고와 겹쳐 닐이 죽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러나 닐은 “달에 무언가를 가져가고 싶다면?”이란 질문에 “연료를 더 싣고 싶다"라고만 대답한다. ‘돈을 허튼 곳에 쓰고 있다'라며 우주 경쟁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국가와 대중의 무한한 기대, 동료의 죽음, 가족의 두려움을 모두 뒤로한 채 그는 달에 간다. 아폴로 11호 프로젝트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성조기'를 꽂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때문에 ‘반미영화' 아니냐, 는 공격을 받았지만 감독은 ‘딸의 팔찌를 달에 두고 오는 닐'이라는 허구의 설정을 통해 일찍 떠나버린 딸을 향한 그리움과 이곳에 오기까지 그가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을 표현한다. 


<아폴로 13> - 성공보다 위대한 실패

〈아폴로 13〉(1995)
〈아폴로 13〉(1995)

 

톰 행크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아폴로 13>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아폴로 13호’에 관한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아폴로 13호는 아폴로 11호의 미션 성공으로 NASA의 자신감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로, 이러한 자신감이 안전에 대한 과신과 방만으로 이어져 결국엔 실패한 프로젝트다. 13의 저주처럼, 병과 홍역으로 예정되어 있던 인원이 교체되고, 발사 7일  전에 인력이 투입되는 등 아폴로 13은 준비 단계에서부터 삐걱댔다. 우여곡절 끝에 아폴로 13호가 발사되었으나 산소탱크 폭발로 결국 달 착륙을 포기하고 지구로 귀환해야 했다. 영화 <아폴로 13>은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담는 것에 집중했는데 실제로 영화 속 주인공이자 아폴로 13 프로젝트의 사령관인 짐 러블이 영화의 사실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아폴로 13〉(1995)
〈아폴로 13〉(1995)

 

아폴로 13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도 좋을 귀환을 무사하게 마친 프로젝트라 ‘성공보다 위대한 실패'라고도 불린다. 산소탱크 폭발로 동력이 끊기고 산소가 부족하고, 이산화탄소가 증가한 상태에서 우주비행사들은 신속하게 대처했고, 지상관제본부는 그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승무원 전원이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폭발 이후 위기와 빠른 판단, 그리고 신속한 대처로 극의 긴장감을 더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베테랑 우주비행사 짐 러블이 결국 자신의 오랜 꿈인 달 착륙을 뒤로한 채 돌아가는 순간 느꼈을 감정선도 놓치지 않는다. 짐은 동료인 닐 암스트롱이 먼저 달 착륙하는 장면을 보며 자신의 꿈을 되새기던 그가 결국 달에 착륙하지 못한 채 달 착륙선 아쿠아리우스를 분리하는 장면은 영화 속 명장면 중 하나. <퍼스트맨>이 우리가 몰랐던 인간 닐 암스트롱을 드라이하게 그려냈다면 영화 <아폴로 13>은 그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무사히 귀환한 그들의 스토리를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아폴로 11>(다큐멘터리) - 위대한 도약의 순간을 그대로

 

다큐멘터리 〈아폴로 11〉(2019)
다큐멘터리 〈아폴로 11〉(2019)

 

다큐멘터리 <아폴로 11>은 다큐멘터리 장르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극적이다. 보는 이에 따라 ‘이게?’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확실한 건 영화인 <퍼스트맨>보다 더 드라마틱 하고 강렬하게 연출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아폴로 11>은 아폴로 11호가 이륙하고 난 뒤 110시간 동안 우주를 건너고 고요의 바다에 착륙해 성조기를 꽂고 다시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을 담았는데 그 어느 것도 허구는 없다. 다만 긴박한 편집과 음악으로 다큐멘터리임에도 관객을 그 순간으로 순식간에 몰입시킨다. 

 

다큐멘터리 〈아폴로 11〉(2019) 속 버즈 올드린
다큐멘터리 〈아폴로 11〉(2019) 속 버즈 올드린

 

<아폴로 11>은 아폴로 11호에서 촬영한 모든 영상을 디지털 방식으로 스캔하고, 공개된 바 없는 미션 준비 과정의 필름도 연출에 사용했다. 우리가 익히 알던 성조기를 꽂는 장면에 도달하기 위해 세 우주비행사들이 걸어왔던 훈련과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는 건 다큐멘터리의 핵심 재미. 이외에도 아폴로 11 프로젝트 진행 당시 관제실 내부 녹음본 11,000시간 분량으로 오디오를 채우고 대신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사용하는 내레이션을 뺐다. 그래서 음성은 오로지 당시 녹음된 오디오, 무전 교신 등으로만 이뤄져 있지만 적절한 음악 사용과 편집으로 영화보다 더한 긴박감을 준다. 당대와 지금을 명백히 가르는 내레이션을 제거함으로써, 그야말로 관객을 현장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포 올 맨카인드>(드라마) -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달에 갔다면?"

 

〈포 올 맨카인드 시즌 3〉 - Bring It Down(2022)
〈포 올 맨카인드 시즌 3〉 - Bring It Down(2022)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들이 ‘실제’ 아폴로 프로젝트를 저마다의 시선으로 해석했다면 마지막으로 소개할 Apple TV+ 드라마 <포 올 맨카인드>는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달 착륙에 성공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대체역사 SF 장르다. 60년대 냉전 시대, 소련과 미국이 우주 경쟁을 한창 할 때 즈음, 실제로 초반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최초의 유인우주선 발사에 모두 성공하며 소련이 미국을 앞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폴로 11호가 먼저 달에 도착함으로써 우주 경쟁의 승자는 미국으로 기울었는데, 이 작품은 소련의 우주 탐사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었던 코롤료프 박사가 병으로 죽지 않고,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우주 경쟁에서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두려워 달 탐사에 크게 투자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포 올 맨카인드 시즌 4〉 - Crossing the Line(2023)
〈포 올 맨카인드 시즌 4〉 - Crossing the Line(2023)

 

처음 들었을 땐 ‘그럼 소련이 패권을 잡은 세계를 그린다는 건가?’ 싶었으나 미국이 소련의 ‘후발주자’가 되어 실제 역사보다 훨씬 경쟁적으로 우주 탐사에 투자하는 스토리로 이어진다. 거대하게 투자한 만큼 기술력도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달 연구소를 세우게 되고, 이후 은하계까지 경쟁의 범위를 확장하며 스토리는 지구 너머 SF의 세계로 이야기를 넓혀간다. 우주 덕후에게는 아폴로 프로젝트 관계자 등 실제 인물이 했던 말과 행동들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서 펼쳐지는 게 신선하게 느껴지고, SF 덕후에게는 오랜만에 나온 웰 메이드 하드 SF 드라마라 반가울 테다. 실제로 ‘소련이 퍼스트맨이 되었다’는 다소 예민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포 올 맨카인드>는 현재 시즌 4까지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