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성 있는 중년 여성 캐릭터가 배우자의 불륜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한다는 서사. 당연하게도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그랬고, 가깝게는 드라마 <마에스트라>, <원더풀 월드>나 <하이드> 등이 그랬다. 왜 그토록 커리어가 탄탄한 40대 여성을 파멸시킬 방법으로는 남편의 외도만이 유일한 것인지. 그러나 이미 숱한 드라마들이 즐겨 사용해 온 이 소재는 SBS 드라마 <굿파트너>로 변곡점을 맞는 듯 보인다.
‘ㅅㅅ하게 ㅋㄷ 챙겨와’라는 문자를 ‘석식 하게 카드 챙겨와’라며 잡아떼는 불륜남, 부부 동반 여행을 갔다가 친구의 배우자와 외도를 저지른 커플, 몰래 웨딩 컨셉 사진을 찍은 불륜남녀, 그리고 이혼 전문 변호사가 각양각색의 이혼 소송을 담당하다가 결국 본인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다는 것까지. 줄거리를 죽 읊으면 막장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이 스토리가 드라마 <굿파트너>에서 유독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이 드라마를 집필한 사람이 바로 현직 이혼 전문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록> <돌싱포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한 최유나 변호사(법무법인 태정)는 인스타툰 ‘메리지레드’(@coeyunabyeonhosa)를 연재하고 있다. ‘메리지레드’에는 최 변호사가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생긴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담겼는데, 이를 픽션화해 하나의 서사로 엮은 것이 바로 <굿파트너>의 각본이다. 물론, ‘이혼 전문 변호사의 이혼’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라던가, 차은경 변호사(장나라), 한유리 신입 변호사(남지현) 등 <굿파트너>의 구체적인 등장인물은 모두 허구다.

그러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직업적인 고뇌와 상상을 초월하는 이혼 사연 등은 모두 최유나 변호사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됐다. 이를테면 “어떻게 부부 사이에 녹취를 해요”(<굿파트너> 3화, 가정폭력을 당하는 중년 여성의 이혼 상담 중 대사)라며 가정폭력을 당하고도 ‘우리 남편은 나 없으면 못 산다’던 한 인물의 에피소드는 이혼 전문 변호사들이 실제로 밥 먹듯이 경험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했다. 최유나 변호사는 인스타툰 ‘메리지레드’에서 이혼전문팀에 들어오는 가정폭력 황혼이혼 사건은 한 달 수십여 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황혼이혼하는 사람들은 항상 증거가 없어요. 잘못을 잘못이 아니라고 가스라이팅 당하다 보니 증거도 모으지 않는 거겠죠”라고 전했는데, <굿파트너>는 이를 극화해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현업 종사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현실감 넘치는 대사와 상황들은 <굿파트너>의 시청률을 견인했고, 기시감 가득했던 소재에 새 숨을 불어넣었다. 물론, 만나는 남편마다 바람을 피웠던 장나라(물론 그가 출연한 드라마에서 말이다)의 정점에 오른 연기력이 드라마의 퀄리티를 높여 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인간 한유리는 없어. 변호사 한유리만 있는 거야.”
“변호사도 결국 서비스업이야. 판단은 판사의 몫이지 변호사의 일이 아니라고.”
“판사 코스프레 그만하고 변호사 일만 하세요. 아주 그냥 드라마 속 변호사야.”
- <굿파트너> 차은경 변호사(장나라)가 한유리 변호사(남지현)에게 건네는 말 중

“인간 한유리와 변호사 한유리를 구분해가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이혼 사건을 하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명확한 사람인 것 같아요. ”
<굿파트너> 3화, 한유리 변호사가 이혼 팀을 그만두며 차은경 변호사에게 한 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으로도 익숙한, 냉철하지만 능력이 뛰어난 상사와 열정 넘치는 신입사원의 이야기는 정말 잘 팔리는 단골 주제다. 누구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커리어를 갖췄지만 직원들에게는 쌀쌀맞은 고위직. 밑의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만두기 일쑤. 그러나 그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큰 영광인 상황.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얼음장 같은 상사가 결국 신입의 진심을 알아보고 마음이 따뜻하게 녹는다는 식의 구도.
<굿파트너> 역시 스테디셀러의 전형적인 인물 설정을 따랐다. 스타 이혼 전문 변호사인 차은경(장나라)은 변호사라는 직업을 기능적으로,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인물이며, 기업팀을 지망했지만 어쩌다가 이혼팀에 들어가게 된 신입 변호사 한유리(남지현)은 직업 너머의 대의와 양심을 따르는 인물이다.
극과 극 성향을 지닌 차은경 변호사와 한유리 변호사는, 사실은 작가이자 변호사인 최유나 자신 내면의 고뇌를 인물화한 캐릭터인 것으로 보인다. 차변(차은경 변호사)과 한변(한유리 변호사)의 충돌을 단순히 MBTI T형(사고형)-F(감정형)의 대립으로만 단순화시켜서 볼 수 없는 이유다. 어떤 직업으로 살아가건 간에, 대의를 지켜야 할지, 혹은 당장 눈앞에 놓인 일을 기능적으로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돈을 벌기로 마음먹은 이상 항상 안고 살아야만 하는 무거운 짐이다. 그렇게 때로는 양심과 의무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기도 하고, 중간 그 어느 지점으로 적당히 타협하며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며, 직장인은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간다. 실제 이혼전문변호사인 최유나 변호사 역시 변호사 생활 13년 동안 매번 이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했을 것이고, 마침내 <굿파트너>에서 ‘능률을 우선하는 변호사’(차변)와 ‘의뢰인을 이해하는 변호사’(한변)의 양 극단을 제시하며 고민을 가시화했다.


“네 알량한 사명감, 같잖은 정의감. 나 그거 좋아. 한변이 내 사건 맡아. “
<굿파트너> 3화, 차변이 한변에게 자신의 이혼 사건을 맡기는 상황에서
그러나 그 둘 중, 어떤 변호사가 과연 더 ‘좋은’ 변호사인지에 대한 질문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한변과 차변은 그들은 서로가 지닌 강점이 다르기에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는 변호사다. 3화 말미, 차변이 한변에게 자신의 이혼 사건을 맡기며 한 말은 그래서 통쾌하고 감동적이다. 그전까지는 한변의 진심과 양심에 따른 일 처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차변이, 한변이 장점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사건을 맡긴 것.
이제 겨우 4화까지 공개된 <굿파트너> 역시, 중반부와 후반부에는 아마도 불륜남에게 ‘사이다’를 먹이는 전개로 이어지겠지만, 이 드라마가 선사하는 사이다의 맛은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 단순한 ‘응징’이 아닌, 다른 성향의 두 사람, 강점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장점을 발휘한다는, 그런 얘기였으면 좋겠다. 진심과 능률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양자택일하는 이야기가 아닌, 두 극단의 사람이 함께 시너지를 내는 ‘굿 파트너’로서의 이야기가 전개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