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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혈압에 직빵^^ 21세기 욕받이 불륜남 배우들

성찬얼기자

흔히들 나쁜 남자가 인기가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나쁜 남자면 인기보다 욕이 많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굿파트너>의 김지상 같은 남자 말이다. 지승현이 연기한 김지상은 아내 차은경(장나라)을 두고 은경의 비서 최사라(한재이)와 바람을 피운다. 그래놓고 은경이 이혼을 요구하자 대놓고 합의를 요구하는 뻔뻔함까지 갖추고 있다. 이 뒤틀린 심성의 딸바보 김지상 때문에 지승현은 최근 스브스 채널로 '사과영상'과 '악플 읽기'까지 올려야만 했다.

아무튼 이렇게 드라마에서 아내를 울리는 천하의 나쁜놈은 대대로 인기와 욕설을 동시에 얻는 일종의 출세 관문이다. 이번 지승현을 포함해 국민욕받이 자처한 캐릭터와 배우를 만나보자. 역대 드라마 전체를 따지면 한도끝도 없으니 21세기를 기점으로 해서.

* 시즌을 이어갈 정도로 장대한 불륜사를 쓴 <결혼작사 이혼작곡>, <펜트하우스>는 제외했다.

또 해당 드라마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음을 명시한다.

 

<굿파트너> 김지상

본체: 지승현

〈굿파트너〉김지상
〈굿파트너〉김지상

이 정도면 용감하다고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김지상은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 차은경의 아내이면서, 그의 비서와 바람을 피우다 적발된다. 그래놓고는 딸을 볼모 삼아 차은경에게 합의를 요구한다. 김지상이 여타 불륜남들과 차원(?)이 다른 부분은 내연녀 최사라조차 끝내 버린다는 점이다. (이후 서술하겠지만)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명대사조차 김지상은 외치지 않는다. 딸의 양육권을 얻는 데 최사라가 걸림돌이 될 것 같으니 최사라를 '꼬리 자르기' 하려 한다. 한 인간의 얼굴이 다양하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딸 바보인 불륜남이라니, 그 부성애가 오히려 애한테 해가 될까 시청자들만 전전긍긍하게 한다.

본체 지승현은 방송에서 프로포즈 일화를 풀 정도로 무척 다정다감한 두 아들의 아빠로 유명하다. 디자이너인 아내가 해부학 책을 갖고 싶어해서 책을 사다주며 "날 해부해줘"라고 프로포즈했다고. 김지상은 이런 지승현의 정반대편에 있는 인물인 셈이다. 결혼생활도, 자식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인물이니까. 지승현은 직전 출연작 <고려 거란 전쟁>에서 양규 장군으로 열연을 펼쳐 연기인생의 도약기를 맞이했다. 그 훌륭한 인물에 이어 김지상 같은 '인쓰'를 완벽하게 소화했으니 그의 연기력이나 작품 선구안만큼은 이제 의심하지 않아도 될 듯.

 

<내 남편과 결혼해줘> 박민환

본체: 이이경

〈내 남편과 결혼해줘〉박민환
〈내 남편과 결혼해줘〉박민환

2024년은 '나쁜놈' 풍년의 해일지도 모르겠다. 김지상 이전, 올 초 시청자들을 흔든 초대형 불륜남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내 남편과 결혼해줘> 박민환이다. 드라마 전체가 매운맛이었던 만큼 박민환은 단순한 불륜남 이상의 나쁜놈인데, 그중 방해가 된다고 사람을 자꾸(?) 죽이려 드는 게 최악이다. 3대 독자 집안의 아드님답게 겉보기엔 그래도 귀티가 흐르지만 속은 뼛속까지 이기적인 인간. 덕분에 그의 죽음에 시청자들도 크게 슬퍼하지 않았다는 후문.

〈내 남편과 결혼해줘〉박민환
〈내 남편과 결혼해줘〉박민환

본체 이이경은 이 작품으로 '은퇴설' 명단에 올랐다. 은퇴설은 요즘 이미지를 완전 뒤집는 배우들에게 '이걸로 은퇴하는 거 아니냐'며 놀리는 농담인데, 1대가 <마스크걸> 주오남 역 안재홍이라면 2대가 박민환 역 이이경일 것이다. 치졸하기 짝이 없는 나쁜남자를 찰떡같이 소화한 덕에 국민욕받이가 될 뻔했다. 그래도 이이경 본체가 예능프로그램에서 열심히 활약한 덕에 다행히 이미지 고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토일 드라마 <결혼해YOU>와 근래 개봉을 고려 중인 <영화 <히트맨 2>(가제)에서 그의 연기를 볼 수 있다.

 

<부부의 세계> 이태오

본체: 박해준

〈부부의 세계〉이태오
〈부부의 세계〉이태오

호들갑을 좀 떨자면, 이 인물은 불륜남의 계보를 한 단계 넓혔다. 세상에, 명대사와 유행어를 만든 불륜남이라니. 그만큼 이태오가 극중 내뱉은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는 시청자들의 혼을 쏙 빼놓기 충분했다. 여다경(한소희)과 바람을 피우곤 본처 지선우(김희애) 앞에서 사랑 운운이라니. <부부의 세계>를 안 본 사람들도 이 대사는 알 정도로 '사빠죄아'는 당대 화제를 한 몸에 모았다. 이혼전문변호사이자 <굿파트너>를 집필한 최유나 작가에 따르면 실제로 불륜에 빠진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라고. 알고 보니 <부부의 세계>에서 녹아든 극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빠죄아!!!!
사빠죄아!!!!
박해준 (사진 출처=플레오이엔티 공식 SNS 계정)
박해준 (사진 출처=플레오이엔티 공식 SNS 계정)

본체 박해준은 그동안 범죄물에서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태오 하나로 사랑의 아이콘이 됐다. 특유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잘생긴 외형이 판단력이 흐려지고 우유부단인 인물을 만나 절묘한 시너지를 냈고, 그 결과 <미생>, <나의 아저씨>에 이어 드라마 대표작에 <부부의 세계>를 추가할 수 있었다. 여기도 지승현 못지않게 본체는 로맨틱하다. 대학생 시절 만난 배우 오유진과 부부의 연을 맺어 20년 넘게 사랑하고 있으니까. 이후 <서울의 봄>에서 노태건 역으로 기막힌 '우정'을 보여줘 이태오 이미지는 이제 슬슬 잊힌 듯하다. 이걸 잘 됐다고 말하기는 참 애매하지만.

 

<나의 해피엔드> 허순영

본체: 손호준

〈나의 해피엔딩〉허순영
〈나의 해피엔딩〉허순영

피천득 시인의 수필 「인연」에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명구는, 아무리 그리운 대상이어도 재회가 추억처럼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고백부부>에서 부부를 연기한 장나라 손호준의 모습도 그랬다. 두 사람은 <나의 해피엔드>에서 다시 호흡을 맞췄는데, 깨가 쏟아졌던 <고백부부>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바람피운 남편과 고통받는 아내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손호준의 허순영은 아내 서재원(장나라)의 친구와 바람을 피운, 그야말로 최악의 불륜 케이스를 보여준다. 드라마 처음부터 매운맛을 시사하며 출발하기 때문에 손호준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변화무쌍함은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허순영-허치영이란 쌍둥이 설정으로 '에이 설마'로 숨돌리게 했다가 허순영이 불륜남이 맞다고 밝혀지지만, 그에게도 속사정이 있다는 전개가 폭풍처럼 몰아친 드라마. 허순영은 이 목록의 다른 불륜남들과 결이 다르지만, 드라마 초반에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기며 불륜남 명예의 전당에 호명됐다.

연극 무대를 준비 중인 손호준(사진 출처=손호준 공식 SNS 계정)
연극 무대를 준비 중인 손호준(사진 출처=손호준 공식 SNS 계정)

손호준은 이 드라마로 사연 있는 불륜남이란 복합적인 캐릭터에 1인 2역을 소화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륜남'이 아닌 다른 별명을 얻게 됐다. 주연인 줄 알았던 허순영이 극 중반 돌연 퇴장했던 전개 때문이었는데 하필 손호준이 직전 드라마에서도 주연처럼 출연했다가 하차했던 것. 비록 본인은 알고 출연했다고 하지만 연이은 극중 퇴장에 '사망 전문 배우'라는 웃지 못할 별명을 얻었다. 현재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로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마에스트라> 김필

본체: 김영재

〈마에스트라〉김필
〈마에스트라〉김필

겉보기에 나쁜 놈은 차라리 낫다. 눈에 보이면 피하기라도 할 텐데, 허우대 좋고 성격도 다정다감한데 뒤에서 허튼짓을 하고 있으면 그건 쉽게 피할 수도 없다. <마에스트라>의 천재 지휘자 차은세(이영애) 남편 김필이 딱 그런 케이스다. 초반엔 차세음을 위해 이것저것 알아서 처리해주면서 누가 봐도 일등 신랑감 아우라를 한껏 과시하더니, 드라마가 진행되며 드러나는 그의 민낯은 그 어떤 주말드라마에 갖다 놔도 활약할 정도로 치졸하기 짝이 없다. 아내의 천재성을 시기하면서도 그를 최대한 이용하는 김필은 그야말로 소시오패스 그 자체. 오케스트라의 단원 이아진(이시원)과 불륜으로 나락으로 갈 뻔한 것을 차은세가 막아주지만, 그런 차은세에게 '실수'라며 불륜을 변명한다. <마에스트라>가 복수극으로 급발진하게 만든 일등공신.

김영재(사진 출처=UL 엔터테인먼트)
김영재(사진 출처=UL 엔터테인먼트)

김영재는 이 역할을 하면서 이웃들에게도 "연기 좀 살살해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김필의 치졸한 면모를 정확히 보여줬던 것. 다만 본인은 이 역을 준비할 때 무작정 나쁜놈으로 캐릭터를 만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그를 이렇게 지독한 인간이 되게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고 한다. 이영애도 그런 그에게 "김필이야말로 (극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그의 접근법을 독려해주었다고. 과거 드라마에서 신부 역할을 자주 맡은 정도로 선한 이미지였는데, 이 작품에서의 대활약으로 더 다양한 캐릭터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가족X멜로>에서 오재걸 역으로 출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