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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얌전 떠는 시대의 대담한 섹슈얼리티” 〈러브 라이즈 블리딩〉 로즈 글래스&크리스틴 스튜어트

성찬얼기자
〈러브 라이즈 블리딩〉
〈러브 라이즈 블리딩〉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이상한 영화다. 로맨스라기엔 너저분하고, 범죄물이라기엔 너무나 사랑스럽다. 루(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일하는 체육관에 불쑥 나타난 잭키(케이티 오브라이언), 그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처럼 영화는 관객들을 사랑의 단맛 쓴맛에 밀어 넣는다. 이상하다고 했지만, 이 진미(珍味)를 경험케 해주는 영화는 7월 10일 개봉 후 2만 관객을 돌파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퀴어, 난폭한 누아르라는 장벽을 훌쩍 뛰어넘은 관객들의 '사랑' 덕분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혹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관객들이라면, <러브 라이즈 블리딩>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완성됐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궁금증을 풀어줄 단서를 들고 왔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로즈 글래스 감독과 주연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두 사람의 문답이다. <세인트 모드>로 데뷔하고 이제 막 두 번째 영화에 도전하는 감독과 할리우드 스타에서 명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어떻게 이 영화에서 조우하게 됐을까. 두 사람이 기억하는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현장으로 들어가보자.


크리스틴 스튜어트 - 루

〈러브 라이즈 블리딩〉 크리스틴 스튜어트
〈러브 라이즈 블리딩〉 크리스틴 스튜어트

 

로즈 글래스 감독이 루 역할을 맡아달라고 제안하는 과정은 어땠나.

 

로즈가 지금껏 스튜디오, 프로듀서, 그리고 다음 영화를 구상하라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떠올린 아이디어가 있다며 연락을 해왔다. ‘우리 강한 여성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봐요, 강한 여성이 만드는 강한 여성에 대한 영화가 필요한 시대잖아요’처럼 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흥미가 있었지만, 깊이도 없고 나이브한 접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로즈는 이걸 비웃기라도 하듯 불손한 방법으로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맡은 루는 전혀 강하지 않은 약자이자, 여성 혐오를 내면화해 마비된, 시대에 갇혀 있는 인물이었다. 80년대 한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퀴어고, 아웃사이더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나쁘고 극단적인 행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 잭키 역 케이티 오브라이언(왼쪽)과 루 역 크리스틴 스튜어트
〈러브 라이즈 블리딩〉 잭키 역 케이티 오브라이언(왼쪽)과 루 역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티 오브라이언은 본인보다 늦게 캐스팅이 되었다. 보디빌딩 경력과 연기 경력을 모두 갖춘 그가 ‘잭키’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잭키가 체육관에 들어설 때, 이런 광경은 루에게도 난생처음이었다. 이 동네 여자들은 특정한 스타일, 한정적인 역할만이 주어졌을 테니까. 케이티가 진중하고, 강렬하고, 아름다운 에너지를 캐릭터에 불어넣었지만 그래도 잭키에겐 굉장히 끔찍한 면이 있다. 루와 잭키 모두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곧 인간은 필연적으로 괴물이 될 수 있단 사실을 깨닫고 만다. 케이티는 이 모든 걸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보디빌딩 경력도 있긴 하지만, 자신의 진짜 힘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뭔가를 원하고, 그걸 위해 노력하고, 믿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도 알고 있다. 어렵고, 강렬하고, 복잡한 모든 걸 아름답게 표현한 케이티가 너무 자랑스럽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 루의 아버지 역을 맡은 에드 해리스
〈러브 라이즈 블리딩〉 루의 아버지 역을 맡은 에드 해리스

 

에드 해리스와 부녀로 출연했는데 함께 연기한 소감은?

 

에드가 촬영장에 들어왔을 때 로즈가 저를 가지고 노는 줄 알았다. 제 아버지가 (에드가 연기한) 루 시니어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부모님과의 관계가 복잡한데, 이렇게 닮았다니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에드는… 그 '에드 해리스'다. 이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데 그가 참여하겠다고 한 게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내가 그와 같은 시공간과 장면을 공유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에드는) 정말 좋은 사람인데다, 재능 있고, 쿨하고 아름다운 딸도 있다. 딸(배우 릴리 해리스)을 촬영장에 한 번 데려온 적 있는데, 정말 자랑스러워하더라. 에드의 딸 역할을 맡는 건 쉬웠고, 그는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80년대 미국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인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정말 8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 같다고 생각했다. 대담한 섹슈얼리티가 담겼는데, 요즘 세상은 여기서 많이 멀어졌다. 이상하리만치 얌전을 떠는 게 지배적이다. 어느 시대나 진보가 가속화될 때에는 항상 그 움직임에 대한 분노가 쏟아져 나온다. 지금도 본능적으로 그런 흐름이 느껴진다. 그래서 웃기면서도 무서운 영화의 분위기가 기괴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가 무섭다는 건, 공포 영화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들 자체가 세상의 입장에선 무서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자랑스러우면서 웃음도 나고, 웃기지만 비열하지는 않다.

 

루의 체육관 벽에 붙은 문구들조차도 ‘아메리칸드림’을 향한 열망처럼 느껴진다.

 

로즈의 시선에서의 80년대 미국은 아름답고, 멋지고, 재미있고, 섹시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허하고 허무하다. 체육관 벽에 붙은 문구가 틀린 말들은 아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믿고, 의지를 표현하고 또 실현할 수 있지만, 다만 그게 영원히 지속 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 로즈는 이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그 사고방식이 얼마나 진부한지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비주얼과 레퍼런스를 비롯한 모든 것들에 열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덕분에 체육관에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지금껏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스토리와 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로즈의 대처 방식은 유머가 기반이다. 굉장히 유쾌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있다 보면 마치 장례식장에서 웃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대담함과 독특한 정체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루 같은 영화 주인공은 흔치 않다. 이건 무척 중요하다. 대다수의 퀴어 러브스토리나 안티 러브스토리는 퀴어라는 내재화된 수치심과 생존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자아 확립 과정이 존재한다. 루는 아빠와 트러블이 있고 고향도 떠나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그런 모습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를 보는 건 재밌는 일이다.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로즈가 저를 앞세워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었다는 데 운이 좋다고 느꼈다.


로즈 글래스 감독

〈러브 라이즈 블리딩〉 로즈 글래스 감독 (사진 제공=(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러브 라이즈 블리딩〉 로즈 글래스 감독 (사진 제공=(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데뷔작 <세인트 모드>를 만든 후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세인트 모드>를 완성하고 나니, 명확한 스토리를 떠올린 건 아니었지만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이전에 해본 적 없는 장르를 시도한다든지,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위험부담이 있는 거라든지. 저는 펄프하고, 멜로드라마 같고, 폭력적이고, 폭탄 같으면서도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원했다. <세인트 모드>는 나 혼자 썼지만, 이번에는 다른 접근 방식을 시도해보자 싶어서 영화 학교 동기인 작가 겸 감독 베로니카 토필스카(Weronika Tofilska)와 팀을 만들었다. 평소에 서로의 각본을 읽는 친한 친구 사이라, 재미있는 작업 방식이 될 거라 생각했다.

 

보디빌딩의 세계를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일단 보디빌딩이라는 소재 자체가 후킹했다. 여성 보디빌더의 이야기를 쓰면 재밌겠다 싶었다. 보디빌더가 아닌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세계였다. 저런 몸을 가지기 위해 갖춰야 하는 자질이나 훈련, 강박들이 심리적으로 흥미로워 보였다. 이들의 이런 특성이 결국 어떻게 타인의 삶의 다른 영역과 충돌하는지, 혹은 흘러넘쳐 영향을 주는지에 관심이 생겼다. 보디빌딩에는 무질서하면서, 아름답고 이상한 무언가가 있다. 스포츠이면서 공연 예술이기도 하고. 엄청난 육체적 훈련이 필요한데, 찰나 같은 짧은 시합을 위해 탈수증에 시달리고 육체적으로 허약해지기도 한다. 힘과 근육을 키우는데, 사실 아름다움이 목적이란 이 모순이 흥미로웠다.

 

보디빌딩 경력과 연기 경력을 모두 갖춘 배우 케이티 오브라이언이 잭키 역을 맡게 됐다.

 

케이티는 경이로운 배우고, 여러 측면에서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캐릭터의 기복도 크고, 연기 경력이 많은 크리스틴과의 극적인 장면이 많은데도, 케이티의 연기에 정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촬영과 실제 보디빌딩 대회를 준비하는 것처럼 강도 높은 훈련도 병행했다. 케이티는 잭키처럼 열정을 따라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케이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강인함뿐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부드러움과 연약함, 섬세함이 드러나는 연기 때문이다. 영화의 두 캐릭터 모두 이런 모순적인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기에.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루 역으로 점찍었던 이유는?

 

크리스틴이 분위기 있는 현대 누아르물 속 과거에 쫓기는 골초 안티히어로를 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뭔가 이상하면서도 마음을 빼앗기는 마성의 캐릭터도 해봤으면 싶었고. (루 역으로) 거의 본능적으로 크리스틴을 떠올렸던 것 같다. 각본 집필 초창기부터 생각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런 역할을 더 많이 맡지 않았었다는 게 놀랍다. 크리스틴이 <세인트 모드>를 재밌게 봤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솔직히 첫 미팅은 내가 엄청나게 긴장했었어서 정말 어색하긴 했었다. 나중에 크리스틴이 제게 정말 다정한 문자를 보내면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못 박아줬다. 어떤 프로젝트든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는 게 정말 멋졌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80년대 미국의 여러 현상들이 보인다. 미학적으로도 <세인트 모드>와도 많이 다르고.

 

대본을 쓰면서 이야기가 좀 구체화되자,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처음부터 차기작을 미국에서 찍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라 주저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로니카와 내가 만든 스토리와 캐릭터를 생각해보니, 이게 맞겠다 싶었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스릴러나 로맨스처럼 다양한 장르의 80년대 미국 영화를 응용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 안에는 80년대 미국이라는 시공간의 신화적인 특성에 따라 누아르적인 면도 분명히 있었다. 그 시대 영화들은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줘 우리의 집단의식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에, 미국 출신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친숙하게 느낀다. 우리는 이런 장르의 몇 가지 특성을 바탕으로 진부함을 취하면서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그걸 전복하는 데 큰 재미를 느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퀴어 러브스토리라고 상정하고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이 영화를 두 주인공이 퀴어라는 사실을 다루는 영화로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타고난, 그런 사람들이다. 물론 커밍아웃 이야기나 좀 더 익숙한 퀴어들의 이야기를 다룬 훌륭한 영화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을 뿐이다. 그냥 캐릭터들이 퀴어일 뿐이다. 루와 그의 아버지의 역학 관계를 쓸 때, 이미 그 안에 퀴어성은 자연스레 들어가 있었다. 루는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고,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이건 그가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로맨스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여러 측면에서 익숙한 것은 피하려고 노력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폭력적이면서 코믹한 작품이다. 영화를 만들며 원했던 톤이 있었다면?

 

처음에 영화를 사람들에게 설명했을 때, 좀 이상하게 들렸던 것 같다. 상당히 어두운 주제가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함께 작업하던 두 분이 촬영 중에 '아, 우리 코미디를 만드는 거네요'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글쎄요, 꽤 어둡고 이상한 코미디가 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웃긴 요소들이 있다는 생각에 더 몰입해서 촬영에 들어갔다. 유머 없이는 영화를 만들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최악이고 끔찍할 때에도, 비극과 희극은 함께 가는 법이다. 이번엔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시도해보고,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마음먹고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