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투명 인간에 가까웠던 한 인간의 분투기”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 〈리볼버〉

추아영기자
〈리볼버〉 포스터
〈리볼버〉 포스터

 

전도연, 지창욱, 임지연 주연의 하드보일드 영화 <리볼버>가 8월 7일 개봉한다. <리볼버>는 대가를 약속받고 모든 비리를 뒤집어쓴 채 교도소에 수감된 전직 경찰 하수영이 출소 후 약속된 보상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승욱 감독이 제68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전작 <무뢰한>(2015) 이후 무려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무뢰한>에서 주연을 맡았던 전도연 배우와 재회한다. 개봉에 앞서 지난 7월 31일 메가박스 코엑스 돌비시네마관에서 <리볼버>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오승욱 감독과 전도연, 지창욱, 임지연 배우가 참석해 <리볼버>에 관한 말을 전했다. 먼저 오승욱 감독은 <리볼버>에 대해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몫을 되찾기 위해 나아가는 여자가 그것들을 돌려받기 위해 어떤 방식을 활용하게 될까 고민했다”고 전했다. 덧붙여 “한층 한층 단계를 거듭해 나가는 형식, 그 뼈대에 주인공이 사람들을 한 명씩 찾아가는 이야기를 구성했다. 투명 인간에 가까웠던 한 인간의 분투기”라고 말했다. 감독과 배우들의 말과 함께 먼저 감상한 <리볼버>의 후기를 전한다.


〈리볼버〉 스틸컷
〈리볼버〉 스틸컷

비리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 전직 경찰 하수영(전도연). 일을 같이 꾸민 이들의 죄까지 뒤집어쓰고 침묵하는 대신 보상을 받기로 하고 복역한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약속된 보상은 주어지지 않고 교도소 앞에는 수영을 데리러 온 의문의 여인 정윤선(임지연)이 나타난다. 수영은 자신의 몫을 찾기 위해 2년 전 회사 이스턴 프로미스와 공모한 일에 관련된 이 한 명 한 명을 만나러 간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수영과 달리 제 몫을 챙긴 조 사장(정만식)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그녀는 점차 이 일에 관련된 더 큰 세력을 마주한다. 끝내 수영은 자신에게 보상을 약속했지만 책임을 저버린 이 사태의 원흉 앤디(지창욱)를 만난다.


두 여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다

(왼쪽부터) 〈리볼버〉 오승욱 감독, 임지연, 전도연, 지창욱 배우 (사진 제공 = 딜라이트)
(왼쪽부터) 〈리볼버〉 오승욱 감독, 임지연, 전도연, 지창욱 배우 (사진 제공 = 딜라이트)

<리볼버>는 전도연 배우의 서늘한 무표정을 뇌리에 각인시킨다. 2년 전 유흥업소의 온갖 불법 행위를 눈감아주고 상납금을 받아 챙긴 수영은 꿈에 그리던 자신의 집을 장만한다. 입주를 앞두고 새집을 살피는 그녀의 얼굴에는 만족감으로 가득하다. 갑자기 수영에게 뜻밖의 일이 생기면서 들떠 있던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감옥에서 2년 형을 살게 된 수영은 차츰 과거의 모습과 달라진다. 가벼운 미소는 사라지고, 묵직한 무표정만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는다. 수영의 눈 밑에 생긴 상처는 감옥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내고 달라진 그녀의 변화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다. 전도연 배우는 인물 하수영에 대해 “여태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건조하고 감정이 배제되어 있는데 이런 모습과 감정으로 연기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오승욱 감독이 영화를 찍고 나서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굉장히 통쾌했다”고 전했다.

〈리볼버〉 전도연
〈리볼버〉 전도연
〈리볼버〉 임지연
〈리볼버〉 임지연

 

전도연이 연기한 하수영이 서사의 중심에서 무게감을 잡아주고 있다면, 임지연의 정 마담 캐릭터는 미니멀한 영화에 경쾌한 느낌을 부여한다. 화려한 화장과 의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윤선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가벼운 사람일 것만 같지만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유흥업소의 마담이었던 시절 산전수전을 다 겪고 지금까지 버텨온 만큼 자신만의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윤선은 수영의 뒤에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련자들에게 보고하면서도 수영에게 진실을 실토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윤선은 자신의 이익을 좇다가도 지저분하게 삶을 이어가는 자신과 달리 꼼수를 전혀 부리지 않는 수영을 동경하고 마음 가는 대로 그녀를 돕는다. 임지연 배우는 <더 글로리>의 인물 연진이와 <마당이 있는 집>의 추상은 역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 코믹한 톤의 연기를 선보인다.


이정재 X 정재영

서사 전개에 동력을 달아주는 역대급 특별 출연

〈리볼버〉 김준한
〈리볼버〉 김준한
〈리볼버〉 김종수
〈리볼버〉 김종수
〈리볼버〉 정만식
〈리볼버〉 정만식

 

<리볼버>는 명품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앤디가 저버린 책임을 수습하는 본부장 역의 김종수 배우와 권력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눈치와 줄타기로 살아가는 조 사장 역의 정만식 배우, 과거 하수영을 좋아했던 감정을 아직 놓지 못하는 후배 형사 신동호 역의 김준한 배우는 제각각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며 영화의 서스펜스를 움켜쥐고 있다.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이정재, 정재영 배우가 특별출연으로 영화에 재미를 더한다. <리볼버>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하수영의 전사를 드러낸다. 이정재는 극 중에서 수영의 전 연인이자 공모한 비리 경찰 임석용으로 출연해 미스터리를 불어넣는다. 하수영은 모든 진상을 알고 있지만 죽어버린 인물 임석용의 뒤를 이어 이 판을 짠 실체에 다가선다. 정재영은 과거 임석용, 하수영과 함께 일한 동료 경찰 민기현 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아무 정보가 없는 하수영에게 그간의 일을 알려주며 돕는 듯하지만, 과거의 악연으로 그녀가 사람을 죽여서 진정한 나락으로 떨어지길 바란다. 민기현 캐릭터는 극의 초반 서사 전개에 동력을 달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극의 중반부 이후로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하수영이 출소한 날 그녀를 맞이했던 또 다른 인물인 홍 검사 캐릭터 역시 극의 초반에 서사 전개를 위해서만 활용되고 곧바로 휘발되어버린다. 이렇듯 두 캐릭터의 기능적인 활용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더없이 아름다운 속죄 의식

〈리볼버〉 스틸컷
〈리볼버〉 스틸컷
〈리볼버〉 스틸컷
〈리볼버〉 스틸컷

 

전도연의 화려한 액션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 <리볼버>는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한두 장면의 짧고 현실적인 액션씬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액션의 빈자리는 전도연 배우의 섬세한 내면 연기로 채워진다. 수영은 세 발 장전되어 있는 리볼버를 손에 쥐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쏜 단 한 발을 제외하고는 총을 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민기현이 바라는 대로 절대악으로 타락하지 않는다. 수영은 약속한 대가를 주지 않는 비열한 인간들을 마주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 격렬한 액션은 시종일관 그녀의 내면 속에서만 일어난다.

〈포인트 블랭크〉 포스터
〈포인트 블랭크〉 포스터
〈리볼버〉 캐릭터 포스터
〈리볼버〉 캐릭터 포스터

오승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리볼버>를 만드는데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존 부어만 감독의 영화 <포인트 블랭크>(1967)를 말한 바 있다. <리볼버>의 독특한 스타일은 악몽 같은 영화 <포인트 블랭크>의 스타일과 닮아 있다. <리볼버>에서 드넓은 공간을 비쳐 공허감과 삭막한 느낌을 전달하는 부감숏, 갑자기 끼어든 플래시백으로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흩트리며 시간 감각을 교란하는 기법은 <포인트 블랭크>의 미적 형식과도 같다. 종종 끼어드는 과거의 환상 속 죽은 임석용의 이미지는 수영의 마음에 남아 있는 마지막 속죄 의식이다. 하지만 수영은 끊임없이 끼어드는 과거의 환상에 짓눌리지 않는다. 그녀는 끝내 모든 죄를 씻어내고 홀로 단단하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