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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텅구리〉 〈청춘쌍곡선〉 〈여사장〉 〈남자식모〉 …들어는 보셨나요, 한국 고전 코미디 영화 4편

주성철편집장
'제12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포스터
'제12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포스터
'코톡코톡쇼' 포스터
'코톡코톡쇼' 포스터

 

8월 23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개막한 제12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Busan International Comedy Festival)이 9월 1일까지 계속된다. 줄여서 ‘부코페’는 영화의전당, 부산예술회관 등 부산 전역에서 다채로운 공연과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데, 올해는 코미디언 전유성과 장항준 감독이 참여하여 새롭게 신설된 코미디영화제 ‘코톡코톡쇼’(Co-talk! Co-talk! Show)가 열린다. 우리나라 최초의 코미디 영화로 인정받는 <멍텅구리>(1926)부터 한국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극한직업>(2019)에 이르기까지, 한국 코미디 영화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자리다. 어쩌면 잘 모르고 있었던, 하지만 지금까지 묘한 정서적 끈으로 연결돼있는 1970년대 이전의 한국 고전 코미디 영화 4편을 소개한다. 


〈멍텅구리〉
〈멍텅구리〉

<멍텅구리>(1926년, 이필우 감독)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로 인정받는 작품은 바로 김도산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공개된 <의리적 구토>다. 그래서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기도 했다. 바로 그 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니 얼마나 뜻깊은 일이었던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럼 우리나라 최초의 코미디 영화는 무엇일까. 바로 이필우 감독에 의해 1926년에 만들어진 <멍텅구리>다. 당시 ‘조선일보’에 김동성이 기획하고 노수현이 그림을 그린 인기 연재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경성의 모던보이인 주인공 최멍텅(이원규)과 그의 친구 윤바람, 그리고 최멍텅이 짝사랑하는 기생 신옥매(김소진)를 주인공으로 그들의 일상사와 우스꽝스러운 삼각관계를 그렸다. 당대 최고의 희극배우로 손꼽히던 배우 이원규와, 조선 최초의 여배우라 불리는 김소진이 출연해 큰 화제가 됐다. 그때만 해도 무대에서 남자배우가 여자 역을 대신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기에, 기생 출신으로 창을 잘했던 김소진이 신파와 창극의 혼합을 제창하고 나선 극단 개량단에서 여자 역을 맡은 것 자체가 당대 문화예술계에 크나큰 판도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멍텅구리>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 번째로 한국 코미디 영화나 대중문화사에 있어 ‘영구’나 ‘맹구’, 혹은 ‘칠뜨기’로 대표되는 ‘바보’ 캐릭터가 언제나 히트 상품이었다면, 최초의 한국 코미디 영화의 제목이 ‘멍텅구리’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세상 물정 모르고 어리숙하지만 언제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바보 캐릭터가 지닌 인간미나 인간애가, 일찌감치 한국 코미디 콘텐츠의 핵심 정서가 된 것이다. 또한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매체에 활용하는 개념으로서, <멍텅구리>는 국내 최초의 ‘만화 미디어믹스’ 사례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그런 원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멍텅구리>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콘텐츠였다. 이후 한국만화 미디어믹스는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나 1955년부터 무려 2000년까지 연재했던 김성환 작가의 국내 최장수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을 영화화한 김승호, 김희갑 주연, 조정호 감독 <고바우>(1959)가 뒤를 이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의 이현세, <비트>(1997), <타짜>(2006) <식객>(2007)의 허영만, 그리고 <바보>(2008), <26년>(2012), 시리즈 <무빙>(2023)의 강풀 작가가 왕성한 활동으로 한국영화계의 중요한 한 축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춘쌍곡선〉
〈청춘쌍곡선〉

<청춘쌍곡선>(1956년, 한형모 감독)

 

한국전쟁 후 부산을 배경으로, 동명병원의 김박사(박시춘)는 홍선생이 찾아와 나가려 하지만 부남(양훈)이 진료를 받으러 들어온다. 부유한 무역회사 집안의 장남인 부남은 밥을 너무 잘 먹어 위가 늘어난 ‘위확장증’으로 병원에 들락날락하는 중이다. 이어 중학교 교사인 명호(황해)도 진료를 받으러 들어오는데,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너무 못 먹어 위가 오그라든 ‘협소증’이다. 김박사는 대학 동창인 둘에게 2주일 동안 집을 바꿔 생활하라는 처방을 내린다. 생활방식을 바꾸면 위장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둘은 2주간 집을 바꾸기로 약속하고 영도다리에서 헤어져 서로의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서로의 집을 바꿔서 생활한 두 청년은 각자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된다. 

〈청춘쌍곡선〉에 출연한 김시스터즈
〈청춘쌍곡선〉에 출연한 김시스터즈
〈청춘쌍곡선〉에 출연한 김시스터즈
〈청춘쌍곡선〉에 출연한 김시스터즈

 

암울한 한국전쟁 이후 만들어진 본격 코미디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청춘쌍곡선>은 가난하고 부유한 두 가정을 풍자적으로 대비시키는 가운데, 코미디와 뮤지컬 장르의 결합으로 악극적인 요소를 어필해 확실한 오락거리를 제공했다. 가령 영화 초반부에 의사 역을 맡은, ‘신라의 달밤’ 등의 작곡가로 유명한 박시춘의 기타 반주를 배경음악으로, 간호사 역의 김숙자, 김민자, 김애자가 팝송을 직접 부르는 장면과 중반부에 지게꾼으로 분장한 김희갑이 가요 메들리를 부르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김숙자, 김애자, 김민자는 ‘김시스터즈’로 활동했는데 김해송과 이난영의 두 딸인 김숙자, 김애자와 이난영의 오빠 작곡가인 이봉룡의 딸 김민자로 구성된 3인조 걸그룹이었다. 이들은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노래와 함께 춤까지 췄고, 미8군 무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영화 개봉 이후인 1959년 아시아 걸그룹으로는 최초로 미국에 진출했다. 재치 넘치는 영화 타이틀 시퀀스 또한 당시 ‘경향신문’에 연재된 시사만화 「두꺼비」로 유명한 안의섭 작가의 작품으로,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에서 전편 감상 가능하며 지난 2006년에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DVD로도 출시했다.


〈여사장〉
〈여사장〉

<여사장>(1959년, 한형모 감독)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 중 어디에 나온 대사일까요?” 잡지사 면접 자리에서 한 남성 지원자가 영문학과 출신이라기에, 두 명의 여성 면접관이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남자는 어처구니없게도 “제가 「햄릿」도 읽고 「로미오」도 읽었는데 「줄리엣」을 읽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셋을 분리하여 답한다. 외모가 출중하여 두 면접관의 환심을 샀으나, 그 답변에 관심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껍데기가 아깝다 정말.”

조미령
조미령

​<청춘쌍곡선>(1956) 다음으로 몇 달 뒤 개봉하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자유부인>(1956)으로 큰 성공을 거둔 한형모 감독은, 다시 한번 여성 주인공 캐릭터에 도전했다. 앞서 언급한 장면처럼 기존 남성들에 대한 조롱과 풍자도 여전하다. 두 면접관 중 한 명이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사장 요안나(조미령)는 어느 날 공중전화박스에서 길게 통화를 하던 도중, 처음 보는 청년 용호(이수련)에게 봉변을 당한다. 이후 용호는 일자리를 찾던 중, 요안나가 운영하는 잡지사 ‘신여성사’의 신입사원 모집에 응모한다. 용호는 앞서 그 「줄리엣」을 읽지 못했다는 지원자의 다음으로 입장하게 되는데,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면접 자리에서 당황하게 되지만, 요안나는 용호에게 당한 수모를 갚아 줄 생각으로 그를 채용한다. 할리우드식 스크루볼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는 <여사장>은 당대 최고 인기배우였던 조미령의 존재감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이자 근대적 ‘가치’와 ‘스타일’에 대한 강렬한 끌림을 표상하며, 사무실에는 ‘남존여비’가 아닌 ‘여존남비’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물론 독신여성으로서 요안나의 자부심은 전통적인 가족관으로 회귀하게 되지만, 당시 사회상과 견줘 생각해보자면 굉장히 혁신적인 캐릭터였다.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에서 HD화질로 전편 감상 가능하며, 네이버 시리즈온에서도 볼 수 있다.


〈남자식모〉 속편
〈남자식모〉 속편
〈남자식모〉 속편
〈남자식모〉 속편

<남자식모>(1968년, 심우섭 감독)

최근 조정석 배우의 여장남자 캐릭터로 흥행에 성공한 <파일럿>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떠오른 영화가 바로 구봉서 배우의 ‘남자식모’ 시리즈였다. 트로이카라 불렸던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은 대한민국 1세대 희극인들이자 1960-1970년대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들이다. 영화 경력으로만 보면 단연 구봉서의 압승이다. <남자식모>가 개봉한 1968년과 뒤이은 1969년만 놓고 보면, 그는 해마다 무려 2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우리 대중문화역사상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코미디언’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볼록한 양 볼 가득 바람을 불어넣는 특유의 표정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그는 특히 심우섭 감독과 ‘여장남자’ 시리즈로 환상의 콤비를 이뤘다. 외모로만 보자면 그는 준수하고 건장한 피지컬을 자랑했기에, 심우섭 감독 또한 다른 희극 배우들에 비교해 “구봉서는 잘생긴 얼굴로 엉뚱한 행동을 하니까 더 웃겼다”고 했다.

〈남자와 기생〉 포스터
〈남자와 기생〉 포스터
〈남자식모〉 속편 포스터​
〈남자식모〉 속편 포스터​

 

바람기가 심한 남편을 경계하기 위해 부인은 남자식모를 쓰기로 한다. 때마침 동생의 연구비 조달을 위해 고심하던 구형구(구봉서)가 그 집 식모로 들어간다. 그래서 여자가 할 일을 남자가 하다 보니 자연스레 웃지 못할 일들이 속출한다. 그러는 동안 동생의 연구 생활이 결실을 보고, 그는 동생 회사에 전무로 취직한 뒤 식모 시절에 사귀기 시작한 이웃집 식모 아가씨와 결혼한다. 그런데 그 식모 아가씨는 진짜 식모가 아니라 바로 그 집 주인의 딸이었다. 이처럼 영화 내내 여장남자 캐릭터로 등장한 것은 아니고, 성 역할 전도를 통해 사회적으로 파격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핵심 주제는 아니었지만, 당시 ‘여장남자’ 캐릭터는 코미디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남자미용사〉
〈남자미용사〉

 

<남자식모>의 인기에 힘입어 구봉서는 똑같이 구형구라는 이름으로 같은 해 <남자미용사>에도 출연해 ‘베토벤 스타일’, ‘육자배기 스타일’이라는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선보였고, 역시 같은 해 <남자와 기생>에는 구태호라는 이름으로 회사에서 쫓겨나자마자 여장을 하고 요정에 기생으로 나갔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감상 가능한 작품은 HD 화질의 <남자와 기생>뿐이다. 이처럼 구봉서와 심우섭 콤비는 ‘남자식모’ 시리즈 외에 구봉서가 구만복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한 ‘팔푼이 시리즈’(<팔푼이 사위> <팔푼이 며느리>)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구형구, 구태호, 구만복 외에 다른 영화들에서도 그는 성은 그대로 두고 구인갑, 구일도, 구낙호, 구풍, 구돌석, 구봉수, 구봉산, 구만년 등의 이름으로 출연했다. 예나 지금이나 특이한 성이나 이름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도 변함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