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에 의해 발전되었다. 미니멀리즘은 예술적인 기교를 최소화하고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문화적인 흐름을 말하는데, 음악에서 미니멀리즘은 안정적인 박자와 반복되는 음형으로 단순미를 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선율과 리듬은 대중들에게 난해한 다른 현대음악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지게 했다.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곡가 중 필립 글래스는 수많은 영화 음악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리즘 음악은 한스 짐머와 같은 우리가 익히 아는 영화 음악가의 스타일에도 영향을 끼쳤다. 과거 많은 음악가들이 영화의 이미지가 음악적 톤을 특정 감정에 고정함으로써 음악의 모호성을 빼앗아버린다고 비판했지만, 영화 음악은 오늘날의 현대 클래식 작곡가들이 요즘의 관객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고 있다. 영화 음악을 만든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음악 작곡가 3명을 소개한다.
<트루먼 쇼>, <디 아워스>의 필립 글래스

미국의 현대 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는 20세기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주로 단순한 선율과 음형을 반복하고 독특한 화음을 쌓아 나가면서 생경한 느낌을 만드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작곡했다. 글래스는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으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며 그의 음악세계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총 연주 시간이 5시간에 달하는 4막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필립 글래스 음악의 특징들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그의 음악은 단조로운 음조를 반복하고 변주하며 마치 최면술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혁신적인 기악곡과 성악곡, 오페라 음악 등에서 활약한 필립 글래스가 두각을 나타낸 또 하나의 분야는 영화 음악이었다. 글래스는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예술가 장 콕토의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 영화와 오페라를 동시에 보여주는 필름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다. 바로 장 콕토의 영화를 오페라로 작곡한 ‘장 콕토 3부작’을 완성한 것이다. 그중 두 번째 작품인 「미녀와 야수」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영화 음악의 길로 들어서 영화 <쿤둔>(1997), <트루먼 쇼>(1998), <디 아워스>(2002) 등의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음악 스타일은 한스 짐머, 막스 리히터 등 후대 영화 음악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글래스는 <트루먼 쇼>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가 버크하드 달비츠와 함께 맡았는데, 두 작곡가는 음악으로 두 가지 버전의 세계를 표현했다. 버크하드 달비츠는 영화 속 가짜 TV쇼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고, 글래스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영화 속 현실에서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은 ‘Truman Sleeps’로 ‘트루먼 쇼’의 연출자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가 거대한 화면 속에 잠들어 있는 트루먼(짐 캐리)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에 등장해 인간의 유한성을 상기시킨다. 필립 글래스는 <트루먼 쇼>의 음악으로 제56회 골든글로브 최우수작곡상을 받았다.
<컨택트>, <애드 아스트라>의 막스 리히터


영국의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현대 클래식 음악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컨템포러리 클래식, 오페라, 발레, 영화, 드라마의 음악을 작곡, 편곡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뮤지션과의 공연과 미디어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진행했다. 막스 리히터는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리즘 음악 스타일을 이어받았지만, 차분한 앰비언트 사운드와 관현악 편성을 통해 더 서정적인 음악을 추구했다. 리히터는 2012년 비발디의 ‘사계’ 리메이크 음반이 발매되면서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알려진다. 또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폭력 전반에 대한 항의의 뜻을 담은 앨범 ‘The Blue Notebooks’이 그의 대표작이다. 이 앨범의 두 번째 트랙 ‘On the Nature of Daylight’은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2006), <셔터 아일랜드>(2010), <디스커넥트>(2012) 등 많은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되었다.

‘On the Nature of Daylight’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에서도 오프닝과 엔딩 곡으로 등장한다. <컨택트>에서 리히터의 음악은 영화의 수미쌍관 구조를 부각시키고,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묶어 원형을 이뤄내는 역할을 했다. 단조의 슬픔과 선명하게 들리는 멜로디의 반복은 관객들의 감정을 빌드업시키고, 절정에 달할 때의 현악 섹션의 풍부함은 감정적 울림을 폭발시킨다. 리히터의 서정적인 음악은 비극적인 미래를 알고도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물 루이스의 근원적인 슬픔을 드러낸다. 이 외에도 리히터는 브래드 피트 주연,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했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파친코> 시즌 1의 니코 뮬리

미국 작곡가 니코 뮬리는 오늘날 주목받는 포스트 미니멀리즘 작곡가 중 한 명이다. 클래식 음악작곡가로 오케스트라 음악과 실내악, 종교 음악 등을 작업했고, 오페라 <다크 시스터즈>와 <두 소년>, <마니>의 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음악계에서 일렉트로닉과 팝 등을 혼합한 포스트 미니멀리즘 음악의 작곡가로 통한다. 그는 뉴욕의 음악학교 줄리아드에서 석사학위 과정 재학 때부터 필립 글래스의 밑에서 음악 잡지 편집자, 지휘자, 키보드 연주자로서 일하며 가까이서 미니멀리즘 음악을 체화했다.

현대 클래식 음악계에 니코 뮬리를 알린 대표작은 언어와 공동체에 대한 철학적인 관점을 담은 두 번째 정규 앨범 ‘Mothertongue’다. 그는 앨범 ‘Mothertongue’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언어의 파편들과 일렉트로닉 노이즈,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믹스해 이질적인 것을 결합하는가 하면, 펑키한 밴조(현악기) 사운드에 민요 보컬을 더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로 만들어진 곡은 그의 표현에 의하면 “포크송의 폭발”과 같다. 또 보너스 트랙으로 삽입된 ‘Skip Town’은 보통 실험적인 음악에서 쓰이는 프리페어드 피아노 기법(피아노의 현에 물건을 두는 등 인위적 변형을 가하는 기법)을 경쾌한 재즈, 팝 음악처럼 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양한 활동을 주저하지 않는 니코 뮬리 역시 영화 음악에 진출했다. 그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 <킬 유어 달링>(2013), 드라마 <하워즈 엔드>(2017), <파친코> 시즌 1(2022)의 음악을 작곡했다. 국내에서는 드라마 <파친코>의 음악으로 알려져 팬층을 확보했다. 뮬리는 과거 인터뷰에서 <파친코>의 음악을 작업하면서 절대 동아시아 음악을 흉내 내려고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단지 음악이 캐릭터에 더 밀착되도록 의도했다고 전했다. 연주자가 10명을 넘지 않는 소규모 앙상블로 구성한 그의 음악은 실내악에 가까운 느낌을 주며, 인물 선자(김민하, 윤여정)의 발화되지 않은 한 맺힌 속마음을 표현해낸다. 인물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어딘가 붕 떠 있는 듯한 몽환적인 선율은 한국과 일본이 얽힌 한 시대와 양국의 현대를 한 줄기처럼 그려내는 데 일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