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문단에 서술해두었으나, 기사를 작성하던 중 펀딩이 취소돼 우베 볼 감독의 신작은 잠정 연기됐음을 미리 명시한다.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왕의 귀환. 한때 이 사람의 이름은 영화계에 따라붙는 저주였고, 유머였으며, 밈 그 자체였다. 최근 수많은 망작들의 득세로 그 입지를 잃어 왕좌를 내려놓았으나 어쩌면 다시 '왕'이 될지도 모르겠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웅장한 대하극 같은 서두를 쓰느냐 하면, 바로 망작의 대명사 우베 볼 감독이다(기존 우웨 볼이 좀 더 입에 착 감기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우베 볼이라고 서술한다). 왕성했던 2000년대에 비해 최근 연출작이 뜸했던 그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도전장을 올리며 신작 개발금 모집에 나섰다.

1991년부터 영화 연출에 발을 들인 우베 볼 감독은 지금까지 3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한, 이른바 '소처럼' 일한 감독인데 정작 '개처럼' 망한 영화뿐이어서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추앙(?) 받은 바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로튼토마토에서 '평가 포기'를 받은 이 남자, 어떻게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어왔는지. 왕의 귀환을 맞이해 당대 최고의 망작왕이라 불린 이 남자의 이모저모를 만나보자.
게임 원작 영화의 악명을 높인 선봉장
지금은 이런 말이 싹 사라졌지만, 한때 '게임을 영화화하면 망한다'라는 말이 영화계에 자리 잡은 적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수퍼 소식>, <명탐정 피카츄>, <수퍼 마리오 브라더스> 같은 몇몇 작품이 아니라면 여전히 게임 영화화는 리스크가 큰 과제이긴 하다. 그럼에도 '게임 원작 영화'의 연대기에서 정말 긴 암흑기를 골라본다면, 우베 볼 감독이 그쪽 분야에 손을 댄 2000년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베 볼 감독이 가장 맹렬하게(?) 활동한 2000년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그는 17편의 영화를 연출했는데 그중 7편이 게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중 (게임부터가 막장이었던) <포스탈>을 제외하고는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없다. 그 때문에 당시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계에서도 우베 볼이란 이름은 유행처럼 번졌는데 게임 영화화 소식만 들리면 이 사람의 연출이었기 때문.


그렇게 그의 타깃이 된 게임은 오락실 단골 건슈팅게임 「하우스 오브 더 데드」, 호러 어드벤처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어둠 속에 나홀로」, 신기술을 접목해 방대한 판타지를 그린 「던전 시즈」 등등이 있다. 그중 「던전 시즈」를 옮긴 <왕의 이름으로>는 그래도 제작비를 많이 투자해 제이슨 스타뎀, 론 펄먼, 크리스티나 로컨 등이 출연해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게 했으나 당연히 우베 볼 이름에 먹칠(?)하지 않는 망작으로 평가받았다. 앞서 말한 <포스탈>만이 그나마 괜찮다는 평을 받았는데, 이건 원작 게임이 극도로 폭력적이고 자극적이기만 것이어서 들을 수 있는 평가에 가까웠다.

세법 허점 노렸다? 법 개정 루머까지
이렇게 매번 망하는 작품을 만드는 우베 볼 감독이니 그가 열성적으로 활동할 당시 가장 큰 관심사는 '누가 이 사람에게 돈을 주는가'였다. 항간에는 '집 앞 마당에서 유전이 나왔다더라' '모 기업 총수의 약점을 잡고 있다더라' '사실은 최면술사라 투자자들에게 최면을 걸었다더라' 같은 우스꽝스러운 분석(?)이 정설처럼 여겨졌는데 한동안은 독일 세법의 허점을 노려 제작비를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이전까지 독일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과 최종 수익을 고려하여 세금을 면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이런 방식으로 제작비를 어느 정도 투자해도 '실패가 보장된다면' 오히려 투자한 제작비에서 손해를 면할 수 있다. 100만 달러라고 가정했을 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 100만 달러에서 세금을 면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 면세법은 2006년에 폐지됐다. 우베 볼 때문에 법이 개정됐다는 루머도 퍼졌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현재는 우베 볼 또한 다른 방법으로(모두가 추측하기론 사비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2006년까지 영화를 제작하고 면세를 받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그 방법으로 자산을 계속 축적했을 거라는 시선이 많다.
내 영화 까? 나랑 맞짱 까!
그렇게 많은 망작 양산 외에도 우베 볼이 스타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 성격도 더럽기 때문이다. 우베 볼은 자신의 영화를 신랄하게 비평한 평론가들을 상대로 도전장을 보냈다. 정정당당하게 링에서 붙자는 거였다. 웃긴 건 우베 볼 본인이 복서 출신이라서 애초에 정정당당하지 않은 승부였단 점. 몇몇 평론가들은 그의 제안에 응했고, 그대로 KO 당했다. 웃자고 한 일인 줄 알았는데, 진지하게 달려들었던 것. <블러드레인>에서 함께 일한 댄 리 웨스트는 이 과정을 기록했고, 이는 <레이징 볼>이란 다큐멘터리로 탄생했다. (제목은 <분노의 주먹>의 원제 '레이징 불'에서 따온 것)

이렇게 보면 '상남자'스러운 감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또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베 볼은 상대를 봐가면서 링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한 '대결 상대' 조건(우베 볼 영화 비판 평론 2개를 온라인이나 매체에 게시)에 적합한 상대 중엔 코미디언 론 스팍스와 코미디 작가 션베이비(Seanbaby)가 있었지만 이 둘과는 맞붙지 않았다. 론 스팍스는 체구가 우베 볼보다 컸고(동명이인 MMA 선수로 착각하고 피한 것 아니냐는 농담도 있다) 션베이비는 무에타이와 주짓수를 연마한 아마추어 선수였기 때문. 우베 볼은 다른 비평가들과는 붙었으면서 두 사람과는 끝내 경기를 갖지 않았고, 덕분에 '상남자'에서 '겁쟁이 쇼맨'으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그의 신작은 포스탈 2! … 였는데

기사 탈고를 앞두고 있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크라우드펀딩에 올라왔던 차기작 소식이 완전히 무산됐다는 것이다. 우베 볼 차기작이 취소됐으니 '영화계의 정상화'가 이뤄진 셈인데, 지금 돌아보면 수상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 펀딩 안내 페이지는 <포스탈 2> 제작 비용이라고 적었는데 원작 게임 개발사의 CEO가 직접 "우리는 속편 관련에서 아무것도 전달받지 못했고, 이 속편 제작에 어떤 지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글을 남기자 우베 볼 감독의 데뷔작 <저맨 프라이드 무비>를 계승한 <켄터키 프라이드 무비>를 만들 수도 있다고 슬그머니 말을 돌린 것. 결국 이런 정황에 부정적인 반응이 많아지자 펀딩은 취소됐고 전액 환불로 이어졌다. 우베 볼이 직접 영상까지 올리기까지 했지만 결국 그의 큰 꿈(혹은 사기)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