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특선 프로그램도 좋지만, 이렇게 연휴가 있을 때 하면 딱 좋은 것. 바로 정주행이다. 몰아보기가 하나의 시청 행태로 자리 잡은 지금, OTT 플랫폼들 또한 이용객들을 유치하고자 과거 방영한 드라마를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덕분에 예전에 봤던 드라마를 다시 보기도 참 좋아졌으니 이럴 때 추억 속의 그 드라마를 다 함께 정주행해보면 어떨까. 기자들 각자가 뽑은 추천 드라마를 소개한다. 시청 가능한 플랫폼을 표기해두었으니 내키는 작품이 있다면 OTT 플랫폼을 들여다보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다 함께 즐기는 호불호 없는 맛
김지연 PICK _ <웰컴투 삼달리> (넷플릭스, 티빙)

가야 하는데, 가기 싫다. 고향을 두고 떠나와 타지에 자리를 잡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다. 마냥 모두가 고향에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아닐 터다.
고향에 가기 싫은 이유는 그곳에 두고 온 나의 찌질하고도 어설펐던 어린 시절이 있기 때문이고, 미처 청산하지 못한 부끄럽고 어색한 관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타지에서 숱한 시간을 보내며 이만큼이나 변화하고 성장했는데, 그곳만큼은 영원히 그대로일까봐, 변하기 전의 나를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웰컴투 삼달리>의 조삼달(신혜선) 역시 그랬다. 고향인 제주도를 몇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제 잘난 맛에 서울에서 바쁘게 일하며 고향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자신의 직업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벼랑 끝으로 도망치듯, 마지막 보루로 향한 곳이 바로 자신의 고향, 제주도의 삼달리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학창 시절, 더 넓은 무대에서 일하겠다며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어 하던 곳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시 찾으며 그때는 몰랐던, 삼달리라는 작은 세계의 작동 방식을 알게 된다. 조삼달을 비롯한 조진달(신동미)·조해달(강미나) 세 자매, 그리고 세 자매의 엄마이자 해녀회장인 고미자(김미경)의 이야기까지, 가족과 고향에 대한 이야기는 명절에 더없이 어울린다.
연휴의 지루함을 날려줄 B급 코미디의 향연
주성철 PICK _ <쌉니다 천리마마트> (티빙)

손님이 왕이라면 점장은 황제다! 티빙에서 볼 수 있는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이번 추석 연휴에 ‘웃음’을 찾는 이들에게 단연 추천하는 드라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연재된 김규삼 작가의 인기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드라마화한 것으로 마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블랙코미디물이다. 2019년 9월부터 12부작으로 방영됐는데, 웹툰 원작의 캐릭터와 프로덕션 디자인을 훌륭하게 재현해내며 가장 모범적인 웹툰 실사화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무엇보다 이른바 병맛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점이, 이 드라마가 아주 널리 알려지진 않았어도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흐뭇한 눈인사를 주고받게 되는 이유다.
무너진 가판대와 상한 식품들로 가득한 천리마마트는 경기도 봉황시 주민들에게 외면받은 지 오래다. 게다가 이곳은 김대마 회장(이순재)이 이끄는 대마 그룹의 공식 유배지로 쓰인다. 천리마마트로 발령받는 것은 권고사직의 다른 말인 것. 그렇게 대마로부터 좌천당한 이사 정복동(김병철)이 사장으로 있고 간신히 취업에 성공한 문석구(이동휘)가 점장으로 있다. 자신을 좌천시킨 김대마 회장에게 빅엿을 먹이려는 정복동과 실적을 쌓아 대마 그룹에 입성하려는 문석구에 의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천리마마트에 모여 조금씩 정통 ‘B급 코미디’의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가령, 천리마마트에는 원주민 빠야족이 일하는 ‘인간 카트’가 존재한다. 동전을 넣고 카트를 빼가는 게 아니라 커다란 바구니를 등에 들쳐멘 인간 카트가 고객을 졸졸 따라다니며 물건을 받는 것. 화려한 인면조 의상을 입은 정복동 사장과 노조위원장의 캐시미어 노조 깃발은 또 어떤가. 웹툰을 즐긴 팬들이라면 웹툰의 여러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미술들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광경에 두 눈을 의심할 것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설정들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만들어준 김지수 미술감독에게 따로 감사인사를 올렸을까.
퓨전 한식
추아영 PICK _ <동백꽃 필 무렵> (넷플릭스, 웨이브)

평소에는 맹탕, 화가 나면 하마처럼 들이박는 동백(공효진)이가 온갖 낡은 편견에 꿋꿋하게 맞선다! 갓난아기 필구와 함께 도시에서 벗어나 충청도 시골 옹산에 터를 잡은 동백이. 그녀는 3개월도 버티기 힘들다는 옹산에서 술집 까멜리아를 연다. 그렇다면 이곳 옹산은 어떤 곳이냐. 게장 장사로 먹고살며 게장의 저작권과 상속권은 죄다 딸들 아니면 며느리에게 승계되는 현대판 모계 사회다. 옹산의 남자들은 옹산 바닥 어디로 가든 장모에 처형, 마누라의 아는 언니와 동생이 점거하고 있어 첫사랑 얘기를 함부로 지껄였다가는 제 수명을 채우질 못한다. 옹산의 남자들에게 동백의 까멜리아는 옹산의 중립국이요, 사막의 오아시스다. 그렇게 옹산의 애환을 먹고 자란 까멜리아는 이곳에서 6년을 버틴다.
옹산을 꽉 잡고 있는 마을의 여자들은 또 어떤가. 여전히 미혼모가 술집 장사를 한다고 세모눈으로 쳐다보고, 자식이 속을 썩이면 무당을 찾아가 하소연한다. 물론 남자들도 이에 못지않다. 편 가르기, 완장 차기, 대장 노릇을 좋아하는 지역 유지가 활개를 치고, 그에 맞춰주는 남자들이 줄을 선다. 이토록 편견 가득한 옹산은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모든 편견을 망라하는 알레고리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이곳에서 편견에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동백의 분투를 따뜻하게 그려낸다.

2019년 시청률 한 자릿수로 시작한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점점 입소문을 타면서 중반이 되기 전에 시청률 10%를 넘어섰고, 결국 23.8%로 막을 내리는 유종의 미를 거뒀다. 퍽퍽한 삶에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따스한 세계를 그려온 임상춘 작가가 각본을 썼다. 그렇게 <동백꽃 필 무렵>에는 임상춘표 명대사들이 즐비하다. 단순히 휴먼 코미디 드라마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공효진과 강하늘의 로맨스에 옹산의 연쇄 살인범 까불이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미스터리가 더해진 장르 혼합물이다. 두 장르의 플롯은 서로 맞물리면서 동백이에게 까불이의 존재감이 짙게 드리워질수록 두 남녀의 관계도 위기를 맞는다. 장르적 재미에 더해 <동백꽃 필 무렵>의 배우들은 주·조연을 막론하고 인상 깊은 연기와 캐릭터 소화력, 맛깔나는 충청도 사투리 연기를 펼쳐 보인다. 말 그대로 재미와 감동 모두를 사로잡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이거 보고 충치 치료 받았다
성찬얼 PICK _ <미치겠다, 너땜에!> (웨이브, 왓챠)

근래 본 한국드라마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평소 보는 드라마 취향이… 명절에 정주행하세요! 라고 추천하기엔 다소 어두운 편이라 더 고심할 수밖에. 그러다 떠오른 드라마가 <미치겠다, 너땜에!>다. 추천 이유는 두 가지. 일단 짧다. 4부작이다. 말이 4부작이지 회당 30분이라 사실상 2시간 영화 한 편이다. 정말이지 필자처럼 인내심이 부족한 도파민 중독자라도 이 정도는 볼 수 있다(실제로 봤고). 두 번째, 달달하다. 흔히들 말하는 '이가 썩을 정도로' 달달한 이야기로 꽉 채웠다. '한국드라마는 맨날 사랑 타령이야' 하는데 그게 한국드라마의 장점 아니겠는가? K-드라마 열풍도 그 사랑 타령에서 시작됐으니 기왕 볼 거면 고밀도로 연애세포 때려 박는 이런 드라마가 효율이 좋지 않겠는가.
<미치겠다, 너땜에!>는 '사람친구'로만 지내던 남녀가 술김에 동침한 이후 서로의 감정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서로에게 넘을 선조차 없었던 두 사람이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고민하고, 때로는 마음을 감추기까지 하는 모습은 코믹하기도, 마음 아프기도 하다. 물론 이 드라마 지금 찾아본다면 처음부터 진입장벽이 있을지 모른다. 김선호/이유영인데 '사람친구'라고? 그래도 8년 사람친구였다는 게 드라마의 설정이니 못 믿겠더라도 믿자. 어차피 그 사람친구가 다른 관계로 발전하는 얘기니까. 원래 처음 서로의 마음을 깨닫고 그 거리를 조금씩 좁혀갈 때가 가장 간질간질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썸'이란 신조어가 생긴 것이기도 하고. 그런 순간의 간질거림을 이유영과 김선호로 빚어주는데 어떻게 안 볼 수 있겠는가. 미치겠다, 너네땜에! 문득 이 글을 쓰다보니 이 드라마를 보고 나가서 보름달에게 소원이나 빌어야겠다 싶어지긴 한다.
명절만큼은 부디 편안하길
이진주 PICK _ <그들이 사는 세상>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요즘 ‘드라마’하면 OTT 시리즈를 떠올린다. 돌이켜보면 ‘겨우 6화, 길어야 6시간 안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지?’라며 의구심을 품었던 적이 있지만 불과 몇 년 사이 ‘8부작도 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짧은 이야기에 적응한 ‘요즘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추석 명절처럼 긴 연휴를 앞두고는 그간 애쓴 안쓰러운 몸과 마음에 안식을 줄 수 있는 편안하고 느긋한 드라마를 찾게 된다.
16부작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은 ‘드라마 명가’ KBS 2TV에서 2008년 10월 첫 방영되었다. 드라마 스페셜 <거짓말>(1998), <슬픈 유혹>(1999), <바보 같은 사랑>(2000)과 <고독>(2002) 등을 성공적으로 이끈 오랜 콤비 표민수 PD와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다. 현빈, 송혜교 주연의 이 작품은 방송사 드라마국 사람들의 삶과 사랑을 소소하고 잔잔하게 담아냈다.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삶’이라는 의미로 ‘그사세’라는 신조어를 낳은 <그들이 사는 세상>은 사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는 고충을 담는다. 그리고 이를 내레이션으로 표현하는데 여기에서 노희경 작가 특유의 감성이 돋보인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다루는 평범한 인물들의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노희경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비범한 시선이 극 전반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