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의 흥행 요인은 단연 ‘재미’다. 요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 요리를 즐겨 하지 않는 사람 등, <흑백요리사>는 그 모두를 시청자로 끌어당길 만큼 큰 화제를 낳고 있다.
<흑백요리사>는 많은 ‘밈’을 낳으며 벌써부터 올해 최고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흑백요리사>는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이다.

<흑백요리사>는 ‘요리 계급 전쟁’이라는 잔혹한 서바이벌 방식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오히려 ‘셰프’라는 직업에 대해 반문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은 자기보다 경력이 많은 선배 요리사에게 존중을 표하고, ‘조리사’ 혹은 ‘이모’, ‘어머님’이라고만 불렸던 참가자들은 경연에서 비로소 ‘셰프’라는 이름을 달고 유명 요리사들과 동등해진다.
오직 ‘맛’으로만 승부하는 요리 프로그램이니, 시청자들의 ‘국민투표’를 받을 리 만무하겠지만, 시청자들은 방송을 시청하며 조금 더 애정이 가는 참가자가 있을 터다. 씨네플레이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오는 10월 1일 <흑백요리사>의 8-10회 공개를 앞두고, 씨네플레이 기자들의 <흑백요리사> ‘1픽’, 최애 셰프를 소개한다.
김지연 기자 - 심사위원 백종원, 만찢남

‘요알못’이지만, <흑백요리사>를 보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첫째, 백종원이 나와서. 둘째, 서바이벌이라서. 소싯적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한 회도 빠짐없이 보고 줄줄 꿰는 시청자로서, 백종원이 지닌 긍정적인 영향력과 그에게서 나는 ‘사람 냄새’를 좋아한다. <흑백요리사>의 2화에서 ‘비빔대왕’ 유비빔씨에게 탈락 소식을 전하면서도, 정중하게 ‘진짜로 존경한다’라는 말을 전하는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백종원을 좋아하는 이유를 한 장면으로 요약한다.

자고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재밌으려면 캐릭터가 살아있어야 한다. <흑백요리사>의 기획, 편집과 구성, 그리고 참가자들의 캐릭터는 마치 과거의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듯, 감칠맛이 일품이다. <흑백요리사>의 참가자들은 개성으로 무장해, 시청자는 한 장면 한 장면 곱씹을수록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만화방을 하다가 「요리왕 비룡」에 나오는 떡볶이를 만들어봤고, 그 길로 요리에 들어선 참가자 ‘만찢남’의 서사는 <흑백요리사>의 지향점을 가장 잘 집약해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맛의 달인」 2권 25페이지 동파육’, ‘「철냄비짱」 8권 19페이지 게살 춘권’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죽 찢은 만화책의 한 페이지와 함께 내는 만찢남. 조금 과장하자면, 나는 만찢남에게서 ‘문화 콘텐츠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본 느낌이었다. 한 권의 만화책이 만찢남의 미래를 아예 다른 길로 이끌었듯, 한 편의 영화가, 한 폭의 그림이, 하나의 콘텐츠가 누군가에게는 교과서가 될 수 있고, 인생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추가로, 요리하며 헤드폰으로 양파와 지아 노래를 듣는 김도윤 셰프도 재밌다. 마치 헤비메탈을 들을 것만 같은 그가 00년대의 한이 서린 구슬픈 발라드를 들으며 만든 요리는 어떤 맛이 날까.
주성철 편집장 - 철가방 요리사, 여경래


<흑백요리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셰프는 ‘철가방 요리사’다. <흑백요리사> 포스터에서 이마를 찌푸린 채 불길을 쳐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가장 앞에 있기에, 아마도 그가 오래오래 살아남았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게다가 응원하고 싶은 그의 흥미로운 인생 스토리에 더해, 그가 오너 셰프로 있는 서촌 ‘도량’에 가본 적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직접 홀에 나오셔서 테이블에서 인사도 했었는데,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나 보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흑백 단체전에서 ‘트리플 스타’가 팀장을 맡아 주메뉴를 육전으로 정한 뒤, 흑수저 팀이 보여준 협업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도량에 방문했을 당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메뉴가 가지 사이에 다진 새우살을 가득 넣어 튀긴 ‘어향가지 튀김’이었는데, 프로그램에서 그가 만들어낸 야채볶음 소스가 딱 그 비주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가웠으나 전분이 많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모두 모여 맛 평가를 진행한 후 야채를 써는 방식과 볶음 방식은 전면적으로 수정되기에 이른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소스를 만들었지만, 그는 “죄송합니다!”를 크게 외치고 빠르게 수정 작업에 돌입했다. 도량 메뉴판에 ‘도량만의 특제 소스’라고 표기되어 있을 정도로, 자신의 야심작이 부정적인 반응을 얻게 됐을 때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겠으나, 그는 단체전의 성격과 방식을 이해하고 바로 소스를 업그레이드했고, 급기야 모두를 만족시키는 볶음이 완성됐을 때 울컥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모처럼 도량에 방문할까 하는 생각에 검색해 봤더니, 9월 25일을 기점으로 당분간 전화 예약이 힘들고 곧 예약 어플에 등록될 것이라는 공지사항이 떠 있었다. 어쨌건 한동안 입맛만 다셔야 할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해야 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흑백요리사>에 동갑내기 3인방인 최현석, 에드워드 리, 안유성 셰프 같은 이들을 떠나 중식 대가 여경래 셰프가 출연해 가장 놀라웠다. 보통 중식 명장으로 가장 많이 방송에 섭외되는 이가 이연복 셰프여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대만 국적의 여경래 셰프는 세계 중국요리협회 부회장 겸 한국 중식연맹회장이며, 50년 경력이 넘는 한국 중식계의 대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흑수저 요리사인 철가방 요리사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졌다. 여경래 셰프 정도의 대가가 “나도 철가방 출신이라 반갑다"라며 이런 후배와의 대결에 응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잘 해야 요리 업계가 발전한다고 웃으며 얘기하는 것 자체가 훈훈했다.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그와 철가방 요리사의 소꼬리 대결이었다. 철가방 요리사는 간장 소스로 만든 소꼬리찜 ‘동파우미’를 만들었고, 여경래 셰프는 두반장을 사용해 소꼬리찜을 만들었다. 요리에 문외한인 내가 음식을 맛보지도 않고 평가하기는 애매하지만, 이른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철가방 요리사는 소스부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요리를 선보이고, 여경래 셰프는 과감히 두반장을 소꼬리찜에 적용하여 창의적인 메뉴로 도전한다는 인상이었다. 그렇게 승리한 철가방 요리사는 여경래 셰프에게 큰절을 하면서 대결이 마무리됐고, 백종원 심사위원도 그에게 다가가 존경을 표했다. 최근 여경래 셰프는 여씨 형제들과 함께 하는 ‘여가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당시를 회상했다. “보니까 창피하구먼”이라고 말문을 연 그는 “살면서 항상 실패를 거듭하면서 향상하고 위로 올라가는 것은 분명하다. 철가방 요리사가 더 정진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상 아래에 철가방 요리사는 “존경하는 여경래 사부님! 철가방요리사 임태훈입니다. 순간순간이 영광이었고 많은 배움 얻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직접 댓글을 달았다. 여경래 셰프는 다시 한번 “요즘 거기도 무척 바쁘겠네. 이참에 최고식당으로 거듭나시기 바라요. 어느 정도 바쁜 게 자리 잡으면 그때 한번 봅시다. 소주던 고량주던... 좋은 기회를 잘 살려 많은 고객들에게 보답해 드립시다”라고 대댓글을 달았다. 아무튼 그는 백수저 중 짧은 분량 출연자에 속하겠으나, 가장 큰 감동을 남겼다고 생각된다.
이진주 기자 - 최현석, 에드워드 리

최현석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스타 셰프’이다. 모든 스타가 그러하듯 그에게는 대중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물론 ‘셰프가 요리만 잘하면 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음식을 혀로만 즐기지 않는다. 음식을 만든 사람의 캐릭터와 역사 그리고 조리 과정까지 하나의 그릇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중 대부분은 그의 음식을 직접 먹어 볼 기회보다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즐길 확률이 더 높다.

최현석은 4화 ‘1대 1 흑백대전’에서 자신의 요리 철학에 대해 ‘익숙한데 새로운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저명한 예술(문학) 기법 ‘낯설게 하기’와 궤를 같이한다. 러시아의 문학가 빅토르 쉬클로프스키가 제안한 이 용어는 친숙한 사물, 개념 등을 낯설게 하여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하는 표현 기술이다.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 방식을 요리에 적용한 최현석은 다른 셰프와 차별화되는 지점을 선점한다. 그는 이 대결에서 간장과 깍두기, 된장과 소고기 등 낯선 조합과 접근으로 백종원, 안성재 두 심사위원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평을 받았다. 두 사람의 치열한 논의 끝에 대결은 결국 최현석의 승리로 끝이 났다. 역시 진정한 스타는 ‘까’와 ‘빠’를 모두 미치게 만든다.

마치 중견 배우처럼 중후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백수저 셰프 에드워드 리가 등장하자 흑수저 셰프들은 매우 놀랐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2010년 미국 요리 경연 프로그램인 아이언 셰프 우승자이자 백악관 국빈 만찬 셰프로 업계에서는 소문난 실력자이다.
3화 1대 1 흑백대전에서 에드워드 리는 평생 한두 번 맛보았다는 묵은지를 주재료로 요리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그는 묵은지와 감의 조합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내며 흑수저 셰프 고기 깡패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맛에 대한 극찬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예상치 못한 그의 진가는 팀 미션에서 발휘되었다. (7화 흑백 팀전) 백수저팀과 흑수저팀은 고기와 생선을 주재료로 100인분의 음식을 만들어 내야 했다. 촉박한 시간에 일정한 퀄리티의 음식을 내야 하는 데다 레시피에 대한 셰프들의 의견이 갈리는 문제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현석을 리더로 둔 에드워드 리도 마찬가지였다. 최현석의 실수로 레시피에 변경이 생기자 에드워드 리는 이에 반대하며 또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리더가 강하게 추진하자 그는 깔끔하게 ‘당신이 리더이니 믿겠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군말 없이 행동에 나섰다. 에드워드 리의 팔로워십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리더십에 집중한다. 리더의 카리스마는 늘 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그가 리더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 모습을 이미 리더의 자리에 있는 에드워드 리가 몸소 보여주며 더욱 짙은 인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