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영화’하면 <브로크백 마운틴>(2006)이나 <캐롤>(2016) 같은 로맨스 장르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퀴어에는 보다 다양한 시선이 얽혀 있다. 당연한 일이다. 인생에는 ‘로맨스’만이 주인공이 될 수 없으니까. 이번 달 개봉한 <딸에 대하여>(2024)는 ‘레즈비언 딸을 둔 엄마’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퀴어와 그 주변인의 인생까지 고루 살폈다. 오늘은 로맨스가 아닌, 퀴어를 보는 또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너에게 가는 길> -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의 연대와 성장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은 FTM(Female To Male,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를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경우) 트랜스젠더 한결의 엄마 나비와 게이 예준의 엄마 비비안, 두 사람과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변규리 감독은 수많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 중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섭외한 이유에 대해 ‘두 어머니가 자녀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각각 달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비는 소방관으로 한결의 성별 정정을 위한 법적 절차를 함께 준비하며 그의 선택을 지지하고, 비비안은 외항사 승무원으로 아들의 동성 연인과 시간을 보내는 등 좀 더 자유롭게 그의 관계를 받아들인다. 두 주인공 모두 부모 세대이자 워킹맘인데, 감독은 주인공 선정에 대해 “아무리 진보적인 가치관으로 살아왔대도 지금의 부모세대는 성소수자 이슈를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다.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자신의 세계관을 재정립하면서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퀴어에 대한 담론이 보다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퀴어에 대해 나쁜 감정은 없으나 내 자녀가 퀴어는 아니었으면 한다’라고 답한다. 결국, 퀴어들의 삶이 ‘남의 일’이길 바란다는 것이다. <너에게 가는 길>은 자녀가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존재였을 때 자녀를 틀에 맞추는 길이 아닌, 자녀의 손을 잡고 함께 틀을 부수는 선택을 한 어머니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작품에선 나비와 비비안 외 성소수자부모모임 참여자들이 나오는데 그들 모두 자녀의 성정체성, 성지향성을 명확히 밝히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바이젠더, 팬로맨틱, 에이섹슈얼 FTM 트랜스젠더’로 아들 한결을 소개하는 나비의 모습과 이를 경청하며 듣는 다른 부모의 모습은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혐오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그들을 지키기 위해 투사가 된 그들은 ‘결국에는 내가 성장했다’라고 말한다. 비비안은 “국제선을 오가며 수많은 게이 커플을 마주해도 내 아들이 게이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라고 말하며,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2~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비는 본인을 ‘차별 없는 선량한 시민’이라고 믿고 살아왔으나 방송인이 커밍아웃을 하고 난 뒤 방송계에서 사라져도 의문을 갖지 않았던 사람임을 자녀의 커밍아웃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녀의 커밍아웃 이후, 두 사람은 시행착오와 공부, 그리고 연대를 통해 점차 성장해갔고 작품은 그들의 성장담을 담았다. 그래서 <너에게 가는 길>은 얼핏 보면 퀴어 다큐멘터리지만, 결국엔 두 사람의 성장에 주목한다.
<딸에 대하여> - 레즈비언 딸이 홀로 늙을까 두려운, 요양보호사 엄마

<딸에 대하여>는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너에게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퀴어 자녀를 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만, <너에게 가는 길>이 다큐멘터리임에도 이상적이고, 누군가에겐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따뜻하고 진보적인 가족애를 다루고 있다면, <딸에 대하여>는 극임에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엄마(오민애, 극중 이름이 나오나 크레딧에서도 엄마로 지칭한다)는 한때 대단한 업적으로 칭송받았지만 이젠 무연고 노인으로 버려진 제희(허진)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약자들의 편에 선다. 올바르고, 성실한 중년 여성인 그에겐 독립한 딸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딸 레인(임세미)이 직장을 잃고 갈 곳이 없어 엄마의 오래되고 낡은 집으로 잠시 돌아오게 된다. 7년 사귄 동성연인, 그린(하윤경)과 함께.

엄마는 그린이 불편하다. 7년이나 사귀었으나 그들이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고, 얄팍한 감정에 기대어 서로 같이 있는 게 고작인 관계에서 엄마는 딸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느낀다. 엄마는 제희에게 딸을 투영하는데, 인권운동처럼 남을 위해 헌신하다 결국 나조차 지키지 못한 노인, 제희를 보며 엄마는 ‘가족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과연 이 사람은 이러한 대우를 받았을까’이라는 생각을 한다. 혼인신고와 같은 어떠한 서류로 묶일 수 없는 레인과 그린을 보며 “너희들은 결국 가족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엄마의 기저에는 불안이 깔려 있는 것이다. 혹시나 내 딸의 미래가 제희일까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스스로 그 불안을 반박한다. 피 한 방울 안 섞이고, 어떠한 인연조차 없는 제희를 제 어머니처럼 살뜰히 돌보며 ‘이러한 가족, 돌봄도 있다’는 것을 기어코 증명해 낸 셈이다. 한평생 약자의 편에 서서 올바르게 살아왔던 그이지만, ‘내 딸’이 사회의 틀 밖에 존재한다는 것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다. 게다가 레인과 그린 모두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어 경제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두 사람을 완전히 독립적인 개체로 인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테다. 그럼에도 영화는 엄마와 딸, 동성연인, 노인, 중년, 청년, 가장 등 여러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인물들을 한 화면에 담아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불온한 당신> - 여성 트랜스젠더이자 노인인 바지씨의 이야기

<불온한 당신>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따라서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자 한다면, 이 영화가 정치적이라는 사실은 염두하고 보길 바란다. 이영 감독의 <불온한 당신>은 한국 사회에서 불온한 존재였던 바지씨를 시작으로, 동성애를 빨갱이라 매도하는 일부 단체의 집회를 날것으로 담는다. <불온한 당신> 속 주인공인 바지씨, 이묵은 1945년생으로, 트랜스젠더란 말조차 없었을 때 FTM 트랜스젠더인 스스로를 ‘바지씨'라 정의 내리고 본인을 숨기지 않으며 살아왔다. 매일같이 머리를 밀고 수염을 깎던 그는 “성소수자 후배들에게 용기가 되고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내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라고 말하며 “나는 숨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내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다”라고 덧붙였다.

작품은 노년 퀴어 이묵과 함께 일본 미야기현에 살고 있는 동성 부부 논, 텐의 모습을 비춘다.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두 사람은 ‘이해해달라’라는 의미가 아닌, ‘생존을 위해’ 커밍아웃을 한다. 재난 상황에선 가족만이 구조 요청을 할 수 있기에 논과 텐은 커밍아웃을 하고 결혼식을 올려 가족이 된다. 법적으론 여전히 남이지만, 최소한 주변인에겐 두 사람이 가족임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불온한 당신>은 사회에서 ‘불온하다’ 여기는 퀴어인의 모습을 차례차례 비추다가, 퀴어 페스티벌에 반대하는 무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퀴어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며 작품은 ‘누가 불온한가’에 대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걸> - 트랜스젠더 소녀의 발레리나 도전기

영화 <걸>은 발레리나를 꿈꾸는 라라(빅터 폴스터)에 대한 이야기로, 라라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과정 중에 있는 16세 MTF(Male to Female,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경우) 트랜스젠더이다. 지금껏 트랜스젠더에 관한 담론을 다룬 작품들은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차별적인 환경 및 주변인과의 갈등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오늘 소개한 <너에게 가는 길> 속 한결이나, <불온한 당신>의 바지씨 모두 사회에서 그들이 얼마나 차별받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걸>은 라라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기 위해 이러한 주변 갈등 요소를 모두 제거했다. 라라는 가족의 지지를 받으며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수술을 준비하고 있고,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벨기에 최고 무용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어느 누구도 라라의 성정체성에 대해 구태여 언급하지 않는다. 호기심을 가장한 무례를 저지르거나, 저속한 따돌림도 없다. 흔히 볼 수 있는 퀴어 가족의 고뇌도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모든 환경이 갖춰져 있는 라라는 아무런 고민 없이 행복할까. 영화는 끊임없이 ‘거울’을 보는 라라를 스크린에 담으며 그의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본다.

모든 환경이 갖춰진 상황에서 라라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견딘다. 남들보다 무거운 몸, 점차 굵어져 가는 뼈대와 분명해져가는 2차 성징.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여성으로 ‘태어난’ 친구들과 라라의 몸은 다르다. 몸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발레리나 복은 두터운 니트로 감추어왔던 라라의 몸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에게 끊임없이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라라는 자주 거울을 응시하며,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살핀다. 트랜스젠더가 겪는 문제는 비단 사회적인 차별 혹은 편견뿐만 아니다.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수술은 자신의 몸을 바꾸는 수술인데, 이 과정은 당연히 치열하고 고단하다. 발레리나복은 라라의 몸을 숨길 수 없다. 그렇기에 라라는 끊임없이 자신의 몸 한가운데 붙어있는 남성기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트랜스젠더는 신체와 정신의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 자신의 신체에 강박을 느끼고 있다. <걸>은 트랜스젠더의 신체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지금껏 논의되지 않았던 트랜스젠더가 느끼는 고통의 본질을 섬세하게 이야기한다.
<문라이트> -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

<문라이트>는 외로운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작품으로, 취약계층, 흑인, 퀴어, 성장 등 단순히 한 장르로 정의내릴 수 없다. 퀴어라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퀴어, 단 한 가지가 될 순 없지 않나. 인간은 여러 정체성을 갖고 산다.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아이, 학교 폭력을 당한 청소년,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적 없는 외로운 청년. 영화는 샤이론이란 소년의 삶을 총 3장으로 나눠서 보여준다. 1장 리틀에서 어린 샤이론(알렉스 R. 히버트)은 왜소한 몸집으로 리틀이라고 불리며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마약 판매상이었던 후안(마허샬라 알리)이 마약에 중독되어 아들을 돌보지 않는 엄마(나오미 해리스)를 대신해 리틀을 돌본다.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따뜻한 집이 되어 주는 후안을, 리틀로서는 도무지 싫어할 수 없다. 설령 자신의 엄마에게 마약을 파는 이가 후안이라 해도. 리틀은 케빈(제이든 파이너)과 친구가 되고, 후안과는 가족과도 같은 사이가 되어 그들에게서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내 리틀은 후안에게 ‘당신이 엄마에게 마약을 팔았느냐'라고 묻고 후안은 그대로 집 밖으로 뛰쳐나가며 1장은 막을 내린다.

2장에선 청소년이 된 샤이론(에쉬튼 샌더스)이 등장한다. 엄마의 마약 중독 증세는 심각해졌고 샤이론이 동성애자란 소문이 학교에 파다해 더 이상 친구는 없다. 세상을 떠난 후안 대신 그와 함께 리틀을 돌보던 테레사(자넬 모네)와 그의 친구 케빈(자럴 제롬)이 유일한 안식처다. 동성애자란 소문으로 인해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던 샤이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케빈에게 애정 어린 손길을 받고 사랑에 눈을 뜬다. 이후 영화는 그가 사랑하던 이들에게 배신 당하고, 상처 받는 과정과 3장에서 그토록 혐오하던 마약 거래상 블랙(트레반트 로즈)이 된 샤이론의 모습을 다룬다. 3장에서 블랙이 된 샤이론은 강하다. 금니에 비싼 자동차, 거대한 몸집, 그 누구도 깔볼 수 없는 마약 거래상이 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악몽을 꾸며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외향은 후안을 닮아 있으며, 블랙이란 이름 역시 어릴 적 케빈이 자신을 부르던 별명으로, 시간이 흘러 외모와 상황은 변했지만 여전히 그 안엔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영화는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후안은 어린 소년에게 “뭐가 될진 스스로 결정해야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샤이론은 그 지난한 시간을 지나, “넌 누구야, 샤이론?”이라고 묻는 케빈에게 “나는 나야”라고 대답한다. <문라이트>는 성정체성을 넘어, 한 생명체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나'를 찾기 위해 극적인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이 그러하듯, 샤이론은 고난을 견디며, 상처받으며 살아왔고 그 과정을 거쳐 자신을 ‘나’로 정의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