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 에드워드 양(양덕창) 감독의 영화 <독립시대>가 지난 9월 25일 국내 첫 리마스터링 개봉을 했다. 이번 리마스터링은 ‘대만영화 디지털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1994년의 작품을 2020년에 디지털 복원하면서 이루어졌다. 에드워드 양은 빛과 어둠이 새겨진 미장센으로 아름다운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과 21세기에 나온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은 <하나 그리고 둘>(2000)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감독이다. 주로 대만의 근대화로 혼란스러운 시대적 공기를 포착하고, 그 과정에서 소외된 개인의 방황을 그려왔다. 그의 다른 작품처럼 <독립시대>도 시대적 맥락에 결부되어 있는 개인의 일상을 따라간다. <독립시대>는 <마작>(1996), <하나 그리고 둘>과 함께 감독의 후기 영화 세계를 대표하는 ‘신 타이페이 3부작’의 시작을 열었다. 그의 앞선 ‘타이페이 3부작’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1985), <공포 분자>(1986),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에서 <하나 그리고 둘>로 이행하면서 스타일이 달라지는 전환점에 있다.
에드워드 양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독립시대>의 입지는 더욱 독특하다. 그가 처음으로 코미디와 멜로드라마를 결합한 장르 스크루볼 코미디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 재벌집 딸 몰리와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절친인 치치의 사랑과 오해를 그려낸 영화는 계급과 성향, 가치관이 다른 여러 인물의 에피소드를 복잡다단하게 펼쳐놓는다. 통속적인 톤앤매너로 흘러가는 영화는 그 형식과 달리 사랑과 예술, 정치의 메타포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는 결국 진실과 거짓이라는 에드워드 양의 모든 영화를 수렴할 수 있는 주제로 이어진다.

출판, 음반, 드라마 등 문화계 곳곳에 영향력을 끼치는 문화 사업가 몰리(금연령)와 그녀의 유능한 비서이자 진실한 교류를 이어가는 오랜 친구 치치(진상기). 사소한 오해로 둘의 우정에 금이 간다. 몰리는 구조조정에도 여전히 휘청거리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부유한 약혼자 아킴(왕백삼)에게 투자금을 받으려 하고, 치치는 몰리의 친구이자 연극 연출가 버디(예밍 왕)의 표절 시비를 해결하느라 분주하다. 치치는 회사 사정을 오랜 연인 샤오밍(진이문)에게 털어놓다가 크게 다투고, 몰리의 오해까지 사며 친구를 잃을 상황에 놓인다.
혼란스러운 현대인의 자화상

<독립시대>는 공자와 제자 염유의 문답을 빌려오면서 시작한다. 공자는 위나라에 당도해 백성들이 많은 것을 보고 감탄한다. 감탄을 표하는 공자에게 제자는 백성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 제자의 물음에 공자는 부유하게 해줘야 한다고 답한다. 다시 제자는 묻는다. “부유해진 다음에는 어찌할까요?”. 암전 속에서 공자와 제자의 문답을 옮긴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오프닝은 갑작스럽게 아시아의 부유한 신흥공업국이 된 대만의 현실을 비춘다. 타이베이는 2000년 동안의 가난을 뒤로하고 불과 20년 만에 세계의 부자 도시로 거듭난다. 에드워드 양은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현대의 대만인들이 마주하는 혼란을 포착한다. 그는 나아가 예술가로서 당대의 시대적 한계에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고찰하고 이를 작품에 담아낸다.

영화는 몰리와 치치 두 인물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몰리와 약혼자 아킴, 치치와 샤오밍 등 네 남녀의 애정전선은 예술과 정치, 비즈니스의 메타포로 중첩되어 있다. 몰리는 집안 사이에서 한 약속으로 중국을 오가는 사업가 아킴과 약혼했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지만 약혼 관계를 지키려 한다. 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모른 채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회사를 운영한다.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 아킴의 투자금이 필요한 몰리는 그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다. 아킴은 몰리와의 약혼을 전통의 미덕을 지키면서 개인의 독립과 자유를 존중하는 진보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생각은 대만을 통합하기 위해 중국이 내건 정치적 구호 ‘한 나라 두 체제’와 같다. 에드워드 양은 몰리와 아킴의 관계를 중국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만의 관계로 유비한다. 몰리의 개인적 자립은 대만의 자립과 떨어져 있지 않다.

치치는 진실과 거짓이라는 에드워드 양이 반복해서 다루어 왔던 주제를 내포하는 인물이다. 순수하고 밝은 성격의 치치는 사람들에게 곧잘 친절하게 대한다. 친구 몰리는 그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사람들도 그녀를 편하게 대한다. 하지만 순수함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눈에 그녀의 미소와 친절한 행동은 가식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오랜 연인 샤오밍은 영화 속에서 가장 모순된 인물이다. 치치와 다툰 그는 설상가상으로 친하게 지냈던 동료마저 다른 팀원의 공작으로 떠나 보내면서 힘들어한다. 그는 외로움에 몰리와 하룻밤을 보내지만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는 몰리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몰리가 떠나고 혼자 남은 그는 조용히 읊조린다. “그래 다 정상이지. 잠을 잤으니 사랑하는 게 정상이고, 리렌을 몰아낸 것도 지극히 정상이고, 아버지가 감옥에 간 건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의화단, 문화대혁명, 천안문, 중국 통일 다 정상이지”. 에드워드 양은 인물의 입을 빌려 사랑과 정치를 유비한다. 샤오밍은 뒤늦게 책임을 회피하는 자신의 행위에서 모순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한다. 그의 모순은 중국에 대한 양가감정으로도 이어진다. 앞선 그의 대사는 중화인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폭력적 사건과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에드워드 양의 자조적인 인식을 담고 있다.
가식과 위선으로 얼룩진 예술가에 대한 비판

<독립시대>에는 진실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예술가에 대한 에드워드 양의 비판적 시선이 담겨 있다. 연극 연출가 버디는 팬들의 기대에 압박감을 느끼고 표절을 한다. 그는 배우를 꿈꾸는 샤오펑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연출가의 지위를 이용한다. TV쇼를 진행하는 몰리의 언니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기자들에게 남편과의 별거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녀는 TV쇼에서 자신의 현실과는 괴리된 메시지-“둘이 만나 하나가 되면 승리의 미소가 기다린다”-를 전하고, TV쇼에서 보이는 모순된 이미지에 자신의 현실을 끼어 맞춘다. 로맨스 소설로 베스트셀러가 된 몰리의 형부는 돌연 스타일을 바꾸고 난해한 작품을 쓴다. 형부는 과거에 자신이 썼던 책들을 부정하고, 골방에 틀어박혀 범죄와 죽음으로 가득한 암울한 작품 세계에 몰입한다. 각각의 인물들은 저마다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위선으로 얼룩진 자신의 삶에 갇혀 있다. 버디와 몰리의 언니는 대중의 눈을 속이고 자신의 이미지를 고착화시키려 한다. 몰리의 형부는 예술가를 그리는 작품 속에서 숱하게 묘사된 천재 예술가의 유형에 속하는 인물로 고립 속에서 세상을 왜곡되게 바라본다. 대중의 삶과는 유리된 채로 자신의 예술 세계에 도취되어 있는 이들의 모습은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예술이 해야만 하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몰리의 형부는 환생한 공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유자의 곤혹’을 쓴다. 영화 속 작품 '유자의 곤혹'은 <독립시대>의 축소판과 같다. 작품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공자가 환생해 이 사회로 돌아온다. 환생한 공자는 현대 사회에서도 유명인이 되지만, 사람들이 그에게서 배우려 한 건 남을 속일 수 있는 최고의 속임수일 뿐이다. 공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환생한 공자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는다. ‘유자의 곤혹’ 속 공자는 영화에서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사람으로 오해를 받는 치치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유자의 곤혹’은 유명인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는 현대인과 가식으로 소통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에드워드 양의 비판적 시선이 묻어 있다. 중국에서 최고의 성자로 추앙받는 공자에게서 속임수를 배우려 드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현대를 바라보는 그의 통탄과 비애가 느껴진다. 각각의 인물 중에서 가장 에드워드 양의 자기반영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몰리의 형부는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갑작스레 현대 사회의 가식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깨닫는다. 아름다움과 선함을 인식하고, 진솔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그는 끝내 자신의 오인에서 벗어나고 다시 차기작을 쓰러 간다. 그가 쓸 차기작은 인간의 보편적인 생애를 애틋한 시선으로 관조하는 에드워드 양의 후기 작품처럼 우리의 삶이 녹아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 양은 의도적으로 영화의 묵직한 주제를 통속극의 형식으로 그려낸다.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캐릭터의 희화화로 웃음을 유발하는 <독립시대>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통속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연극 연출가 버디 캐릭터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감독은 몰리의 형부처럼 예술가의 닫힌 세계 안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통속극의 형식을 취한 것이다. 그의 균형 잡힌 태도는 예술가의 자의식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처럼 느껴진다. 그의 의지는 자신의 영화 속에서 일상을 삶의 진실을 품은 것으로 재발견되게 하며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