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사랑에 선행하는 관계의 가치에 대하여 〈와일드 로봇〉

이진주기자
〈와일드 로봇〉
〈와일드 로봇〉

 

드림웍스가 30주년 기념작 <와일드 로봇>으로 돌아왔다. <슈렉>, <장화 신은 고양이> 등 명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드림웍스가 <드래곤 길들이기>의 크리스 샌더스 감독과 다시금 손을 잡았다. 지난 6월 프랑스 안시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지난 9월 열린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와일드 로봇>은 시사 이후 기립박수를 받으며 드림웍스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외신 반응도 한몫했다. ‘버라이어티’는 “연출만으로 완성시킨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라며 극찬했고 ‘데드라인’은 “아름다운 비주얼, 유머, 액션, 감동, 교훈까지 모두 갖췄다”고 평했다. 인디와이어는 “진정한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아름다운 동화”라고 호평했다.

 

오는 10월 1일 개봉하는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와일드 로봇>을 미리 본 후기를 전한다.


'나'를 위한 관계에서 시작된 사랑

*이하 <와일드 로봇>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일드 로봇〉
〈와일드 로봇〉

영화는 유니버설 다이나믹스의 로봇 ‘로줌 유닛 7134’, 일명 ‘로즈’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어느 섬에 불시착하며 시작한다. 태풍을 만나 난파되는 사고로 이 섬에 도착한 로즈는 섬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가치인 ‘도움’을 묻지만 섬의 동물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간다.

 

딥러닝이 가능한 로즈는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 긴 시간 그들의 언어를 학습하고 소통하는 것에 성공한다. 그러던 중 본의 아니게 기러기 둥지를 덮치게 되고 살아남은 하나의 기러기 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알에서 작고 약한 기러기 ‘브라이트빌’이 태어난다. 로즈는 그렇게 브라이트빌의 엄마가 된다.

 

사실 엄마가 아닌 필자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한다. 로즈 역시 ‘엄마는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다’며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모두가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다. 영화는 ‘엄마(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에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만들어지는 모성과 역할로서의 엄마에 대한 것이다.

 

로즈와 브라이트빌은 서로가 필요했다. 로즈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브라이트빌은 자신을 성장시켜줄 존재가 절실했다. 로즈와 브라이트빌의 관계는 ‘너’가 아닌 ‘나’를 위해서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사랑이 싹텄다. 모성의 신성함이 강조된 우리 사회에서는 다소 낯설지만 일면 납득이 가능한 시각이다.

〈와일드 로봇〉
〈와일드 로봇〉

 

<와일드 로봇> 중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은 단연코 브라이트빌의 비행 훈련 시퀀스이다. 작고 약한 날개를 가진 브라이트빌은 동족과 함께 긴 비행을 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에 들어간다. 로즈는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그를 돕고 브라이트빌의 비행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이 아름다운 장면이 찡한 이유는 이들이 헤어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아동 전문가 오은영 교수는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독립”이라고 전한 바 있다. 즉, 아이를 키워낸다는 것은 이별을 하는 과정인 것이다. 가장 밀착된 존재가 분리되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엄마의 운명이다. 브라이트가 떠나고 남은 로즈는 묻는다. “사랑한다는 건 뭘까?”

〈와일드 로봇〉
〈와일드 로봇〉

 

<와일드 로봇>는 이후 사랑의 범위를 확장한다. 브라이트빌의 빈자리를 섬 동물들이 채우는 것이다. 로즈의 손길이 섬 곳곳에 닿으며 그를 중심으로 섬 동물들이 뭉치게 된다. 이 지점에서 극은 또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

 

섬에 여러 차례 고난이 닥치는 동안 로즈는 섬 동물들에게 ‘프로그래밍된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스로의 본능을 제어하고 연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디즈니를 필두로 ‘자아를 찾’으라는 신세대의 주된 메시지와는 제법 다르다. 약육강식의 섬에서 포식자와 피식자의 경계를 뛰어넘어 힘을 합치자는 로즈의 이야기는 마치 신의 말씀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같은 추측은 극의 마지막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노랫말에서 강화된다.

 

<와일드 로봇>의 후반부 진행은 퍽 당황스럽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로봇 로즈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와일드 로봇’으로 진화하지만 다시금 자신의 쓸모를 찾아야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는 엔딩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당장의 온기보다 아끼는 이들의 평안함이 중요해진 로즈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와일드 로봇>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로봇과 동물, 서로 다른 의미에서 지극히 비인간적인 두 존재에서 관객은 인간성을 본다. 쓸모에 몰두하는 것(로봇)도,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의 논리(동물)도 모두 인간의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의 협력을 통해 인간성(본성)을 뛰어넘는 인간성(인격)을 발휘해야 한다고 전한다. 이에 대해 프로듀서 제프 헤르만은 “사랑, 애착, 헌신, 책임감 등 감정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면서 로봇과 동물의 관점을 통해 인간적 경험들을 이야기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드림웍스와 크리스 샌더스 감독의 과감한 도전

〈와일드 로봇〉 크리스 샌더스 감독
〈와일드 로봇〉 크리스 샌더스 감독

 

영화 <와일드 로봇>은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한 작가 피터 브라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드림웍스의 대표 매기 콘인 이 책이 정식 출판되기 전부터 판권을 논의할 정도로 원작 소설의 서사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는 “<슈렉>과 <장화 신은 고양이>의 동화적 배경, <크루즈 패밀리>의 환상적인 선사시대적 세계관, <쿵푸 팬더>의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아우르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를 깊게 탐구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와일드 로봇>은 우리의 가치관을 완전히 구현해낸 이야기”고 전했다.

 

<와일드 로봇>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림체로 관객들의 시각적 재미를 높인다. 이는 CG와 동반된 회화 작업 덕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구현한 숲의 분위기와 클로드 모네의 인상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와일드 로봇>은 총 15명의 아티스트가 투입되어 269개의 그림을 제작하며 고유한 색채를 구현해냈다. 애니메이션을 손으로 그리는 시대부터 일을 시작한 크리스 샌더스 감독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선택이다.

 

참고로 <와일드 로봇>은 쿠키영상이 있다. 마치 속편을 염두에 두는 듯하니 엔딩 크래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