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연휴를 노린 개봉작들이 개봉해 지금도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 가운데 관객들을 깜짝 놀래키며 동시에 반가움을 안겨주는 배우들이 눈에 띈다. 영화의 전면에 서지 않았지만 받쳐주는 역할로도 인상적인 순간을 만나게 해주는 개봉작 속 배우들을 선별했다.
<조커: 폴리 아 되>
재키 설리반 役 브렌단 글리슨


호아킨 피닉스와 레이디 가가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어서 그렇지, <조커: 폴리 아 되>는 그 속도 알찬 영화다. 본인 이름으로도 주연급 배우이자 감독 겸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스티브 쿠건이 TV쇼 진행자 패디로 출연하기도 하고 스타는 아니지만 다작을 한 덕분에 어딘가 낯익은 빌 스미트로비치, 켄 렁 같은 배우들도 등장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존재감을 남기는 건 간수 재키 역의 브렌단 글리슨. 간수 모자를 꾹 눌러쓰고 아서(호아킨 피닉스)를 데리고 장난치듯 농담 반 진담 반의 비아냥을 던지는 재키는 '조커'와 '아서 플렉'에 대한 세상의 온도차를 단번에 보여주는 모양새다. 그렇게 아서에서 관대한 것처럼 굴지만, 그가 선을 넘으면 바로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둘 간의 선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영화에서도 아서 플렉의 행보에 대한 반응으로 여러 차례 이 남자의 얼굴을 포착하고 있으니, 대중의 얼굴이자 아서 플렉 못지않은 불안한 인간상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브렌단 글리슨은 아일랜드의 대표 배우로, 최근에도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서늘퍼런 연기를 보여줘 미국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마틴 맥도나 감독과는 그의 첫 상업 장편 <킬러들의 도시>에서도 함께 했을 정도로 돈독한 사이(둘 다 아일랜드인이기도 하고).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무니를 연기하며 다양한 연기를 펼쳐 일반관객에게도 친숙한 배우인데, <패딩턴 2>에서 너클스를 보면 은근히 귀여운(!) 매력도 넘친다. 이제는 아들 도널 글리슨도 유명해져서 아일랜드 대표 배우 부자로도 잘 알려졌다.
<와일드 로봇>
롱넥 役 빌 나이
토른 役 마크 해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신작 <와일드 로봇>은 드림웍스 30주년 기념작인 만큼 목소리 배우들도 화려하게 채웠다. 주인공 로봇 로즈는 루피타 뇽이, 그를 돕는 여우 핑크는 페드로 파스칼이, 엄마 주머니쥐 핑크 테일은 캐서린 오하라가 맡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조이 역을 맡아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한 스테파니 수가 펼치는 본트라 연기도 일품.
그럼에도 여기서 가장 확 눈에 들어오는 배우들이라면 단연 빌 나이와 마크 해밀일 것이다. 빌 나이는 기러기떼를 이끄는 리더 기러기 롱넥으로, 마크 해밀은 이 섬의 최강자 불곰 토른 역으로 모두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사실 두 사람은 배우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성우로서의 커리어도 무척 좋은 편이라 그에 걸맞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롱넥을 연기한 빌 나이는 보통 <러브 액츄얼리>의 이상한(?) 가수 빌리로 유명하다. <어바웃 타임>의 아빠,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데비 존스 등 한국 관객들에게도 낯익은 얼굴이다. 대중적인 작품에선 조금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자주 맡는데, 1970년대 후반 데뷔한 이래로 논란 없이 롱런 중인 모범적인 배우다. 특히 2023년 영화 <리빙: 어떤 인생>으로 배우 인생 최초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돼 다시 한번 명배우로 인정받았다. 마크 해밀은 '루크 스카이워커', 이 이름 하나로 웬만한 스타들의 커리어를 찍어누른 배우. <스타워즈> 오리지널 삼부작의 주인공인 그는 성우로도 엄청난 캐릭터를 남겼는데 바로 조커다. 1992년 <배트맨 디 애니메이티드 시리즈>에서 조커를 맡았는데, 그 목소리 연기가 너무 맛깔나서 이후 조커의 목소리 연기는 전담했다(2022년 세상을 떠난 케빈 콘로이와 함께 '배트맨-조커' 콤비로 30년 넘게 합을 맞췄다). 이번 <와일드 로봇>에선 전매특허 같은 하이톤 대신 낮은 톤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 불곰에 어울리는 위엄을 뽐냈다. TMI를 덧붙이자면, 페드로 파스칼과 마크 해밀이 같은 작품에 나왔단 것만으로도 "<만달로리안>과 루크가 만났다"는 <스타워즈> 크로스오버라는 개그 댓글이 유튜브에 도배되기도.


<대도시의 사랑법>
흥수 모 명숙 役 장혜진

<대도시의 사랑법>은 제목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접근하는 영화다. 굳이 이름을 다시 붙이자면 '동시대의 사랑법'이 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대학교에서 우연한 기회로 친구가 된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는 각자 남들의 시선과 섣부른 재단에 고충을 겪는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우정은 점점 깊어지고 동거까지 하게 된다.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 '남녀의 동거'라는 시선에서 두 사람의 생활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이 재희와 흥수의 생활은 다양한 인간관계의 변화로 이어지는데, 그중 흥수의 엄마 명숙으로 출연한 장혜진이 눈에 쏙 들어온다. 극중 흥수는 재희에게 왜 이렇게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나왔는지 설명한다. 엄마에게 커밍아웃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동성애자인 걸 들킨 흥수. 엄마는 그런 아들을 타박하거나 혼내거나 추궁하지 않지만, 그날부터 교회를 열심히 나간다. 거기에 흥수가 잠들었을 새벽이면 몰래 흥수 옆에서 기도를 한다. 아들이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기생충>의 박충숙 역으로 익숙한 장혜진은 이번 영화에서도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그 정체성만큼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급기야 재희와 흥수의 관계를 오해하는 과정에서 그는 아들을 걱정하면서도 심리적 거리감은 쉽게 좁히지 못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환하게 웃는 미소로 (본인은 좋은 뜻이지만) 흥수에게 상처 주는 말을 건네는 모습은 편견에 사로잡혀 엇갈리는 모습을 단적으로 전한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순간들은 그리 많지 않은 분량에서도 관객들의 뇌리에 깊게 남는다. 조만간 방영을 시작하는 <정년이>에서도 장혜진의 또 다른 모습을 기대케 한다.